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나 경진성 행사가 개인 성향으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조금 결은 다르지만, 더 나아가서 무엇인가 인증하거나 하는 각종 자격증이나 서류는 질색이기까지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그렇게 많은 공식 증표 같은 것이 왜 필요할까 싶다. 그만큼 학교 교육이나 기업체 연수, 각종 사회 체제(의 효용)에 대한 불신이 커져서인 듯하니, 배보다 배꼽이 커도, 정말 너무 커진 느낌이다. 아마도 이런 부정적인 감은, 이런 대회나 인증 제도가 적절히 선별적으로 존재하면 몰라도, 그리고 또 그 소비자들도 현명하게 이에 접근한다면 몰라도, 부작용이 너무 많은 데 따른 저항 의식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하기는 또 이렇게 니즈가 커지고 불이 붙으면, 또 다른 시장 경제가 활성화되니 그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아무튼, 아무래도 그래서인지 연주자 중에서도 콩쿠르 출신이 아닌 키신(Kissin, Evgeny)과 같은 존재에 더 정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세계적으로 권위가 대단한 콩쿠르 출신을 폄하할 생각은 당연히 아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가장 좋은 등용문인지라, 오히려 요즘 시대에 키신 같은 연주자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니까. 그러니까 좋아하는 연주자들을 몇 명만 꼽아봐도 다 콩쿠르 출신 연주자들이 아닐 수 없다.
콩쿠르나 연주회 같은 라이브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일 도움이 많이 되는 경험은 실제 무대에 자꾸 서 보는 것이라는 말을 밥 먹듯이 듣고는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가? 그런데 그런 기회 자체가 특히 아마추어에게는 사실 많지 않으니까, 그 당연함을 당연하다고 머리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절감하는 차원은 또 다른 듯하다. 아무리 연습을 반복해도 실전 한 번만 못 하단 이야기가 괜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경험을 최근에 직접 했다. 그러고 대회란 형식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다시 곱씹어보게 되기도 했다.
연주 무대에 선 경험은 아니지만, 연구소까지 포함해 모든 계열사 전체를 대상으로 필자 소속 조직에서 최초로 열린 해커톤에 출전한 덕분이다. 목표는 일하는 방식을 혁신할 수 있는 AI 솔루션 '끝장'(을 주최 측에서 강조) 개발, 지정된 제한 시간은 무박 24시간. 단, 사전 준비기간으로 3주 동안 online meetup 등 허용. 늘 하던 일의 일부를 대회 현장 속에서 재현하기란 또 무척 감이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기에, 연주 또한 그런 간극이 꽤 크리라는 짐작에도 이르렀다. 그런 면에서는 독주/협연 연주회보다는 콩쿠르가 경진성 행사기에 더더욱 다르리라 본다.
이번에 운 좋게도 선발되어 다녀온 해커톤에는 10개 조가 정예로 출전했는데, 수상 여부를 떠나 모든 조를 appreciate하는 분위기에서 쇼팽 국제 콩쿠르('쇼팽'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콩쿠르는 전 세계적으로 제법 여럿이지만, 여기서는 당연히 가장 대표적인, 조성진의 한국인 최초 우승으로도 대중적으로 더 유명해진 그 바르샤바 대회)가 연상되었다. 이 대회 또한 쇼팽 협주곡 중 한 곡을 연주해야 하는 파이널 라운드에 딱 10명을 올리는 게 전통이기 때문이다(물론 대회마다 +/-1~2의 오차는 그 회 출전자들의 연주력에 따라 더러 예외도 발생). 게다가 이전 스테이지의 연주 또한 최종 순위 산정에 반영되기도 하는데, 수상 여부를 떠나 이 10명 안에 들었다는 자체가 이미 세계 최고의 피아노계 어벤져스라는 인증이기도 하다.
이런 면면은 이번에 다녀온 해커톤과 무척 닮았다. 이번 출전자들은 (준)공식적으로 그룹 내 AI/DX를 이끄는 리딩 크루들로 인정받은 셈이니. 게다가 모든 '실전'이 늘 그렇지만,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상존하고 실제로 참가자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즉 준비나 연습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나쁠 리는 없지만, 실전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기도 하다. 물론 이런 사실은 관념적으로 짐작해볼 수도 있지만, 꼭 출전자가 아니라, 현장에 간다면 청중으로서도 집중해서 관찰만 할 수 있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저 쇼팽 콩쿠르에, 중학교 2학년 시절 수입된 레이저 디스크(LD: Laser Disc)로 85년도 우승자의 (당시로서는 극히 센세이셔널한) 협연 실황을 접한 뒤 언젠가는 직접 가서 감상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지 30년 뒤에야 가게 되어서(참고로 LD는 당시 한때 반짝했던 매체로, 특히 BD(Blue-ray Disc)의 등장으로 시장 확대에 실패한 매체), 그 현장 실전의 생생하고 돌발적인 면면을 몸소 겪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질은 그래도 그럭저럭 들을 만하지만 조금 더 좋은 화질로 복원된 영상이 공개되면 좋을, 1985년 당시 우승자 Stanislav Bunin의 파이널 실황 연주. LD도 일본에서 발매되긴 했지만, 이후 점점 일본에서 인기를 크게 누리면서 아예 일본에 정착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점점 더 아주 활발한 연주 무대를 볼 수 없어 아쉽다. 당시 압도적 호평을 받은 연주임에도, 실전이란,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하시기에 충분한 영상이다.)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대회나 경진성 행사가 개인 성향으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조금 결은 다르지만, 더 나아가서 무엇인가 인증하거나 하는 각종 자격증이나 서류는 질색이기까지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그렇게 많은 공식 증표 같은 것이 왜 필요할까 싶다. 그만큼 학교 교육이나 기업체 연수, 각종 사회 체제(의 효용)에 대한 불신이 커져서인 듯하니, 배보다 배꼽이 커도, 정말 너무 커진 느낌이다. 아마도 이런 부정적인 감은, 이런 대회나 인증 제도가 적절히 선별적으로 존재하면 몰라도, 그리고 또 그 소비자들도 현명하게 이에 접근한다면 몰라도, 부작용이 너무 많은 데 따른 저항 의식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하기는 또 이렇게 니즈가 커지고 불이 붙으면, 또 다른 시장 경제가 활성화되니 그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아무튼, 아무래도 그래서인지 연주자 중에서도 콩쿠르 출신이 아닌 키신(Kissin, Evgeny)과 같은 존재에 더 정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세계적으로 권위가 대단한 콩쿠르 출신을 폄하할 생각은 당연히 아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가장 좋은 등용문인지라, 오히려 요즘 시대에 키신 같은 연주자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니까. 그러니까 좋아하는 연주자들을 몇 명만 꼽아봐도 다 콩쿠르 출신 연주자들이 아닐 수 없다.
