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주제는 ‘대학원생 인권상황 개선방안 마련’이었습니다. 제가 6월 2일 자 한겨레 칼럼(‘하늘 밭에 뿌린 하얀 비행기의 꿈’)에서 이공계 대학원생 산재 보험 보장의 필요성을 말한 게 참석의 계기가 된 듯하였습니다. 대학원생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권리장전 제정과 인권센터 설립과 같은 제도적 해법을 제안하는 데 앞장서 온 이우창 님도 드디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간담회 때 느낀 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봅니다.


권리장전 문제

 

  • 안전권을 더 강조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실험 활동 지침(일과시간 밖이나 주말에 실험할 때의 문제 등)과 산재보험 등, 중요한 문제가 여럿 있기 때문입니다.
     
  • 연구결정권의 문제는 좀 더 엄밀하게 접근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개인적인 업무 지시와 프로젝트 참여, 부당한 일에 대한 거부권 보장 등의 논점과 혼동될 여지도 좀 있는 듯하였습니다. 인문계와 이공계의 형편도 꽤 다르고요. 제어공학 연구실 학생이 반도체 소자에 관해 연구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최선의 시나리오는 지도교수가 그 학생이 반도체 연구실로 옮길 수 있도록 해주는 거겠지요. 물론 이런 일은 일반적으로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 연구성과 명의권을 저작권에 한정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작재산권은 양도하기도 하고 주장하지 않기도 하는 거니, 굳이 저작재산권에 집중할 필요가 없습니다. 연구에 참여해 저자 자격을 갖춘 대학원생이 연구 성과물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는 게 핵심입니다. 이 논점을 굳이 저작재산권과 연결시키면, 외려 논의의 폭이 좁아집니다.
     
  • 지도교수 변경의 문제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도교수에게 잘못이 있으면 학생이 지도교수를 바꿀 수 있도록 하자!’는 관점을 넘어서면 좋겠습니다. 지도교수와 학생 사이에 해소할 수 없는 갈등이 생기는 경우 지도교수 변경이 학생과 지도교수에게 모두 바람직하다는 식이면 어떨까요?
     

제도적 장치 마련 문제
 

  •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대학원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실효성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형식만 갖추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인권센터가 꽤 생길 것입니다. 획일적 잣대로 교육부가 대학을 제어하는 방식도 불편하고요.
     
  • 대학의 여건과 대학원 교육 시스템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라, 한 가지 기준을 강요하긴 어렵습니다.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BK21 사업단을 구성해 정부 지원을 받는 대학이 그에 걸맞은 인권센터를 운영하도록 요청하고 지원할 수도 있으리라 여깁니다. 인권센터 안에서 다양한 전문가가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 한국엔 카이스트와 포스텍에만 옴부즈맨이 있습니다. 그런데 카이스트엔 은퇴한 교수가, 포스텍엔 법률가가 옴부즈맨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달라진 게 있다면 바로잡아 주십시오.) 실험실 구성원들 사이에 생기는 갈등을 실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법률가가 조정해주긴 어렵겠지요. 인권센터 안에 갈등조정 기구 하나를 두는 것도 이렇듯 만만치 않은 문제입니다. 전국의 대학에 일률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
     
  • 인권센터를 설치할 때, 양성평등센터와 같은 기존 기구와 체계적으로 연계할 필요도 있습니다. 최근 고대에 인권센터가 생겼는데, 양성평등센터와 나란히 있습니다. 그 모양이 제겐 살짝 이상해 보였습니다. 인권센터 아래 양성평등센터, 옴부즈맨 오피스 등 다양한 기구가 유기적으로 업무를 분담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 대학원생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건 주로 인문계 대학원생들입니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자기 권리에 둔감해서가 아니라 대학원 연구 활동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대학원 총학생회에 참여할 필요성이나 유인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인문계와 이공계 대학원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도 더 고민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 늘 느끼는 거지만, 법률적인 관점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악당 대 선의의 피해자’란 구도보단 보통의 교수한테 보통의 학생이 상처받을 수 있는 구조의 문제가 더 중요하지 않나 싶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악당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양한 연구 환경을 이해하는 사람들로 팀을 구성해, 갈등상태에 있는 구성원들을 중재하고 필요에 따라선 대학원생에게 지도교수 변경 등의 도움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건설적 과정이 필요하리라 여깁니다.
     
  • 일단 이렇게 느낀 점만 전하고요, 나중에 다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국가인권위원회 간담회 자료
 

그 밖의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