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학자와 피아노 #35. 혹시, 절대음감의 소유자십니까?

블랙소스
202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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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도 맞춰볼래?” '라'야, '도'야,...... 사실 신기했다. 왜 '라'를 당연히도 '라'로 듣지 못하지? 그런데 친구들은 그렇게 듣는 필자를 오히려 신기하게 여겼다. 정말 어느 쪽이 더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어렸을 적에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경험을 했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자라면서,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감각이 생기고 이를 수용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깨달았지만, 그 어릴 적에는 다름은 곧 이상함이었다. 그것도 자신을 향한. 예전 사극, 족히 20년도 더 된 듯한데, <대장금>이라는, 궁궐 음식을 둘러싸고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인기 드라마에, 주인공이 어릴 적, 주인공은 음식에 그냥 홍시 맛이 나니까 홍시가 들었다고 했을 뿐인데, 어떻게 생각해서 홍시가 들었는 줄 아냐고 묻는 스승과의 대사 장면이 나온다. 필자가 그런 천재급은 아니지만, 음을 어떻게 맞추었냐고 물어보면, 그와 마찬가지로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 그냥 그렇게 들리니까 '라'니, '도'니 했을 뿐인데. 


절대음감은 만 명 중 한 명 정도 분포라는데, 대다수는 음과 음 사이의 관계를 통해 음높이가 파악되는 상대음감만 있어 보인다. 즉 ‘도’라는 어떤 음을 알려주면 그 높이의 상대적 관계를 느끼는 감각으로 다른 음이 무엇인지 짐작하기 마련이라고 한다. 절대음감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간직하기 마련이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서 잊힌다고, 이를 듣거나 활용할 일이 거의 없어서란다. 단, 악기를 배우면 후천적으로 이를 유지하는 훈련이 어느 정도 되는 셈이라서 그렇다지만, 글쎄? 경험적으로는 그 태어날 때부터 갖춘다는 정도도 어쩌면 사람마다 차이가 크지 싶다. 아니면 정말 어떻게 훈련하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그 차이가 더 큰 걸까? 아무튼 주변에서 들려주는 노래나 말소리, 일상에서 듣는 건 다 절대 음이 아니기에, 어지간해서는 이런 감각이 크면서 희미해진다는 주장이 설득력은 어느 정도 있다시피 논리적이다. 


하지만, 불변의 진리 같은 정도로 보기는 어렵고, 필자의 경우를 예외로만 치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필자는 1977년, 친구 집에서 운영하는 피아노 학원에 가서 피아노를 처음 만났다. 성장기 분위기상 노래고 기악이고 들을 기회도 거의 전무했지 싶다. 유치원에 들어가던 해기도 하니까, 유아기 사회 생활을 통해서 음악을 접했더라서도 아니다. 그렇다면, 학원 친구들에게 서커스의 묘기라도 펼치는 듯한 느낌을 단번에 안긴 저 '음 맞추기' 능력은 어디서 왔을까? 음마다 맞출 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더 적극적인 능력치(?)를 보이면 이제 서비스(?) 주문이 막 들어온다. 노래 좀 피아노로 쳐 달라는. 일명 '계명'을 내는 악기의 소리를 듣기 때문에 그 음을 그대로 듣는가 싶지만, 다른 소리를 들으면 어떨까? 당시 그런 쉬운 예는, 만화 주제곡을 듣고 피아노로 바로 칠 줄 아느냐, 아니냐로 갈리는 경우였다. 즉, 음 높이를 따라 부르는 가사를 들어도 피아노로 바로 옮겨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런 테스트를 해보면, 상대음감을 지닌 친구들도 바로 드러난다. 즉, 조가 다르지만, 따라서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흐름으로 음이 상대적으로 연결되는 경우다. 그러니까 이 친구들에게는 단음으로 여러 번 청음 테스트를 해보면 개개 음은 절대 높이랑은 다르게 말하겠지만 그 다른 음들 사이의 일정한 패턴이 나타날 것이다. 


그럼, 그렇게도 못하면, 상대음감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는 건가? 아마도, 음높이가 이렇게 제각각으로 들려서인지 몰라도, 선생님들께선 레슨할 때, 7개 원(?)음(도, 레, 미, 파, 솔, 라, 시)이 아닌 샾(♯, 반음 올림)이나 플랫(♭, 반음 내림)이 붙은 경우 그 '계명'이 딱히 없으니 부르기가 번거롭게도 그냥 도 샾, 레 샾, 미 플랫, 이런 식으로 읽으셨던 기억이 나는데, 필자에게는, 저런 음들이 (편의를 위해 스케일 안에 포함해서 순서대로 나타내보면) "도 '두' 레 '뤼' 미 파 '푸' 솔 '쑬' 라 '쉬' 시'로 명료히 음성으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는 들렸다. 하지만 상대음감자들에게 꼭 저러라는 법이 없으니, 선생님들의 읽기는 고육지책이었던 듯하다. (물론, 이 임시표 붙은 음들의 음가는 2다. 가령 도 샾은 레 플랫이기도 해서다. 하지만, 어떤 음은 샾으로 어떤 음은 플랫으로 더 가깝게 들리는 면에선, 어떻게 보면 이는 '상대적' 절대음감이다. 필자에게 2개 음가로 모두 들리는 음은 솔 샾 또는 라 플랫이다. 위에서는 샾 표기로 했지만, 이 음은 '루'와 비슷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다른 검은 건반 음들은 도저히 2가지로 들리지 않는다. 단, 조성이 뚜렷한 흐름 속에서는 그 조성에 따른 음으로 명확하게 들리기도 한다. 이를 다른 절대음감자들과도 나눠보고 싶었는데, 위에 통계를 제시했듯 주변에서 절대음감자를 만난 기억이 (만났어도 서로 밝힐 기회가 없어서였는지 어쨌든) 잘 없다. 전공자 군이라고 해서 절대음감자가 특별히 더 많은 것도 아니라고도 조심스럽지만 추정해 본다.)  


