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 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연구실 사람을 만나게 된다. 기회가 닿아 술 한 잔을 같이 하게 되면, 정말 다사다난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된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지도교수님의 이야기이다. 내가 듣거나 혹은 직접 경험한 지도교수님과 제자의 관계는 이야기마다 천차만별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인 결혼식 때 교수님에게 축사를 부탁하는 것처럼 가슴 깊이 교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는 제자도 있지만, 연구 과정 동안 교수님과의 갈등으로 인생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와 트라우마가 가슴에 남아 지도교수님을 저주하는 제자도 있었다.
필자는 연구 생활을 하면서 여러 기관의 교수님들과 독대하며 이야기를 나눈 경험들이 있었다. 술을 한 잔 따라 드리며 교수님에게 내가 겪고 들었던 다른 대학원생의 이야기를 드리는데, 깊이 공감하는 분도 있는가 하면, 충격을 받으시거나 이해할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치시는 분들도 있었다. 태도는 정반대이지만, 모두 ‘교수’라는 직책이 아닌 한 명의 사람에서 나온 감상과 표현이었다. ‘교수’라는 직함을 내려놓은 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의 모습은 제자와 같은 한명의 사람일 뿐이었다. 교수와 제자가 각자의 인격체로서 서로 제대로 소통할 수 있었다면, 둘 사이의 벽은 약간이나마 통로가 생길 수 있지 않았을까?
비극이 아닌 소통과 공감을 위해
이 종이에는 다 담을 수 없는 깊디깊은 희로애락을 함부로 논하는 것은 오만한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지도교수님과 제자의 관계가 대립이 아닌 공감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글은 크게 사례 1,2,3... 그리고 고찰 순으로 연재하고자 한다.
글에 나오는 이야기는 특정 인물이 지목되는 것을 막고자 어느정도 각색하였다.
사례 1: 초임 교수님과 제자의 엇박자
A 교수님은 비교적 최근에 채용되신 분이다. A 교수님은 산업계에서 학계로 넘어오신 분이셨는데, 그 때문에 학계에서는 A 교수님의 연구 활동을 견제하는 집단이 있었다고 한다. A 교수님은 그런 상황일수록 더욱 자신의 학문, 연구 프로젝트, 그리고 연구실 구성원에게 애정을 더 부었다. A 교수님은 도전 정신을 가지고 찾아온 대학원생 몇 명과 함께,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연구실에 최신 장비들과 연구 복지 시설들을 들이고, 발품 뛰며 연구실을 홍보하였다. 새로 온 구성원들에게는 복지와 연구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학부생들과의 진로, 학업 상담에도 최선을 다하셨고 한다. 그 열정이 학생들에게도 입소문을 탔는지, 해당 연구실에서 인턴, 학위 활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매달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A 교수님은 본인의 연구실이 일류가 되길 바라셨다. 최신 연구를 원한다면 언제든 할 수 있어야 하며, 연구실 구성원 모두가 자기만의 연구를 수행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그러다 보니, 각 구성원에게는 광범위한 분야로 서로 전혀 다른 연구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막대한 장비비와 인건비가 필요했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연구실에서는 수많은 연구과제와 용역 과제들을 수주했으며, 연구실 운영 업무와 연구과제 수행 경험이 좀 더 있던 박사과정생들이 연구 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박사과정생들은 본인의 본래 연구를 수행하지 못하고 업무에 시달렸다고 한다. 매주 기업에 연구 성과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 고강도 업무에 시달리는 박사과정생들은 일과 내내 업무에 시달리다가, 늦은 밤이 되어야 본인의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반면, 석사과정생들은 박사과정생들과 달리 연구용역을 맡지 않아 부담 없이 본인의 관심 분야로 연구하며 연구 주제를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 차이는 고스란히 연구 성과에 반영되어, 급기야 석사과정생들의 연구 성과가 박사과정생들의 연구 성과보다 우수한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에 대해 박사과정생들은 A 교수님에게 처우개선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연구과제를 이대로는 수행할 수 없다. 석사과정생들에게도 연구과제 수행을 돕도록 하고, 워라밸을 보장해 달라"
A 교수님은 박사과정생들이 지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A 교수님은 학계에서의 정치적 공격을 버티면서 자녀 육아와 연구실 관리를 동시에 수행했으며, 신규 과제 수주를 위해서 분야를 막론하고 직접 몸으로 뛰며 발품을 뛰고 있었다. 그렇게 결사 항전하던 A 교수님으로서, 박사과정들이 겪는 ‘그 정도’의 업무는 당연히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상적인 연구실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 A 교수님은 박사과정생들의 불만 토로가 배부른 반항으로 느껴졌다.
