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심리물리학자인 모스코비츠의 연구 중에서 유명한 이론이 ‘블리스포인트(bliss point, 지복점)’이다. 1970년대 그는 군용 전투식량을 개선하는 일을 맡았다. 이때 강한 맛의 음식을 매끼 먹이면 병사들은 며칠 만에 질려 빨리 물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 물리는 지점, 그 직전의 정점을 bliss point라 이름 붙였다.
2014년,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모 감자칩 열풍에 휩싸였다. 짠맛 과자의 대명사였던 감자칩에 꿀과 버터의 단맛을 결합한 이 제품은 전국적인 품절 사태를 일으키며 식품업계에 ‘단짠’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각인시켰다. 도저히 마트나 슈퍼에서 실물을 구경조차 할 수 없던 시절, 그 과자를 바라보는 필자의 심정은 마치 청포도를 바라보며 입맛만 다지던 이솝우화 속 여우와 다를 바 없었다.
어느 날 대학교 강의 도중 한 학생의 책상 위에 마법처럼 그 희귀한 과자 봉지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 이게 그 과자구나…’하는 생각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느낌이 싸했다. 학생은 마치 소중한 보물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적의와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필자를 쏘아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희소성 마케팅 앞에서 스승과 제자의 온정 따위는 설 자리가 없었다. 그 학생은 필자에게 한 조각도 주지 않았다.

<삽화 김기명>
지방이 단맛과 짠맛에 대한 거부감 없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그 과자를 겨우 손에 넣고 한 봉지를 비워냈을 때, 맛에 대한 경이로움보다는 직업적 본능이 먼저 꿈틀거렸다. 단짠의 맛이 혀를 지배했다.
돌이켜보면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불고기 양념치킨 간장게장 떡볶이 역시 모두 달고 짠맛의 합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 감자칩은 무언가 달랐다. 또 하나 더 먹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영양성분표를 들여다보았다. 눈에 띄는 숫자는 단연 ‘지방’이었다. 1일 영양성분 기준치의 무려 40~50%에 달하는 지방 수치. 제품 무게로 환산하면 전체의 약 35% 이상이 순수한 기름(지방) 덩어리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 제품의 나트륨 함량(290mg)이나 당류 함량(2g)은 대중이 느끼는 강렬한 맛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적은 단짠 성분과 압도적인 기름 속에서 ‘느끼함’ 대신 ‘치명적인 맛의 조화’를 느끼는 것일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맛의 뒤편에 숨은 물리학과 생리학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액상 기름은 혀의 미뢰(味蕾, 미각세포가 꽃잎처럼 겹쳐진 맛봉오리)를 코팅해 수용성인 소금과 설탕이 타액에 녹아 닿는 속도를 늦춘다. 소금과 설탕이 날카로운 창칼을 들고 혀를 단번에 베는 자극이라면, 기름은 그 자극의 속도를 늦춰 은근하고 지속적인 여운으로 변주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영양학자 아담 드루노프스키(Adam Drewnowski) 교수가 증명해 낸 ‘지방과 단맛의 교란 기전’이다.
본래 인간의 뇌에는 소금이나 설탕이 일정 농도를 넘어서면 거부감을 느끼는 ‘브레이크 포인트(Break Point)’가 존재한다. 너무 달면 물리고, 너무 짜면 뱉어내게 만드는 생존 방어기제다.
그러나 드루노프스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여기에 ‘지방’이 개입하는 순간 이 미각의 브레이크가 완전히 고장 나버린다. 지방의 농도가 높아질수록 설탕의 양이 한계치를 초과해 올라가도 뇌는 거부감은커녕 더 큰 도파민을 폭발시키며 선호도를 우상향시킨다. 기름이 단맛의 역치를 교란해 미각을 인위적으로 마비시킨 결과다.
결국, 대기업의 조미 설계자들은 기름이라는 장막 뒤에 단 2g의 설탕과 미량의 소금을 아주 은밀하게 숨겨둔 셈이다. 기름의 부드러운 유화 장막 속에서 뇌는 실제 성분보다 훨씬 강렬한 ‘쾌락적 허기’를 느끼며 멈추지 않고 손을 움직이게 된다.
현대 식품 자본주의의 힘 ‘맛 설계기술’
어쩌면 우리가 열광했던 단짠의 중독성은 미각의 신세계가 아니라, 아주 적은 비용으로 우리의 진화적 본능을 완벽히 속여 넘긴 현대 식품 자본주의가 설계한 은밀한 함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지점이 바로 현대 식품산업에서 ‘맛 설계 기술’이 지닌 위대한 가치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눈에 보이는 원료의 양을 무작정 늘리는 1차원적 제조를 넘어, 인간의 감각 인지 구조와 물리화학적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제어하여 최소한의 조미료로 최대의 쾌감을 창조해 내는 기술. 결국 소비자의 지갑을 열고 글로벌 시장을 흔드는 보이지 않는 힘은, 보이지 않는 장막 뒤에서 미각의 메커니즘을 완벽히 지배하는 바로 이 ‘맛 설계기술’의 한 끗 차이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김기명 (푸도슨트식품연구소장, 식품공학)
|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
#ESC와함께하는과학산책
+ 'ESC와 함께하는 과학산책' 연재 목록 보기
미국의 심리물리학자인 모스코비츠의 연구 중에서 유명한 이론이 ‘블리스포인트(bliss point, 지복점)’이다. 1970년대 그는 군용 전투식량을 개선하는 일을 맡았다. 이때 강한 맛의 음식을 매끼 먹이면 병사들은 며칠 만에 질려 빨리 물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 물리는 지점, 그 직전의 정점을 bliss point라 이름 붙였다.
