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주 회원께서 <스타무스(STARMUS)> 페스티벌 다녀오신 후에 <아시아경제>(2016.7.12)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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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을 데리고 밤별들을 보러 갔다. 스페인령 카나리 제도의 테네리페 섬으로였다. 2013년 이래 그곳에선, 유례없는 천문학 축제가 벌어진다. <스타무스(STARMUS)>라는 페스티벌이다. 행사를 기획한 이는 천체물리학자 브라이언 메이 박사. 그룹 <퀸>의 전설적 기타리스트, 맞다. 
그는 본래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였다. 퀸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지난 2008년에야 늦은 박사학위를 받았다. 과정을 시작한 지 사십여 년 만이었다. 이 논문의 관측 데이터를 얻은 곳이 바로 카나리 제도의 천문대다.

스타무스는 그가 평생 우러러본 두 가지, ‘별’과 ‘음악’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미 노벨상을 받았거나 예약했거나 그 정도는 우스운 인류 최고의 과학자들과 과학 커뮤니케이션계의 스타들, 별세계를 엿본 우주인들, 다른 영역의 지성인들, 음악계의 거장들이 모여 우주적인 하모니를 들려줬다. 세 번째인 올해는, ‘물리학계의 록스타’스티븐 호킹 교수를 위한 헌정행사로 진행됐다. ‘인터스텔라’의 킵 쏜 교수와 아홉 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비롯한 연사들이 무대에 섰다. 강연장 주위의 검은 장막 사이로 파란색, 초록색, 보라색 불빛들이 별처럼 빛났다.  

이곳에서 과학은 전문가들이나 어린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일반인 관객이 천여 명이나 되었던 것. 일류 휴양지의 바다와 햇살을 버리고 어둠 속에서 우주의 비밀을 엿듣는 이들답게, 취향이 남다르긴 했다. 사라 브라이트먼이 시바여왕처럼 춤추며 노래해도 얌전하던 이들이, ‘M.C.호킹’의 “E는 MC^호킹”같은 랩이라든가 ‘킵 쏜과 블랙홀들’같은 밴드에는 열광적인 환호와 기립박수를 보냈다. 한 때 과학도를 꿈꾸었지만, 결국 비전공 ‘문돌이’가 된 나는 평행우주 속의 나를 만난 듯 행복했다. 

큰아들을 데려간 데는 목적이 있었다. 녀석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급우들에 비해 한두 살 어린 녀석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정서적 격차를 드러냈다. 한국 학교에서 나이가 어리고 체격이 작다는 건 일종의 핸디캡이다. 사춘기 사내아이들은 “머리와 입만 살아있는”녀석을 견디지 못했다. 급기야 경쟁자에게 목이 졸렸다. 사건은 두 달 넘게 지지부진하다 졸업과 동시에 유야무야됐다.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건 새끼만이 아니었다. 나는 엄마노릇을 반성했고, 돌파구를 찾아 헤맸다.  
학교에 갇힌 아들에게 이 좁은 세계 밖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우주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불편한 몸에 갇힌 스티븐 호킹이 헤아려본 그 우주 말이다. 더구나 주선자는 우리 모자의 영웅 퀸의 멤버! 오랜 팬에게 들으니, 브라이언 메이는 플랫 음을 낼 때, 새끼손가락을 거의 짚지 못하는 핸디캡이 있단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것이 계시라고 믿었다. 

제주에서 테네리페 섬까지 비행기를 세 번이나 타고 날아간 다른 우주로의 여행은, 하마터면 가족의 비극이 될 뻔했다.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던 밤, 친정아버지의 급환을 알았던 것. 칠순의 아버지는 부재중이던 친정엄마를 대신해, 막내 외손자를 맡아주셨다. 육아만으로도 무린데, 밤새워 철학 논문을 보다 패혈성 쇼크로 쓰러지셨다. 천생 엔지니어였던 아버지는 늦공부에 재미를 붙여 학위 욕심을 내셨다. 당신의 ‘꿀딸’이, 지 새끼만 생각하다 아빠를 잡을 뻔했다는 게 기막혀 눈물이 났다.

밤 비행기 속에서 아버지의 별을 떠올렸다. 사업 실패로 살림이 어려워졌을 때였다. 어린 나는 이사 간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칭얼대다 자리에 누웠다. 불을 끄자 천장에서 초록 별빛이 쏟아졌다. 젊은 아빠가 동네 문구점을 털어 만든 내 작은 우주였다. 나는 탄성을 지르다 잠들었다. 내 아비에게 나는, 별이었던 게다.  
다행히 아버지는 무사하시다. 철든 이후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다. 당분간 아버지의 조교 노릇을 하기로 했다. 큰아들은 다시 생생해져서, 기타를 배우겠다고 설친다. 밤새 오줌을 못 가리던 막둥이도 안정을 찾았다. 그러니 세상 모든 딸들은 그 아비의 별이다. 세상 모든 아들이 그 어미의 태양이듯이. 아니 사실은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당신이 나의 우주였을지도.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

원문 : 아시아경제 (2016.7.12)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71210320424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