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38. 6월에 다가오는 감각의 풍경 (상)

블랙소스
202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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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6월이 시작되었다. 상승과 하강의 연간 사이클을 가정하는 경우 이번 달 말이면 한 해의 정점이 지나간 실질적 시기가 도래하는 시점이지 싶다. 왜냐하면 수치만으로는 좀 이른 감이 있어도, 일로 보면 공식적으로, 특히 일명 대다수 '조직원'에게 한해의 농사는 12월 말이 아니라 10~11월 사이 마무리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남은 12월은 뭐랄까, 달력으로야 같은 해지만, 지내는 결이 상당히 다를 정도로 일상이 차분히 가라앉는 시간의 느낌이 강하다. 송년회나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는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그러한 차분함을 더하는 듯하다. 


이처럼 달력이 부여하는 리듬이란 상당히 인위적이기에 부자연스러울뿐더러 부담이 되기까지도 하므로, 한해 중의 전환점을 앞뒤로 할 즈음에는 노동요라도 흥얼거리고 싶은 기분도 자꾸 든다. 뜨겁고 정신없는 시기에 규칙적인 리듬의 지속감은 중심을 잡아주고 버티게 하는 힘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몸이 그럴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한두 차례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없지는 않은 듯한데, 개인적으로는 노래에 상당히 allergic하며, 이는 긍정적 의미에서나 부정적 의미에서나 어느 쪽으로든 그렇다. 다만, 의도한 바는 아닌 본능적 취향이 그러할 뿐이다. 그래서일까, 가사 없는 뱃노래에 유독 더 끌리는 시즌이다. 


노동요라 하면 일하는 가운데 부르는, 특히 토속적이고 서민적인 유산의 개념이 강하지만, 이 말에서 어째 원래 의미보다는 배의 노가 움직이는 모습의 또 다른 '노동'이 연상되기도 한다. 우연찮게도, 6월의 표제로 '뱃노래'가 딸린 작품이 실제로도 작곡되었는데, 무려 1876년, 그러니까 거의 150년 전에 말이다. 


다름 아닌, 차이코프스키의 「사계」(Four Seasons) 중 6월, '뱃노래'(Barcarolle)다.  「사계」라는 이름, 고유명사로서는 유명한 프리미엄 호텔 체인 브랜드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음악으로는 안토니오 비발디의 그 (아마도 고전 음악 중에서는 가장) 대중적일 모음곡이 일착으로 스쳐 간다. 게다가 간명하게 비발디의 이 작품은 《봄>, 《여름>, 《가을> 및 《겨울>처럼 계절의 이름을 액면 그대로 곡명으로 사용했다. 마치 자연의 변화를 음악의 캔버스에 옮겨 담은 그 생생함 덕분인지, '클알못'에게도 아주 친숙한 곡 아닌가!  


하지만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는 구조가 좀 다르다. 한 해를 이름과 달리 네 계절보다는, 월별로 나누어서 그 각각에 해당하는 서정적인 소품들, 곧 12곡을 배치했다. 이 중 6월에 해당하는 곡이 뱃노래다. 곡의 느낌은, 원 의미의 노동요라고 하기에는 격렬하기보다는 고요하고 차분한 평화로움으로 대표되므로, 또 다른 '노동'의 의미를 부여하게 된 셈이다. 우리말로 옮긴 '뱃노래'의 원어인 바르카롤은, 배 또는 뱃사공의 노래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에서 파생된 프랑스어다. 아무래도 프랑스를 거쳐 (특히 기악곡으로서는) 확산된 장르라서 이런 이름으로 정착된 듯하다. 곡의 분위기를 잘 살린 임윤찬의 연주로 잠깐 들어보자. 


고전음악사에서 아마 뱃노래라는 개념으로 범주화되는 작품은, 이 짧은 글 토막에 다 담기에는 무척 많을 터라, 피아노 곡 가운데서도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역시 말 그대로, '뱃노래' 하나만 꼽자면, 단연, 쇼팽의  뱃노래(역시, Barcarolle) F# 장조 Op. 60이다. 말로는 이미 많은 설명이나 해설이 접근 가능하게 나와 있으니,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 이 경우는 불여일청이라고(진부하지만 역시 달리 표현하는 수가 딱히 없다), 일단 들어보시기 바란다. 


어떤가. 곡 규모 자체가 달라서, 맞비교야 어렵다 할지라도, 차이코프스키의 뱃노래에 비하면, 한층 더 서정적이고 내성적이다. 단순한 음악적 풍경화 이상으로, 내면에서 흔들리는 무엇이 계속되면서 결국은 저 깊은 심연의 호수를 건드린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구사해야 하는 기교적 도전 또한 만만찮으며, 그 이면에는 쇼팽 특유의 노련한 (어쩌면 아인슈타인을 능가하는) '시공간'적 감각이 녹아 있는 듯하다. 이런 유난한 감성을 대체 어느 작품에서 (심지어 쇼팽의 다른 곡들 가운데서조차) 찾아볼 수 있겠는가! 


쇼팽을 워낙 좋아하니, 전작을 다 공부하고 쳐보고 싶음에도, 이 곡만큼은 상당히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서, 아직 제대로 연습하거나 연주해본 적은 없다. 보편적이고 일률적인 곡 해설보다는, 직접 손으로 표현해보면서 느낀 경험담을 당장은 풀 수 없고 주관적 감상기에 그쳐 아쉽지만, 언젠가는 이에 대해서는 꼭 업데이트해 보리라고 (약속보다는 다짐하면서) 아쉬움은, 배를 소재로 한 피아노 작품 하나 더 소개하면서 맺고자 한다. 


아무래도 쇼팽처럼 내면의 흔들림을 끌어내는 방식과 대조되는 라벨(Ravel)의 작품을 지나칠 수는 없다. 흔히 드뷔시와 더불어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대명사로 알려진 라벨을, 엄밀히 봤을 때는, '인상주의'란 한마디로 재단하기에는 한계가 크다. 라벨은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만큼, 올해가 너무 많이 지나기 전에 기회가 될 때 전반적으로 조금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그 예고 격으로 여기서는 주제가 주제인 만큼 《작은 조각배(Une barque sur l’océan)》를 잠깐 살펴보자. 라벨의 「거울」(Miroirs) 모음곡 중 제3곡으로, 음향적이고 회화적인 색채를 실험하는 현대성을 계시하는 듯하다. 분명히 소리를 듣고 있음에도, (마치 이 디지털 문명이 도래하기 한참 전에 이미 라벨이 픽셀의 개념이라도 체화한 양) 섬세하고 투명한 고해상도 화면을 체험하는 착각에 빠진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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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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