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기후위기 탈출, 우리 모두가 영웅이어야 한다

홍진규
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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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영웅이 필요하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을 영웅화하고, 신화나 영화 속 영웅으로 대리만족을 하기도 한다. 슈퍼맨 원더우먼과 마블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우리의 이런 마음을 대변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은 있지만 위기를 사전에 막는 영웅은 찾기 힘들다. 재난과 시련은 늘 일어나는 막을 수 없는 상수이기 때문일까? 기후위기를 다룬 영화에서도 기후재난을 막지 못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흔히 난세에 영웅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위기를 사전에 감지하고 경고하는 사람을 우리는 ‘예언자’라고 한다. 위기해결사인 영웅과 달리 우리는 예언자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예언자는 흔히 허풍쟁이거나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트로이의 공주였던 카산드라는 누구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못하도록 저주를 받았다.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지 않은 트로이는 멸망했고, 카산드라 역시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지금 우리는 데이터 기반으로 과학적 추론에 근거한 예측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이러한 예측도 가짜뉴스 취급을 받는데 대표적 사례가 기후위기와 보건위기에 대한 예언이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지구 기온상승과 기후재난 사이의 관계에 대해 예측해왔다. 또한 기온상승으로 인한 새로운 병원체의 출몰을 경고해왔다. 따라서 코로나 팬데믹이 갑자기 나타난 자연재해라는 주장은 허구이며 인터넷을 떠도는 기후에 관한 가짜뉴스를 보면 우리 시대의 카산드라는 기후 과학자와 보건학자인 것 같다.


기후위기 해결할 슈퍼맨은 없다


기후 과학자는 오래전부터 산업혁명 이후 우리가 배출한 온실가스가 기온상승을 일으킨다는 것을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다른 분야 과학자나 시민들은 이를 거짓이라고 믿고 있다. 설령 온실가스가 기온을 높인다고 믿고 있더라도 과학기술과 개인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우리나라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7.8억톤 (CO₂ 환산 기준, 2018년)이다. 획기적 탄소흡수 물질로 보도된 COF-999 1g은 약 0.005g을 흡수하고, 따라서 우리나라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이 물질이 약 100억톤 필요하다. 2022년 한해 공공부문 온실가스 목표관리제로 줄인 온실가스는 0.016억톤이다. 정부는 2018년 대비 2030년에 공공건물 효율 개선, 탄소중립 캠페인 등의 에너지 수요 관리를 통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연간 0.17억톤 줄일 계획이고, 산업계 배출량은 연간 0.3억톤을 줄일 계획이다.


전 국민 모두 텀블러만 사용하면 줄일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0.001억톤이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과 비교해보면 현실 속 정책의 효용성, 새로운 기술과 개인의 텀블러 사용으로 기후위기의 핵심인 온실가스 감축이 어느 정도 가능한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기후위기를 해결할 슈퍼맨은 출현할 것인가? 세상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예측하고 전쟁을 종식한 이순신 장군이나 예언자이며 구원자인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슈퍼맨은 필요하지 않고, 기후위기 해법은 명확하다. 전체 7.8억톤 중 6.9억톤을 배출하는 에너지 분야에 재생 에너지를 도입해야 한다. 실현가능한 기술이며, 다른 발전원에 지급되는 보조금 없이도 그 비용은 빠르게 줄고 있다. 훨씬 나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만을 부각해 반대한다면 현대판 카산드라가 만들어질 뿐이다. 명확한 해법이 있음에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영웅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기후위기 일으킨 악당


영웅은 반드시 기승전결의 서사가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스토리텔링이 어렵다. 왜냐하면 영웅에게 필요한 악당이 명확하지 않은데, 사실 악당은 우리 모두다. 예언가의 운명은 늘 위태롭고, 기후위기는 불명확한 악당과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 설득과 협력의 서사시를 쓰기가 어려운 것이다. 거기에 더해 기후위기를 구할 영웅은 우리 모두이어야 한다.


1997년 말 대한민국 사회를 큰 위기로 몰아넣으며 이후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던 IMF 외환위기가 있었다. 이런 위기 시기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과 근성을 보여주었던 박찬호 박세리 선수는 경제적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공감을 주며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 약 350만명이 참여했던 금모으기 운동으로 우리 스스로 영웅이 되었던 경험도 가지고 있다. 해법을 실현하기 위한 서사가 있는 이야기를 담는 교육과 협력으로 우리 모두 스스로 영웅이 되는 것을 꿈꿔본다.

홍진규 (연세대 교수 대기과학과, ESC 회원)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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