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앎은 어떻게 삶을 구원하는가”
137억 년 우주 역사 속에서 찾은 ‘나’와
평범한 우리가 함께 완성해 가는 위대한 과학 이야기
수업을 들을 때나 과학책을 읽을 때 “이 복잡하고 어려운 공식을 대체 왜 배워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품곤 한다. 단순히 높은 시험 점수를 받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뉴턴의 운동 법칙을 외우는 공부는 진짜 과학의 의미를 잊게 만든다. 저자는 『과학의 역사와 문화』 교과서를 집필하면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갔다. 그 대답과 함께 과학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 펼쳐 보인다.
흔히 과학을 절대적인 진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학문으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우주와 인류의 광활한 역사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깨닫고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이다. 137억 년의 거대한 빅히스토리 속에서 한낱 반딧불에 불과한 인간은 스스로의 무지를 지각하고 성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나일강의 범람을 관찰해 태양력을 만든 고대 이집트인과 20진법으로 시간의 흐름을 구축한 마야인처럼, 앎은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을 가꾸어 나가게 만든다. 천재 과학자의 화려한 모습 뒤편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를 밝히고 서로 도울 때 비로소 과학이 완성된다.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추천
과학도 결국 사람의 일입니다. 과학은 공부해야 하는 긴 지식의 목록이 아니라 그 멋진 지식을 만들어온 지금도 진행 중인 인간의 활동입니다. 우리는 왜 과학을 공부해야 할까요? 과학은 우리 삶과 어떻게 연관될까요? 인류의 역사에서 당대의 사회는 과학이 추구하는 방향을 어떻게 규정했을까요?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깊이 성찰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 정신과 과학의 탄생
과학의 탄생을 인류 최초로 왕과 신의 독점적인 권위에서 벗어나 스스로 정치를 결정하기 시작했던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민주주의 문화에서 찾아보자. 기원전 6세기 밀레투스의 철학자들은 벼락과 지진을 신의 분노가 아니라 자연주의적 원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는 광장(아고라)에서 의심하고 따져 묻던 민주적 토론 문화가 자연을 탐구하는 영역으로 확장된 결과였다. 더 나은 합리적 설명을 할 수 있다면 누구나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셈이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전체주의 국가권력이 역사와 기억을 통제하는 암울한 사회를 그려낸다. 이 무시무시한 통제 사회 속에서 가장 먼저 없어진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과학’이었다. 데모크리토스는 신의 목적론을 부정하고 ‘불멸의 원자’로 우주의 물질을 설명했다가 오랫동안 무신론자라며 박해를 받아야 했다. 끊임없는 질문과 대화를 통해 아테네 시민의 무지를 일깨우려 했던 소크라테스와, 그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정의로운 사회를 고민했던 플라톤의 철학은 과학의 진리 탐구가 궁극적으로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누구나 내 망원경을 통해 볼 수 있다”
중세 군주의 억압적인 봉건 질서가 지배하던 시대를 깨부수고 근대 민주주의의 여명을 이끌어낸 열쇠는 바로 17세기 유럽에서 전개된 과학혁명이었다. 갈릴레오가 “누구나 내 망원경을 통해 볼 수 있다”며 달과 목성의 실체를 대중에게 공개한 사건은, 교회가 독점하던 진리의 소유권을 끌어내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 뉴턴이 『프린키피아』에서 우주의 모든 물질을 움직이는 만유인력 법칙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수학적으로 입증해 냈고, 이 혁명적인 발견은 절대 군주가 휘두르는 권력이 결코 신의 절대적 섭리일 수 없음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켰다.
뉴턴 과학의 객관적 합리성에 영감을 받는 로크와 볼테르 등 당대의 계몽사상가들은 기만적인 왕권신수설을 파헤치고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천부인권적 자연권 사상과 인민주권의 사회계약설을 정립했다. 이렇게 과학혁명이 가져온 합리주의의 자각은 근대 민주 정치 질서를 수립하는 근원적 뿌리가 되었다.
기술발전의 이면을 살피고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있는 힘
오늘날 과학기술은 눈부신 발전 뒤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과학은 역사적으로 보편성과 가치중립성을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사회의 편견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자주 동원되었다. 인종주의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폭력적 도구로 악용되기도 했고, 현대 사회의 인공지능 편향이나 인류세가 가리키는 환경 위기 역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미래 예측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고 공존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 더 시급하다.
