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뉴스 제11호] 우리 은하의 심연을 들여다보다(강성주)


 ESC가 전하는 과학기술뉴스  제11호
July. 15th. 2022
ESC 과학뉴스선정 특별위원회가 준비한 과학기술뉴스를 선보입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과학기술 관련 뉴스 중에서 함께 사유하고 고민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선정하고 재구성했습니다. 즐겁게 읽고 의미 있는 논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은하의 심연을 들여다보다:
우리 은하 블랙홀 관측 성공
강성주(국립과천과학관 천문우주팀 연구사)

인류와 블랙홀의 두 번째 조우


2019년 4월 10일, 인류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천체 이미지 하나가 공개되었습니다. 국내 천문학자들이 포함된 사건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 이하 EHT) 연구진이 처녀자리 은하단에 존재하는 가장 거대한 은하 중 하나인 M87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이하 M87*) 관측에 성공한 것이죠. 인류가 처음으로 블랙홀이라는 미지의 존재와 마주하는 순간, 전 세계는 그 이미지가 전해주는 경이로움과 이것을 가능케 한 기술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첫 블랙홀 관측으로부터 만 3년이 넘은 2022년 5월 12일, 마침내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이하 Sgr A*) 블랙홀 그림자 또한 촬영에 성공하며 그동안 감춰왔던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그림1). 2019년의 성공 경험으로 충분히 예상했던 바이지만, 은하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성간 먼지와 별 등 때문에 관측할 수 있는 시야 확보가 매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으로 선명한 이미지를 얻어냈습니다.

<그림1> M87*과 우리 은하 중심의 블랙홀 Sgr A* (출처 : ESO)

세상에서 제일 큰 망원경, EHT


미지의 존재였던 블랙홀을 관측한 EHT는 6개 대륙에 위치한 8개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하여 지구만한 크기의 전파 망원경의 효과를 가질 수 있는 거대 전파망원경 네트워크입니다(그림2). 전파망원경은 두 개 이상의 전파망원경을 배열하고 천체에서 받는 신호를 서로 간섭시켜서 거대한 하나의 전파망원경처럼 작동하게 만들 수 있는데 이를 ‘간섭계’라고 합니다. EHT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각 대륙 전역에 흩어져 있는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남극 대륙에서부터 하와이를 거쳐 유럽까지 지구 전역의 망원경을 모두 모아서 전체 지름의 크기와 지구의 지름만한 망원경의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망원경이 지구 표면에 가득 설치돼 있는 것은 아니기에 완벽히 선명한 해상도를 만들지는 못합니다만 이 8개의 망원경으로 분해능이 약 60마이크로각초(μarcsec), 즉 달 표면에 있는 도넛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의 해상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M87*, Sgr A* 관측이 가능했습니다.

<그림2> EHT 망원경을 구성하고 있는 전파망원경 (출처 : ESO)

M87*와 Sgr A* 이미지 비교해 보기


M87*과 Sgr A*는 물리적인 면에서 상당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관측된 이미지는 매우 닮아 있습니다. 블랙홀처럼 극단적인 중력을 갖는 천체가 어떠한 모양으로 시공간이 왜곡되는지를 보여 주지요. 아인슈타인은 이미 100여 년 전 상대성 이론에서 블랙홀은 어떤 경계 안에 질량이 집중되어 있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영역을 예측하였습니다. 두 이미지에서 보이는 가운데 검은 부분이 바로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에서 예측한 부분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어 검게 보이는 영역을 우리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두 이미지의 크기는 상당히 비슷해 보이는데, 그 이유는 바로 두 블랙홀의 크기와 태양계로부터의 거리 때문입니다. Sgr A*는 태양계로부터 2만5천 광년 떨어져 있지만 M87은 Sgr A*보다 2,200배 먼 약 5,500만 광년 떨어져 있고 그 크기는 Sgr A*의 1,500배에 달합니다 (그림3). 따라서 M87*이 압도적으로 크지만 훨씬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 두 블랙홀은 거의 같은 크기로 보이게 되는 것이죠. 마치 태양이 달보다 400배 더 크지만 400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지구에서 크기가 같아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태양과 달의 겉보기 크기가 식(蝕)이 일어날 때 서로 같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요.

<그림3> M87*과 Sgr A*의 크기 비교. M87*은 우리 은하 중심에 위치하는 블랙홀보다 1500배 이상 큽니다. (출처 : ESO)
물론 두 이미지의 다른 점도 있습니다. 두 이미지를 비교해 보면 M87*의 빛의 고리가 Sgr A*보다 더 크고 선명하게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그림3)또한 밝게 빛나는 부분이 M87*에서는 아랫부분에 위치하지만 Sgr A*는 전체적으로 골고루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두 블랙홀의 질량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M87*이 Sgr A*보다 1500배 무겁기 때문에 그만큼 중력도 강해집니다. 따라서 블랙홀 가운데 보이는 블랙홀의 그림자, 즉 빛이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의 경계면인 사건의 지평선도 훨씬 더 크고, 주위를 맴도는 물질도 많아 빛의 고리가 더 크고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죠. 또한 블랙홀의 질량이 크면 그만큼 블랙홀 자체의 크기도 커지면서 주위의 물질이 블랙홀을 한 바퀴 도는 데 오래 시간이 걸립니다. M87* 주위의 물질이 블랙홀을 한 바퀴 도는 데 10여 일이 걸리는 반면, Sgr A*는 고작 몇 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만큼 주위 물질의 형태가 빠르게 변하는 것이죠. 이렇게 주위 물질의 형태가 빠르게 변하면 관측하는 블랙홀의 정확한 모습을 분석해 내기가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Sgr A*는 우리 은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관측 시에 우리 은하 중심 방향으로 존재하는 많은 성간 먼지와 천체의 영향을 걸러내야만 했죠. 따라서 상대적으로 크고, 형태의 변화가 적고, 은하 중심 방향에서 벗어나 데이터 처리가 용이했던 M87*의 이미지가 2019년에 Sgr A*보다 먼저 공개가 된 것입니다.

