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 열풍으로 반도체가 뉴스의 중심에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인공지능 칩 한개가 수천만원을 호가하고, 우리나라 회사가 만드는 메모리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으며, 각국 정부가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려고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반도체 산업의 주재료인 실리콘이 인류가 만든 가장 순수한 물질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자용 실리콘의 순도는 99.9999999%에서 99.999999999%, 9가 9개에서 11개 붙는다고 해서 나인 나인(9N), 일레븐 나인(11N)이라고 부른다. 11N이면 실리콘 원자 1000억개 중에 불순물 원자가 1개 있는 수준이다. 80억 인류가 사는 지구 12개를 모두 뒤져서 단 한사람을 찾아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 소자는 불순물을 넣어야 작동한다. 순수한 실리콘은 전기가 거의 통하지 않아 부도체에 가깝다. 여기에 인이나 붕소 같은 원소를 실리콘 원자 100만개당 하나 정도로 넣어주면 움직일 수 있는 전자나 정공이 생겨 넣기 전에 비해 100만배나 전기가 잘 통하는 반도체가 된다. 이렇게 미량의 불순물을 첨가하는 것을 도핑(doping)이라고 한다. 태양전지의 pn 접합도 도핑으로 만든다.
그런데 100만분의 1 수준의 도핑으로 소자의 전기적 성질을 제어하려면 시작 물질인 실리콘에 원래 들어 있는 불순물은 그보다 수천, 수만배 더 적어야 한다. 초고순도가 필요한 이유다. 또한 재료는 결함이 없는 완벽한 단결정이어야 하는데, 결정 알갱이의 경계나 결함이 있으면 전자의 흐름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80억명의 지구 12개에서 1명 찾는 순도
이런 순도의 단결정은 어떻게 가능할까. 1916년 폴란드의 화학자 얀 초크랄스키(Jan Czochralski)는 녹은 주석이 담긴 도가니에 펜을 잘못 담갔다가 펜촉에 딸려 올라온 가느다란 금속 실이 완벽한 주석 단결정임을 발견한다. 잉크 대신 단결정을 찍어 올린 이 실수는 오늘날 모든 실리콘 웨이퍼 제작에 쓰이는 초크랄스키법이 되었다.

<삽화 김기명>
1947년 벨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가 발명되었지만 초기의 다결정 게르마늄으로는 성능이 일정한 소자를 만들 수 없었다. 벨연구소의 고든 틸(Gordon Teal)은 1948년 초크랄스키법으로 게르마늄 단결정을 키워 트랜지스터 상용화의 길을 열었다. 이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로 옮긴 뒤인 1954년 한 학회장에서 최초의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들고 나와 시연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같은 벨연구소의 윌리엄 팬(William Pfann)은 1952년 반도체 같은 물질 막대의 일부분만 녹여 천천히 이동시키면 불순물이 녹은 영역을 따라 한쪽 끝으로 쓸려 나간다는 구역정제(zone refining)법을 발명한다. 녹은 영역을 여러번 통과시킬수록 순도가 계속 올라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순도가 실현되었다.
화학자 캘빈 풀러(Calvin Fuller)는 고온에서 불순물 원자가 실리콘 표면으로 스며들게 하는 확산 도핑을 개발했는데, 이 기술로 처음 만든 소자가 바로 1954년의 실리콘 태양전지였다. 확산 도핑은 지금도 반도체 공정의 핵심 기술로 쓰이고 있다.
오늘날 반도체용 실리콘은 석영모래를 탄소와 함께 전기로에서 녹여 얻는 순도 99%의 실리콘에서 출발한다. 이를 염화수소와 반응시켜 실리콘 원자 하나에 3개의 염소와 수소 1개가 붙어서 끓는점이 32℃인 삼염화실란 액체로 바꾼 뒤 반복해서 분별 증류해서 불순물을 걸러낸다.
이 기체를 1100℃로 가열된 실리콘 막대 표면에서 분해시키면 초고순도 11N의 다결정 실리콘이 자란다. 석영 도가니에 넣어 1400℃가 넘는 온도로 녹이고, 손가락만 한 종자 단결정을 표면에 담가 초크랄스키법으로 천천히 회전시키며 시간당 수cm의 속도로 끌어올리면 직경 30cm, 길이 2m, 무게 수백 kg의 거대한 단결정 잉곳이 며칠에 걸쳐 자라난다.
이 잉곳의 순도는 충분하기 때문에 구역정제를 추가로 하지 않고 다이아몬드 와이어로 얇게 썰어 원자 수준으로 평탄하게 연마한 것이 반도체 공장으로 들어가는 300mm 웨이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SK실트론이 이 시장을 놓고 세계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한변이 21cm 넘는 초대형 인공지능 칩도
보통은 웨이퍼 한장에 수백개의 칩을 새긴 후 잘라서 쓰지만 미국의 세레브라스(Cerebras)는 웨이퍼 전체를 통째로 하나의 인공지능 칩으로 만든다. 한변이 21cm가 넘는 이 접시만 한 칩 하나에 트랜지스터 4조개와 연산코어 90만개가 들어 있어 거대 인공지능 모델의 추론에 사용된다.