“연구 경험이 이만큼이나 쌓였으면, 당연히 해내야 하는 거 아니냐?”
“석사과정생들보다 연구 성과가 안 나왔으면 본인들이 뭐가 부족한지 돌아볼 것이지, 그걸 내 탓으로 돌려?”
“내가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너희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이렇게 지원하는데, 너희들은 왜 이렇게 밖에 못하는 거지?”
그 목소리에는 단순한 학생들을 향한 비난뿐만 아니라, 교수님 본인이 느끼는 부담감과 서러움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박사과정생들에게는 A 교수님의 서러움 이상으로 당장의 문제에 큰 힘겨움을 느꼈었다. 박사과정생들 처지에서는 연구실 운영을 위해 자신의 연구와 무관한 과제에 본인의 몸을 갈아 넣으며 교수님의 노고를 같이 분담하였는데, 그 노고를 견디면서 겪은 고통이 본인들의 노력 부족으로 취급받은 것이다. 가뜩이나 건강 문제와 생계 불안에 시달리던 한 박사과정생은 교수님과의 소통이 좌절되자 정신적으로 무너져버려 결국 박사학위를 포기하였고, 다른 한 명은 건강 악화로 학업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이 연구실에서 노력하지 않은 자는 없었다. 교수님과 박사과정생 모두 각자 연구실 운영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A 교수님이 바랐던 최고의 연구실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보다도 대화와 논의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졸업 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석사과정생들보다 연구 성과 뒤처진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박사과정생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문책보다는 정서적 격려와 응원, 그리고 현실적인 구조개선을 위한 회의였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박사과정생들과 교수님은 갈등하기보단 서로 격려하며,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A 교수님 연구실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도록 학교에서 행정력을 동원해 연구시설, 장비 설치 및 행정 업무를 보조해줬다면, 박사과정생들과 교수님 모두 부담을 덜고 서로를 이끌어주며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미 벌어진 비극에 대해 아픈 마음으로 사례1을 마무리 짓겠다.
- 다음 사례에서 계속 -
연구 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연구실 사람을 만나게 된다. 기회가 닿아 술 한 잔을 같이 하게 되면, 정말 다사다난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된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지도교수님의 이야기이다. 내가 듣거나 혹은 직접 경험한 지도교수님과 제자의 관계는 이야기마다 천차만별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인 결혼식 때 교수님에게 축사를 부탁하는 것처럼 가슴 깊이 교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는 제자도 있지만, 연구 과정 동안 교수님과의 갈등으로 인생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와 트라우마가 가슴에 남아 지도교수님을 저주하는 제자도 있었다.
필자는 연구 생활을 하면서 여러 기관의 교수님들과 독대하며 이야기를 나눈 경험들이 있었다. 술을 한 잔 따라 드리며 교수님에게 내가 겪고 들었던 다른 대학원생의 이야기를 드리는데, 깊이 공감하는 분도 있는가 하면, 충격을 받으시거나 이해할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치시는 분들도 있었다. 태도는 정반대이지만, 모두 ‘교수’라는 직책이 아닌 한 명의 사람에서 나온 감상과 표현이었다. ‘교수’라는 직함을 내려놓은 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의 모습은 제자와 같은 한명의 사람일 뿐이었다. 교수와 제자가 각자의 인격체로서 서로 제대로 소통할 수 있었다면, 둘 사이의 벽은 약간이나마 통로가 생길 수 있지 않았을까?
비극이 아닌 소통과 공감을 위해
이 종이에는 다 담을 수 없는 깊디깊은 희로애락을 함부로 논하는 것은 오만한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지도교수님과 제자의 관계가 대립이 아닌 공감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글은 크게 사례 1,2,3... 그리고 고찰 순으로 연재하고자 한다.
글에 나오는 이야기는 특정 인물이 지목되는 것을 막고자 어느정도 각색하였다.
