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27조 제1항의 문제점 및 대안

김래영*

 

I. 서론: 헌법과 과학기술

II. 헌법 제127조 제1항의 문제점

III. 외국의 사례 (생략. 첨부파일 참조)

IV. 헌법개정 제안의 이유

V. 결어: 추가 논의의 필요성

 

I. 서론: 헌법 개정에 관한 ESC의 제안

1. 개헌 논의와 헌법 제127조 제1항

6월항쟁의 소산인 87년 헌법이 시행된 지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강산도 무릇 10년이면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한 시대를 반영했던 헌법은 이제 그간의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 하여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물론, 개헌 논의는 그 동안 꾸준히 있어왔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정부와 국회가 본격적으로 개헌을 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2018년도 지방선거 때에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목표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중심으로 개헌 논의를 추진하고 있다. 헌법개정특별위원회는 헌법개정 자문위원회를 운영하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여러 방법으로 국민제안도 받고 있으며, 11월 22일부터는 개헌특위 중심으로 3주간 6차례 전체회의를 열어 현재 집중토론에 돌입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오래전부터 헌법 제127조 제1항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어왔다. 이 문제로 올해 초에 정책토론회가 있었으나[1], 큰 주목을 받지는 못 하였고, 9월 말까지도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의에서조차 주요 의제로 상정되지 못 한 채, 제도권 밖에서 메아리로만 맴돌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현 상황에 대하여 문제점을 인식한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이하 ESC) 소속 열린정책위원회는 헌법개정TF를 조직하여 이 문제에 대한 회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취합하는 작업을 뒤늦게나마 진행하였다.

헌법개정TF는 10월부터 총 두 차례에 걸쳐 헌법 개정과 관련해서 비공개로 내부 설문 조사를 실시하여 회원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그간의 논의들을 수집하며, 국회 및 시민 사회에서 헌법 개정 논의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등, 그간의 논의에 회원들의 총의를 반영하여 헌법개정의견에 반영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열린정책위원회를 통해 헌법 개정 제안을 제시하였다. ESC 집행위원회는 헌법개정TF의 의견을 받아들여, 표결을 거친 후[2], 2017년 11월 23일에 아래와 같은 헌법 개정 제안을 전체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2. 헌법 개정에 관한 ESC의 제안[3]

제3공화국 헌법에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과학진흥’이 명시된 이후 우리나라는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 발전 계획에 따라 과학기술인들과 국민 모두의 노력에 힘입어 과학기술을 활용한 산업수준의 발전을 발판삼아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4] 하지만 그 당시와 국제 정세도 많이 다르고 산업수준도 궤도에 올랐으며, 심지어 소위 제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헌법은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도구로만 바라보고 접근하는 시대착오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활용성은 다양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은 여전히 낡은 관점으로 과학기술을 바라보며, 앞으로 과학기술이 나아갈 길에 경제발전이라는 족쇄를 채워 경제발전과 관련이 적은 분야[5]나 기초 연구[6]에 눈을 돌리지 못 하게 하여 혁신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소위 제4차 산업혁명이 다가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행 헌법 제127조 제1항은 저개발국가 시대의 요구에 부합했던 헌법의 잔재일 뿐이며, 이제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걸맞은 우리 헌법을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이제 국가는 과학기술은 물론, 문화국가로서 문명의 토대를 일구는 학술 활동 및 기초 연구를 장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사)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는 다음과 같은 헌법 개정 의견을 제시합니다.

제127조 제1항에서 ‘과학기술의 혁신’을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삼도록 명시한 부분을 삭제해야 한다.

● 신설 조문을 아래와 같이 규정하여 ‘제1장 총강’에 두는 것을 제안한다.

“국가는 학술 활동과 기초 연구를 장려할 의무가 있다.”

 

 

II. 헌법 제127조 제1항의 문제점

헌법개정 의견을 설명하기에 앞서, 헌법 제127조 제1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짚고 넘어가자.

헌법 제127조
①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이 헌법조문은 일반인이 보기에 과학기술 발전에 노력하라고 헌법이 국가에 명령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따라서 무심코 받아들이면 과학기술분야에 있어서 유익한 조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조문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과학기술계에서는 이 제127조 제1항에 대해 오랫동안 논란이 있어왔다. 그 논란 중에서 몇 가지를 언급해보고자 한다.

 

1. 목적: ‘국민경제의 발전’인가?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인가?

제127조를 문언에 충실하게 해석하자면, 주된 문장은 ‘국가는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이며,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는 수식어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주된 문장은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경제발전 노력 의무는 ‘제9장 경제’의 전체적인 전제로서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127조 제1항 조문은 ‘국가는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되, 경제발전의 수단으로써 과학기술을 혁신하고 정보 및 인력 개발을 하라’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즉, 이 조문의 핵심은 국가의 ‘경제발전 노력 의무’이기 보다는, 경제발전의 수단인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에 있다.

