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차르트 탄생 270주년이다. 35년밖에 살지 못한 사람에게 270이라는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만 270년이 지났는데도 모차르트는 작품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매일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연주되고 있고도 남을 만하니까, 의미라면 사실 아주 큰 의미다.
그런데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어떤 색감이 느껴지는가? 모차르트에게 가장 어울리는 색을 꼽는다면? 물론 외모나 스타일링 이야기는 아니다.
대표적 작품들이 자아내는 이미지 면에서 보면 어떨까? 특히 피아노 작품들이 말이다.
베토벤? 사실 쉽다. 블랙. 물론, 작곡가마다 워낙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므로 단색으로 규정한다는 시도 자체가 어불성설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논문을 쓰는 거도 아니고 느낌을 나누는 건데 뭐, 베토벤이 왜 블랙이냐고? 부제가 딸린 23번 피아노 소나타(열정 -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베토벤이 붙인 부제는 아니다)도 있지만, 5번 <운명> 교향곡 같은 작품이 유명해서인지, 일착으로 열정적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는 작곡가다 보니, 보통 빨강이 많이 연상된다고 한다. 하지만, 후기 피아노 작품, 가령 소나타 서른 두 곡 중 마지막 세 작품, 즉 30~32번이나 더 후에 작곡된 디아벨리 변주곡을 들어본다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이 하도 강렬하여, 블랙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물론 필자가 베토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블랙소스는 물론 아니다. 뭐, 베토벤의 블랙이라면, 정말 순도 100%의 블랙(2019년까지 가장 진한 블랙이라는 반타 블랙이나 그보다 더 진한 소재도 개발되었다 해도 엄밀히 100% 흡수율을 달성하지는 못한다)이라 해야 하려나. 디아벨리 변주곡에 가면 심지어 블랙 유머라도 튀어 나오는 경지다.
베토벤의 계보라도 따르는 듯한 브람스? 뭐 단연 브라운이다. 가을이면, 특히 늦가을에는 안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작곡가.
쇼팽은 어떨까? 아무래도 본 연재의 주제가 주제라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곡가기도 한데, 쇼팽의 표면적 연약함 속에서 그 어떤 작곡가보다도 강한 열정과 내면의 힘을 느낄 수 있다고 했지만, 레드 같은 열정은 또 아니다. 워낙 서정미가 뛰어난 작곡가라 그린 계열이 연상되지만, 아무래도 단색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녹색과 그 어떤 다른 색을 섞은?
라흐마니노프? 정신적 슬럼프를 겪은 일화가 하도 유명해서인지 늘 보라색이 떠오른다. 작품에 어린 러시아적 느낌이 보라색과 통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러시아의 색채는 스펙트럼에서 어느 정도에 위치할까?
그럼, 혹시 색깔이 아니라 무색, 심지어 무색무취한 작곡가는 없을까?
모차르트가 아니냐고 짐작하시겠지만, 아주 까다로우니 한 번만 더 미루고 가자. 사실 색이 없다기보다 입히기 전 소묘에 가깝다고 해야 더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단연 J. S. 바흐다. 이상 무.
모차르트는 무척 밝다 못해 발랄하고 익살스러운 느낌이 강하지만, 이것을 '아마데우스'의 상징색과 연결하는 것이 적절할까? 일착으로는 로코코 궁정의 금박 같은 느낌이다. 클라리넷 협주곡의 2악장은 정말 주변이 온통 금으로 도배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런 반짝임만으로 모차르트를, 살롱의 엔터테이너처럼 가둘 수는 없다. 어쩌면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모차르트의 단조 선율은 듣는 이를 처절하기가 짝이 없을 어둠으로 인도한다. 다수 남긴 피아노 소나타나 협주곡에서 단조 작품은 극소수다. 그 외에 더 자유롭게 쓴 론도나 판타지아 같은 독주곡들 가운데서도 모차르트의 힘들었던 속내나 고백을 접하는 느낌마저 든다. 앞에서 그 한도 끝도 없을 만한 블랙과 매칭된다고 한 베토벤마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 C단조를 두고, 자기는 이런 곡을 절대 쓸 수 없을 거라고 했다 한다. 검은색의 베토벤이 검은색의 모차르트 앞에서 고개를 숙인 셈이다.
곡의 메인 조성이 아니라도 인류의 악성마저 고개를 숙인 블랙의 위력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가령, 피아노 협주곡은 모차르트 시대에 3개 악장으로 구성된다. 그 중에 상대적으로 느린 2악장의 기본적 성격이 그런 면도 있지만, A장조 협주곡 23번(K. 488)의 가운데를 차지하는 F# 단조 악장은 더더욱 두드러진다. 조성 자체가 잘 안 쓰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희소성 위에 얹은 슬픔은 더없이 남다르다는 말 정도로는 그 느낌을 전할 길이 없다.
