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가 전하는 과학기술뉴스 제10호 Jun. 9th. 2022 |
ESC 과학뉴스선정 특별위원회가 준비한 과학기술뉴스를 선보입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과학기술 관련 뉴스 중에서 함께 사유하고 고민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선정하고 재구성했습니다. 즐겁게 읽고 의미 있는 논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다수결의 세상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법 노다해(고려대학교) |
얼마 전에 치른 제20대 대통령 선거 기억나시나요?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고작 0.73% 득표율의 차이로 당선되었습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다수결의 원칙으로 결과를 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근소한 차이더라도 윤석열 후보가 더 많은 표를 얻었기에 당선된 것이죠. 선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이번 대선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비등비등하게 득표했기에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만약 윤석열 후보가 압도적 득표 차로 당선되었다면 이재명 후보를 뽑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자신들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할 수 있을까요? 오늘 소개해 드릴 논문[1]은 이런 사회학적인 질문을 복잡계 연구로 풀어냈습니다.
얼죽아가 뜨죽따가 되는 과정(?)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을 전복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critical mass)은 사회 동역학에서 오랫동안 연구되어온 주제입니다. 다양한 사례 연구에서 이 최소한의 인원은 전체의 10%에서 40%로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넓은 범위의 인원은 모형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습니다. 그중 한 연구는 소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고집’에 따라 그 비율이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2]. 오늘 소개해 드릴 논문은 이 ‘고집’을 절대적으로 설정했습니다. 즉, 소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신념을 고수합니다. 이 논문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 집중합니다. 첫 번째, 사람들이 사회적 영향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입니다. 사회적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사회적 합의를 이룬 의견에만 동의합니다. 만약 사회적 영향에 민감하지 않다면,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않은 의견도 타당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사람들이 동시에 소통하는 인원의 규모입니다. 사람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일은 일대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여러 명이 동시에 대화를 나누며 일어나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 논문에서는 이름 붙이기 게임(Naming game)을 사용했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견을 A와 B로 단순화해 봅시다. 어떤 의견에 대한 찬성/반대 또는 짬뽕/짜장면, 프라이드/양념, 얼죽아/뜨죽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이름 붙이기 게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단어 사전에 A와 B 단어를 모두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중립), 둘 중 하나만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크기가 다양한 여러 모임에 속해 있습니다. 이러한 모임에서 의견의 교환이 이루어지며 사람들은 사전에 단어를 추가하기도, 지우기도 합니다. 매시간 임의의 모임이 골라지고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이 의견을 교환합니다.
- 한 사람이 발화자로 지정되고 나머지는 듣는 사람이 된다.
- 발화자는 자신의 단어 사전에 있는 한 단어, 예를 들어 A를 말한다. 모든 듣는 사람들의 사전에 그 단어가 있으면(만장일치), 이는 곧 사회적 합의로 여겨진다(그림 1a).
- 이때 사회적 합의를 따르는 정도인 β의 확률로 A가 아닌 다른 단어, B를 사전에서 지운다. 즉, 사회적 합의를 이룬 의견에만 동의한다(그림 1b). (β는 0에서 1의 값을 가진다.)
- 반면에 1-β의 확률로는 B가 사전에 있더라도 지우지 않는다. 즉,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않은 의견일지라도 존중한다.
-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A가 없는 사람은 사전에 A를 추가한다. (그림 1c와 d)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A 단어, B 단어 그리고 중립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이때 모든 사회 구성원의 단어 사전에 이름 붙이기 게임을 진행하기 전 소수 의견이었던 단어만 존재하면 전복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전복의 여부는 β의 값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대세를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논문의 저자들은 이와 같은 이름 붙이기 게임을 실제 인적 네트워크에서 진행해 보았습니다. 초기에 A 단어를 주장하는 사람의 비율이 40%이더라도 고집스럽지 않다면 전복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그림 2a). 만약 초기에 A 단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상황에도 A 단어만을 고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번에는 초기에 A 단어를 지지하는 사람의 비율을 3%로 두고, 나머지는 B 단어를 지지하게 했습니다(그림 2b). 나머지 97%의 사람들의 사전에는 B 단어만 있었지만, 소수 의견이었던 A 단어가 고집 되니 어중간한 β의 범위에서 결국 사회 구성원 전체의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사회적 합의만 따른다면 대중이 지지하는 의견은 바뀌지 않지만, 사람들의 사회적 민감도가 낮아서 어떤 의견이 강세를 얻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의견의 우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을 전복하기 직전에는 두 의견에 모두 동의하는 사람의 수(사전에 A와 B 단어가 모두 있는 사람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사람들이 어중간한 사회적 민감도 β를 가질 때 즉, 사람들이 사회적 합의에 마냥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관심을 기울일 때,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을 전복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됩니다. 대세를 아주 따르지도, 아주 따르지 않지도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그림 2. (a, b) 이름 붙이기 게임을 실제 인적 네트워크에서 진행했을 때 에 따른 결과 (c) 각 인적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모임의 크기 분포. (왼쪽부터) 학회, 고등학교, 이메일의 송수신인, 법안 발의자 모임. |
모임이 크면 아니면 작으면 좋을까?