주위 물질이 우리의 시선 방향의 다가오는 방향으로 분포되어 있을 때 밝게 보이는 현상을 도플러 빔 현상(Doppler Beaming Effect)라고 합니다. 그림4와 같이 물질의 분포가 각기 다른 이미지들이 관측되는 빈도 수를 고려하여 전체적인 이미지의 평균 이미지를 구한 것이 이번에 관측된 Sgr A*의 모습인데 도플러 빔 현상이 위, 아래 골고루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교적 주위 물질의 분포 변화가 적은 M87*의 경우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향의 물질이 일관적으로 아래쪽에 분포하는 반면 Sgr A*은 주위 물질의 움직임이 빨라 다가오는 방향의 물질 분포가 어느 한 부분이 아닌 전체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두 블랙홀의 이미지는 블랙홀이 갖는 공통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유사한 점과 더불어, 서로 확연히 다른 물리량으로 발생하는 세부적인 특성이 다른 이미지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4>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의 클러스터링 이미지. 4개의 이미지로 클러스터링 한 후 빈도별 기댓값을 다르게 준 평균 이미지를 통해 우리 은하 중심의 블랙홀을 이미지화 하였으며 밑의 막대 그래프는 각각의 클러스터 별 빈도수를 나타냅니다. (출처 : ESO)
우리 은하 블랙홀이 가진 또 하나의 비밀

Sgr A* 관측으로 밝혀진 새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Sgr A*의 회전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천문학자들은 Sgr A*의 회전축은 우리 은하가 회전하는 방향과 수직으로 뻗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 왔습니다. 2010년 페르미 감마선 망원경을 통해 관측된 우리 은하와 수직 방향으로 중심에서 뻗어 나오는 일명 페르미 버블(Fermi Bubble)이라 불리는 거대한 구조가 관측되었기 때문이죠.
<그림5> 페르미 감마선 우주망원경으로 찍은 우리 은하의 모습. 파란색으로 보이는 것이 우리 은하 나선팔에서 나오는 감마선 영역이고 가운데 핑크색으로 보이는 것이 무려 50,000광년의 길이로 뻗어있는 페르미 버블(Fermi Bubble)로 불리는 거대 구조입니다. (출처 : NASA)
하지만 이번 관측과 함께 나온 논문에서는 그 축이 60도 정도 기울어져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관측의 이미지 결과가 명확하지 않아서 기울기가 정확하게 구해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차 범위를 고려하더라도 그동안 간접적으로 추측만 할 수 있었던 값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명확한 연구 결과가 있어야겠지만, 우리 은하가 과거에 다른 작은 은하와 충돌해 방향이 기울었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만약 안드로메다 같이 우리 은하와 거의 같거나 이보다 큰 은하와 충돌했다면 현재의 모습인 나선 은하가 아닌 타원 은하로 변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번 Sgr A* 관측은 우리 은하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 왔는지,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 간접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귀중한 정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매우 궁금한 앞으로의 관측 계획


이제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도 관측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다음 관측 목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몇몇 기사나 블로그에서는 다음 목표가 안드로메다 은하 중심에 있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외부 은하이며 우리 은하와 크기와 형태 면에서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재의 장비와 기술의 한계로 아직 다음 목표를 정하지는 못했습니다.


EHT를 사용한 관측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지구만한 크기의 EHT가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북반구와 남반구 전역에서 보이는 천체여야 하고, 그 질량 또한 매우 커야 합니다. M87*이 이러한 조건에 들어맞는 천체였죠. 비록 안드로메다 은하가 우리 은하보다 더 크고 그 중심의 블랙홀도 우리 은하 중심의 블랙홀보다 약 20배 정도 더 무겁지만 거리는 100배 더 멀기 때문에 현재의 EHT 성능으로는 관측이 어렵습니다. 현재 EHT의 시설을 늘리고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차세대 EHT 계획이 수립되고 있습니다. 차차 우주 전역에 숨어 있는 블랙홀의 모습을 통해 비밀의 퍼즐 조각들을 맞춰가게 되겠지요? 아직 많은 것이 비밀로 남겨져 있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탄생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글: 강성주(sjkang_sci@naver.com)
국립과천과학관 천문우주팀 연구사입니다.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에서 물리학, 천문학을 전공하고 아이오와주립대에서 천체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과학전문 유튜브채널 ‘안될과학’에서 과학크리에이터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림: 박재령
관측된 블랙홀과 수많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우주의 모습을 형상화하였습니다.

편집: 지은경(ESC 과학문화위원회), 김미선(도서출판 이김 편집부) 
제작: ESC 사무국
기획: 민일(ESC 과학뉴스선정특별위원회 위원장)
발행: ESC 과학뉴스선정특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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