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인류 진화과정 밝히는 DNA 염기서열 해독기술

김준
2025-04-24


인류의 진화를 연구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식 중 하나는 살아있는 인류의 친척을 살펴보는 것이다. 유인원을 포함해 500여종이 넘는 영장류가 바로 그 친척이다. 이를 연구해 털의 분포나 얼굴 및 손발의 모양 같은 생김새도 비교하고, 공격성이나 사회성 같은 행동 수준의 특징을 비교하기도 한다.


기술이 발전하며 볼 수 있는 특징이 더 세밀하게 나뉘기도 한다.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염색체의 숫자와 염색체에 드러나는 무늬 같은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제는 DNA 염기 서열 해독을 통해 염색체의 진화과정을 그 서열 수준에서 이해하려는 일도 본격화되고 있다.

<삽화 김기명>


염색체를 통해 인류의 진화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수십년 전부터 계속되어왔다. 1982년에는 사람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의 염색체 색깔띠가 큼지막하게 실린 논문이 발표됐다. 염색체는 당시에도 알려져 있던 것처럼 개수부터 달랐다. 24쌍의 염색체를 지닌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사람은 23쌍의 염색체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24쌍의 염색체를 지니고 있던 사람의 조상에서, 2개의 염색체가 합쳐지면서 거대한 1개의 염색체가 형성된 것이었다. 그렇게 형성된 거대한 2번 염색체는 인간만이 지닌 특징으로 밝혀졌다.


유인원 유전체 지도로 인간과의 차이 확인


10년이 지난 1991년에야 합쳐진 염색체의 정확한 실체가 밝혀졌다. DNA의 서열을 분석해주는 염기서열 해독 기법이 개발되면서 인간 게놈프로젝트가 본격화됐고, 그 과정에서 염색체 2번의 서열도 일부 확인된 것이다. 마치 너무 멀리에서 찍어 뿌옇게 흐린 사진이 1982년 염색체 색깔띠 연구의 증거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코앞까지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 세밀한 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된 게 1991년의 성과였다.


이를 통해 사람의 염색체 2번에 해당하는 DNA 조각에는 2개의 서로 다른 염색체가 합쳐진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있음이 확인되었다. 기술은 이처럼 오래된 질문에 선명하고 강력한 증거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23년에는 발전된 DNA 염기 서열 해독 기법을 기반으로 대규모 영장류 유전체 정보가 밝혀지기도 했다. 구체적으로는 영장류 233종의 유전체 서열 정보가 낮은 해상도로 확보됐고 이중 27종에 대해서는 높은 해상도로 작성된 유전체 지도가 공개됐다.


기존에 공개된 자료를 종합하고 분석함으로써 영장류 50종의 염색체 진화 과정이 DNA 서열 수준에서 자세하게 밝혀지기도 했다. 인류가 진화한 과정을 염색체 수준에서 해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염색체가 뒤섞이고, 잘리고, 합쳐지는 과정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해 영장류 진화과정에서 일어난 염색체 진화가 새롭게 밝혀졌다.


올해에는 당시 50종에 포함되어있던 유인원 6종의 유전체 지도를 최고 수준의 해상도로 다시 한번 갱신한 결과가 공개됐다. 비유하자면 2023년에 확보된 유전체 지도가 인물 사진 위주였다면 이제는 기술이 좋아져 배경까지 뚜렷하게 보이게 된 수준이다.


그렇게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보르네오 오랑우탄, 수마트라 오랑우탄, 큰긴팔원숭이를 대상으로 완전한 수준의 염색체 서열이 확보됐다. 2022년에 빈틈없이 완성된 인간 유전체 지도에 이어 마침내 유인원의 유전체 지도가 완성된 순간이었다.


이렇게 완벽한 유인원의 유전체 지도는 DNA 서열 수준에서 1982년에 보고된 또 다른 현상이 검증될 수 있도록 했다. 1982년 당시 염색체 색깔띠를 이용해 26개 지역의 DNA가 뒤섞이며 염색체 구조가 새롭게 형성된 것이 확인됐는데 이번에는 현미경만으로는 결코 찾아낼 수 없었던 크기를 지닌 1000여개의 뒤섞인 DNA 지역을 정밀하게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흔히 알려진 사람과 유인원의 차이인 1%를 넘어 기존에는 명확히 확인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DNA 서열 차이를 확인하기도 했다. 유인원의 유전체 중 약 10%는 개별 유인원 종에서 그 구조가 특징적으로 바뀐 지역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유전체 측면에서 사람이 사람다운 이유 해독


유전체와 염색체 진화연구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활발하게 피어나고 있다. 사람이 사람다운 이유가 무엇인지 유전체 측면에서는 완벽한 수준으로 답하는 것이 가능해진 셈이지만 여전히 남은 질문은 많다.


예컨대 이렇게 다른 DNA 중 대체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내는 것인지, 어떤 차이가 이목구비와 행동까지 차이 나게 하는 것인지 그 답은 지금도 찾아가는 중이다. 앞으로 더 정밀하게 인류의 진화를 밝혀낼 수 있길 기대한다.


김 준 (충남대 교수 생명시스템과학대학)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ESC와함께하는과학산책


+ 'ESC와 함께하는 과학산책' 연재 목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