어떻게 보면 그 깊은 어둠은 꼬리표나 양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20년 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위촉작으로, <Three Mozart Transformations after Poulenc>이 무대에 올랐다. 요즘은 하도 XX가 범람하는 시대다 보니 오히려 식상한데, 당시에 저런 명명은 무척 참신하게 다가왔다. (여기서 앞의 X는 다른 단어를 대입할 미지의 자리, 뒤의 X는 저 위촉작 제목에 들어간 transformation의 약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언제부터인가 DX(Digital Transformation)라는 키워드가 부상하더니, 그러니까 약어는 안 쓰이다가 짧지도 않은 원어가 하도 자주 회자되니 결국 DX라는 약어로 굳어졌는데, 여기서 XX 열풍이 시작된 듯하다. GX, AX, WX 등등 말이다. G는 Green, A는 AI, W는 Work 등, 보편적이지 않고 특정 기관이나 조직 내에서 쓰이는 각종 X까지 고려하면, 결국 알파벳이 모자랄 지경에 이른 각종 C-level 타이틀, 곧 C'X'O 타이틀의 X 신세가 되겠지 싶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X도 X지만 작곡가 풀랑크(아마 프랑스어 발음으로는 '뿔랑'에 가깝지 싶은데 공식적 외래어 표기가 이러하다.) 스타일을 골랐다는 게 특히 기발하게 다가온다. 작품 번호(쾨헬) 1번부터 거의 말기(피아노 협주곡으로는 마지막 작품)의 K. 595에 쓰인 선율까지 관통하는 세 소품인데, 여기서 가미된 풀랑크의 색채는 가히 블랙적이다. 천진난만하게만 들리는 선율과의 조합이 무척 오묘해지는 역작이다.
굳이 우아하게 표현하기는 더러 민망하지만, '언어적 유희'랄까, 아무튼 프랑스명 풀랑크는 독일명 플랑크(Planck)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리학에서는 플랑크 공식을 만든 그 유명한 막스 플랑크. 플랑크는 블랙 바디(흑체) 복사 현상에서는 기존의 고전 물리학으로 설명이 안 되는 스펙트럼을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불연속적이라는 충격적 가설을 세웠는데, 이것이 양자역학의 시작이다. 흑체라는 것은, 이상적인 조건을 상정한 개념인데, 거기에 복사(radiation)가 붙으면 그 이름 자체가 아이러니컬하게 다가온다. 흑체는 자체 발광을 하면서 온도에 따라 결정되는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태양은, 엄밀히 물리학적으로 보면 흑체나 마찬가지다. 흑체의 빛은 외부의 빛을 반사한 결과가 아니라, 열복사를 통해, 곧 자신의 엄청난 온도(태양의 경우 약 6,000K)에 해당하는 스펙트럼을 스스로 내뿜기 때문에 우리 눈에 밝게 보이는 거니까.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노라면, 특히 항간에 만연한 이미지마저 겹치면, 마치 이 흑체 복사 같다는 생각이, 그래서 들고는 한다. 무척 현대(물리학)적이다. 양자론의 탄생을 떠올리게 하는 작곡가라니. 어쩌면 현대적이라는 면에서는, 외장이 폴리쉬드 에보니 블랙으로 발전한 이 시대의 그랜드 피아노의 자태와 가장 어울리는 예술가가 아닌가마저 싶다. 피아니스트 중에 색청, 즉 소리를 들으면 색이 보이는 공감각으로도 유명한 아이슬란드 출신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낸 모차르트와 동시대 작곡가 앨범의 표지에서 쥔 커다란 까만 깃털은 클래식계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성역과도 같은 그 노란 레이블 위에, 수면 위 기름처럼 떠서 섞이지 않는 느낌을 자아낸다. 그 대신에 올라프손과 깃털은 피아노 표면에 거울처럼 반사되어, 위의 깃털은 금빛을 둘러싼 카르투슈까지 치솟고 아래의 깃털은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밝음과 어둠이, 또는 모차르트와 이 시대가 섞이지 않은 채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이미지일까, 흑체의 흡수와 방출이 별개이듯! 화성감에서 색 지도를 그릴 줄 아는 연주자는 그 앨범의 기획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이 시기의 그림자는 더 어둡고, 뉘앙스와 모호함은 더 깊다."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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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탄생 270주년이다. 35년밖에 살지 못한 사람에게 270이라는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만 270년이 지났는데도 모차르트는 작품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매일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연주되고 있고도 남을 만하니까, 의미라면 사실 아주 큰 의미다.