'어중간한' 사회적 민감도에서 소수 의견이 사회 전체의 지지를 받는 현상은 몇 가지 실제 인적 네트워크에서 확인되었습니다(그림2). 소수 의견이 사회 전체의 지지를 받는 사회적 민감도의 범위는 네트워크마다 다르지만, 그럼에도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구간에서 전복 현상이 나타나는 점은 공통적입니다. 실제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모임의 크기는 최댓값과 분포면에서 모두 다릅니다(그림2c). 모임의 크기가 소수 의견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사회적 민감도의 구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논문의 저자들은 모임의 크기가 균일한 모형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모임의 크기를 2명에서 40명으로 변화시키며 이름 붙이기 게임을 진행한 결과, 대체로 모임의 크기가 커질 때 더 넓은 사회적 민감도 구간에서 소수 의견이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그림3i).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을 전복하는 사회적 민감도 구간의 확장은 고집스럽게 소수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의 비율(p)이 늘어날수록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p가 1%일 때는 모임의 크기가 대략 30명이 넘었을 때에 이러한 확장이 나타나지만, p가 3%일 때는 대략 10명이 넘었을 때부터 확장이 나타나며 확장의 추세 또한 가파릅니다. 이를 현실에 적용해보자면 인터넷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인터넷은 많은 사람들이 온/오프라인에서 모일 수 있는 기회를 촉진했죠. 인터넷이 발달한 이후에 다양한 생각들이 사람들에게 퍼졌고, 소수자들의 입장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신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소통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쉬워졌다는 측면으로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인터넷의 발전이 소수 의견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함의가 흥미롭습니다. 다시 논문으로 돌아가볼까요. 고집스럽게 소수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의 비율(p)이 늘어날 때에 더 넓은 사회적 민감도 구간에서 전복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전복이 일어나려면 β가 어느 값보다 크기만 하면 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어 고집스러운 소수의 비율 3%, 모임의 크기가 40명일 때 일정한 β의 범위 이상에서는 반드시 전복이 일어났습니다(그림3h). 특정 조건에서 사람들이 언제나 사회적 합의를 따를 때(β=1) 소수 의견이 사회 전체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논문의 설정 상 고집스럽게 소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도 그 의견만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
그림 3. 모임의 크기가 균일한 모형 네트워크에서 이름 붙이기 게임을 진행한 결과 |
소수의 목소리가 널리 울려퍼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 살펴본 논문에서는 이름 붙이기 게임을 통해 소수가 자신들의 의견을 고집스럽게 주장한다면 ‘어중간한’ 범위의 사회적 민감도에서 다수 의견을 전복할 수 있고, 소통하는 모임의 크기가 클수록 전복할 수 있는 사회적 민감도 범위가 넓어짐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소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그 의견을 주장한다면, 특정 조건에서 소수의 의견이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 사용한 규칙을 따르면 소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고집을 부리지 않을 때는 60대 40의 지지율에서 시작했더라도 소수 의견은 다수 의견을 전복할 수 없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으로 움직이는 만큼 소수의 입장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비정상으로 여겨지고 차별받던 소수인 사람들은 꾸준히 목소리를 내어 조금씩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갔습니다. 최근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에서 있었던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주장한 시위가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는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수직형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한 사고로 촉발되었습니다[3]. 이후 승강기안전관리법 개정으로 수직형 리프트가 설치되었지만 법 개정 이후에도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사고사는 꾸준히 발생했고 장애인 이동권은 20년이 지나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시위에 2022년 1월 28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4년까지 서울 지하철의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겠다고 밝혔지만, 예산은 필요 예산의 6분의 1만 편성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 수는 2021년도 기준 264만 7,000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5.1%에 달합니다[4]. 그들은 사회적 소수자일 뿐만 아니라 수적인 소수자에도 속합니다. 다수결 사회에서 소수인 사람들은 불평등을 겪는다 한들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겠지요. 개인적으로 논문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소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신념을 고수한다면, 아무리 적은 인원이더라도 소수 의견이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논문의 결과에 비춰보면 운동의 불꽃이 지속되는 한 모두가 몸도 마음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을 날이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더불어 논문의 주요 결과는 이 사회를 다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줍니다. 소수가 신념을 고수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심과 기존 방식에 대한 비판적 태도, 그리고 여러 사람이 의견을 함께 나눌 때 소수의 목소리가 널리 울려 퍼질 수 있습니다. 당장 나의 일이 아니더라도 관심과 참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동권 운동가들의 신념과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합쳐져 앞으로 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리라 기대해 봅니다. |
참 고 문 헌
[2] Niu, Xiang et al. “The impact of variable commitment in the Naming Game on consensus formation.” Scientific reports vol. 7 41750. 2 Feb. 2017. https://doi.org/10.1038/srep41750 |
글: 노다해 (dahae.roh@gmail.com)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입니다. 통계물리학의 관점에서 복잡계를 연구합니다.