그렇다면 이 조문은 그 자체로서 규범력을 가질까? 아니면, 단순히 입법방침을 규정한 조문일까? 조문 그 자체가 규범력을 가진다면, 입법부작위에 대한 위헌심사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조문은 ‘~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문맥상으로도 국가의 국정방침 혹은 입법방침을 설정한 조문(프로그램규정)에 가깝다. 하지만 ‘~할 의무가 있다’라고 표현했더라도 규범력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7] 이 헌법조문을 직・간접적 근거로 삼아 제정된 법률로는 「과학기술기본법」을 필두로 수많은 육성・진흥・촉진 등의 법령이 있다,[8]

 

2. 관점: 경제발전 도구로서의 과학기술

과학기술은 경제발전 즉 산업수준의 향상은 물론이요, 사회문화의 진보, 환경 보전, 삶의 질 향상, 건강 증진 등 가시적인 활용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실생활에 활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 지식의 기초 또한 제시해주는 등 그 범주가 넓고 활용도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헌법은 과학기술을 오로지 경제발전의 도구로서만 바라보며 다루고 있다. 이 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 헌법의 연혁과 당시 시대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제5차 개정헌법(1962년)

제5차 개정헌법 제118조 ①국민경제의 발전과 이를 위한 과학진흥에 관련되는 중요한 정책수립에 관하여 국무회의의 심의에 앞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경제·과학심의회의를 둔다.
②경제·과학심의회의는 대통령이 주재한다.
③경제·과학심의회의의 조직·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1948년 제헌 헌법에서는 헌법 안에 과학기술과 관련된 언급이 없었다. 현행 헌법 제127조 제1항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의 모태가 되는 조항이 등장한 것은, 장면 내각이 5.16 군사정변으로 붕괴하고 박정희 소장이 제2대 의장을 맡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주도로[9] 개정한 제5차 개정헌법(1962년) ‘제4장 경제’에 신설된 제118조부터였다.

보다시피 제5차 개정헌법에서는 현행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경제과학심의회의’의 설치를 헌법적으로 근거하려는 의미가 강했고, 따라서 현행헌법과 그 의미가 유사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위한 과학진흥”이라는 서술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과학을 경제발전의 수단으로서 바라보는 관점이 처음 등장하였다. 제5차 헌법개정 이유는 “시급한 민생고를 해결하고 국민경제의 조속한 발전을 기할수 있는 경제체제와 기구를 마련”한다고 밝히는데, 이는 국가최고재건회의가 경제발전의 목적으로 과학기술을 바라보았다는 또 하나의 근거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인 『국가와 혁명과 나』(1963년)에서 ‘경제 제일주의’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신념은 제3공화국의 국정 운영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정부는 국가가 설정한 특정 수출 산업을 진작하고 산업 분야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에 집중하는 정책으로 당시 우리나라의 미미한 산업수준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그렇기에 1960년대 당시 정부는 “미국의 국립과학재단이 ‘기초 연구’라고 부른 분야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10]

제5차 개정헌법 제118조는 이후 1969년에 있었던 제6차 헌법 개정 때에도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2) 제7차 개정헌법(1972년)

제7차 개정헌법 제123조 ①국민경제의 발전과 이를 위한 과학기술은 창달·진흥되어야 한다.
②대통령은 경제·과학기술의 창달·진흥을 위하여 필요한 자문기구를 둘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17일에 전국 비상 계엄을 선포하고 헌법에 국해해산권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권한 없이 국회를 강제 해산한 후 입법권을 국무회의로 편입시켰다. 이 국무회의가 의결하여 국민투표를 통과한 헌법안이 소위 ‘유신헌법’으로 불리는 제7차 개정헌법(1972년)이다.

이 헌법에서는 기존의 제118조가 삭제되고 이 조문을 사실상 계승하였다고 볼 수 있는 제123조가 처음 등장한다. 제5차 개정헌법과 비교하였을 때 ‘과학기술’이라는 용어가 헌법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국민경제의 발전과 경제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을 창달·진흥시켜야 한다는 국가의 의무가 처음 직접적으로 명시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후 두 차례의 헌법개정에서도 이와 같이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접근하는 관점은 계속된다.

 

(3) 제8차 개정헌법(1980년)

제8차 개정헌법 제128조 ①국가는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고 과학기술을 창달·진흥하여야 한다.
②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
③대통령은 제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문기구를 둘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이후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초안을 작성하고 최규하 대통령이 발의하여 유신헌법에 따라 바로 국민투표에 부쳐져 통과되었다. 이것이 제8차 개정헌법(1980년)이다.

이 헌법에서는 제123조 조문이 제128조로 이전하고, 조문 내용에 있어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제7차 개정헌법과는 달리 제8차 개정헌법에서는 국민경제의 발전 의무와 과학기술 창달진흥 의무가 ‘~와’라는 접속조사로 동등하게 병렬적으로 배치되는 서술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 장에 위치해 있었기에 경제발전의 수단으로만 보던 시각은 벗어나지 못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처음으로 ‘표준제도 확립에 대한 국가의 배타적 권한’을 언급하는 것이 제8차 개정헌법의 특징이다.

 

(4) 제9차 개정헌법(1987년, 현행)

1987년 6월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를 중심으로 한 개헌안이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를 통과하였다. 이 제9차 개정헌법(1987년)이 바로 현행 헌법이며, 제8차 개정헌법 제128조 내용은 약간의 변화를 거쳐 제127조로 이전하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현행 헌법 제127조 ①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②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
③대통령은 제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문기구를 둘 수 있다.

 

현행 헌법 제127조 제1항의 서술은 제8차 개정헌법과 다소 다르다. 제8차 개정헌법이 경제발전과 과학기술진흥을 동등한 위치에서 병렬적으로 놓아 경제 장에 배치했었다면, 현행 헌법은 다시 박정희 시대의 헌법으로 회귀한 듯한 관점이다. ‘국가는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의무에 ‘그러한 노력은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해야 한다’는 수단적 관점이 가미되었다. 얼핏 보면 경제발전 노력 의무가 주된 내용인 것으로 읽히지만, 제1항의 핵심은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에 있다. 즉, 국가는 ‘과학기술 혁신을 수단으로 삼아’ 경제 발전에 노력하라고 주문하는 헌법조문이다. 이러한 해석에 맞추어, 현재 제127조 제3항을 근거삼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법」이 시행되고 있다.

