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사과가 떨어지고, 행성이 움직이며, 번개가 치고, 공기가 흐르는 현상은 서로 전혀 달라 보인다. 그러나 과학은 그 안에서 공통된 질서를 발견해 왔다. 그리고 그 질서를 수학이라는 언어로 표현했다. 뉴턴의 운동법칙, 맥스웰 방정식, 슈뢰딩거 방정식, 볼츠만 방정식,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은 모두 그런 노력의 결과다.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자연은 이러한 방정식들을 만족하며 움직인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방정식은 단순한 공식이 아니다. 자연을 이해하는 언어이자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다. 과학자는 이를 통해 자연을 설명할 뿐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현상까지 예측한다. 그래서 새로운 방정식을 세우고 기존의 방정식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일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방정식을 안다고 해서 자연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 주변의 공기 흐름, 태풍의 이동, 핵융합 플라즈마, 우주선의 대기권 재진입과 같은 자연현상은 모두 방정식으로 기술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방정식이 너무 복잡하다는 데 있다. 대부분은 사람의 손으로는 풀 수 없다. 자연을 설명하는 법칙을 아는 것과, 그 법칙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계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삽화 김기명>
컴퓨터의 수치해석이 연 계산과학
20세기 중반 전자식 컴퓨터의 등장은 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방정식을 컴퓨터로 풀기 위한 수치해석 기법들이 발전했고, 자연현상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한 물리모델도 함께 발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새로운 연구방식이 자리잡았다. 오늘날 우리가 계산과학이라 부르는 분야다.
컴퓨터는 단순히 계산을 빠르게 해주는 기계가 아니었다. 계산과학의 연구방식 자체를 바꾸었다. 계산능력이 커질수록 연구자들은 더 정교한 물리모델을 만들 수 있었고, 더 복잡한 계산기법을 적용할 수 있었다. 계산과학은 계산량을 늘려온 학문이 아니라, 자연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더 깊이 이해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학문이었다.
그 이후 반세기 동안 계산과학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수치해석 기법이 개발되었고, 컴퓨터 성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동시에 연구자들은 새로운 물리현상을 모델에 반영하며 자연을 더욱 정교하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과거에는 계산 자체가 불가능했던 난류와 플라즈마, 희박기체, 연소, 우주선 재진입과 같은 복잡한 현상들도 하나씩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계산과학은 단순히 계산을 수행하는 학문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는 범위를 끊임없이 넓혀온 학문이었다. 오늘날 일기예보와 항공기 설계, 반도체 공정, 핵융합 연구, 우주선 개발은 모두 이러한 계산과학의 발전 위에서 가능해졌다. 컴퓨터는 계산 속도를 높인 것이 아니라, 과학이 질문할 수 있는 세계를 넓혀 놓았다.
최근에는 또 하나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이다. AI는 이제 연구실에서도 낯선 존재가 아니다. 논문을 읽고, 코드를 작성하며, 복잡한 추론을 수행하는 AI는 과학 연구의 새로운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계산과학도 예외는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계산과학에서 AI가 등장하는 방식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계산과학에서 생각하는 일은 연구자의 몫이었다. 연구자는 물리모델을 만들고 계산기법을 개발하면, 컴퓨터는 그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했다. 계산하는 기계와 생각하는 인간의 역할은 비교적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 그 경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미 알고 있는 물리법칙을 AI의 학습과정에 함께 반영하려는 시도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물리 기반 인공신경망(Physics-Informed Neural Network, PINN)이다. 데이터뿐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는 물리법칙도 함께 활용하도록 만드는 접근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기존 계산기법을 당장 대체할 수준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특정 기법 하나가 아니다. 계산과학이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물리와 계산의 틀 속으로 AI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AI, 자연현상 연구의 새 지평 열 수도
돌이켜보면 컴퓨터 역시 처음에는 계산을 빠르게 해주는 도구로 여겨졌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컴퓨터는 수치해석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었고, 계산과학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전에는 풀 수 없었던 문제들이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과학은 더 복잡한 자연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AI도 같은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아직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한다. AI가 계산과학의 새로운 도구가 될지, 계산과학 자체를 다시 정의하게 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컴퓨터가 과거에는 풀 수 없었던 문제를 연구의 대상으로 만들었듯이, AI 역시 오늘날에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자연현상을 미래의 연구대상으로 바꾸어 놓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계산하는 기계에서 배우는 기계로. 어쩌면 지금 우리는 계산과학이 또 한번 새로운 연구방식을 손에 쥐는 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은지 (카이스트 교수 항공우주공학)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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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사과가 떨어지고, 행성이 움직이며, 번개가 치고, 공기가 흐르는 현상은 서로 전혀 달라 보인다. 