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과학’이 시작되었다-
언어가 사고를 만든다는 낭만적인 환상과 과학사의 만남
우리나라를 위시한 동아시아에서 과거 ‘오색찬란’하다고 묘사되던 ‘무지개’는 기독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서구의 ‘Sept couleurs de l'arc-en-ciel’ 개념과 접하면서 ‘일곱 빛깔 무지개’가 되었다. 무지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한 사람의 사고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 지배받는다는 대담한 언어학적 가설은 1,000년 이상 오래전에 탄생하여 오늘날까지 은연중에 또다시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관련하여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이 가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언어학자인 서피어(Edward Sapir)와 그 제자 워프(Benjamin Lee Whorf)가 정리한 서피어-워프 가설은 오늘날에는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 언어와 사고의 지배종속 관계나 선후관계가 증명 가능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현대에도 아직 완전히 부정되지는 않은 채, 언어와 사고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어떻게 보면 다소 미적지근한 상태로 남아 있다. 기실 현대의 언어학자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언어의 원형과 사회 문화의 탄생 순간을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순간을 관찰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 바로 ‘신조어’와 ‘번역어’이다.
우리는 지금 일상을 살면서 흔히 ‘과학적’으로 사고한다. “??는 과학이다”라고 말하고, “물리적으로 그건 불가능해”라고 평한다. ‘자연’과 ‘인공’을 구분하고, ‘과학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현대 문명을 누린다. ‘공룡’이라고 말할 때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비롯한 다들 알법한 비슷한 생물을 떠올린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 하며 태양계 행성의 순서를 외운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 양식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과학’이라는 단어에 ‘과학적’인 성격을 부여했을까? 만약 우리가 조선시대 사람과 대화하면서 ‘과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그는 같은 단어를 전혀 다르게 해석할 것이다. ‘과학’이 science의 번역어로 정착하기 전, 과학(科學)은 흔히 얘기하는 과거 시험을 위한 학문, 즉 과거지학(科擧之學)의 준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교육 기관으로 꼽히는 원산학사의 수업 목록을 보면 ‘격치(格致)’라는 교과목이 있다. 이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서 온 말로,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규명하여 앎에 이른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과목이 오늘날로 치면 어떤 과목이었을까? 물론 과학이다. science를 칭하는 교과목이었다. ‘격치’를 비롯해 이학, 지식, 박학, 학술 등 다양한 단어가 science의 번역어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결국 승리하여 남은 것은 ‘과학’이지만, 사실 누가 살아남더라도 이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격치’의 의미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과학’과 의미상으로 맞닿아 있음은 명백하다. 더군다나 science의 어원인 라틴어 scientia가 넓은 범위의 ‘앎’, ‘지식’ 따위를 의미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science가 ‘과학’이 되었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법도 하다.
그러나 어찌 됐든 간에 결국 살아남은 것은 ‘과학’이었다. 아니, 과학이다. 과학은 지금도 살아남아 우리의 사고 중 많은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는 “언어는 사유의 창”이라는 오랜 아이디어를 믿는다. 비록 언어가 전적으로 우리 사고를 지배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생각은 언어를 통해 구체화되고, 인간 사회는 언어로 묶인다. 우리는 언어를 나눔으로써 진리를 논하고, 과학을 이해하며, 삶을 정의한다. 그러나 그토록 중요한 언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았는지 탐구해 본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과학사 전공자로서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주된 과학 어휘들의 기원을 탐구한다. 우리가 ‘물려받은’ 사유의 틀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파되었는지, 그 어휘가 우리의 사고 체계와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한다. 우리는 부족한 사료와 유구한 시간을 넘어 먼 과거의 어휘를 추적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근대에 과학과 관련된 어휘가 새롭게 탄생하고 번역되는 과정을 살피는 것은 가능하다. 새로운 어휘가 번역되어 들어오면서 동아시아의 언어와 문화, 개념이 그 수용체로 활용될 수밖에 없었음을 생각할 때, 이는 서구의 과학적 개념이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사상과 마주치면서 발생한 마찰을 관찰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적 사유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서로 다른 사상이 부딪히면서 작금의 사고 체계가 만들어진 새로운 탄생의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가 지금 이 책에서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현장이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2791143>
그렇게 ‘과학’이 시작되었다-
언어가 사고를 만든다는 낭만적인 환상과 과학사의 만남
우리나라를 위시한 동아시아에서 과거 ‘오색찬란’하다고 묘사되던 ‘무지개’는 기독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서구의 ‘Sept couleurs de l'arc-en-ciel’ 개념과 접하면서 ‘일곱 빛깔 무지개’가 되었다. 무지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한 사람의 사고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 지배받는다는 대담한 언어학적 가설은 1,000년 이상 오래전에 탄생하여 오늘날까지 은연중에 또다시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관련하여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이 가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언어학자인 서피어(Edward Sapir)와 그 제자 워프(Benjamin Lee Whorf)가 정리한 서피어-워프 가설은 오늘날에는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 언어와 사고의 지배종속 관계나 선후관계가 증명 가능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현대에도 아직 완전히 부정되지는 않은 채, 언어와 사고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어떻게 보면 다소 미적지근한 상태로 남아 있다. 기실 현대의 언어학자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언어의 원형과 사회 문화의 탄생 순간을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순간을 관찰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 바로 ‘신조어’와 ‘번역어’이다.