제9차 개정헌법이 만들어지기까지 제12대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회의록에서 제127조 내용을 가지고 논의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개헌특위 마지막 회의인 제8차 회의(1987년 9월 17일)에서 안건으로 상정된 ‘헌법개정안기초에 관한 건’에서 개정시안으로 처음 등장하였고, 그 시안에 표현되었던 문구 그대로 본회에 상정되어 1987년 10월 13일에 가결된 게 전부다. 현재 공개된 국회 기록만으로는 어떠한 논의를 거쳐서 현행 헌법 조문이 만들어졌는지 추적하기 어렵다.

 

(5) 정리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행헌법 제127조의 내용은 그 내용이 처음 등장했던 제5차 개정헌법부터 지금까지 계속 경제발전의 수단으로서 발전을 강요받아 왔다. 물론 이 조문이 처음 등장했던 시기에는 이러한 관점이 필요했다고 볼 수도 있다. 60년대 초 당시 산업수준이 미미하여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수출산업에 필요한 과학기술 발전에 힘써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과학기술 발전은 70년대 중화학공업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였으며, 과학기술 진흥을 통하여 산업수준의 향상을 꾀한 결실은 경제발전은 물론이요,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사회 발전과 민주화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민간 기업의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고, 전두환 대통령때부터 정부 정책도 과거 박정희 대통령식 국가 주도의 계획발전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촉진×지원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11] 제8차 개정 헌법의 서술에서 과학기술 진흥과 국민경제 발전이 병렬적으로 서술된 변화는 이러한 정부 정책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제9차 개정헌법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유신헌법 시절 관점으로 다시 회귀하여 서술되었다.

현재 국가의 ‘과학기술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은 과학기술기본법 및 각종 진흥 법안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연구개발사업’도 이러한 자금 지원 형태의 국가사업이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은 과학기술기본법 제7조에 의해 수립된 ‘과학기술기본계획’에 따라 과학기술기본법 제11조를 근거로 추진된다. 그런데 과학기술기본법은 “과학기술발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여 과학기술을 혁신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인류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즉, 헌법 제127조 제1항의 내용은 이 헌법조문을 구체화 한 과학기술기본법을 통해 연구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12] 제127조 제1항의 내용은 위에서 살펴보듯이 과학기술을 경제개발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관점에서 서술된 조문이다. 따라서 과학기술발전은 당장 활용 가능한 산업친화적인 분야를 중심으로 육성되어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문제는 소위 대기업이라 분류되는 민간기업이, 6, 70년대와는 달리, 이미 충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한 상태이거나 확보 가능한 상태라는 것이다.[13] 물론 산업친화적인 과학기술에만 지원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과학기술기본법 제15조에서 기초연구 진흥 시책을 추진하도록 규정하고, 이에 따라 기초연구도 지원한다.[14] 하지만 헌법이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도구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한, 기초연구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당위성이 산업친화적인 과학기술연구에 투입하는 당위성보다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산업친화적인 과학기술연구는 기술력확보를 위한 민간시장의 경쟁 덕택에 이미 많은 부분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 주도의 하향식(top down) 과학기술투자는 정부실패의 위험을 떨치기 어렵다. 하지만 제127조 제1항은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과학기술을 우선하여 투자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목적이 헌법에 명시됨으로써, 연구에는 반드시 ‘기대효과’ 등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해내야 한다는 목적성을 국가와 국민에게 알게 모르게 심어주는 효과도 있다. 그런데 ‘연구’라는 행위는 아직 알지 못 하는 것을 알아내는 행위이며, 따라서 예측 불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과학기술은 과학기술자들이 어떻게 쓰일 것이라는 목적을 가지고서 알아내고 만들어낸 것 보다는, 우연히 발견하였거나 실패를 통해서 발견한 것들도 부지기수다.[15] 정부도 이 문제점을 인지하여 최근 기대효과를 과제선정기준 비중에서 낮추려는 시도 등 노력을 하고 있으나, 헌법 제127조 제1항이 버티고 있는 한 가시적 성과 기대, 특히 경제적 효과 기대를 무시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적 효과가 미미한 기초연구는 경제적 효과가 예상가능한 기초연구와는 달리, 상향식(bottom up) 연구 보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문제는, 시장성이 미미한 기초연구는 민간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초연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손가락’이 지시하는 방향만을 좇을 수밖에 없고, 예측 가능하고 실패위험이 낮은 연구만을 선호하게 된다. 따라서 늘 정부실패의 위험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3. 용어: “과학기술”, “정보”의 의미 논란

제127조 제1항은 핵심 개념 중 일부 용어가 종종 문제가 되었다.

 

(1) “과학기술”

우선 가장 논란이 많았던 용어는 ‘과학기술’이다. 본래 ‘과학’과 ‘기술’은 분명히 구분되던 개념으로, 각각 개별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1972년 제7차 개정헌법에서 ‘과학기술’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연구개발의 목적과 이점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과학기술’ 용어 사용을 시도했다. 당시 ‘과학’이라는 개념의 의미는 ‘과학기술’과 그 의미가 같았고, 이러한 의미에는 산업, 수출 등 국민경제의 발전의 도구로서의 ‘과학’이라는 의미가 항시 내포되어 있었다.[16] 이러한 사상이 헌법과 법률에 관철된 이후 헌법은 물론, 법령 및 사회 전반에 걸쳐 ‘과학기술’이라는 용어가 어느정도 정착되어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기에 이른다.

