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LeafSci] #1 한 줄기 낭만을 놓지 않을 수 있기를

박윤지
2026-04-07
조회수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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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청년학생위원회에서는 지난 2025년부터 장기 글 프로젝트 [LeafSci : 연구초년생을 위한 가이드북]을 진행해왔습니다. 연구초년생(학생, 대학원생, 신임연구원, 초임교수)들이 겪는 고뇌와 아픔들을 공감,위로하고 나은 세상을 위한 작은 의견들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앞으로 글은 매월 1~2회 연재될 예정이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투고자 분들의 글을 순차적으로 올리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 ESC청년·학생위원회 위원장 장경철 -


박윤지(ESC 청년·학생위원회) 


리에게 대학원이란 어떤 공간일까? 새로운 기회의 장, 또 다른 시작점, 열정의 장이거나 작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발전하는 공간일 수도 있고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과제와 잡무, 밤샘 등에 말 그대로 몸을 깎아내고 버텨내야만 하는 공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학부 때는 수업을 대여섯 개씩 들었으니 세 개의 수업 정도는 거뜬할 거라고 생각했다가도 정작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 절대 만만하지 않다. 학부 과정의 21학점과 능히 비견할 법한 9학점의 수업, 학과마다 다를 수는 있으나 때마다 써내야만 하는 프로포절이나 학기 말에 며칠씩 밤을 지새우며 써내야만 하는 텀페이퍼들. 혹은 매일 몰아치는 과제와 프로포절, 랩미팅, 각종 조교 업무나 장비 조율 따위의 일들은 우리의 일상을 물샐 틈 없이 메우고 있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는 다시 학교에 나와 늘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실험 가운을 입는 것으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으로, 인터뷰를 하러 떠나거나 수업에 들어가는 것으로 저마다 다르지만 같은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라는 점이다.

스스로 땜질하고 거듭나야 하는 우리


명한 것은 이 모든 활동이 4년간의 학부 생활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지난날 그저 강의를 듣고 내용을 잘 받아 적고 외운 뒤 시험을 치르기만 하면 되었던 학부 생활과는 다르게, 대학원에 들어온 우리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땜질하고 거듭날 것을 요구받는다. 혹은 스스로 요구한다. 그 땜질과 거듭남의 과정은 절대 쉽지만은 않다. 우리에게는 서로를 지지해 줄 든든한 동학들도 있지만 드물지 않게 우리 스스로를 숱한 회의감 속에 빠지게만 만드는 이들도, 부끄럽게 만드는 이들도 존재하는 까닭이다. 이곳이 아주 작고 상당히 고립된 세계라는 점도 영향이 크다. 종종 바깥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멋지게 사회에 자리 잡아 가는 친구들에 비해 아직 학교에 남아 여전히 학생인 나는 가끔 초라해 보이니까. 그 느낌에서 기인하는 쓸쓸함은 나도 모르는 새 쌓여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무겁고 커다란 물풍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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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Freepik


럼에도 우리는 우선 이 세계 안에서 살아가기로 한 이들이다. 내 키만큼 높아 보이는 바닷속에서 입과 코만 내놓고 간신히 숨만 쉬는 모양새더라도 우리는 정해진 시간을, 혹은 기약 없어 보이는 시간을 견뎌 내야만 한다. 물론 동시에 우리는 언제나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바로 ‘우리에게는 언제나 스스로 누를 수 있는 비상 탈출 버튼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 사실 하나는 생각보다 꽤 위안이 된다. 내가 이 일을 그만두더라도 내 세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나는 나의 선배들로부터 이 위안을 배웠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당신께 그런 비상탈출 버튼이 없다면 당신께서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작은 버튼을 하나 마련해 두시기를 바란다. 이 세계를 나와도 이 세상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언젠가는 당신의 세상 전부처럼 보였던 사람들도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 일부일 뿐이다. 어떤 좌절 속에서도 인간은 희망을 찾아내는 존재이기에, 당신 스스로 놓아버리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길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더더욱 스스로를 잘 돌보아 우리가 우리의 손을 놓아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나를 돌보아야 한단 말인가? 내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 한다. 당연히 내 말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나는 당신이 나의 이야기를 읽으며 당신의 답을 찾아내기를 기원한다. 그렇게 당신이 당신의 생을 붙들고 포기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종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쉽게 놓친다. 쉼, 잠, 이따금 먹는 맛있는 것,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과 여름의 고소한 콩국수, 낙엽 지는 가을의 달큰한 밤과 코 끝이 빨갛게 얼어붙는 겨울에 베어 무는 한 입의 붕어빵. 그 모든 휴식, 그 모든 즐거움, 그 모든 사랑. 그러나 이것들은 너무나도 쉽게 나의 ‘일’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혹은 그 밖의 여러 다른 이유로 이것들은 가장 먼저 내버려지는 것들이 된다. 이토록 여린 모든 것들. 나는 이것들을 통틀어 ‘낭만’이라고 부른다. 내가 나를 돌보는 방법은 이 수많은 낭만을 붙드는 일이기도 하다. 내게 낭만을 붙드는 일이란 몇 시간이고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잠시 일어나 예쁜 잔에 뜨거운 물을 받아 우리는 향긋한 차 한 잔을, 내 취향대로 오밀조밀 꾸민 연구실 책상의 한편을, 종이와 닿으며 부드럽게 사각거리는 만년필의 소리를, 내내 실내의 탁한 공기 속에 머물다가 잠시 마시는 차갑거나 후덥지근한 맑은 공기 한 모금을, 아침 일찍 일어나 오로지 나를 위해 만드는 예쁘고 맛있는 도시락 한 상이나 가끔 동료들과 함께하는 조금 비싸도 맛있는 한 끼를, 내 취향의 예쁜 옷을,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의 공연 한 번을, 지친 귀갓길에 듣는 잔잔한 음악 한 소절을,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내 일상의 곳곳에 배치하는 일이다. 나의 사랑들은 내 몸과 기억에 한데 모여 내 취향을,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 내가 나로 존재하며 살아가기 위해 혹은 이 반복되는 일상에 질려버리고 스스로를 놓아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의 낭만을 양손 가득 붙잡는다.

숨을 고르고, 이 길 위에서


만. 이 얼마나 어리석고 유치하며 매력적인 단어인가. 누군가는 이것들은 연구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라고, 방해되는 것들이고 시간 낭비라며 욕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런 것들이 없어도 그럭저럭 잘 살 수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두 다른 법이니까. 누군가의 낭만은 며칠이고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는 일에 있을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의 낭만은 고행 속에 그저 묵묵히 나아가는 데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낭만은 이런 곳에 있다. 이것은 그저 내가 살아가는 방법일 뿐이다. 나는 내일도 자료가 잘 읽히지 않는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맛있는 에스프레소 한 잔에 크림을 잔뜩 올려 가져올 것이고 학식이 맛이 없다며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싸거나 밖에 나가 밥을 먹을 사람을 모을 것이고, 집에 가는 길에 달빛과 어울리는 잔잔한 재즈를 들으며 걸음을 옮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밑도 끝도 없는 낭만주의일지 모른다. 누군가는 공부하기에도 아까운 시간이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도 그 끝이 어디인지, 끝이 나기는 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길을 나아가야 하고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연료와 중간에 놓인 쉼터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께도 제안한다. 함께 낭만을 찾아가자고, 제대로 숨을 고르고 이 길의 끝까지 나아가서 당당히 깃발을 거머쥐자고. 그리고 또다시 계속 살아가자고.  #LeafSci


오늘도 한 줄기 낭만을 놓지 않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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