생각해 보니 당시에 '묘기 대행진'이란 지상파 프로그램이 있었던 듯한데, 거기 나가도 되었을까 싶지만, 부모님부터가 방송이란 너무나 멀고도 더 먼 별개 세상같이 느끼시던 시절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생활의 달인' 정도 되는 프로그램이다. 아마도, 절대음감력의 극치는 보여야,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극단적인 예가, 도로에서 들려오는 타이어 마찰음을 듣고 그 사운드의 진동수에 따라 교통사고가 날 수준인지 판단이 가능하다는 정도인데, 필자는 그 정도는 아닌 듯하다. 


아무튼 어느 모로 보나 선천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지 싶은 동시에, 누구나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지만, 생후 5~6년 사이면 벌써 많이 decay된다고 해석해야 할까? 그럼 그렇게 안 되는 부류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런 자연적인 decaying time까지 선천적으로 결정된다고 봐야 할까? 절대음감도 그냥 단일하게 간주하기 어렵고 그 안에서도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악기 음에서만 한정해서 말하면, 필자의 포지셔닝은 아마 절대음감 보유자 군에서 최하단에 들어가지 싶다. 음감을 둘러싸고 경험한 또 다른 신기함은, 악보를, 현대음악의 희한하기 짝이 없는 표기법을 제외하고는, 20세기 초반 작품들 악보까지는 어느 작품이든 읽는 데 무리가 없어진 수준(피아노를 배우고 약 4~5년 지난,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으로 기억한다)에 이르고 난 뒤, 곧, 어떤 경우에는 악보를 외우게 된 작품에서 느끼게 된다. 실제 연주회나 음반을 가끔 듣고 있노라면 반음이나 한 음(즉, 0.5도나 1도)이 높거나 낮게 들리는 경우가, 아주 일시적으로, 있어서다. 연주를 듣다가 중간에 그러면 감각의 에러나 혼선으로 볼 수도 있다가, 처음부터 그렇게 들리면, 이건 혹시 조 옮김이라도 하고 연주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감상할 리소스가 풍부해진 시대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지만, 연주자가 (클래식 피아노 곡이라면) 원곡을 조 옮김만으로 연주하는 경우는 본 기억이 없으며, 아예 편곡을 하면 편곡으로 갔지 말이다. 그러니까 필자의 절대음감은 다소 불안하기도, 아니 남루하기까지도 한 느낌이다. 그런데 아무리 또 그래도 1도 차이를 넘는 오차로는 들리지 않는다(상대음감의 경우는 2도 이상이 상대적으로 계속 유지되면서 들리기도 할 것 같다.). 아울러, 단음에서 한 2성 정도까지는 완벽한데, 3성이나 4성 화음으로 테스트하면, 아마 3성도 어지간히 맞추겠지만, 한 4성 정도부터는 네 음을 모두 정확히 맞추기가 어렵다. 특히 피아노의 경우는 배음 효과가 있어서도 더욱 그런 듯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변함없이 척척 알아내는 귀도 존재하는 법이다. 


이 정도로 불안한 절대음감으로 피아노를 대하고 있지만, 솔직히 궁금하다. 악보에서 분명 '라'로 읽고, 건반도 그에 따라 치는데 그 소리가 '라'로 안 들린다는 건 무슨 느낌일까? 그러하더라도 연주를 탁월하게 하는 연주자들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참 신기하다. 곧, '절대'란 표현이 막연히 자아낸 근거 없는 인상일 수 있는데, 절대음감을 타고나서 유지하면 아주 유리할 듯하지만, 이것을 꼭 탁월한 음악적 소질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아주 허전하다. 필수 재능은 더더욱 아니고. 그래도 아주 뛰어난 절대적 절대음감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어쩌면, 여러분도 어릴 적, 이런 아담한 '묘기'를 자각하지 못한 채로 그냥 지나쳤을지 모른다. 그런 감각을 잊었다면, 다시 그 '귀'를, 감각을 찾아보고 싶지는 않은지? 하지만, 너무 이에 집착할 필요는 없기도 하다. 음악을 하더라도, 오히려 절대음감은 방해가 되기도 하니까. 이는 정말 좋은 '귀'란 무엇인가, 이 이슈와 맞닿아 있는데, 이 또한 '미분'음 이야기까지 해야 하는 긴 담론이므로 다른 적정한 기회로 미룬다. 그 예고 편으로 정말 귀가 좋은 연주자의 예시를 공유하며 이 정도로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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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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