박정희 대통령이 관철시켰던 견해대로라면 처음 ‘과학기술’의 의미는 당장 경제에 이점을 주는 ‘기술’에 그 중점이 있었고, 순수한 의미로서의 ‘자연과학’ 개념은 그 존재가 미미했다. 그런데 서구권에서 science & technology 혹은 science & engineering 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면서[17], 서구권에서 쓰던 이 의미가 한국어의 ‘과학기술’ 용어 의미에 ‘덧씌워졌다’. 이러한 의미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반감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적었다. 또한 90년대 초부터 많은 ‘공학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과학기술자’에서 찾았던 사실도 비추어보면,[18] 현재에 들어와서는 거의 정착된 용어라고 할 수도 있다.

ESC에서는 헌법에서 사용하는 ‘과학기술’ 용어를 ‘과학’과 ‘기술’로 분리할 필요가 있는지 묻는 내부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424명의 전체회원 중 80명(18.8% 응답)이 응답하였으며, 전체응답자 중 44명(55.7%)이 ‘과학’과 ‘기술’을 분리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과학’이 ‘기술’과 합쳐서 사용되어 ‘과학’의 의미보다는 ‘기술’의 의미가 더 강하며, 따라서 기술(혹은 공학)중심적인 용어이므로 분리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이러한 분리 찬성 견해는 개념 분리를 통하여 ‘기술’은 현행 헌법처럼 경제발전과 밀착시키고, ‘과학’은 학문적 성격을 강조하여 ‘경제발전의 도구’라는 미명 아래 경제발전과 관련 없는 연구가 소흘히 다뤄지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과학기술’ 용어를 그대로 쓰자(31명; 39.2%)는 견해를 표하거나 잘 모르겠다(4명; 5.1%)고 응답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사용해 온 개념이고, 서구에서도 science & technology라는 용어가 있으며,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기술 또한 science & technology로 현재 번역되고 있기에, 용어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옛날이라면 맞았을 지 몰라도, 현재에는 맞지 않다는 의견을 주로 피력했다.[19]

위와 같이 찬반의견이 약 6:4 비율로 나타났고, 각 의견의 구체적인 이유가 첨예하기 대립하였기에, 이러한 결과를 반영하여 ESC 헌법개정TF는 이번 헌법개정 의견에서 “과학기술” 용어를 분리하는 문제를 다루지 않기로 정했다.

 

(2) “정보”

“정보”라는 용어 또한 약간의 논란이 있다. 정보는 information의 번역어인데, 현재 이 개념은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게 대세다.[20] ICT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정보 및 통신 기술’이 된다. 정보기술(IT)과 통신기술(CT)의 합성어이며, Science & Technology 용어가 등장했던 배경과 유사하다. 기술의 발달로 정보기술과 통신기술이 서로 분리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 용어는 1997년에 등장하여 널리 쓰였다[21]. 문제는 87년에 개정된 헌법이 이러한 용어개념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 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또한 ‘정보’라는 개념은 앞의 ‘과학기술’이라는 개념의 일부이다. 특히 information technology를 강조하고자 의도했던 게 아니면 지극히 불필요한 개념이다. 강조하고자 했더라도 정보 기술은 기술 발전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개념이자 범주다. 따라서 법률로 제정하여 기술변화의 추이에 따라 기민하게 대처하는 정책이 과학기술정책적으로도 유용하다. 이렇게 변화와 발전이 빠른 개념을 개정이 어려운 헌법에 굳이 명시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III. 외국의 사례 (첨부파일 참조)

 

IV. 헌법개정 제안의 이유

 

1. 제127조 제1항 삭제의 필요성

우리는 위의 제II장 제1절에서 우리나라 헌법이 줄곧 과학기술 진흥을 경제발전의 도구로서만 바라보며 접근하였다는 사실과 함께,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에 종속시킴으로 야기되는 문제점들을 살펴보았다.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헌법의 이러한 관점이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유용하게 활용되었을지라도, 현재에는 시대착오적인 관점이며, 항상 정부실패라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고, 근시안적 목적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다시한번 떠올려보자. 제127조 제1항은 이제 그 효용을 다 했다. 이 조항은 더 이상 아무런 가치를 지니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정부가 현장과학기술자, 민의(民意), 유권자의 의사, 시대의 요구 등을 반영하여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족쇄가 될 뿐이다.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는 설왕설래하는데, 정작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과학기술정책 관점은 여전히 근대 산업혁명 시대의 후발주자 위치에 머물러있다. 따라서 현행 헌법 제127조 제1항은 삭제해야 한다.

