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59. Another Trilogy: 0 아니면 1이 아니고, It 아니면 Bit가 아니고 (I)

블랙소스
2026-06-02
조회수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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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물을, 또 관계를, 특히 요즘에는 어딜 가나 안 빠지는 AI를 SF 작가의 시선을 통해 들어볼 수 있는 자리에 다녀왔다. 이제는 그런 요청이 잠잠해질 법한데, 잊을 만하면 꼭 '양자'(quantum)가 뭐냐, 양자 컴퓨팅이 어떻게 가능하냐, 같은 질문은 여기저기서 온다. 특히 뜻밖의 곳에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느닷없이, 밀린 일도 많은데, 양자역학의 기본, 특히 양자 컴퓨팅에서 중요한 개념을 정리하는 자료를 만들다가 저녁에 이 작가의 특강을 듣게 되었다. 

또 하나의 뜻밖이 여기서도 발생했다. 큐비트라니? 영어로는 qubit로 정착되었지만, 원래 bit라는 말에 quantum이 붙은 걸 줄여서 qubit가 된 터라, 모 대가는 아예 qbit라고만 쓰기도 한다. 이틀째 그 설명자료를 만들고 있던 터라, 반가운 '갑툭튀'다. 작가가 강연에서 처음으로 거론한 본인 작품에 나오는 배경 장치로 양자 컴퓨터와 큐비트가 쓰이는데, 그런 이유에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 중에서는 꽤 난해한 편이라고 했다. 강연 중에 그게 정말 무슨 말인지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사전에 제출한 질문이 채택되어 현장 질문까지 하기는 은근 부담스러웠다. 사전적으로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작가는 왜 자기 작품을 난해하다고 했는지가, 강연장을 떠나면서 더욱 거세게 궁금해졌다. 아니, 아마 그러니까, 그 난해하다는 작품보다 그 작품이 난해하다는 말이 내겐 더 난해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양자론, 양자역학, 심지어 양자 컴퓨터는 SF의 소재나 장치로 참신하다고 할 수는 없는 시대인데 구체적으로 큐비트까지라니, 이렇게 되면 아무리 양자 컴퓨팅이 뜨거워지는 추세라 해도, 제법 아방가르드적이다. 

번번 자료를 만들거나 설명을 하다 보면, 큐비트는 양자 컴퓨팅에 다가갈 때 어리둥절해지는 제1차 관문이다. 그저 일상적이지 않은 감각이나 직관에 반하는 이해를 요해서 어려운 걸까? 왜 어려운 개념이 된 걸까? 수학적 표현도 어려운 편이 아닌데. 굳이 복소수를 동원하지 않아도 설명이 가능하니 말이다. 

하긴, 그 유명한 슈뢰딩거 고양이의 상태로 말하자면, 죽거나 살거나가 아니라 죽은 상태와 산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고 하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게 대체 뭘까, 햄릿의 그 한 줄이 오히려 더 이해하기 쉬운 거 아냐?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이렇다는 거야, 저렇다는 거야, 대체? 사실 이건 어느 양쪽도 아니라는 상태를 말할 뿐이다. 아직 그 무엇도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큐비트가 바로 이 "or"의 자리에 놓인다. 

엄밀히는 복소수 두 개에 조건 하나. 그게 큐비트의 전부다. 두 복소 계수의 제곱을 더하면 확률의 총합으로 1이 된다는, 정규화라 부르는 조건 하나. 식으로 보면 어렵지 않다. 오히려 깔끔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깔끔한 식보다는 "0(죽음)이면서 동시에 1(삶)"이라는 말을 구사한다. 사실 이렇게 표현하면, 편하긴 해도 정확하지 않다. 그러니까 큐비트가 어렵다는 느낌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런 부정확한 수사에서 오는 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커진다. 

큐비트가 뭔지 아무리 설명해도 어렵다는 반응은, 자연이 미시 세계 수준에서는 이상해서가 아니라, 자연을 어떻게 부르느냐가 자연을 이상하게 만들기 때문에 생긴다고 본다. 같은 상태를 모순의 언어로 부르면 자연이 직관을 위배하는 듯이 보이고, 결여의 언어로 부르면 자연이 우리 인식의 한계를 가리키는 듯이 보인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언어가 자연을 직관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면, 진짜 배신자는 자연이 아니라 언어다. 대치되는 상태가 동시에 있지도 않지만, 동시에 없지도 않은! 

직관은 모순은 수용하지 못하지만 결여는 견딘다. 그렇다면, 중첩이라는 특성으로 표현되는 큐비트, 또는 양자 상태는 지극히 일상적 수사의 범위 안에서 제자리를 찾는다, 경험 가능한 결여로서. 중첩이라는 정의 내부에는 이미 이를 일으킨 각 상태의 원 정체성이 희석되었다는 의미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중첩된 상태에서는 이미 원래의 0과 1이 아닌 0과 1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중첩이란 게 양자역학만의 일일까? 

여전히 어렵다면, 우리의 구세주, 피아노 앞에 앉아 보자. 건반에서 도·미·솔, 세 음을 동시에 누르자. C(다)장조의 으뜸화음이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도인가, 미인가, 솔인가? 우리는 편의상 '도/미/솔' 화음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 화성이 일체로 울리는 순간, 도는 도가 아니고 미도 미가 아니고 솔 역시 솔이 아니다. 그저 으뜸화음이다. 이해가 되시는지?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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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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