안면인식 AI 알고리즘의 심각한 오류가 무고한 흑인 시민을 범죄자로 오인해 체포하도록 만들었듯이, 과학기술은 지극히 정치적이고 불확실한 성격을 지닌다. 기술이 중립적이라는 잘못된 통념과 기술결정론은 기술로부터 정치, 가치, 책임을 제거하고 민주적 통제를 가로막는다. 19세기 말 자전거가 여성들에게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참정권을 쟁취하게 한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되었듯이, 기술의 미래는 시민의 주체적 참여와 민주적 상상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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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회원책출판
“앎은 어떻게 삶을 구원하는가”
137억 년 우주 역사 속에서 찾은 ‘나’와
평범한 우리가 함께 완성해 가는 위대한 과학 이야기
수업을 들을 때나 과학책을 읽을 때 “이 복잡하고 어려운 공식을 대체 왜 배워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품곤 한다. 단순히 높은 시험 점수를 받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뉴턴의 운동 법칙을 외우는 공부는 진짜 과학의 의미를 잊게 만든다. 저자는 『과학의 역사와 문화』 교과서를 집필하면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갔다. 그 대답과 함께 과학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 펼쳐 보인다.
흔히 과학을 절대적인 진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학문으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우주와 인류의 광활한 역사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깨닫고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이다. 137억 년의 거대한 빅히스토리 속에서 한낱 반딧불에 불과한 인간은 스스로의 무지를 지각하고 성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나일강의 범람을 관찰해 태양력을 만든 고대 이집트인과 20진법으로 시간의 흐름을 구축한 마야인처럼, 앎은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을 가꾸어 나가게 만든다. 천재 과학자의 화려한 모습 뒤편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를 밝히고 서로 도울 때 비로소 과학이 완성된다.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추천
과학도 결국 사람의 일입니다. 과학은 공부해야 하는 긴 지식의 목록이 아니라 그 멋진 지식을 만들어온 지금도 진행 중인 인간의 활동입니다. 우리는 왜 과학을 공부해야 할까요? 과학은 우리 삶과 어떻게 연관될까요? 인류의 역사에서 당대의 사회는 과학이 추구하는 방향을 어떻게 규정했을까요?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깊이 성찰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 정신과 과학의 탄생
과학의 탄생을 인류 최초로 왕과 신의 독점적인 권위에서 벗어나 스스로 정치를 결정하기 시작했던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민주주의 문화에서 찾아보자. 기원전 6세기 밀레투스의 철학자들은 벼락과 지진을 신의 분노가 아니라 자연주의적 원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는 광장(아고라)에서 의심하고 따져 묻던 민주적 토론 문화가 자연을 탐구하는 영역으로 확장된 결과였다. 더 나은 합리적 설명을 할 수 있다면 누구나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셈이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전체주의 국가권력이 역사와 기억을 통제하는 암울한 사회를 그려낸다. 이 무시무시한 통제 사회 속에서 가장 먼저 없어진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과학’이었다. 데모크리토스는 신의 목적론을 부정하고 ‘불멸의 원자’로 우주의 물질을 설명했다가 오랫동안 무신론자라며 박해를 받아야 했다. 끊임없는 질문과 대화를 통해 아테네 시민의 무지를 일깨우려 했던 소크라테스와, 그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정의로운 사회를 고민했던 플라톤의 철학은 과학의 진리 탐구가 궁극적으로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누구나 내 망원경을 통해 볼 수 있다”
중세 군주의 억압적인 봉건 질서가 지배하던 시대를 깨부수고 근대 민주주의의 여명을 이끌어낸 열쇠는 바로 17세기 유럽에서 전개된 과학혁명이었다. 갈릴레오가 “누구나 내 망원경을 통해 볼 수 있다”며 달과 목성의 실체를 대중에게 공개한 사건은, 교회가 독점하던 진리의 소유권을 끌어내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 뉴턴이 『프린키피아』에서 우주의 모든 물질을 움직이는 만유인력 법칙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수학적으로 입증해 냈고, 이 혁명적인 발견은 절대 군주가 휘두르는 권력이 결코 신의 절대적 섭리일 수 없음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켰다.
뉴턴 과학의 객관적 합리성에 영감을 받는 로크와 볼테르 등 당대의 계몽사상가들은 기만적인 왕권신수설을 파헤치고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천부인권적 자연권 사상과 인민주권의 사회계약설을 정립했다. 이렇게 과학혁명이 가져온 합리주의의 자각은 근대 민주 정치 질서를 수립하는 근원적 뿌리가 되었다.
기술발전의 이면을 살피고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있는 힘
오늘날 과학기술은 눈부신 발전 뒤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과학은 역사적으로 보편성과 가치중립성을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사회의 편견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자주 동원되었다. 인종주의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폭력적 도구로 악용되기도 했고, 현대 사회의 인공지능 편향이나 인류세가 가리키는 환경 위기 역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미래 예측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고 공존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 더 시급하다.
안면인식 AI 알고리즘의 심각한 오류가 무고한 흑인 시민을 범죄자로 오인해 체포하도록 만들었듯이, 과학기술은 지극히 정치적이고 불확실한 성격을 지닌다. 기술이 중립적이라는 잘못된 통념과 기술결정론은 기술로부터 정치, 가치, 책임을 제거하고 민주적 통제를 가로막는다. 19세기 말 자전거가 여성들에게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참정권을 쟁취하게 한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되었듯이, 기술의 미래는 시민의 주체적 참여와 민주적 상상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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