사례 1: 초임 교수님과 제자의 엇박자
A 교수님은 비교적 최근에 채용되신 분이다. A 교수님은 산업계에서 학계로 넘어오신 분이셨는데, 그 때문에 학계에서는 A 교수님의 연구 활동을 견제하는 집단이 있었다고 한다. A 교수님은 그런 상황일수록 더욱 자신의 학문, 연구 프로젝트, 그리고 연구실 구성원에게 애정을 더 부었다. A 교수님은 도전 정신을 가지고 찾아온 대학원생 몇 명과 함께,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연구실에 최신 장비들과 연구 복지 시설들을 들이고, 발품 뛰며 연구실을 홍보하였다. 새로 온 구성원들에게는 복지와 연구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학부생들과의 진로, 학업 상담에도 최선을 다하셨고 한다. 그 열정이 학생들에게도 입소문을 탔는지, 해당 연구실에서 인턴, 학위 활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매달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A 교수님은 본인의 연구실이 일류가 되길 바라셨다. 최신 연구를 원한다면 언제든 할 수 있어야 하며, 연구실 구성원 모두가 자기만의 연구를 수행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그러다 보니, 각 구성원에게는 광범위한 분야로 서로 전혀 다른 연구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막대한 장비비와 인건비가 필요했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연구실에서는 수많은 연구과제와 용역 과제들을 수주했으며, 연구실 운영 업무와 연구과제 수행 경험이 좀 더 있던 박사과정생들이 연구 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박사과정생들은 본인의 본래 연구를 수행하지 못하고 업무에 시달렸다고 한다. 매주 기업에 연구 성과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 고강도 업무에 시달리는 박사과정생들은 일과 내내 업무에 시달리다가, 늦은 밤이 되어야 본인의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반면, 석사과정생들은 박사과정생들과 달리 연구용역을 맡지 않아 부담 없이 본인의 관심 분야로 연구하며 연구 주제를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 차이는 고스란히 연구 성과에 반영되어, 급기야 석사과정생들의 연구 성과가 박사과정생들의 연구 성과보다 우수한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에 대해 박사과정생들은 A 교수님에게 처우개선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A 교수님은 박사과정생들이 지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A 교수님은 학계에서의 정치적 공격을 버티면서 자녀 육아와 연구실 관리를 동시에 수행했으며, 신규 과제 수주를 위해서 분야를 막론하고 직접 몸으로 뛰며 발품을 뛰고 있었다. 그렇게 결사 항전하던 A 교수님으로서, 박사과정들이 겪는 ‘그 정도’의 업무는 당연히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상적인 연구실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 A 교수님은 박사과정생들의 불만 토로가 배부른 반항으로 느껴졌다.
그 목소리에는 단순한 학생들을 향한 비난뿐만 아니라, 교수님 본인이 느끼는 부담감과 서러움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박사과정생들에게는 A 교수님의 서러움 이상으로 당장의 문제에 큰 힘겨움을 느꼈었다. 박사과정생들 처지에서는 연구실 운영을 위해 자신의 연구와 무관한 과제에 본인의 몸을 갈아 넣으며 교수님의 노고를 같이 분담하였는데, 그 노고를 견디면서 겪은 고통이 본인들의 노력 부족으로 취급받은 것이다. 가뜩이나 건강 문제와 생계 불안에 시달리던 한 박사과정생은 교수님과의 소통이 좌절되자 정신적으로 무너져버려 결국 박사학위를 포기하였고, 다른 한 명은 건강 악화로 학업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이 연구실에서 노력하지 않은 자는 없었다. 교수님과 박사과정생 모두 각자 연구실 운영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A 교수님이 바랐던 최고의 연구실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보다도 대화와 논의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졸업 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석사과정생들보다 연구 성과 뒤처진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박사과정생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문책보다는 정서적 격려와 응원, 그리고 현실적인 구조개선을 위한 회의였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박사과정생들과 교수님은 갈등하기보단 서로 격려하며,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A 교수님 연구실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도록 학교에서 행정력을 동원해 연구시설, 장비 설치 및 행정 업무를 보조해줬다면, 박사과정생들과 교수님 모두 부담을 덜고 서로를 이끌어주며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미 벌어진 비극에 대해 아픈 마음으로 사례1을 마무리 짓겠다.
- 다음 사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