그런데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어떤 색감이 느껴지는가? 모차르트에게 가장 어울리는 색을 꼽는다면? 물론 외모나 스타일링 이야기는 아니다.
대표적 작품들이 자아내는 이미지 면에서 보면 어떨까? 특히 피아노 작품들이 말이다.
베토벤? 사실 쉽다. 블랙. 물론, 작곡가마다 워낙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므로 단색으로 규정한다는 시도 자체가 어불성설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논문을 쓰는 거도 아니고 느낌을 나누는 건데 뭐, 베토벤이 왜 블랙이냐고? 부제가 딸린 23번 피아노 소나타(열정 -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베토벤이 붙인 부제는 아니다)도 있지만, 5번 <운명> 교향곡 같은 작품이 유명해서인지, 일착으로 열정적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는 작곡가다 보니, 보통 빨강이 많이 연상된다고 한다. 하지만, 후기 피아노 작품, 가령 소나타 서른 두 곡 중 마지막 세 작품, 즉 30~32번이나 더 후에 작곡된 디아벨리 변주곡을 들어본다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이 하도 강렬하여, 블랙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물론 필자가 베토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블랙소스는 물론 아니다. 뭐, 베토벤의 블랙이라면, 정말 순도 100%의 블랙(2019년까지 가장 진한 블랙이라는 반타 블랙이나 그보다 더 진한 소재도 개발되었다 해도 엄밀히 100% 흡수율을 달성하지는 못한다)이라 해야 하려나. 디아벨리 변주곡에 가면 심지어 블랙 유머라도 튀어 나오는 경지다.
베토벤의 계보라도 따르는 듯한 브람스? 뭐 단연 브라운이다. 가을이면, 특히 늦가을에는 안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작곡가.
쇼팽은 어떨까? 아무래도 본 연재의 주제가 주제라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곡가기도 한데, 쇼팽의 표면적 연약함 속에서 그 어떤 작곡가보다도 강한 열정과 내면의 힘을 느낄 수 있다고 했지만, 레드 같은 열정은 또 아니다. 워낙 서정미가 뛰어난 작곡가라 그린 계열이 연상되지만, 아무래도 단색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녹색과 그 어떤 다른 색을 섞은?
라흐마니노프? 정신적 슬럼프를 겪은 일화가 하도 유명해서인지 늘 보라색이 떠오른다. 작품에 어린 러시아적 느낌이 보라색과 통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러시아의 색채는 스펙트럼에서 어느 정도에 위치할까?
그럼, 혹시 색깔이 아니라 무색, 심지어 무색무취한 작곡가는 없을까?
모차르트가 아니냐고 짐작하시겠지만, 아주 까다로우니 한 번만 더 미루고 가자. 사실 색이 없다기보다 입히기 전 소묘에 가깝다고 해야 더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단연 J. S. 바흐다. 이상 무.
모차르트는 무척 밝다 못해 발랄하고 익살스러운 느낌이 강하지만, 이것을 '아마데우스'의 상징색과 연결하는 것이 적절할까? 일착으로는 로코코 궁정의 금박 같은 느낌이다. 클라리넷 협주곡의 2악장은 정말 주변이 온통 금으로 도배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런 반짝임만으로 모차르트를, 살롱의 엔터테이너처럼 가둘 수는 없다. 어쩌면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모차르트의 단조 선율은 듣는 이를 처절하기가 짝이 없을 어둠으로 인도한다. 다수 남긴 피아노 소나타나 협주곡에서 단조 작품은 극소수다. 그 외에 더 자유롭게 쓴 론도나 판타지아 같은 독주곡들 가운데서도 모차르트의 힘들었던 속내나 고백을 접하는 느낌마저 든다. 앞에서 그 한도 끝도 없을 만한 블랙과 매칭된다고 한 베토벤마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 C단조를 두고, 자기는 이런 곡을 절대 쓸 수 없을 거라고 했다 한다. 검은색의 베토벤이 검은색의 모차르트 앞에서 고개를 숙인 셈이다.
곡의 메인 조성이 아니라도 인류의 악성마저 고개를 숙인 블랙의 위력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가령, 피아노 협주곡은 모차르트 시대에 3개 악장으로 구성된다. 그 중에 상대적으로 느린 2악장의 기본적 성격이 그런 면도 있지만, A장조 협주곡 23번(K. 488)의 가운데를 차지하는 F# 단조 악장은 더더욱 두드러진다. 조성 자체가 잘 안 쓰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희소성 위에 얹은 슬픔은 더없이 남다르다는 말 정도로는 그 느낌을 전할 길이 없다.