의견(신념)의 밀도에 따른 사회적인 영향을 추상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기획: 민일(ESC 과학뉴스선정특별위원회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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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죽아가 뜨죽따가 되는 과정(?)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을 전복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critical mass)은 사회 동역학에서 오랫동안 연구되어온 주제입니다. 다양한 사례 연구에서 이 최소한의 인원은 전체의 10%에서 40%로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넓은 범위의 인원은 모형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습니다. 그중 한 연구는 소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고집’에 따라 그 비율이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2]. 오늘 소개해 드릴 논문은 이 ‘고집’을 절대적으로 설정했습니다. 즉, 소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신념을 고수합니다. 이 논문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 집중합니다. 첫 번째, 사람들이 사회적 영향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입니다. 사회적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사회적 합의를 이룬 의견에만 동의합니다. 만약 사회적 영향에 민감하지 않다면,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않은 의견도 타당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사람들이 동시에 소통하는 인원의 규모입니다. 사람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일은 일대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여러 명이 동시에 대화를 나누며 일어나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 논문에서는 이름 붙이기 게임(Naming game)을 사용했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견을 A와 B로 단순화해 봅시다. 어떤 의견에 대한 찬성/반대 또는 짬뽕/짜장면, 프라이드/양념, 얼죽아/뜨죽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이름 붙이기 게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단어 사전에 A와 B 단어를 모두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중립), 둘 중 하나만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크기가 다양한 여러 모임에 속해 있습니다. 이러한 모임에서 의견의 교환이 이루어지며 사람들은 사전에 단어를 추가하기도, 지우기도 합니다. 매시간 임의의 모임이 골라지고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이 의견을 교환합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A 단어, B 단어 그리고 중립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이때 모든 사회 구성원의 단어 사전에 이름 붙이기 게임을 진행하기 전 소수 의견이었던 단어만 존재하면 전복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전복의 여부는 β의 값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세를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논문의 저자들은 이와 같은 이름 붙이기 게임을 실제 인적 네트워크에서 진행해 보았습니다. 초기에 A 단어를 주장하는 사람의 비율이 40%이더라도 고집스럽지 않다면 전복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그림 2a). 만약 초기에 A 단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상황에도 A 단어만을 고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번에는 초기에 A 단어를 지지하는 사람의 비율을 3%로 두고, 나머지는 B 단어를 지지하게 했습니다(그림 2b). 나머지 97%의 사람들의 사전에는 B 단어만 있었지만, 소수 의견이었던 A 단어가 고집 되니 어중간한 β의 범위에서 결국 사회 구성원 전체의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사회적 합의만 따른다면 대중이 지지하는 의견은 바뀌지 않지만, 사람들의 사회적 민감도가 낮아서 어떤 의견이 강세를 얻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의견의 우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을 전복하기 직전에는 두 의견에 모두 동의하는 사람의 수(사전에 A와 B 단어가 모두 있는 사람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사람들이 어중간한 사회적 민감도 β를 가질 때 즉, 사람들이 사회적 합의에 마냥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관심을 기울일 때,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을 전복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됩니다. 대세를 아주 따르지도, 아주 따르지 않지도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모임이 크면 아니면 작으면 좋을까?
