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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시간은 얼마나 정확히 잴 수 있을까

1969년 크리스마스, 일본의 시계회사 세이코는 쿼츠 크리스탈을 사용해 정밀도를 비약적으로 높인 손목시계를 발매한다. 당시 사용되던 기계식 시계 대비 10배 이상 정밀한 이 시계는 한달에 5초 이내의 오차로 기계식 시계시장에 ‘쿼츠위기(quartz crisis)’를 불러왔다. 유럽의 고급 기계식 시계는 고가의 장신구라고 개념을 바꾸면서 살아남았지만 이후 거의 모든 시계는 쿼츠시계가 된다.


쿼츠시계는 얇은 수정(quartz)조각에 전기장을 가하면 강유전체 특성을 지닌 이 물질에 기계적 변형이 일어나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수정조각의 고유 진동수에 해당하는 전기장을 가해주면 기계적 진동과 공명현상으로 특정 진동수를 매우 정확하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삽화 김기명>


초기에는 8.192kHz에 공명하는 것을 사용했고 요즘은 32.768kHz에 공명하는 RTC(real-time clock)를 거의 모든 시계에 사용한다. 사실 무엇이든 안정된 주파수 진동을 발생할 수 있으면 시계가 될 수 있다.


네비게이션은 GPS 위성을 사용한다. 궤도를 도는 위성신호를 수신기가 받아 해독하면 현재 위치의 3차원 좌표를 알려주는 것이다. GPS 위성이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정밀한 시계다. GPS 위성에 탑재된 시계는 수십억년에 1초 정도의 오차를 가질 정도로 매우 정밀하다. 세슘(Cs)이나 루비듐(Rb)과 같은 원자에 있는 전자를 흥분상태에서 기저상태로 보낼 때 방출하는 빛의 진동수를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원자시계라고 한다.


국제적으로는 세슘 진동수로 1초 규정


루비듐 원자시계 중에 정밀도가 좀 떨어지는 것은 가정용 TV 정도 가격으로도 구매할 수 있다. 여기에 GPS 수신 장치를 붙이면 원래 정밀한 원자시계를 GPS 신호를 이용해서 보정해 장기적인 정확도를 유지할 수 있다.


GPS 인공위성의 원자시계는 초당 3874 km로 움직이기 때문에 특수상대성이론의 시간지연 효과로 하루 7마이크로 초 느려지고, 지구중력이 궤도에서는 줄어서 일반상대성이론 효과로 45마이크로 초 빨라지므로 이를 보정해야 한다. 이는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면 속도나 가속도 같은 물리량을 상대성이론에서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실 국제 단위계에서는 1초를 아예 원자시계를 이용해 ‘세슘-133 원자의 바닥상태 초미세 전이에 해당하는 진동수의 9,192,631,770 주기의 지속시간’으로 정의했다. 질량수 133의 세슘 원자시계를 이용해서 1초를 정의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표준과학연구원(KRISS)이나 미국의 국립표준기술원(NIST) 같은 세계의 여러 표준기관은 하루에 1나노(10⁻9)초 정도의 오차가 발생하는 원자시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상호 비교하면서 안정적이고 연속적인 시간 표준을 유지한다. GPS 인공위성의 원자시계도 여기서 제공받는 시간으로 하루에 한번 정도씩 보정한다.


원자시계의 정확도는 점점 개선되어서 최근에 발표된 광학격자시계의 정밀도는 10⁻18수준이다. 이것은 우주의 나이 138억년 동안 0.1초 정도 오차가 생기는 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원자시계는 원자핵 주변에 존재하는 전자의 에너지 상태가 변하면서 방출하는 빛을 이용한 것이다. 그런데 전자들은 원자 외각에 있으므로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기 쉬워서 안정화를 위한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원자핵은 전자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 환경에 둔감하지만 핵에서 방출되는 빛은 감마선으로 매우 에너지가 높다. 토륨-229의 원자핵의 경우 8.3557332 eV 근처의 매우 에너지가 작은 흥분상태여서 원자외선에 해당하는 이 빛을 이용하면 지금의 원자시계보다 정확도와 안정도를 10배 이상 향상된 핵시계(nuclear clock)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정밀한 원자시계는 실험실 크기의 공간이 필요한데 핵시계는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들 가능성도 있어 기대를 모은다.


과학자들이 정밀한 시계를 만들려는 이유


이렇게 정확한 시계는 우리가 감지할 수도 없는데 왜 만드는 것일까? 단순하게는 정밀도가 더 높은 GPS 시스템이 가능할 것이고 인터넷이나 디지탈 통신을 좀 더 빠르고 안전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매우 민감한 중력 측정장치가 될 수 있다.


가장 정밀한 원자시계는 지표면에서 수직으로 몇mm 정도 움직일 때 변하는 중력을 감지할 수 있으니 발 밑이 무거운 철광석인지 텅빈 동굴인지도 알 수 있다. 물론 더 극한에 가면 중력파 감지기가 될 수도 있고, 물리상수가 정말 불변의 상수인지 확인할 수 있으며, 암흑물질을 찾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 따라서 더 정밀한 시계를 향한 과학자들의 여정은 아직 진행형이다.


박용섭 (경희대 교수, 물리학)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를 신설해 2023년 새해부터 매주 화요일 '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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