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APCTP 2024 올해의 과학도서

202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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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는 고급 과학 콘텐츠의 창출과 보급, 과학 문화 확산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올바른 과학적 세계관 정립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로, 과학자, 과학도, 그리고 과학에 관심 있는 대중 모두가 과학적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APCTP 2024 올해의 과학도서’ 10권을 선정하였습니다.


출처: https://crossroads.apctp.org/cop/bbs/000000000000/selectArticleDetail.do?nttId=4207

□선정위원 명단

손승우(한양대학교),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정민섭(한국천문연구원), 장홍제(광운대학교), 정우현(덕성여자대학교), 최진영(마포출판문화센터), 김항배(한양대학교), 이충환(동아에스앤씨), 이권우(도서평론가)


총평

최근 과학책 출간 동향을 보면, 독자집단은 과거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했던 역할을 과학계가 융합적으로 실천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과학사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학문적 업적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이른바 교양과학 분야에 해당한다. 다음으로는 동시대에 벌어지는, 그래서 미래가치가 있는, 중요한 과학기술적 업적을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그동안 ‘무역역조’가 심했던 분야다. 끝으로 인류가 마주한 위기상황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올해의 나온 과학책을 가려 뽑으면서 선정위원은 이 세 가지 역할에 충실한 책을 고르기 위해 애를 썼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선정기준에 걸맞은 책은 많았고, 국내 필자의 약진도 눈에 띄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이 가운데 교양과학 분야의 책으로는 <1초의 탄생> <세 개의 쿼크> <물질의 세계> <한글과 타자기>를 골랐다. 해당 주제에 대한 깊은 이해에 이르도록 이끄는 훌륭한 ‘셰르파’ 역할을 톡톡해 해내리라 기대한다. 동시대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 업적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책은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올해는 두 권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수학이 생명의 언어라면>과 <뉴럴링크>가 바로 그것으로, 이 책을 기점으로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지평이 넓어지길 바란다.

기후위기야말로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가장 중대한 과제다. 다루는 분야와 주제의 다양화를 염두에 두었지만, 이 분야의 책이 많이 선정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찬란한 멸종> <한국인의 기원> <폭염 살인>은 기후위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실천방안을 찾도록 이끌어준다.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도 대중의 관심을 끄는 기후위기 극복방안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을 터다.

이번에 가려 뽑은 책이 대중 독자에게는 과학 리터러시 향상에 도움이 되고, 필자에게는 격려의 기회가 되고, 출판인에게는 지속적으로 과학책을 펴내는 데 작은 동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이권우(도서평론가, 선정위원장)


1초의 탄생

채드 오젤 저 | 김동규 역 | 21세기북스

시간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은 시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그저 시계로 측정하는 양이라 한다. 그렇다면 시계란 무엇인가? 시계는 일정한 주기로 움직임을 반복하는 장치로 세상의 변화를 기술하는 기준이다. 인류가 시간을 측정한 역사는 제법 오래됐다. 처음에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 달의 공전 등의 천문 시계를 활용했고, 이들의 주기인 일, 월, 년은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에 지금도 달력에 쓰이고 있다. 시간을 측정하고 달력을 만드는 작업은 농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며 제사와 축제 등 사회적 합의에도 중요해서 권력에도 연결됐다. 과학의 시대인 현재에도 원자시계의 발명으로 시간은 인류가 가장 높은 정밀도로 측정할 수 있는 양으로 길이와 질량 등 다른 측정량의 단위를 정하는 기준이 됐다. 이 책은 인류가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찾아내거나 발명한 시계들의 역사와 그 과정에서 밝혀진 시간의 과학적인 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 과학과 기술의 발전만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성과 합의가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과학과 역사가 흥미롭게 어우러진 책이다.

