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뉴스 제3호] 과학자의 전성기(김정호)
ESC가 전하는 과학기술뉴스 제3호 Oct., 28th, 2021 ESC 과학뉴스선정 특별위원회가 준비한 과학기술뉴스를 선보입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과학기술 논문과 관련 뉴스 중에서 함께 사유하고 고민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선정하고 재구성했습니다. 즐겁게 읽고 의미있는 논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과학자의 전성기 김정호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과학자의 연구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이러한 질문은 과학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질문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질문을 과학적 방법론으로 분석하는 과학의 과학(science of science)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1]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과학자의 공저자 연결망이나, 논문들 사이의 인용 연결망이 시간에 따라서 어떻게 발전하는지, 지식과 혁신은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과학자의 경력은 어떠한 형식으로 발전하고, 과학자의 ‘성공’을 이끄는 요인은 무엇인지 등 다양한 질문들을 다룹니다. 이번 뉴스에서는 이 중에서 과학자들의 ‘전성기’에 관한 연구를 소개합니다.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운동선수나 연예인 또는 과학자를 보면서, “과연 나에게도 전성기가 올까? 전성기가 온다면 언제 오게 될까?”라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실 텐데요. 이와 관련된 연구 논문을 살펴 보며 전성기가 있는지부터, 전성기가 시작될 때 어떤 규칙성이 있는지까지 전성기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가고자 합니다. 관련 연구를 자세히 소개하기에 앞서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두 연구에서는 과학자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영화감독과 예술가들의 전성기 역시 다루고 있고, 정량적인 숫자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정성적인 결과는 모두 같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추상적인 개념인 영향력을 정량화하기 위해, 과학자의 경우에는 논문이 출판된 후 10년간 인용 횟수를, 영화감독의 경우에는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IMDb)의 평점을, 예술가의 경우에는 예술품의 경매 가격을 영향력으로 정의하였습니다. 또한 전성기는 한 사람이 비교적 영향력이 높은 결과물들을 한 번에 쏟아내는 시기로 정의하였습니다. 출처: nature,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18-0315-8 전성기는, 있다 우선 과연 과학자에게 전성기가 존재할까요? 본 연구[2]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자의 90%에서 전성기가 발견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전성기의 횟수는 대부분 한 번 또는 두 번이고, 기간은 평균 3.7년이라고 합니다. 전성기가 "존재한다"라는 것은 우리의 직관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놀라운 결과는 아닙니다. 하지만 당연하게 생각되지 않는 재미있는 결과들도 있었습니다. 첫째, 한 사람의 경력 중에서 전성기는 언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을까요? 창의성이 번뜩이는 초기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어느 정도 연구가 궤도에 오른 중반이나, 자신의 분야에 이해도가 높아지는 후기에 나타나리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이 모든 가설이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즉 과학자들의 전성기는 전체 경력 중 특정 시기에 나타나는 규칙성 없이, 무작위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둘째, 전성기 중에 쓰는 논문의 양은 얼마나 늘어날까요? 전성기가 되면 논문 수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흥미롭게도 전성기 기간이라고 논문을 쓰는 양이 늘어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성기 기간과 그 외의 기간을 비교해 봤을 때, 전성기 기간에 논문의 영향력은 더 높지만, 단위 시간당 쓰는 논문의 수가 많아지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1-25477-8 전성기는 어떻게 오는가 전성기가 특정 시기에 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규칙성을 찾을 수는 없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전성기가 생기는 것을 ‘탐색’ 이후 ‘집중’을 할 때라는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3]성공의 비밀에는 크게 탐색(exploration)과 집중(exploitation)이라는 두 가지 전략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탐색은 도전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이전에 하지 않았던 분야를 연구하는 것이며, 집중은 이미 했던 연구를 더 깊이 연구해 전문성을 쌓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경우는 위험 부담이 있으며, 후자의 경우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만나지 못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본 연구에서는 탐색과 집중을 나누기 위해 과학자들의 논문 주제가 어떻게 바뀌어 나가는지를 엔트로피의 개념으로 확인했습니다. 논문 주제가 여러 가지로 퍼져 있어 엔트로피가 높으면 탐색 중인 시점이라고 정의했으며, 논문 주제가 뭉쳐 있어 엔트로피가 낮으면 집중 중인 시점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결과 흥미롭게도 전성기가 생기기 이전에 탐색 전략을 사용하다가, 전성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집중 전략을 사용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즉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해보며 경험을 넓히다가, 특정 연구에 집중하게 되면서 전성기가 생긴다고 주장합니다. 참고: 전성기 시작점(N↑) 이전에는 엔트로피(H)가 높은 탐색 전략을, 이후에는 엔트로피가 낮은 집중 전략을 사용합니다. 과학자의 실제 논문 출판 순서를 무작위로 섞어놓은 Null모델과 비교하였습니다. 결론 이상의 결과를 종합하면, 과학자의 전성기가 생기는 시점은 무작위적이며, 전성기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탐색 과정이 선행되었습니다. 전성기가 무작위적으로 생긴다는 것은 정책적으로도 흥미로운 함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전성기가 연구 활동 시작 후 10년이 지나서 나타난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시기에 전성기가 오지 않은 사람들을 더는 지원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단순히 커리어의 길이를 기준으로 정책을 만드는 것은 부당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전성기가 나타난 대부분의 경우 탐색 기간을 거쳤습니다. 하지만 탐색 과정은 위험하며, 수많은 실패가 나타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 과학자의 전성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위험에서 보호해주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는 연구 결과를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성실하고 도전적일 경우 포상을 하는 ‘그랜드 챌린지’ 사업과제를 선정했다고 합니다.[4] 이처럼 더 다양한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의 확보는 과학자를 비롯한 다양한 창의성을 가지는 직업들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 ![]() 참고문헌 [1] S. Fortunato et al., "Science of science." Science 359, 6379 (2018). [2] L. Liu et al., "Hot streaks in artistic, cultural, and scientific careers." Nature 559, 396–399 (2018). [3] L. Liu et al., "Understanding the onset of hot streaks across artistic, cultural, and scientific careers." Nat Commun 12, 5392 (2021). [4] 고재원, "KIST 실패 용인하는 도전연구 3개 추진한다" 동아사이언스, 2021. 09. 23. 글: 김정호 (bhjh10@korea.ac.kr) 고려대학교 물리학과에서 석박사통합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통계물리학의 시각으로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의 보편성을 찾기 위해 연구 중입니다. 그림: 박재령 과학자들이 진리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추상적으로 풀어냈습니다. 바로잡습니다 과학기술뉴스 제2호 내용 중 오기가 있어 바로잡습니다. "미세플라스틱과 관련된 질문들" 중 "Q3) 공기 속에서 검출된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나요" 에 대한 답변에서 네 번째 문단 아래의 원문을 교정하여 바로 잡습니다. 원문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150μgm⁻³의 미세먼지는 100μgm⁻³ 공기 부피 안에 10¹⁰ 개 정도의 먼지 입자가 있는 정도입니다." 교정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150μgm⁻³의 미세먼지는 100m³ 공기 부피 안에 10¹⁰ 개 정도의 먼지 입자가 있는 정도입니다." 편집: 김미선 (ESC 과학문화위원회, 도서출판 이김 편집부) 제작: 김래영 (ESC 사무국장) 기획: 민일 (ESC 과학뉴스선정특별위원회 위원장) 발행: ESC 과학뉴스선정특별위원회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이 한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및 문화 활동을 전개하고,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한국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을 전개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입니다. ESC가 우리 사회에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이 뿌리내리는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많은 후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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