'어중간한' 사회적 민감도에서 소수 의견이 사회 전체의 지지를 받는 현상은 몇 가지 실제 인적 네트워크에서 확인되었습니다(그림2). 소수 의견이 사회 전체의 지지를 받는 사회적 민감도의 범위는 네트워크마다 다르지만, 그럼에도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구간에서 전복 현상이 나타나는 점은 공통적입니다. 실제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모임의 크기는 최댓값과 분포면에서 모두 다릅니다(그림2c). 모임의 크기가 소수 의견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사회적 민감도의 구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논문의 저자들은 모임의 크기가 균일한 모형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모임의 크기를 2명에서 40명으로 변화시키며 이름 붙이기 게임을 진행한 결과, 대체로 모임의 크기가 커질 때 더 넓은 사회적 민감도 구간에서 소수 의견이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그림3i).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을 전복하는 사회적 민감도 구간의 확장은 고집스럽게 소수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의 비율(p)이 늘어날수록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p가 1%일 때는 모임의 크기가 대략 30명이 넘었을 때에 이러한 확장이 나타나지만, p가 3%일 때는 대략 10명이 넘었을 때부터 확장이 나타나며 확장의 추세 또한 가파릅니다.
이를 현실에 적용해보자면 인터넷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인터넷은 많은 사람들이 온/오프라인에서 모일 수 있는 기회를 촉진했죠. 인터넷이 발달한 이후에 다양한 생각들이 사람들에게 퍼졌고, 소수자들의 입장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신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소통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쉬워졌다는 측면으로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인터넷의 발전이 소수 의견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함의가 흥미롭습니다.
다시 논문으로 돌아가볼까요. 고집스럽게 소수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의 비율(p)이 늘어날 때에 더 넓은 사회적 민감도 구간에서 전복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전복이 일어나려면 β가 어느 값보다 크기만 하면 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어 고집스러운 소수의 비율 3%, 모임의 크기가 40명일 때 일정한 β의 범위 이상에서는 반드시 전복이 일어났습니다(그림3h). 특정 조건에서 사람들이 언제나 사회적 합의를 따를 때(β=1) 소수 의견이 사회 전체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논문의 설정 상 고집스럽게 소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도 그 의견만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살펴본 논문에서는 이름 붙이기 게임을 통해 소수가 자신들의 의견을 고집스럽게 주장한다면 ‘어중간한’ 범위의 사회적 민감도에서 다수 의견을 전복할 수 있고, 소통하는 모임의 크기가 클수록 전복할 수 있는 사회적 민감도 범위가 넓어짐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소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그 의견을 주장한다면, 특정 조건에서 소수의 의견이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 사용한 규칙을 따르면 소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고집을 부리지 않을 때는 60대 40의 지지율에서 시작했더라도 소수 의견은 다수 의견을 전복할 수 없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으로 움직이는 만큼 소수의 입장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비정상으로 여겨지고 차별받던 소수인 사람들은 꾸준히 목소리를 내어 조금씩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갔습니다. 최근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에서 있었던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주장한 시위가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는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수직형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한 사고로 촉발되었습니다[3]. 이후 승강기안전관리법 개정으로 수직형 리프트가 설치되었지만 법 개정 이후에도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사고사는 꾸준히 발생했고 장애인 이동권은 20년이 지나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시위에 2022년 1월 28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4년까지 서울 지하철의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겠다고 밝혔지만, 예산은 필요 예산의 6분의 1만 편성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 수는 2021년도 기준 264만 7,000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5.1%에 달합니다[4]. 그들은 사회적 소수자일 뿐만 아니라 수적인 소수자에도 속합니다. 다수결 사회에서 소수인 사람들은 불평등을 겪는다 한들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겠지요. 개인적으로 논문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소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신념을 고수한다면, 아무리 적은 인원이더라도 소수 의견이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논문의 결과에 비춰보면 운동의 불꽃이 지속되는 한 모두가 몸도 마음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을 날이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더불어 논문의 주요 결과는 이 사회를 다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줍니다. 소수가 신념을 고수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심과 기존 방식에 대한 비판적 태도, 그리고 여러 사람이 의견을 함께 나눌 때 소수의 목소리가 널리 울려 퍼질 수 있습니다. 당장 나의 일이 아니더라도 관심과 참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동권 운동가들의 신념과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합쳐져 앞으로 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리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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