현행 조문에서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목적만을 지우면 해결되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물론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에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문장이 되어 제III장에서 살펴본 국가들의 헌법과 비슷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경우에 문제의 조문이 계속 ‘제9장 경제’에 배치되어 있어서 ‘과학기술의 혁신’ 의무가 여전히 경제 발전과의 관계와 자유롭지 못 하게 된다는 점에 있으며, 그렇게 되면 이 헌법 개정 제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 한 것이 된다. 물론 과학기술이 경제와 관련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분야와도 관련이 있으며, ‘오로지’ 경제적 관점에서만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헌법의 관점에 종지부를 찍을 수 없게 된다. 또한 조문 내용도 그 성격이 달라져서 현재 위치인 ‘제9장 경제’와 어울리지 않게 되고, 헌법전의 구성에 있어서 이러한 장절 체계와 조문 내용의 불일치는 헌법전의 체계를 잡는 데에 좋지 못하다. 따라서 장차 개정할 헌법에서는 제127조 제1항을 ‘제9장 경제’ 위치에서 삭제해야 한다.[37]

제127조 제1항이 삭제되면 과학기술분야의 정부 지원이 줄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많은 국가들이 헌법에 이러한 과학기술 진흥 의무 내용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그 내용이 헌법에 없다고 해서 과학기술투자에 소흘히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과학기술강국이라 알려진 국가의 절대다수는 이와 같은 과학기술 연구 및 제반활동을 국가가 장려할 것을 헌법에 직접 명시하여 의무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국가가 과학기술 연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과학기술 촉진에 필요한 사항을 입법화한다. 굳이 헌법에 명시하지 않아도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헌법상 제약이 없기 때문에 국가는 보다 유연하게 과학정책을 펼칠 수 있다. 따라서 제127조 제1항은 삭제해도 무방하며, 오히려 삭제해야 한다.

일단 ESC의 헌법 개정 제안은 제127조 제1항의 전부 삭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제1항의 전부 삭제 또한 긍정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제127조 제1항이 전부 삭제되면 국가의 국민경제의 발전 노력 의무도 같이 삭제되어 국가가 국민경제의 발전 노력에 소흘히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제9장 경제’에 배치된 제119조 내지 제126조 대부분이 시장경제질서를 바탕으로 국가의 경제 발전 노력 의무를 내포하고 있기에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제127조 제1항의 삭제로 명시적인 국민경제 발전 노력 의무가 삭제되더라도 국가는 국민경제의 발전에 소흘히 할 수 없다. 정권교체가 용이한 정치체제에서 경제발전에 소흘히 하여 경제침체 내지 경제공황을 유발한다는 것은 무거운 정치적 책임이 주어지며 사실상 집권을 포기한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는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문이 자칫 시장 질서에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을 정당화하는 조문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즉, 위와 같은 조문은 제119조 내지 제126조에서 읽힐 수 있는 수정자본주의적 요소와는 달리, 직접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관치경제)를 긍정하고 시장경제를 억압하는 근거로서 작용할 위험이 크기에 삭제되어야 함이 옳다.

 

2. 조문 신설의 필요성 1: 연구 정책 변화의 필요성

돕고 힘쓴다는 의미로 ‘장려’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 용어는 법령명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법조문 표현으로는 종종 사용된다.[38] 기존에 사용되었던 ‘진흥’이나 종종 사용되었던 ‘촉진’이라는 표현은 발전의 방향성과 이에 따른 국가의 적극 개입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에, 보조적인 의미가 강한 ‘장려’라는 용어가 이 대안의 취지에 부합하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이 대안은 ‘정부 당국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발전’이라는 의미, 특히 연구과제선정에 있어서 정부 당국이 원하는 연구과제 중심으로 보조가 이루어지는 관행을 조문을 보았을 때 가급적 떠올리지 않도록 의도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서구사회 과학기술정책에서 주로 반영되는 모델인 하르나크 원칙(Harnack Principle)과 할데인 원칙(Haldane Principle)을 대안 조문에서 투영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하르나크 원칙이란 카이제빌헬름연구회 초대 회장인 아돌프 폰 하르나크(Adolph von Harnack)가 제창했던 “연구수행과 관련된 모든 권한은 연구자가 가지며 정부는 예산을 지원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 원칙은 100여년간 독일 연구회의 기본 정신으로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할데인 원칙은 “정부는 응용기술 분야든 순수 분야든 이를 통제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으로, 영국의 ‘할데인 보고서’(1918년 발간)를 통해 천명되었으며, 현재에 들어와서, 서구 과학기술계는 물론, 인문사회계까지 이 할데인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39]

 

3. 조문 신설의 필요성 2: 기초 연구 장려의 필요성

기초 연구[40]의 경우에는 많은 경우에 미미한 시장성을 이유로 민간 자금 지원을 받기 어렵다. 과학기술이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활용되기 위해서는 기초 연구가 탄탄해야 하며, 기초 연구라는 토대 없이는 혁신(innovation)이 일어나기도 어렵다. 그런데 기초 연구는 연구 성격상 많은 자금이 필요한 연구가 많고[41], 중장기적으로 지원받아야 성과가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며, 연구를 통해 나온 성과도 학술적으로는 무궁무진한 활용가능성을 내포한 성과일지 모르나 시장성은 예측하기 어려운 게 절대다수다. 따라서 국가의 안정적인 지원 없이는 연구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하지만 정권 교체가 잦은 현대사회의 정부 특성상 정권교체기에 정치문제에 따라 장기적인 연구 지원이 불안정해질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기초 연구 장려를 국가의 의무로 두는 조항을 신설하여 흔히 대학, (과학기술분야를 포함한) 정부출연연구기관, 국공립연구기관 등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기관에서 연구되는 기초 연구가 소흘히 수행되지 않도록 헌법적 근거를 둘 필요가 있다. 또한 장려의 목적을 헌법에서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다각도의 관점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기초 연구를 장려할 수 있도록 할 필요 또한 있다.

