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캐와 부캐, 그리고 Earth4All과 댄스
한문정
“날씨 죽이네요.”
ESC 대표님이 말했다.
지난 토요일, 기후정의행진 집회 중 다잉 퍼포먼스를 하러 시청 앞 길바닥에 누웠다. 그때 보이는 하늘이 어찌나 예쁘던지. 시청 건물과 주변 건물 사이로 ESC 깃발이 나부끼고, 아스팔트에 닿은 등은 따뜻하고, 얼굴은 살랑살랑 부는 가을바람에 간질간질했다.

어느덧 ESC의 가을 소풍이 된 기후정의행진을 마치고, 모두들 뒷풀이에 가는데 나는 조용히 빠져나왔다. 살사 수업이 있는 날이라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가다가 수업을 같이 받는 로(살사 추는 남자)를 우연히 만나 인사를 했다. 내 등을 보더니 그가 묻는다.
“뒤에 붙인 종이는 뭐에요? 환경운동 하세요?”
“아…. 네. 그게…”
“떼어드릴까요?”
등짝을 맡기며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어색하게 기후위기 집회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본캐랑 부캐를 왔다 갔다 하기 힘드네요.”
그분은 나중에 소셜을 하며, 그 종이를 붙이고 나를 찾았다고 한다. 옷을 갈아입은 나를 못 알아봐서 찾는 걸 포기하고 춤을 추다가, 우연히 홀딩한 여자와 춤이 시작되고 나서야 문신(스티커)을 보고 내가 맞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 문신은 집회 중 팔레스타인 연대 부스에서 붙인 것이었는데, 팔레스타인을 뜻하는 문양이었다. 이런 걸 설명하자니 또 어색하다.
참, 낯선 두 세계를 오가며 살고 있구나.