어떻게 보면 그 깊은 어둠은 꼬리표나 양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20년 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위촉작으로, <Three Mozart Transformations after Poulenc>이 무대에 올랐다. 요즘은 하도 XX가 범람하는 시대다 보니 오히려 식상한데, 당시에 저런 명명은 무척 참신하게 다가왔다. (여기서 앞의 X는 다른 단어를 대입할 미지의 자리, 뒤의 X는 저 위촉작 제목에 들어간 transformation의 약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언제부터인가 DX(Digital Transformation)라는 키워드가 부상하더니, 그러니까 약어는 안 쓰이다가 짧지도 않은 원어가 하도 자주 회자되니 결국 DX라는 약어로 굳어졌는데, 여기서 XX 열풍이 시작된 듯하다. GX, AX, WX 등등 말이다. G는 Green, A는 AI, W는 Work 등, 보편적이지 않고 특정 기관이나 조직 내에서 쓰이는 각종 X까지 고려하면, 결국 알파벳이 모자랄 지경에 이른 각종 C-level 타이틀, 곧 C'X'O 타이틀의 X 신세가 되겠지 싶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X도 X지만 작곡가 풀랑크(아마 프랑스어 발음으로는 '뿔랑'에 가깝지 싶은데 공식적 외래어 표기가 이러하다.) 스타일을 골랐다는 게 특히 기발하게 다가온다. 작품 번호(쾨헬) 1번부터 거의 말기(피아노 협주곡으로는 마지막 작품)의 K. 595에 쓰인 선율까지 관통하는 세 소품인데, 여기서 가미된 풀랑크의 색채는 가히 블랙적이다. 천진난만하게만 들리는 선율과의 조합이 무척 오묘해지는 역작이다.
굳이 우아하게 표현하기는 더러 민망하지만, '언어적 유희'랄까, 아무튼 프랑스명 풀랑크는 독일명 플랑크(Planck)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리학에서는 플랑크 공식을 만든 그 유명한 막스 플랑크. 플랑크는 블랙 바디(흑체) 복사 현상에서는 기존의 고전 물리학으로 설명이 안 되는 스펙트럼을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불연속적이라는 충격적 가설을 세웠는데, 이것이 양자역학의 시작이다. 흑체라는 것은, 이상적인 조건을 상정한 개념인데, 거기에 복사(radiation)가 붙으면 그 이름 자체가 아이러니컬하게 다가온다. 흑체는 자체 발광을 하면서 온도에 따라 결정되는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태양은, 엄밀히 물리학적으로 보면 흑체나 마찬가지다. 흑체의 빛은 외부의 빛을 반사한 결과가 아니라, 열복사를 통해, 곧 자신의 엄청난 온도(태양의 경우 약 6,000K)에 해당하는 스펙트럼을 스스로 내뿜기 때문에 우리 눈에 밝게 보이는 거니까.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노라면, 특히 항간에 만연한 이미지마저 겹치면, 마치 이 흑체 복사 같다는 생각이, 그래서 들고는 한다. 무척 현대(물리학)적이다. 양자론의 탄생을 떠올리게 하는 작곡가라니. 어쩌면 현대적이라는 면에서는, 외장이 폴리쉬드 에보니 블랙으로 발전한 이 시대의 그랜드 피아노의 자태와 가장 어울리는 예술가가 아닌가마저 싶다. 피아니스트 중에 색청, 즉 소리를 들으면 색이 보이는 공감각으로도 유명한 아이슬란드 출신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낸 모차르트와 동시대 작곡가 앨범의 표지에서 쥔 커다란 까만 깃털은 클래식계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성역과도 같은 그 노란 레이블 위에, 수면 위 기름처럼 떠서 섞이지 않는 느낌을 자아낸다. 그 대신에 올라프손과 깃털은 피아노 표면에 거울처럼 반사되어, 위의 깃털은 금빛을 둘러싼 카르투슈까지 치솟고 아래의 깃털은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밝음과 어둠이, 또는 모차르트와 이 시대가 섞이지 않은 채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이미지일까, 흑체의 흡수와 방출이 별개이듯! 화성감에서 색 지도를 그릴 줄 아는 연주자는 그 앨범의 기획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이 시기의 그림자는 더 어둡고, 뉘앙스와 모호함은 더 깊다."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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