김항배(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세 개의 쿼크

김현철 저 | 계단

물리학은 어렵지만 물리학자 이야기는 재미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 있고, 원자는 핵과 전자로 구성되고, 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고, 양성자와 중성자는 최종적으로 세 개의 쿼크로 구성된다. 20세기에 물리학자들이 물질의 근본적인 실체라고 밝혀 놓은 사실이다. 이 사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양자역학, 양자장론, 게이지 이론, 재규격화, 양자색역학, 점근적 자유성 등 일반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내용들이 쏟아져 나온다. 작가 김현철은 이 어려운 내용들을 자연에서 그것을 발견해 낸 물리학자들의 삶과 지혜를 통해서 풀어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니 뭔가 깨달음을 얻은 느낌이다. 무협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무공이 사실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협객들의 서사를 통해 무공을 느낌으로 이해하는 경지랄까. 시인을 꿈꿨던 물리학자만이 펼칠 수 있는 내공이다. 이 책은 많은 물리학자들이 협력을 통해 20세기 물리학의 위대한 업적인 표준모형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개척했는지 보여주는 대하소설 같은 작품이다.

김항배(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폭염 살인

제프 구델 저 | 왕수민 역 | 웅진지식하우스

기후위기는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을 뜻한다. 인간의 활동이 기후환경에 영향을 끼쳐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을 일러 한동안 온난화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이 번역어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추운 지역에서는 좋은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비판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지구가열이라는 말을 쓰는 일이 잦았다. 근년 들어 여름 기온이 그동안의 기록을 갈아치울 만큼 급상승하면서 문제의식이 광범하게 공유되었지만, 이 현상을 그야말로 피부에 와닿도록 선명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온도가 급상승하면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상을, 전세계를 배경으로 실감나게 기록한 일종의 르포타지다. 광범한 피해를 낳고 있는 이 ‘열국(熱國)열차’를 멈출 방법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지은이는 강요하거나 선동하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생생한 증언과 충분한 설명을 통해 전 세계적 차원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이권우(도서평론가)


한국인의 기원

박정재 저 | 바다출판사

오늘 한반도에 자리잡은 한민족의 기원은 무엇일까? 그동안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에 ‘배당’된 이 주제에 관한 독점권을 기후학, 고유전학, 생물지리학에 ‘분양’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책을 집어들며 드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이 책은 그 질문에 십분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놓는다. 아프리카를 떠난 호모 사피엔스의 일부는 5만~4만 년 전쯤 동아시아에 다다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약 2만 5천 년 전, 극심한 추위와 건조한 기후를 피해 만주와 연해주의 아무르 강 유역에서 살던 수렵 채집민이 한반도로 유입되었다.

이후에도 역시 기후영향으로 산둥, 랴오둥, 랴오시 등에서 농경민 집단이, 랴오시와 랴오둥에서 점토대토기 문화 집단이, 그리고 북방에서 고조선과 부여의 유민이 한반도에 들어왔는데, 이들이 혼합되어 한국인이 되었다. 말하자면 한민족은 ‘기후난민’의 결과인 셈이다. 한랭건조한 기후조건이 남하를 촉진했다면, 인류세 시대의 지구가열은 북상하는 기후난민을 낳을 가능성이 짙다. 지은이가 공을 들여 한민족의 기원을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책을 덮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권우(도서평론가)


찬란한 멸종

이정모 저 | 다산북스

이 책은 인간이 멸종한 가상의 미래 2150년으로 날아가 거기서부터 46억 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모든 생명이 겪어온 멸종의 역사를 찬찬히 되짚는다. 추억의 사진첩을 한장 한장 넘기듯 여섯 번 대멸종 사건의 주요 장면들을 돌아보다 보면 어째서 저자가 멸종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찬란하다고 표현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멸종된 당사자들의 회고록 마냥, 독특한 일인칭 독백으로 연출한 한 편의 엄숙하고도 코믹한 모노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묘하다. 읽다 보면 우리는 금세 지구 역사를 멋지게 장식하고는 이내 사라진, 이름 없는 과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감사를 표하게 된다. 인간이 없는 지구는 지금보다 더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인간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아줄 것인가! 책을 덮은 후, 쉴 새도 없이 곧바로 뒤에서부터 앞으로 거꾸로 다시 읽게 만드는 걸작. 단언컨대, 이 책을 안 읽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우현(덕성여자대학교 약학과 교수)


수학이 생명의 언어라면

김재경 저 | 동아시아

생명은 패턴일까? 생명 현상도 천체의 운동처럼 과연 수학이라는 언어로 설명될 수 있을지 자못 회의적일 수 있지만, 이 책은 그 가능성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제시해주는 친절한 입문서 역할을 하고 있다. 생체 주기 조절, 감염병의 확산, 약물 효과 극대화를 위한 조정 시간 요법 등 수리 모델로 예측한 생명 현상은 앞으로 실험동물의 희생 없이도 신약 개발의 정확도와 효용성을 한층 더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수학적 개념들이 단순히 추상적인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중대한 문제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전도유망한 수학자의 최신 연구 성과를 통해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의사결정과 감정의 변화도 수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을까? 더 과감하게 확장될 수리생물학의 차후 행보를 기대하며 응원하게 된다.