| 
|

| 
|
<Earth4All은 “ 모두를 위한 지구”라는 뜻으로,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넘어 더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국제적 캠페인입니다. 환경, 경제, 사회의 전환을 함께 이루어 지구와 인류가 함께 살아갈 길을 찾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ESC 지구환경에너지위원회는 기후행진을 앞두고 기존 티셔츠를 Earth4All 이미지 실크스크린 인쇄로 리폼( 🔗)하였습니다. 리폼 티셔츠가 없는 분들을 위해서는 접착용 Earth4All 디자인 출력물을 준비해 누구나 쉽게 부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 |
나약한 우리도 함께한다면 강해질 테니까
김재아
광화문 주변에선 여러 행사가 열리지만 그 중에 제일은 기후정의행진이 아닐까.
기후정의행진은 시위이면서 축제다. 기후위기 문제뿐만 아니라 가자지구, 기본소득, 동성애, 비정규직, 케이블카반대 등 각자가 시급하게 여기는 문제에 대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모이는 날이다. 수만 명이 차량 통제된 종로와 광화문을 구호를 하며 걷다가 풍물패 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춘다. 기후 재난 희생자를 상징하며 수만 명이 도로 위에 완전히 눕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 시간은 정점이다.
함께 행진한 김미정님과 지난해 강남에서 기후정의행진이 열렸을 때는 섭섭했다고 말했다. 강남은 광화문과는 걷는 맛이 다르다. 세 시간 돌아 세종대왕님과 광화문을 만나야 비로소 뿌듯한 기분이 든다. 이 맛에 기후정의행진에는 매년 오게 된다. 당신도 한 번 와봤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일회용품을 자주 쓴다. 정의로운 사람이 못되고 정의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오늘은 나처럼 나약한 우리가 모이는 날이다. 나약한 우리도 함께한다면 강해질 테니까.
사안은 위중하지만, 기후정의 행진은 즐거운 축제!
이강수
매년 기후정의행진 날이면 혼자 포항에서 출발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ESC 대표님의 “변화를 꿈꾸는 벗들과 함께하자”는 말이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회유·협박·호소, 이른바 3종 세트를 총동원해 결국 함께 올라갈 벗을 만들었다.
경북경궁역에 조금 일찍 도착해 점심을 나누고, 동동주를 곁들여 작은 사전행사를 열었다. 기후정의의 길을 함께 가자는 우리의 도원결의였다. 비록 복숭아나무는 없었지만, 마음만큼은 삼국지 속 의형제 못지않게 굳건했다.
혼자가 아닌 벗과 함께하면 괜한 용기도 준다. 전날 자전거 헬멧으로 만든 피켓을 쓸 용기말이다. ^^
행사장에 들어서자, 곳곳에 줄지어 선 기후정의 부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자의 목소리를 담아 “우리 이야기를 들어 달라” 외치는 듯했지만, 그 울림은 결국 하나로 이어졌다. 기후위기 시대, 정의로운 전환 없이는 미래도 없다는 절박한 목소리 말이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선선했다.
걷기 좋은 날씨, 집회하기 좋은 날씨, 함께하기 좋은 날씨였다.
하지만 이런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이 답답해진다.
오늘 우리가 걸은 이 길, 오늘 우리가 함께 맞은 이 바람은 후손들에게 반드시 물려주어야 할 날씨다. 그 변화를 꿈꿔보며 광화문 거리를 힘차게 걸었다.
사진 더 보기
본캐와 부캐, 그리고 Earth4All과 댄스
한문정
“날씨 죽이네요.”
ESC 대표님이 말했다.
지난 토요일, 기후정의행진 집회 중 다잉 퍼포먼스를 하러 시청 앞 길바닥에 누웠다. 그때 보이는 하늘이 어찌나 예쁘던지. 시청 건물과 주변 건물 사이로 ESC 깃발이 나부끼고, 아스팔트에 닿은 등은 따뜻하고, 얼굴은 살랑살랑 부는 가을바람에 간질간질했다.
어느덧 ESC의 가을 소풍이 된 기후정의행진을 마치고, 모두들 뒷풀이에 가는데 나는 조용히 빠져나왔다. 살사 수업이 있는 날이라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가다가 수업을 같이 받는 로(살사 추는 남자)를 우연히 만나 인사를 했다. 내 등을 보더니 그가 묻는다.
“뒤에 붙인 종이는 뭐에요? 환경운동 하세요?”
“아…. 네. 그게…”
“떼어드릴까요?”
등짝을 맡기며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어색하게 기후위기 집회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본캐랑 부캐를 왔다 갔다 하기 힘드네요.”
그분은 나중에 소셜을 하며, 그 종이를 붙이고 나를 찾았다고 한다. 옷을 갈아입은 나를 못 알아봐서 찾는 걸 포기하고 춤을 추다가, 우연히 홀딩한 여자와 춤이 시작되고 나서야 문신(스티커)을 보고 내가 맞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 문신은 집회 중 팔레스타인 연대 부스에서 붙인 것이었는데, 팔레스타인을 뜻하는 문양이었다. 이런 걸 설명하자니 또 어색하다.
참, 낯선 두 세계를 오가며 살고 있구나.
나약한 우리도 함께한다면 강해질 테니까
기후정의행진은 시위이면서 축제다. 기후위기 문제뿐만 아니라 가자지구, 기본소득, 동성애, 비정규직, 케이블카반대 등 각자가 시급하게 여기는 문제에 대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모이는 날이다. 수만 명이 차량 통제된 종로와 광화문을 구호를 하며 걷다가 풍물패 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춘다. 기후 재난 희생자를 상징하며 수만 명이 도로 위에 완전히 눕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 시간은 정점이다.
사안은 위중하지만, 기후정의 행진은 즐거운 축제!
이강수
매년 기후정의행진 날이면 혼자 포항에서 출발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ESC 대표님의 “변화를 꿈꾸는 벗들과 함께하자”는 말이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회유·협박·호소, 이른바 3종 세트를 총동원해 결국 함께 올라갈 벗을 만들었다.
경북경궁역에 조금 일찍 도착해 점심을 나누고, 동동주를 곁들여 작은 사전행사를 열었다. 기후정의의 길을 함께 가자는 우리의 도원결의였다. 비록 복숭아나무는 없었지만, 마음만큼은 삼국지 속 의형제 못지않게 굳건했다.
혼자가 아닌 벗과 함께하면 괜한 용기도 준다. 전날 자전거 헬멧으로 만든 피켓을 쓸 용기말이다. ^^
행사장에 들어서자, 곳곳에 줄지어 선 기후정의 부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자의 목소리를 담아 “우리 이야기를 들어 달라” 외치는 듯했지만, 그 울림은 결국 하나로 이어졌다. 기후위기 시대, 정의로운 전환 없이는 미래도 없다는 절박한 목소리 말이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선선했다.
걷기 좋은 날씨, 집회하기 좋은 날씨, 함께하기 좋은 날씨였다.
하지만 이런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이 답답해진다.
오늘 우리가 걸은 이 길, 오늘 우리가 함께 맞은 이 바람은 후손들에게 반드시 물려주어야 할 날씨다. 그 변화를 꿈꿔보며 광화문 거리를 힘차게 걸었다.
사진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