그러나 과학은 그 안에서 공통된 질서를 발견해 왔다. 그리고 그 질서를 수학이라는 언어로 표현했다. 뉴턴의 운동법칙, 맥스웰 방정식, 슈뢰딩거 방정식, 볼츠만 방정식,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은 모두 그런 노력의 결과다.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자연은 이러한 방정식들을 만족하며 움직인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방정식은 단순한 공식이 아니다. 자연을 이해하는 언어이자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다. 과학자는 이를 통해 자연을 설명할 뿐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현상까지 예측한다. 그래서 새로운 방정식을 세우고 기존의 방정식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일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방정식을 안다고 해서 자연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 주변의 공기 흐름, 태풍의 이동, 핵융합 플라즈마, 우주선의 대기권 재진입과 같은 자연현상은 모두 방정식으로 기술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방정식이 너무 복잡하다는 데 있다. 대부분은 사람의 손으로는 풀 수 없다. 자연을 설명하는 법칙을 아는 것과, 그 법칙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계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삽화 김기명>
컴퓨터의 수치해석이 연 계산과학
20세기 중반 전자식 컴퓨터의 등장은 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방정식을 컴퓨터로 풀기 위한 수치해석 기법들이 발전했고, 자연현상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한 물리모델도 함께 발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새로운 연구방식이 자리잡았다. 오늘날 우리가 계산과학이라 부르는 분야다.
컴퓨터는 단순히 계산을 빠르게 해주는 기계가 아니었다. 계산과학의 연구방식 자체를 바꾸었다. 계산능력이 커질수록 연구자들은 더 정교한 물리모델을 만들 수 있었고, 더 복잡한 계산기법을 적용할 수 있었다. 계산과학은 계산량을 늘려온 학문이 아니라, 자연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더 깊이 이해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학문이었다.
그 이후 반세기 동안 계산과학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수치해석 기법이 개발되었고, 컴퓨터 성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동시에 연구자들은 새로운 물리현상을 모델에 반영하며 자연을 더욱 정교하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과거에는 계산 자체가 불가능했던 난류와 플라즈마, 희박기체, 연소, 우주선 재진입과 같은 복잡한 현상들도 하나씩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계산과학은 단순히 계산을 수행하는 학문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는 범위를 끊임없이 넓혀온 학문이었다. 오늘날 일기예보와 항공기 설계, 반도체 공정, 핵융합 연구, 우주선 개발은 모두 이러한 계산과학의 발전 위에서 가능해졌다. 컴퓨터는 계산 속도를 높인 것이 아니라, 과학이 질문할 수 있는 세계를 넓혀 놓았다.
최근에는 또 하나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이다. AI는 이제 연구실에서도 낯선 존재가 아니다. 논문을 읽고, 코드를 작성하며, 복잡한 추론을 수행하는 AI는 과학 연구의 새로운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계산과학도 예외는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계산과학에서 AI가 등장하는 방식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계산과학에서 생각하는 일은 연구자의 몫이었다. 연구자는 물리모델을 만들고 계산기법을 개발하면, 컴퓨터는 그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했다. 계산하는 기계와 생각하는 인간의 역할은 비교적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 그 경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미 알고 있는 물리법칙을 AI의 학습과정에 함께 반영하려는 시도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물리 기반 인공신경망(Physics-Informed Neural Network, PINN)이다. 데이터뿐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는 물리법칙도 함께 활용하도록 만드는 접근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기존 계산기법을 당장 대체할 수준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특정 기법 하나가 아니다. 계산과학이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물리와 계산의 틀 속으로 AI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AI, 자연현상 연구의 새 지평 열 수도
돌이켜보면 컴퓨터 역시 처음에는 계산을 빠르게 해주는 도구로 여겨졌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컴퓨터는 수치해석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었고, 계산과학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전에는 풀 수 없었던 문제들이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과학은 더 복잡한 자연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AI도 같은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아직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한다. AI가 계산과학의 새로운 도구가 될지, 계산과학 자체를 다시 정의하게 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컴퓨터가 과거에는 풀 수 없었던 문제를 연구의 대상으로 만들었듯이, AI 역시 오늘날에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자연현상을 미래의 연구대상으로 바꾸어 놓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계산하는 기계에서 배우는 기계로. 어쩌면 지금 우리는 계산과학이 또 한번 새로운 연구방식을 손에 쥐는 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은지 (카이스트 교수 항공우주공학)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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