100여년 전 잉크 대신 실수로 찍어 올린 한 가닥의 단결정이 이제는 흔한 모래를 지구에서 가장 순수한 물질로 바꾸어 인공지능 시대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박용섭 (경희대 교수, 물리학)
|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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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열풍으로 반도체가 뉴스의 중심에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인공지능 칩 한개가 수천만원을 호가하고, 우리나라 회사가 만드는 메모리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으며, 각국 정부가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려고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반도체 산업의 주재료인 실리콘이 인류가 만든 가장 순수한 물질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자용 실리콘의 순도는 99.9999999%에서 99.999999999%, 9가 9개에서 11개 붙는다고 해서 나인 나인(9N), 일레븐 나인(11N)이라고 부른다. 11N이면 실리콘 원자 1000억개 중에 불순물 원자가 1개 있는 수준이다. 80억 인류가 사는 지구 12개를 모두 뒤져서 단 한사람을 찾아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 소자는 불순물을 넣어야 작동한다. 순수한 실리콘은 전기가 거의 통하지 않아 부도체에 가깝다. 여기에 인이나 붕소 같은 원소를 실리콘 원자 100만개당 하나 정도로 넣어주면 움직일 수 있는 전자나 정공이 생겨 넣기 전에 비해 100만배나 전기가 잘 통하는 반도체가 된다. 이렇게 미량의 불순물을 첨가하는 것을 도핑(doping)이라고 한다. 태양전지의 pn 접합도 도핑으로 만든다.
그런데 100만분의 1 수준의 도핑으로 소자의 전기적 성질을 제어하려면 시작 물질인 실리콘에 원래 들어 있는 불순물은 그보다 수천, 수만배 더 적어야 한다. 초고순도가 필요한 이유다. 또한 재료는 결함이 없는 완벽한 단결정이어야 하는데, 결정 알갱이의 경계나 결함이 있으면 전자의 흐름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80억명의 지구 12개에서 1명 찾는 순도
이런 순도의 단결정은 어떻게 가능할까. 1916년 폴란드의 화학자 얀 초크랄스키(Jan Czochralski)는 녹은 주석이 담긴 도가니에 펜을 잘못 담갔다가 펜촉에 딸려 올라온 가느다란 금속 실이 완벽한 주석 단결정임을 발견한다. 잉크 대신 단결정을 찍어 올린 이 실수는 오늘날 모든 실리콘 웨이퍼 제작에 쓰이는 초크랄스키법이 되었다.
<삽화 김기명>
1947년 벨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가 발명되었지만 초기의 다결정 게르마늄으로는 성능이 일정한 소자를 만들 수 없었다. 벨연구소의 고든 틸(Gordon Teal)은 1948년 초크랄스키법으로 게르마늄 단결정을 키워 트랜지스터 상용화의 길을 열었다. 이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로 옮긴 뒤인 1954년 한 학회장에서 최초의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들고 나와 시연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같은 벨연구소의 윌리엄 팬(William Pfann)은 1952년 반도체 같은 물질 막대의 일부분만 녹여 천천히 이동시키면 불순물이 녹은 영역을 따라 한쪽 끝으로 쓸려 나간다는 구역정제(zone refining)법을 발명한다. 녹은 영역을 여러번 통과시킬수록 순도가 계속 올라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순도가 실현되었다.
화학자 캘빈 풀러(Calvin Fuller)는 고온에서 불순물 원자가 실리콘 표면으로 스며들게 하는 확산 도핑을 개발했는데, 이 기술로 처음 만든 소자가 바로 1954년의 실리콘 태양전지였다. 확산 도핑은 지금도 반도체 공정의 핵심 기술로 쓰이고 있다.
오늘날 반도체용 실리콘은 석영모래를 탄소와 함께 전기로에서 녹여 얻는 순도 99%의 실리콘에서 출발한다. 이를 염화수소와 반응시켜 실리콘 원자 하나에 3개의 염소와 수소 1개가 붙어서 끓는점이 32℃인 삼염화실란 액체로 바꾼 뒤 반복해서 분별 증류해서 불순물을 걸러낸다.
이 기체를 1100℃로 가열된 실리콘 막대 표면에서 분해시키면 초고순도 11N의 다결정 실리콘이 자란다. 석영 도가니에 넣어 1400℃가 넘는 온도로 녹이고, 손가락만 한 종자 단결정을 표면에 담가 초크랄스키법으로 천천히 회전시키며 시간당 수cm의 속도로 끌어올리면 직경 30cm, 길이 2m, 무게 수백 kg의 거대한 단결정 잉곳이 며칠에 걸쳐 자라난다.
이 잉곳의 순도는 충분하기 때문에 구역정제를 추가로 하지 않고 다이아몬드 와이어로 얇게 썰어 원자 수준으로 평탄하게 연마한 것이 반도체 공장으로 들어가는 300mm 웨이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SK실트론이 이 시장을 놓고 세계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한변이 21cm 넘는 초대형 인공지능 칩도
보통은 웨이퍼 한장에 수백개의 칩을 새긴 후 잘라서 쓰지만 미국의 세레브라스(Cerebras)는 웨이퍼 전체를 통째로 하나의 인공지능 칩으로 만든다. 한변이 21cm가 넘는 이 접시만 한 칩 하나에 트랜지스터 4조개와 연산코어 90만개가 들어 있어 거대 인공지능 모델의 추론에 사용된다.
100여년 전 잉크 대신 실수로 찍어 올린 한 가닥의 단결정이 이제는 흔한 모래를 지구에서 가장 순수한 물질로 바꾸어 인공지능 시대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박용섭 (경희대 교수,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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