 

4. 조문 신설의 필요성 3: 전체 학술분야에서의 기초 연구 장려로 확장할 필요성

기초 연구의 지원 필요성은 비단 과학기술분야 뿐만이 아니다. 인문학 및 사회과학 분야의 기초 연구 역시 시장성이 미미하여 민간 투자가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중장기적 지원이 있어야 성과가 나온다. 또한 그렇게 나온 성과 역시 학술적으로는 광범위한 활용성을 가지는 반면에 시장성은 여전히 미미하다는 것도 위의 제3절에서 설명한 과학기술분야의 기초 연구와 상황이 같다. 즉, 인문학, 사회과학 등 과학기술 외의 학술분야의 기초 연구도 정부 지원 없이는 생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기초 연구는 사회 및 문화, 사상, 정치, 제도, 경제 등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에, 과학기술 기초 연구와 비교해도 그 중요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앞의 제III장에서 살펴본 세 국가도 ‘science’의 개념을 단순히 자연 과학에만 한정시키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실제 연구 지원 및 연구자 양성에 있어서는 넓은 의미의 과학 분야는 물론이요, 인문학 분야까지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기초 연구 장려 의무를 전체 학술 분야까지 확대하지 않아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설득력이 없으며, 기초 연구 분야 내부에서의 지원 비중은 별론으로 두더라도, 전체 학술 분야에서의 기초 연구를 장려해야 할 필요성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기초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 역시 주로 대학, 정부출연연구기관, 국공립연구기관 등이 주가 될 것이라 본다.

 

5. 신설 조문의 의미

위의 제안인 “국가는 학술 활동과 기초 연구를 장려할 의무가 있다.”라는 조문(안)을 살펴보자.

우선 “국가는 ~할 의무가 있다.”는 서술은 주권자인 국민이 ~의 행위를 하라는 의무를 규정하는 것이다. 다만 조문의 성격상 입법방침을 규정한 조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학술 활동”이라 함은 ‘체계화된 지식과 경험의 총체’인 ‘학문과 기술’을 총괄하는 의미로, 전체 학술 분야를 의미한다. 또한 ‘학술 활동’은 연구 계획 및 연구, 연구자 양성, 연구 환경 조성, 기술 습득, 결과 평가, 활용 등 학술과 관련한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그 다음 살펴볼 의미는 “기초 연구”라는 개념이다. 여기서의 “기초 연구”란 앞에서 설명한 “학술 활동”의 하나로서, ‘학술을 통하여 새로운 이론과 지식 등을 창출하는 연구활동”이라 정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을 장려하다”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자. 사전적 의미로는 “좋은 일에 힘쓰도록 북돋아 줌”이라는 의미로서, 단순히 ‘북돋우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안하는 조문에서는 ‘지원’, ‘조력’, ‘진흥’, ‘촉진’ 등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되, 앞의 제2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의 적극 개입과 방향성 제시라는 의미를 희석시키는 용어로써 ‘장려’라는 의미를 사용하였다. 또한 ‘장려’라는 표현은 기존 표현인 ‘혁신’에 비해 ‘활동’과 ‘연구’에 대응하는 서술어로 잘 어울린다.

이제 위의 개념을 연결해보아 “국가는 학술 활동과 기초 연구를 장려할 의무를 진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알아보자. 기초 연구는 학술 활동 중 하나에 속하는 활동이다. 즉 이 둘의 관계는 부분집합관계이다. ‘-와/-과’는 접속조사인데, 접속조사 앞뒤 개념이 부분집합관계로서 동등하지 않다. 따라서 이 문장은 학술 활동을 장려하되, 특히 기초 연구를 장려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도록 의도하였다. 즉, 이 문장의 핵심은 ‘기초 연구 장려’에 있다.

 

6. 제1장 총강에 배치해야 하는 이유

제127조 제1항 삭제 요구는 ‘과학기술’이 더 이상 경제발전이라는 목적에만 종속되는 관점을 피하고 다각도로 접근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현재 장절 분류를 기준으로 ‘제9장 경제’에 배치되어서는 안 된다. 신설 조문이 제127조 제1항을 대체하여 ‘제9장 경제’에 배치될 경우, 제127조 제1항을 삭제하고자 한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장에 배치해야 하는데, 제1장 총강이 현 장절 분류에서 가장 조문의 의미에 부합하는 장이라 생각한다.

학술과 기초 연구는 “인간의 정신적×창조적 활동 영역”[42]이라 정의 내릴 수 있는 ‘문화’에 해당하며, 이러한 학술과 기초 연구를 장려하라는 의무를 부여하는 조문은 “국가가 개인의 문화적 자유와 자율을 보장함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개인의 문화적 생활을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국가”[43]라는 의미인 ‘문화국가’ 개념에도 부합한다. 따라서 제9조 문화국가원리의 일환으로서 취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러한 배치를 통해 우리나라가 학문과 기술을 중시한다고 선언하는 의미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제1장 총강에 배치하되, 학술 역시 문화의 범주에 해당하므로, 문화국가임을 선언하는 제9조와 어울리게 배치하는 것을 제안한다.

