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학(책)도 (기계)번역이 되나요? [13] - Tinkering with 'tinker'

블랙소스
2025-06-30
조회수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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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문장. 단 한 단어. 그 앞에서 역자는 멈칫한다. 굳이 어려운 말이어서가 아니다. 느낌은 대뜸 오기에 일견 평범해 보이는 텍스트인데, 한국어로 옮기려 하면 도무지 헛돌기 일쑤여서다. 훌륭한 작가라면, 어떨까? 좀 수월할까? 아니, 한 단어 때문에 몇 날을 그냥 흘려보내기도 한다는 말에는 무지 공감이 가는데, 같은 이유에서일까? 게다가 작품(이나 전기라면 인물의 캐릭터) 전체를 관통하는 의도로 대뜸 제1장의 첫 문장부터 등장하는 단어라면? 


이미 한 단어만 가지고도 머릿속에서 온통 어떤 난리가 났는지 적나라하게 (말이 '머릿속'이지 손수 조사한 자료의 내용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조금 과장하면 고민의 '쓰나미'가 따로 없는 셈!) 언급했지만,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난감한 단어를 마주친 경우의 기억을 더듬어보겠다.


해당 원문은 이렇다. 첫 단어는 시작으로 아주 멋지긴 하지만, 의미를 포착하려다 보면, 왜 이렇게 시작했을까 싶은 생각이 피어오른다. 


Eventually the art went out of radio tinkering. 


바로 이어서는 주인공을 포함한 당대 사이언스 키드들이 라디오를 가지고 어떻게 놀았는지를 비롯한 성장기를 묘사한다. 


텍스트를 뒤로 더 접하면 접할수록, 이 첫대목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물론 구조상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배치한 작품이므로 제1장이 맨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스토리의 본격적 시작을 이렇게 했다니, 그 느낌은 후행적으로 더 놀라웠다.).   


일전에 사전의 요긴함과 한계를 모두 살펴보기도 했지만, 이 문장 앞에서 사전은 그야말로 무력해졌다. 문장이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지만, 전하고자 하는 의미와 느낌을 한국어로 우려내기는 지독하게 까다로웠다. 여기서는 art라는 단어도 그러하거니와, tinker라는 단어는 더더욱 골치였다. 


잠깐,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한국어로 담아낼지 생각해보자. (사실 말이 안 되는 주문이다. 필자 스스로는 번역에 손을 대기 시작했을 때부터 출판사에 조판본 원고가 넘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고민한 단어니까, 앞에서 본 'dense'란 단어보다 더욱 dense하게 매달린 'tinker'라는 단어가 포함된 문장을, '잠깐'만에 바꿔보라니 말이지!) 


작품 전체에서 이 'tinker'를 어근으로 하는 장면이 (가령, 물리학자를 tinkerer로 통칭하는 등) 10여 군데 나오는 듯한데, 이 작품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오히려 제목보다도 더 부각되는 이 말이다. (제목으로 쓰인 단어(genius)는 책 전체에서 액면으로는 그보다 살짝 더 자주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언어 사이의 몇몇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편적으로 인정하더라도, 필자는 사람의 호흡이란 동서고금 막론하고 비슷하리라는 지론에 따라서 번역의 기준을 세운다. 따라서 동양어와 서양어의 기본적 어순 차이를 (해석이라면 몰라도) 번역에서 무심코 드러내는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 단어 역시 우리말로 한 단어 넘어가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더욱 괴로운 모드로 진입하게 되었다. 


아무튼 번역이란 출발어든, 도착어든, 이들 언어의 'tinkering'이라 해도 퍽 어울리는 표현인데,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호기심과 탐구열이라는 개념을 아우르기 위한 장치로 보면서 저자의 의도를 요리했다. 물론 라디오를 둘러싸고 일상에서 접근 가능했던 탐구생활 범위를 조목조목 밝히면서, 문명과 과학기술사적 전환점을 상징하려는 단어 선택으로도 보였다. 현대의 라디오로는 (적어도 그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는) tinker할 수 없으니까!


호기심과 탐구열이라는 두 단어로 그 의미를 대변했지만, 사실 굉장히 다층적인 의미가 포함된다. 심지어 아마추어리즘이나 불완전함까지도 비치는 뉘앙스니 말이다. 집요하게 씨름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배움 등 상당히 응축성이 큰 단어인데, 혹시 대번에 적절한 한국말이 떠오르면 댓글로라도 알려주셨으면 감사하겠다! 뚝딱거린다거나 만지작거린다는 정도로는 최소 몇 % 이상 부족하다. 


솔직히, 이 한 대목에서 이 단어가 한 번만 등장했다면 그 정도 부족함과는 타협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아예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을 tinkerer로 규정하는 관점으로 저자가 이야기 얼개를 짜기도 했으므로, 주인공의 본질적 특징을 함축한 단어에 추호도 소홀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주인공의 연구 분야가 '이론'물리학이니까 이는 머리로 하는 대표적인 일이겠거니 하지만 주인공은 그러한 이론과도 '몸'으로 직접 부대꺄봐야 하는 체질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현실과 밀착하려는 치열함이야말로 파인만을 탁월한 물리학자로 이끌었는지도!


원문의 뜻은 그저 중립적이고 단순하게 보면, 라디오를 (이리저리 궁리하면서) 조립하거나 분해, 고칠 때 나는 (손)맛이나 묘미가 사라졌다는 정도인데, 이런저런 tinkering을 거쳐 실제로 이런 문장에 '도착'했다. 


결국 집에서는 라디오 땜질이 어림없는 시대가 왔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욱 정밀하고 성능 좋은 기계를 손에 넣은 인류에게는, 오히려 그로써 기계와 친해질 길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만큼 멀어진 셈이므로, 이러한 암시가 가능해야 한다는 의도도 반영하려 했다. 이 텍스트를 번역할 (원저가 쓰일 때는 더더욱) 당시는 지금과 같이 능청스럽게 (사실이든 거짓이든) 사람과 기계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언어 모델은 물론, 알파고도 등장하기 전이었지만 본 줄기의 결이 다르지는 않다고 본다. 오히려 tinkering의 본 의미에 비추어 보면 AI 개발의 일상과도 같은 휴리스틱한 (하이퍼)파라미터 튜닝이야말로 결이 더 다른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전산화, 자동화를 넘어 지능화를 향해 돌진하는 현대에 우리가 점점 더 많이 잃어버리는 가치의 하나는 이러한 tinkering의 기회 아닐까. 삶 전체가 어쩌면 바로 tinkering의 연속인 법이니, 경험컨대, 아무리 기계 번역의 완성도가 높아져 사람들의 호응이 왕성해지더라도, 진정한 번역이야말로 그 tinkering의 기회가 꽤 오래 지속될, 살맛나는 과정이라 장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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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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