우리는 박성진 교수 지명 사태를 지켜보며, 과학에 대한 청와대의 몰이해를 아픈 마음으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청와대는 창조과학을 ‘과학 대 반(反)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 대 종교’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창조과학은 입증이 불가능하거나 검증에 실패한 주장을 과학이라 우기며, 과학공동체가 상호 비판을 통해 엄정하게 평가해 인정한 과학 이론을 무시합니다. 물론 그런 창조과학적 주장에 공감한다는 사실이 자신의 좁은 전공 분야 연구에 영향을 주진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박성진 교수가 그런 사례에 해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연구 분야 밖에서 반과학적으로 사유할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청와대는 과학이 무엇인지, 과학적 사유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과학을 참칭하는 유사과학을 반과학이 아닌 종교의 문제로 볼 수 있겠습니까?

청와대는 박성진 후보자를 두둔하며 창조과학보다 역사 관련 논점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습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전문 사학자들도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역사에 견주면,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닌 형용모순'임은 적어도 과학공동체에선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명백히 잘못된 유사과학보다 해석적 유연성이 상대적으로 큰 역사 문제에 청와대는 더 집중을 하였습니다. 유사과학에 대한 문제의식이 별로 없었음을 드러낸 일이었지요.

역사 문제를 두고 청와대가 내놓은 설명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 너머에 있었습니다. 생활 보수와 소시민론 등에 관해선 이미 여러 곳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청와대 관계자가 했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대해서만 한마디 덧붙이고자 합니다. "국무위원으로서 기본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역사관을 갖고 있으면 저희도 환영하겠지만, 일반적인 공대 출신으로서 그 일에만 전념해온 분들이 사실 건국절 관련 문제를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했을 수 있다." 역사관이 상식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공학자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상식적 수준의 역사관이 공학자에겐 필요하지 않음을 뜻할 수 없습니다.

창조과학자의 국무위원 지명은 과학에 대한 청와대의 이해가 얼마나 박약한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과학기술자에게 상식적인 수준의 역사관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식의 청와대 관계자 발언은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도구적 시선을 드러낸 일이었습니다. 과학기술자는 역사관도 필요 없는 도구적 존재가 아닙니다. 과학기술자이기 전에 우리는 모두 민주 사회의 시민입니다. 지금의 청와대가 과학기술을 여전히 경제발전의 도구로만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우리로선 이런 현실이 너무도 아픕니다. ESC는 문재인 정부와 촛불 정신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실망스러운 인사 문제에 관한 청와대의 성찰과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기대합니다.

2017년 9월 6일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 ESC 이름의 견해는 회원 과반의 응답과 응답자 2/3 이상의 찬성으로 발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