 

 

V. 결어: 추가 논의의 필요성

지금까지 제127조 제1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삭제의 필요성, 삭제의 대안에 대해 논해보았다. 이외에도, ① 제127조 제1항에서 과학기술의 혁신과 국민경제의 발전 연결고리가 끊겼을 때, 제127조 제3항의 임의적 자문기구 설치근거도 논리상 같이 삭제되어야 하는지 (필자는 제127조 제3항도 삭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② 대안으로 제시한 신설 조문 없이도 현재 존재하는 기본권만으로 대안이 요구하는 바를 실현가능한지,[44] ③ 삭제 및 조문 신설 대안으로 인해 위에 열거된 기대효과 이외에도 어떠한 파급효과가 있을지 등을 추가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 ESC 열린정책위원회 헌법개정TF 팀장.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석사과정(민사법)

[1] 2017. 2. 22. 국민의당 신용현 의원실 주최로 「과학기술 헌법 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있었다.

[2] ESC에서 성명이나 의견 등을 ESC 이름으로 공표하려면, 발표 가부에 관하여 재적회원 과반이 투표하여 투표회원 2/3 찬성으로 가결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헌법 개정에 대한 ESC의 제안” 공표 가부 투표를 11월 17일부터 22일까지 실시하였고, 그 결과 재적회원 441명 중 226명(58%)이 투표에 참여하여, 찬성 246명(96.1%), 반대 4명(1.6%), 기권 6명(2.3%)으로 가결되어, ESC 이름으로 헌법 개정 제안을 공표하였다.

[3] 이 절의 본문은 ESC가 공표한 “헌법 개정에 관한 ESC의 제안”을 직접 인용하였다. 단, 각주는 필자가 직접 단 것이다.

[4] 1960년대에 집권한 박정의 정권 이래로 정부는 노동집약적 산업 → 중화학공업 → 기술집약적 산업 → 첨단산업 → 창의성 기반 융합기술 산업 을 육성하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황병상 외 2인, 『한국융합정책론: 융합기술과 산업융합』, 웅보출판사, 2016 참조.

[5] 2015년 기준 총 연구개발비(약 66조원) 중 산업생산 및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61.24%(약 40조4천억원)로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위는 분야는 교통, 전기통신등 기반시설로서 8.53%(약 5조6천억원)의 비중을 차지한다.

[6] 2015년 기준 총 연구개발비(약 66조원) 중 기초연구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7.23%(약 11조4천억원)이며, 응용연구비가 20.84%(약 13조7천억원), 개발연구비가 61.94%(약 40조9천억원)을 차지한다. 연구개발단계 분류는 OECD 기준을 따르며, 아래와 같다.
○ 기초연구: 특수한 응용 또는 사업을 직접적 목표로 하지 않고, 자연현상 및 관찰 가능한 사물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기 위하여 최초로 행해지는 이론적 또는 실험적 연구
○ 응용연구: 기초연구의 결과 얻어진 지식을 이용하여 주로 실적인 목표 하에 새로운 과학적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연구
○ 개발연구: 기초·응용연구 및 실제경험으로부터 얻어진 지식을 이용하여 새로운 제품 및 장치를 생산하거나, 이미 생산 또는 설치된 것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연구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 http://sts.ntis.go.kr 통계 인용.

[7] 김명재, “과학기술과 학문의 자유” 「헌법학연구」, 2005, 164~165쪽에서는 학문의 자유를 근거로 국가에게 연구 창출 및 지원을 요구할 수 있고 부작위시 헌법소원이 가능하다는 오페르만(T. Oppermann)의 객관적 가치결단(Objektive Wertentscheidung) 견해를 (각주44에서, 기본권의 이중적 성격 중 ‘객관적 가치’와 같음) 인용하며 그 예시로 연구 지원 의무를 든다. 하지만 165쪽에서는 국가의 노력 책무만 언급할 뿐, 오페르만의 견해를 헌법 제127조에 직접 적용하여 논지를 전개해 나가지는 않는다.

[8] 과학기술 혁신과 인력의 개발에 관한 법은 앞서 언급한 「과학기술진흥법」 외에도 「국가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이공계지원 특별법」, 「국가기술자격법」, 「과학교육진흥법」, 「기초연구진흥 및 기술개발지원에 관한 법률」, 「기술사법」, 「나노기술개발 촉진법」, 「뇌연구 촉진법」, 「비파괴검사기술의 진흥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산업기술연구조합 육성법」, 「생명공학육성법」, 「엔지니어링산업 진흥법」, 「연구개발특구의 육성에 관한 법률」, 「우주개발 진흥법」,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 「특정연구기관 육성법」, 「협동연구개발촉진법」, 「핵융합에너지 개발진흥법」 등이 있으며, 정보의 개발에 관한 법은 「국가정보화 기본법」,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 「전기통신기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콘텐츠산업 진흥법」 등이 있다.

[9] 당시, 개헌안을 의결할 국회가 강제 해산된 상황이었으며, 따라서 5.16 군사정변의 핵심인물이 주축이었던 국가최고재건회의는 국회 의결 없이 자신들이 작성한 개헌안을 곧바로 국민투표에 부쳤다.

[10] 한경희 & 게리 리 다우니 저, 김아림 역, 『엔지니어들의 한국사』, 2016, 119쪽.

[11] 한경희 & 게리 리 다우니 저, 김아림 역, 『엔지니어들의 한국사』, 2016, 177쪽 이하.

[12]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관리 표준매뉴얼』, 미래창조과학부, 2017.06., 5쪽 이하.

