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뉴스 제4호] 합리적 의심을 위한 과학자의 역할(원병묵)

ESC가 전하는 과학기술뉴스 제4호: 합리적 의심을 위한 과학자의 역할(글: 원병묵 | 일러스트: 박재령)

ESC가 전하는 과학기술뉴스  제4호
Nov. 30th. 2021
 ESC 과학뉴스선정 특별위원회가 준비한 과학기술뉴스를 선보입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과학기술 논문과 관련 뉴스 중에서 함께 사유하고 고민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선정하고 재구성했습니다. 즐겁게 읽고 의미있는 논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합리적 의심을 위한 과학자의 역할
  원병묵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혼돈의 현대 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과학"이란 무엇일까요? 합리적 의심은 과학의 중요한 토양이지만 의도적으로 조작된 의심은 과학을 진실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헛소리가 넘쳐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익사할 지경”이라는 말처럼[1] 현대 사회의 수많은 의심 속에서 무엇이 올바른 의심인지 판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11월 과학기술뉴스로 소개할 글은 존스홉킨스대 간호대학 및 블룸버드 공중보건대학 인류학자 및 공중보건학자인 세실리아 토모리 박사가 〈네이처〉에 기고한 “과학자: 의심 기계에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글입니다[2]. "기후위기에서 코로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과학이 도용되는 방식에 대응하는 순진한 태도는 더 많은 위험을 초래합니다"라는 설명이 붙은 이 글은 현대 사회에서 합리적 의심을 위한 과학자의 역할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실: 잘못된 과학적 의심의 존재
토모리 박사는 먼저 2021 유엔 기후변화 회의(COP26)*이야기를 언급하며 '어떻게의심이 실행을 지연시키는 무기가 될수 있는지'에 대해 소개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연구하였던 과학자들이 뒤늦게 깨달은 것이기도 합니다. 연구자들은 회의에서 문제적 연구 방법, 부적절한 연구 설계에, 부족한 근거로 도출된 부당한 결론 등을 지적합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어떻게 'Sciency-ness, 과학성'이라는 것이 현실을 오도하고 효과적인 정책을 방해하는 데 오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더 큰 전략을 고려했다면, 과학의 합리성을 추구하려 하였던 이러한 연구자들의 노력은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토모리 박사는 분유 판매라는 목적을 위해 모유 수유를 저평가하는 그릇된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과학의 권위가 어떻게 활용 되는지를 연구합니다. 사실상 이러한 전략과 패턴은 담배, 화석 연료, 의약품, 식품 등 산업계 전반에 걸쳐 재현되고 있으며 이것의 영향은 너무 강력해서 공중보건 연구자들은 '상업적 건강 결정 요인'이라는 별개의 연구 영역으로 간주할 정도입니다.  
예시: 집단 면역에 관한 잘못된 의심

팬데믹 기간 동안 과학은 심각하게 도용당했습니다. 집단 면역에 대한 주장이 그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염에 의한 면역 획득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괜찮으며 이로 인해 지역사회가 집단 면역을 달성하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이 높거나 심각한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위험을 경시했습니다. 감염률에 대해 기술적으로 논쟁하다 보니, 장애인과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 그리고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는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 등이 집단 보호 조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가정은 슬며시 기정사실화 되고 말았죠.   

사회가 집단 면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토론에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적절한 맥락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몇몇 존경받는 과학자들 역시 이 토론이 단순한 과학적 토론을 넘어 정치적인 면이 있음을 간과한 채 토론에 임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협소한 초점은 오히려 논쟁과 의심을 조장하는 데 일조하였으며 궁극적으로 효과적인 공중보건 대응을 방해하고 말았습니다. 동일한 상황이 마스크 사용, 예방 접종, 학교 정책에서도 나타났고, '적을수록 더 좋은' 공중보건 조치가 '허용' 되도록 여론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되었습니다.   
무지와 의심의 역습

고의적인 혼란의 확산에 대해 연구하는 아그노톨로지**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무지와 의심이 어떻게 의도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학문 분과로 이 분야의 유명한 학자로는 데이비드 마이클스(David Michaels), 마리온 네슬(Marion Nestle), 나오미 오레스케즈(Naomi Oreskes) 등이 있습니다. 

