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39. 6월에 다가오는 감각의 풍경 (하)

블랙소스
20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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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뱃노래가 호수의 잔물결처럼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간다면, 라벨의 《작은 조각배》는 정반대의 벡터를 그린다.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작은 배(une barque)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며 위태롭게 흔들린다. 1905년, 라벨이 서른 살에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 「거울」(Miroirs)의 세 번째 곡인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무언가를 '반사'한다. 그런데 이 거울이 비추는 대상이란 단순한 바다 풍경이 아니다.


라벨이 이 곡을 작곡한 1905년은 특히 물리학자적 사관으로는 독특한 해였다. 아인슈타인 혼자서, 광전 효과로 빛의 입자성을 입증하며 양자론의 문을 활짝 연 논문을 비롯해 물리학사에 획을 그은 결과를 줄줄이 발표한 일명 '기적의 해'였고, 불과 그로부터 5년 전 막스 플랑크가 제시한 양자가설이 본격적으로 물리학계를 뒤흔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연속적이라고 믿었던 세계가 실은 불연속적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혁명적 발견. 흥미롭게도 라벨의 음악은 마치 이 시대 정신을 음향으로 번역한 듯하다.


《작은 조각배》를 들어보면, 첫 음부터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쇼팽이 선율과 화성의 유기적 흐름으로 감정의 물결을 만들어냈다면, 라벨은 음 하나하나를 독립적인 '입자'처럼 배치한다. 빠른 아르페지오는 연속적 파도처럼 들리지만, 자세히 들으면 각각의 음이 정확한 위치에서 명료하게 울린다. 마치 고해상도 모니터의 픽셀들이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이 연상된다. 인상주의에 속하는 분류를 따르면서도 스위스의 시계 장인도 서럽게 할 치밀함과 정교함으로 인해 또 달리 구별되어야 할 라벨의 음악은 악보와 함께 감상하는 묘미가 특히 남다르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작곡가가 다 나름의 이유로 위대하지만, 라벨처럼 소리의 장인이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인물은 또 찾기 어렵기도 하다.



이런 '픽셀화된' 음향 구조는 단순한 기법의 문제가 아니다. 19세기 낭만주의가 추구했던 주관적 감정의 표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객관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다. 라벨은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감각을 '설계'한다. 오른손의 빠른 패시지와 왼손의 넓은 도약이 만들어내는 것은 바다의 '느낌'이 아니라 바다의 '데이터'다. 파도의 높이, 주기, 간섭 패턴까지도 음악적 알고리듬으로 변환된 듯하다.


특히 인상적인 양상은 이 곡의 다이내믹 처리다. pp에서 ff까지의 급격한 변화는 디지털 신호처럼 즉각적이고 정확하다. 19세기 음악의 crescendo나 diminuendo가 아날로그적 연속성을 지녔다면, 라벨의 다이내믹은 discrete한 레벨들 사이를 오간다. 마치 비트 깊이가 다른 오디오 파일들을 듣는 것 같다고 할까.


물론 라벨이 컴퓨터나 디지털을 알았을 리는 없다. 하지만 시대정신이란 게 그런 것 아닐까. 양자물리학이 물질의 본질을 재정의하던 그 시기에, 라벨은 음악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있었다. Impressionism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지기엔 너무나 정밀하고 계산적인 라벨의 작품들은, 오히려 100년 후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시대를 계시하기라도 한 듯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초현대적 접근에도 불구하고 《작은 조각배》가 여전히 '배'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여전히 망망대해 위의 작은 존재다. 다만 19세기의 배가 노를 저어 나아갔다면, 20세기의 배는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표류한다. 노동에서 알고리듬으로, 의지에서 확률로. 어쩌면 이것이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진짜 전환점이었을지도. 


6월의 초순, 창밖의 햇살은 제법 뜨겁고 여전히 아날로그적이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화면은 분명히 디지털이다. 라벨의 음악을 들으며 문득 생각한다. 우리는 과연 노를 젓고 있는가, 아니면 표류하고 있는가. 어쩌면 그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야 더 적절할까? 확실한 사실은 라벨이 120년 전에 그려낸 이 고해상도 바다 풍경이 오늘날 들어도 전혀 낡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욱 선명하고, 더욱 현재적이다!


돌이켜보면,  뱃노래 같은 표제가 소재인 배나 배경인 물을 그리려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시대의 리듬이자,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을 표방하는 듯하다. 쇼팽이 손끝의 유연함으로 감정을 길어 올렸다면, 라벨은 구조와 흐름 속에서 감각의 메커니즘을 새로 썼다. 하나는 내면의 물결을, 다른 하나는 세계의 짜임을 연주한다. 분명히 다른 궤도를 그리는 두 곡이지만, 어쩌면 그 울림은 하나같이 우리 각자의 '지금'일지도 모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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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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