[13] 2015년 기준 총 연구개발비(약 66조원) 중 정부 및 공공 재원 비중은 24.7%(약 16조3천억원), 민간 재원 비중은 74.55%(약 49조2천억원), 외국 재원 비중은 0.75%(약 5천억원)을 차지하였다. 연구개발비에서 민간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며, 정부 및 공공 자금은 전체 연구개발비의 1/4에 불과하다.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 http://sts.ntis.go.kr 통계 인용.

[14] 과학기술기본법 제15조(기초연구의 진흥) 정부는 과학기술혁신의 바탕이 되는 기초연구를 진흥시키기 위하여 대학과 정부가 출연하는 연구기관의 연구 및 상호 연계·협력을 활성화하고 안정적인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종합적인 시책을 세우고 추진하여야 한다. 기초연구분야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각주6 참고.

[15] 예를 들어, 헤르츠가 음극선 실험 도중 발견된 광전효과는 이후 과학자들이 현상을 규명하고 아인슈타인에 이르러 해명되어 현재 광전관, 의료촬영장치, 센서 등 산업 및 생활 전반에 걸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16] 한경희 & 게리 리 다우니 저, 김아림 역, 『엔지니어들의 한국사』, 2016, 154쪽.

[17] 서구권에서도 technology와 engineering 개념은 혼용되어 쓰는 등, 서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18] 한경희 & 게리 리 다우니 저, 김아림 역, 『엔지니어들의 한국사』, 2016, 200쪽.

[19] 비슷한 시기에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에서 시행했던 설문결과에서는 ESC의 설문과 상반되는 결과가 나왔다. 공개설문으로 진행되었던 BRIC의 설문조사는 총 2280명이 참여하였으며, 1566명(69%)의 응답자가 ‘과학’과 ‘기술’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하였으며, 522명(23%)의 응답자는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을, 192명(8%)의 응답자는 잘 모르겠다고 응답하였다. 이러한 결과의 차이는 응답자 수의 차이를 포함하여, BRIC: 공개 – ESC: 비공개, BRIC: 간결한 즉답형 질문 – ESC: 상세한 인터뷰형 질문 등이 찬반비율의 차이를 크게 만들어낸 것이라고 판단한다.

[20] 하지만 영국왕립학회는 2012년에 ICT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이에따라 2014년 국가커리큘럼(National Curriculum)에서는 대체 용어로서 ‘computing’을 사용한다.

[21] Dennis Stevenson.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in UK Schools: An Independent Inquiry March 1997. Independent ICT in Schools Commission. 1997.

(제3장 외국의 사례의 주석 [22] ~ [36]은 첨부파일의 각주 참조)

[37] 이러한 제127조 제1항 삭제 요구가 과학기술이 경제개발의 목적으로 쓰이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히 밝힌다. 과학기술은 다방면에 걸쳐 활용할 수 있으며, 그 중 하나가 경제발전임은 자명하다. 다만, 경제발전의 수단으로’만’ 과학기술을 다루는 헌법의 관점에 반대하는 것이다.

[38] 예: 과학기술기본법 제17조 ② 정부는 민·군 간의 협동연구개발을 장려하고 민·군 기술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시책을 세우고 추진하여야 한다.

[39] 박기주, “과학기술 헌법조항의 재검토 및 개정방향”, 헌법재판연구, 제3권 제1호, 2016, 302쪽 및 각주12.

[40] 「과학기술기본법」 제15조(기초연구의 진흥)에 따라 제정된 「기초연구진흥 및 기술개발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에서는 기초 연구를 “기초과학 또는 기초과학과 공학×의학×농학 등과의 융합을 통하여 새로운 이론과 지식 등을 창출하는 연구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꼭 순수학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명심하자. 여기 제3절에서의 ‘기초 연구’는 이 정의를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제3절에서의 ‘기초 연구’는 여기 제3절에서 논의한 ‘기초 연구’ 개념의 범위보다 확장된 논의를 할 것이다. 참고로, OECD에서는 기초 연구를 “특수한 응용 또는 사업을 직접적 목표로 하지 않고, 자연현상 및 관찰 가능한 사물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기 위하여 최초로 행해지는 이론적 또는 실험적 연구”로 정의한다.

[41] 최근 과학기술계에서는 여러 단체 혹은 국가가 컨소시엄을 조직하고 자금을 조달하여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42] 성낙인, 『헌법학』, 2015, 296쪽.

[43] 성낙인, 『헌법학』, 2015, 296쪽.

[44] 예를 들어, 기본권의 이중적 성격(주관적 공권과 객관적 질서) 및 헌법 제10조 후문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에서 도출되는 ‘기본권의 최대보장원칙’에 따라 학술, 특히 기초연구를 장려(진흥)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고 근거지울 수 있는지 여부 등이 있다. 기본권의 이중적 성격(양면성)에 관하여는 허영, 『헌법이론과 헌법』, 2015, 393쪽 이하 참조.

헌법재판소는 1996.8.29. 94헌마113 결정에서 직업의 자유에 대한 기본권의 이중적 성격을 인정하였다. “직업의 선택 혹은 수행의 자유는 각자의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편이 되고, 또한 개성신장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주관적 공권의 성격이 두드러진 것이기는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 개개인이 선택한 직업의 수행에 의하여 국가의 사회질서와 경제질서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라고 하는 객관적 법질서의 구성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각 개인이 향유하는 직업에 대한 선택 및 수행의 자유는 공동체의 경제사회질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동화적 통합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경우에는 헌법 제37조 제2항 전문규정에 따라 이에 대하여 제한을 가할 수 있다.”(밑줄은 필자가 임의로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