지난 9월 미국 버지니아 주 알링턴에 소재한 비영리 단체인 네이처 컨저번시(Nature Conservancy) 수석 과학자인 캐서린 헤이호(Katharine Hayhoe) 박사는 환경 운동가 빌 맥키븐(Bill McKibben)의 트윗을 인용해 기후 변화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데이터와 이성에 대한 논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것이 돈과 권력을 위한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헤이호 박사는 이에 덧붙여 “기후 변화에 대한 반대는 항상 전적으로 매우매우 과학적 용어로 영리하게 표현되었습니다. 그들은 [산업계] 그들의 레이저를 과학에 집중했고 우리는 고양이처럼 그들의 포인트와 리드를 따라다녔다”고 말했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만들어진 의심의 요소들은 특히 누가 이익을 취하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을 때에 더욱 모호하게 보입니다.   
과학자의 역할: 의심과 무지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 이해

연구자가 고양이처럼 논점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의심과 무지를 조작하기 위해 전략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❶  연구자는 해당 연구의 저자가 누구이며, 저자들의 연구와 이해관계가 있는 산업계 및 비영리 단체와 저자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있는지를 식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가령, 담배 산업이 과학자와 의사에게 담배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증거를 훼손하기 위해 과학·의학 고문과 컨설턴트 역할을 하도록 상당한 돈을 지불한 방식은 이미 널리 문서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더 많은 사례가 존재합니다. 식품 및 화학 산업 분야의 큰 기업들의 자금 지원을 받는 비영리 단체 국제생명과학연구소(International Life Sciences Institute)에서는 전문가들을 활용해 초가공 식품***을 건강 문제와 연결짓는 과학에 대해 의심을 조장하고, 비만 퇴치를 위한 정책에서 정크 푸드 규제보다는 개인의 책임에 무게를 싣는 활동을 합니다. 

❷ 과학자들은 데이터와 결론이 어떤 종류의 논증을 제공할지 고려해야 합니다. 이것들이 어떻게 여론을 형성할 수 있을까요? 어떤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건강을 결정하는 기업의 요인에 대한 검토는 미디어가 건강을 개인의 책임 혹은 공공 및 정부의 책임으로 프레임을 씌우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3]. 물론 전자 쪽을 택해야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겠죠. 이것은 개인의 결정이 자유 대 연대의 문제인가, 규제는 제한 혹은 보호의 문제인지를 살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과학자들은 개인 혹은 매체를 통해 이야기할 때 이러한 프레이밍에 대해 지적할 수 있습니다.  

❸ 과학자들은 올바른 정보를 일관되게 강조해야 합니다. 결함이 있는 정보를 퍼뜨리는 부주의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언론인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부실한 연구를 인용하거나 무책임하게 과학을 사용하는 뉴스 기사나 논평을 소개하지 마세요. 분노와 논쟁을 촉진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을 확산시켜 의심을 유발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백신 반대 운동이나 기후변화 부정의 사례에서처럼, 어떤 연구 논문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나면 주목을 받게 되고, 문제가 있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오용될 수도 있습니다.  
결론: 합리적 의심을 위한 과학자의 지속적 노력

의도적으로 조작된 ‘의심 기계’를 막으려면, 지속적으로 더 넓은 맥락을 주목하고, 진정한 과학적 논쟁을 식별하며, 연구자의 정치적-상업적 연관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부정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꾸준히 교육함으로써, ‘합리적 의심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더 많은 과학자들이 같은 일을 한다면 이러한 왜곡된 전략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1] 칼 벅스트롬, 제빈 웨스트, "똑똑하게 생존하기”, 안드로메디안, 2021.
[2] Tomori S., "Scientists: don’t feed the doubt machine.Nature 599, 9 (2021).
[3] McKee M. & Stuckler D., "Revisiting the Corporate and Commercial Determinants of Health".Am J Public Health, 108, 1167–1170 (2018).

추가설명

* 2021 유엔 기후변화 회의(COP26): 2021년 10월 31일부터 11월 13일까지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SEC 센터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 변화 회의. 
** 아그노톨로지 (agnotology): 부정확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과학의 출판을 통해 문화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생성되는 무지 혹은 혼란을 연구하는 학문. 특히 특정 제품을 광고하거나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이용되는 과학의 그릇된 사용을 탐구한다.
*** 초가공 식품(ultra-processed food): 초국적 초대형 ‘빅 푸드’ 기업에서 특정 유형의 식품 가공을 거친 식품 및 음료 제품. 일반적인 가공을 초과하여 수많은 화학 물질, 착색제, 감미료, 방부제 등 성분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재료가 많이 포함된 식품.  

글: 원병묵 (bmweon@hotmail.com)  
성균관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물질의 구조와 변화에 관한 원리와 응용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림: 박재령
다각적이고 복합적인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연구하는 과학자의 역할을 추상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편집: 김미선 (ESC 과학문화위원회, 도서출판 이김 편집부)
제작: 김래영 (ESC 사무국장)
기획: 민일 (ESC 과학뉴스선정특별위원회 위원장)
발행: ESC 과학뉴스선정특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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