콩쿠르나 연주회 같은 라이브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일 도움이 많이 되는 경험은 실제 무대에 자꾸 서 보는 것이라는 말을 밥 먹듯이 듣고는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가? 그런데 그런 기회 자체가 특히 아마추어에게는 사실 많지 않으니까, 그 당연함을 당연하다고 머리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절감하는 차원은 또 다른 듯하다. 아무리 연습을 반복해도 실전 한 번만 못 하단 이야기가 괜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경험을 최근에 직접 했다. 그러고 대회란 형식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다시 곱씹어보게 되기도 했다.
연주 무대에 선 경험은 아니지만, 연구소까지 포함해 모든 계열사 전체를 대상으로 필자 소속 조직에서 최초로 열린 해커톤에 출전한 덕분이다. 목표는 일하는 방식을 혁신할 수 있는 AI 솔루션 '끝장'(을 주최 측에서 강조) 개발, 지정된 제한 시간은 무박 24시간. 단, 사전 준비기간으로 3주 동안 online meetup 등 허용. 늘 하던 일의 일부를 대회 현장 속에서 재현하기란 또 무척 감이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기에, 연주 또한 그런 간극이 꽤 크리라는 짐작에도 이르렀다. 그런 면에서는 독주/협연 연주회보다는 콩쿠르가 경진성 행사기에 더더욱 다르리라 본다.
이번에 운 좋게도 선발되어 다녀온 해커톤에는 10개 조가 정예로 출전했는데, 수상 여부를 떠나 모든 조를 appreciate하는 분위기에서 쇼팽 국제 콩쿠르('쇼팽'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콩쿠르는 전 세계적으로 제법 여럿이지만, 여기서는 당연히 가장 대표적인, 조성진의 한국인 최초 우승으로도 대중적으로 더 유명해진 그 바르샤바 대회)가 연상되었다. 이 대회 또한 쇼팽 협주곡 중 한 곡을 연주해야 하는 파이널 라운드에 딱 10명을 올리는 게 전통이기 때문이다(물론 대회마다 +/-1~2의 오차는 그 회 출전자들의 연주력에 따라 더러 예외도 발생). 게다가 이전 스테이지의 연주 또한 최종 순위 산정에 반영되기도 하는데, 수상 여부를 떠나 이 10명 안에 들었다는 자체가 이미 세계 최고의 피아노계 어벤져스라는 인증이기도 하다.
이런 면면은 이번에 다녀온 해커톤과 무척 닮았다. 이번 출전자들은 (준)공식적으로 그룹 내 AI/DX를 이끄는 리딩 크루들로 인정받은 셈이니. 게다가 모든 '실전'이 늘 그렇지만,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상존하고 실제로 참가자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즉 준비나 연습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나쁠 리는 없지만, 실전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기도 하다. 물론 이런 사실은 관념적으로 짐작해볼 수도 있지만, 꼭 출전자가 아니라, 현장에 간다면 청중으로서도 집중해서 관찰만 할 수 있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저 쇼팽 콩쿠르에, 중학교 2학년 시절 수입된 레이저 디스크(LD: Laser Disc)로 85년도 우승자의 (당시로서는 극히 센세이셔널한) 협연 실황을 접한 뒤 언젠가는 직접 가서 감상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지 30년 뒤에야 가게 되어서(참고로 LD는 당시 한때 반짝했던 매체로, 특히 BD(Blue-ray Disc)의 등장으로 시장 확대에 실패한 매체), 그 현장 실전의 생생하고 돌발적인 면면을 몸소 겪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질은 그래도 그럭저럭 들을 만하지만 조금 더 좋은 화질로 복원된 영상이 공개되면 좋을, 1985년 당시 우승자 Stanislav Bunin의 파이널 실황 연주. LD도 일본에서 발매되긴 했지만, 이후 점점 일본에서 인기를 크게 누리면서 아예 일본에 정착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점점 더 아주 활발한 연주 무대를 볼 수 없어 아쉽다. 당시 압도적 호평을 받은 연주임에도, 실전이란,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하시기에 충분한 영상이다.)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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