우리는 지금 일상을 살면서 흔히 ‘과학적’으로 사고한다. “??는 과학이다”라고 말하고, “물리적으로 그건 불가능해”라고 평한다. ‘자연’과 ‘인공’을 구분하고, ‘과학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현대 문명을 누린다. ‘공룡’이라고 말할 때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비롯한 다들 알법한 비슷한 생물을 떠올린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 하며 태양계 행성의 순서를 외운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 양식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과학’이라는 단어에 ‘과학적’인 성격을 부여했을까? 만약 우리가 조선시대 사람과 대화하면서 ‘과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그는 같은 단어를 전혀 다르게 해석할 것이다. ‘과학’이 science의 번역어로 정착하기 전, 과학(科學)은 흔히 얘기하는 과거 시험을 위한 학문, 즉 과거지학(科擧之學)의 준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교육 기관으로 꼽히는 원산학사의 수업 목록을 보면 ‘격치(格致)’라는 교과목이 있다. 이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서 온 말로,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규명하여 앎에 이른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과목이 오늘날로 치면 어떤 과목이었을까? 물론 과학이다. science를 칭하는 교과목이었다. ‘격치’를 비롯해 이학, 지식, 박학, 학술 등 다양한 단어가 science의 번역어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결국 승리하여 남은 것은 ‘과학’이지만, 사실 누가 살아남더라도 이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격치’의 의미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과학’과 의미상으로 맞닿아 있음은 명백하다. 더군다나 science의 어원인 라틴어 scientia가 넓은 범위의 ‘앎’, ‘지식’ 따위를 의미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science가 ‘과학’이 되었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법도 하다.
그러나 어찌 됐든 간에 결국 살아남은 것은 ‘과학’이었다. 아니, 과학이다. 과학은 지금도 살아남아 우리의 사고 중 많은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는 “언어는 사유의 창”이라는 오랜 아이디어를 믿는다. 비록 언어가 전적으로 우리 사고를 지배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생각은 언어를 통해 구체화되고, 인간 사회는 언어로 묶인다. 우리는 언어를 나눔으로써 진리를 논하고, 과학을 이해하며, 삶을 정의한다. 그러나 그토록 중요한 언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았는지 탐구해 본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과학사 전공자로서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주된 과학 어휘들의 기원을 탐구한다. 우리가 ‘물려받은’ 사유의 틀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파되었는지, 그 어휘가 우리의 사고 체계와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한다. 우리는 부족한 사료와 유구한 시간을 넘어 먼 과거의 어휘를 추적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근대에 과학과 관련된 어휘가 새롭게 탄생하고 번역되는 과정을 살피는 것은 가능하다. 새로운 어휘가 번역되어 들어오면서 동아시아의 언어와 문화, 개념이 그 수용체로 활용될 수밖에 없었음을 생각할 때, 이는 서구의 과학적 개념이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사상과 마주치면서 발생한 마찰을 관찰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적 사유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서로 다른 사상이 부딪히면서 작금의 사고 체계가 만들어진 새로운 탄생의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가 지금 이 책에서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현장이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279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