2014년,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모 감자칩 열풍에 휩싸였다. 짠맛 과자의 대명사였던 감자칩에 꿀과 버터의 단맛을 결합한 이 제품은 전국적인 품절 사태를 일으키며 식품업계에 ‘단짠’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각인시켰다. 도저히 마트나 슈퍼에서 실물을 구경조차 할 수 없던 시절, 그 과자를 바라보는 필자의 심정은 마치 청포도를 바라보며 입맛만 다지던 이솝우화 속 여우와 다를 바 없었다.
어느 날 대학교 강의 도중 한 학생의 책상 위에 마법처럼 그 희귀한 과자 봉지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 이게 그 과자구나…’하는 생각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느낌이 싸했다. 학생은 마치 소중한 보물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적의와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필자를 쏘아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희소성 마케팅 앞에서 스승과 제자의 온정 따위는 설 자리가 없었다. 그 학생은 필자에게 한 조각도 주지 않았다.
<삽화 김기명>
지방이 단맛과 짠맛에 대한 거부감 없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그 과자를 겨우 손에 넣고 한 봉지를 비워냈을 때, 맛에 대한 경이로움보다는 직업적 본능이 먼저 꿈틀거렸다. 단짠의 맛이 혀를 지배했다.
돌이켜보면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불고기 양념치킨 간장게장 떡볶이 역시 모두 달고 짠맛의 합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 감자칩은 무언가 달랐다. 또 하나 더 먹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영양성분표를 들여다보았다. 눈에 띄는 숫자는 단연 ‘지방’이었다. 1일 영양성분 기준치의 무려 40~50%에 달하는 지방 수치. 제품 무게로 환산하면 전체의 약 35% 이상이 순수한 기름(지방) 덩어리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 제품의 나트륨 함량(290mg)이나 당류 함량(2g)은 대중이 느끼는 강렬한 맛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적은 단짠 성분과 압도적인 기름 속에서 ‘느끼함’ 대신 ‘치명적인 맛의 조화’를 느끼는 것일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맛의 뒤편에 숨은 물리학과 생리학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액상 기름은 혀의 미뢰(味蕾, 미각세포가 꽃잎처럼 겹쳐진 맛봉오리)를 코팅해 수용성인 소금과 설탕이 타액에 녹아 닿는 속도를 늦춘다. 소금과 설탕이 날카로운 창칼을 들고 혀를 단번에 베는 자극이라면, 기름은 그 자극의 속도를 늦춰 은근하고 지속적인 여운으로 변주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영양학자 아담 드루노프스키(Adam Drewnowski) 교수가 증명해 낸 ‘지방과 단맛의 교란 기전’이다.
본래 인간의 뇌에는 소금이나 설탕이 일정 농도를 넘어서면 거부감을 느끼는 ‘브레이크 포인트(Break Point)’가 존재한다. 너무 달면 물리고, 너무 짜면 뱉어내게 만드는 생존 방어기제다.
그러나 드루노프스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여기에 ‘지방’이 개입하는 순간 이 미각의 브레이크가 완전히 고장 나버린다. 지방의 농도가 높아질수록 설탕의 양이 한계치를 초과해 올라가도 뇌는 거부감은커녕 더 큰 도파민을 폭발시키며 선호도를 우상향시킨다. 기름이 단맛의 역치를 교란해 미각을 인위적으로 마비시킨 결과다.
결국, 대기업의 조미 설계자들은 기름이라는 장막 뒤에 단 2g의 설탕과 미량의 소금을 아주 은밀하게 숨겨둔 셈이다. 기름의 부드러운 유화 장막 속에서 뇌는 실제 성분보다 훨씬 강렬한 ‘쾌락적 허기’를 느끼며 멈추지 않고 손을 움직이게 된다.
현대 식품 자본주의의 힘 ‘맛 설계기술’
어쩌면 우리가 열광했던 단짠의 중독성은 미각의 신세계가 아니라, 아주 적은 비용으로 우리의 진화적 본능을 완벽히 속여 넘긴 현대 식품 자본주의가 설계한 은밀한 함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지점이 바로 현대 식품산업에서 ‘맛 설계 기술’이 지닌 위대한 가치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눈에 보이는 원료의 양을 무작정 늘리는 1차원적 제조를 넘어, 인간의 감각 인지 구조와 물리화학적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제어하여 최소한의 조미료로 최대의 쾌감을 창조해 내는 기술. 결국 소비자의 지갑을 열고 글로벌 시장을 흔드는 보이지 않는 힘은, 보이지 않는 장막 뒤에서 미각의 메커니즘을 완벽히 지배하는 바로 이 ‘맛 설계기술’의 한 끗 차이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김기명 (푸도슨트식품연구소장, 식품공학)
#ESC와함께하는과학산책
+ 'ESC와 함께하는 과학산책' 연재 목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