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과학기술과 헌법포럼 개최

‘도구로서의 과학만을 요구하던 개발 시대 헌법 개정 시도

11월 25() 오후 2-5, 고려대 하나스퀘어 강당 B112호

ESC 주최, 임대식 과기혁신본부장, 오세정 국회의원 등 참석

 

새 정부 출범 이후 6개월, 국회 개헌 논의가 한창이다. 이에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이하 ESC)’에서는, 지금까지 과학기술이 헌법에서 어떻게 다뤄져 왔는지를 돌아보고, 이른바 4차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과학기술과 헌법의 관계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특히 산업화 시대의 과학기술정책과 관련된 ‘헌법 제127조 제1항’의 한계를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 자리는, 과학기술인들이 헌법학자들과 함께 헌법 개정에 대해 논의하는 첫 시도다.

제3공화국 헌법에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과학 진흥’이 명시된 이후, 과학기술은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개발 계획의 유용한 도구로서 기능해 왔다. 많은 과학기술인들은 초고도발전, 초압축성장을 이뤄낸 지금까지도, 여전히 개발 시대의 감각으로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인들을 바라보고, 경제발전의 수단으로서만 생각하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과학기술의 목적은 경제발전만이 아니다. 과학기술 연구는 진리 탐구 활동으로서 문명의 토대를 이룰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의 진보, 환경 보전, 삶의 질 향상, 건강 증진 등 다양한 활용성을 지닌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의 합리적인 사유 방식은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갖춰야 할 주요한 문화적 소양이다. 이에 ESC는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인들의 손발을 묶는 개발 시대 헌법의 잔재인 제127조 제1항에서 ‘과학기술의 혁신’을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삼도록 명시한 부분을 삭제해야 하며, “국가는 학술 활동과 기초 연구를 장려할 의무가 있다.”는 신설 조문을 제1장 총강에 둘 것을 제안할 예정이다.

이날 토론에서는 김래영 ESC 헌법개정T/F 팀장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과학인권위원회 위원인 이중원 서울시립대 교수가 기조 발제를 맡고,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인 김호균 명지대 교수와 장용근 홍익대 교수, 국민개헌넷 정책자문단장 한상희 건국대 교수, 김도윤 법무법인 공화 변호사, ESC 대표인 윤태웅 고려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선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각각 임대식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 등이 참석해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관심 있는 일반 시민에게도 열려 있다.

 

ESC는 어떤 단체?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 “더 나은 과학과 더 나은 세상을 함께 추구한다.”는 기치를 걸고 2016년 6월 출범한 과학기술인 단체. 과학기술이 단지 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만은 아니며, 과학•공학•수학이 민주공화국 시민의 중요한 덕목이자 핵심교양이라는 생각을 지닌 과학기술자와 시민들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 중이다. (홈페이지: www.esckorea.org)

헌법 제127조 제 1항?

헌법 제127조 제1항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문은 국가에 과학기술의 혁신 등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라는 의무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법령 및 정책의 입법방침을 규정한다. 이 헌법규정을 근거로 제정된 법은 「과학기술기본법」이 대표적이며, 이외에도 여러 과학기술 진흥법령 및 과학기술인 양성법령이 헌법 제127조 제1항을 근거로 제정되었다.

현행 헌법 제127조 제1항의 전신이 되는 규정은 5.16 군사정변으로 박정희 정권이 수립되면서 시행된 1962년 제5차 개정 헌법 제118조에서 “국민경제의 발전과 이를 위한 과학진흥에 관련되는 중요한 정책수립” 이라는 내용으로 처음 모습을 보였으며, 유신헌법인 1972년 제7차 개정 헌법 제123조와 12.12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신군부의 1980년 제8차 개정 헌법 제128조를 거쳐, 6월항쟁이 낳은 1987년 제9차 개정 (현행) 헌법 제127조에까지 이른다. 제5차 개정 헌법부터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헌법은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수단으로서 접근하는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해외 사례

우리나라 헌법 제127조 제1항과 유사한 조문을 두고 있는 국가는 스위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소수에 불과하며, 현재 미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대다수 국가에서는 우리나라 헌법 제127조 제1항과 같은 내용을 헌법 조문으로 두고 있지 않다.

스위스연방헌법 제64조(연구) ① 연방은 과학 연구와 혁신을 장려한다. ② 연방은 특히 채택하는 품질보증 및 협조 수단에 따라 그 지원을 달리 할 수 있다. ③ 연방은 연구기관을 설립, 운영 또는 지원할 수 있다.

스위스헌법 제64조는 ‘장려(fördern)’의 대상이 연구(Forschung)와 혁신(Innovation)이라는 것이며, 장려 지원의 목적을 특정하지 않고, 그 방법도 연방정부의 재량으로 두는 게 특징이다. 또한, 연방정부가 직접 연구기관의 설립, 운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헌법적 근거도 두고 있다. 현재 스위스국가과학재단 (EN: Swiss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이 연방당국의 위탁을 받아 기초분야 연구를 지원한다.

스페인왕국헌법 제44조 ① 공권력은 모든 사람이 가지는 문화에 대한 접근을 촉진하고 장려한다. ② 공권력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과학, 학술조사 및 기술연구를 촉진한다.

스페인 헌법은 공권력(poderes públicos)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스페인 헌법 제9조에서는 “시민과 공권력은 헌법과 기타 법질서에 따라야 한다.”, “공권력은 개인과 개인이 구성하는 단체의 자유 및 평등이 현존하고 실현되도록 여건을 개선하며, 그 완전성을 침해하거나 또는 곤란하게 하는 장해를 제거해야 하며, 모든 국민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및 사회적 생활의 참여를 용이하게 해야 한다.”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제44조에서 언급하는 ‘공권력’은 중앙정부권력과 자치정부권력 모두를 포함하는 ‘국가의 권력’과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스페인 헌법은 공권력이 ‘공공의 이익(interés general)’을 위하여 과학, 학술조사, 기술연구를 촉진하고(promover) 장려할(tutelar) 것을 주문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탈리아공화국헌법 제9조 공화국은 문화의 발전과 과학 및 기술 연구를 장려한다. 공화국은 국가의 자연 경관과 역사 및 예술 유산을 보호한다.

이탈리아헌법은 제9조는 공화국이 과학과 기술의 연구(ricerca scientifica e tecnica)를 장려(promuovere)한다고 명시한다. 제9조는 앞의 두 국가에 비해 문장이 매우 간결하다. 또한 총칙(Principi fondamentali) 부분에 위치하면서 ‘문화국가의 원리’와 등위 관계로 서술된 게 특징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