정우현(덕성여자대학교 약학과 교수)


뉴럴링크

임창환 저 | 동아시아

괴짜 사업가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뇌공학 기업의 이름과 같은 제목의 책. 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국내 최초로 연구하기 시작한 뇌공학자의 자전적 이야기다. 뇌 질환의 치료와 재활을 위한 뇌공학과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하며 접한 실제 사례에서부터 뇌의 신비, 뇌공학의 최전선인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의 기술과 그 응용까지 아우르고 있다. SF영화를 예로 들기도 하지만, 실제 연구 현장은 이보다 더 놀랍고 때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필자의 바람대로 뇌공학에 관심이 있는 후학, 평소 뇌에 관심이 많은 학생, 시대의 흐름을 읽고자 하는 일반인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21세기를 이끄는 거대한 연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신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충환(동아에스앤씨 편집위원)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아마데오 발비 저 | 장윤주 역 | 북인어박스

2023년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갈릴레오상 대상작. 우주여행, 생명체 탐사, 행성 식민지 등을 둘러싼 대중의 궁금증을 풀어낸 책이다. 지구 종말의 다양한 각본을 제시하고 화성, 달, 우주 식민지 등을 가는 방법을 설명하며 태양계 너머 거주 가능한 행성으로의 성간 여행을 그려 본다. 멋진 세상 지구에서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염려하며 지구를 떠나 화성 등에서 식민지를 개척할 수 있는지 들려준다. 특히 화성에서 거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흥미롭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방대한 우주 서사시를 그려내지만, 칼 세이건보다 더 따뜻한 시선으로 인류를 바라본다.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시작하는 환상을 버리고 지구에서 그 일을 시작한다면, 훨씬 더 쉽고 즐거울 것”이란 저자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겠다. 

이충환(동아에스앤씨 편집위원)


물질의 세계

에드 콘웨이 저 | 이종인 역 | 인플루엔셜

6가지 악기로 그려내는 문명이라는 오케스트라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대기를 떠도는 먼지, 빛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로 만든 건물들,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밝히는 전력망, 그리고 현대 문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가득한 플라스틱. <물질의 세계>는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이라는 여섯 가지의 물질을 재료로 쓴 문명사이다. 이 탁월하고 촘촘한 기술 문명사 책은, 이 특별한 물질들이 우리 문명과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더 번쩍이고, 단단하며, 효율적이고, 거의 무제한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는지를 탐구해낸다. 

이 책은 단단한 과학적 기반과 꼼꼼한 리서치를 통해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투영하는 장엄한 스펙타클을 완성해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물질 세계를 이해하는 더 촘촘한 해상도의 지도를 얻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최진영(마포출판문화센터 센터장)


한글과 타자기

김태호 저 | 역사비평사

나랏말쌈이 기계와 달아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한글과 타자기>는 타자기로 대표되던 서양식 효율이 한국의 문자문화에 뿌리내리는 과정을 담아낸 책이다. 저자는 당대의 기술시대적 과제를 떠안고 고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변화와 적응의 방식을 찾아내는 기술의 역사를 조망한다. 

이 책은 타자기를 둘러싼 사회적, 기술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들을 풍부하게 엮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생한 에피소드들로 당시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탁월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최적화된 기술이, 그리고 현명한 표준이 사람들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시대의 흥분과 기대까지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 맞아, 과학이 그런 것이었던 때가 있었지. - 20세기 후반의 한글 타이핑 표준에 관한 논쟁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더욱 재밌게 느껴질 에피소드들이 가득한 즐거운 읽을거리. 

최진영(마포출판문화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