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은 긴 설명보다는 실제 목격하고는 충격에 빠져 직촬하게 된 이미지부터 하나 보자.

우리나라 대표 기업 중 한 곳의 임원이 제법 큰 행사에서 발표한 내용의 결어부다. 전하려는 의도는 어느 정도 괜찮아 보이지만, 그 방식이 꼭 이래야 했을까? 이런 의문이 들었다. 본 꼭지의 제목을 너무 적나라하게 적어서 이미 눈치를 챈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 내용은 뭔가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은가? (내용 외에도 저 정도 셀럽의 이름 표기마저 이상한데, 한국어의 외국계 고유명사 처리와 관련해서는 필자가 연재하는 다른 꼭지, 번역을 주제로 한 글들을 참고하시기를.)
혹시 몰라서 간단한 조사를 해봤지만, 역시나였다. 아인슈타인이 저렇게 말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고, 무엇보다도 과학기술의 발전상을 돌아보면, 역사적으로도 저런 언급을 했을 리 만무할 확률이 상당히 높다. 차라리 같이 프린스턴 고등과학원(Institute for Advanced Study, 잠깐 토막 상식인데, 기초 분야 아닌 커뮤니티에서는 상당히 혼동하는 부분으로, 프린스턴 대학교에 속한 조직이 아니다)에서 지낸 폰 노이만과 컴퓨터가 어떻게 발전할지를 논했다고 하면 조금 더 신빙성이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힌트를 (본 연재에서는 팩트 나열은 지양한다고 했으므로) 살짝만 남기면, 아인슈타인은 1955년에 세상을 떠났다. 물론, 이 시대에 살아 있었다면, 어떤 어록을 남겼을지 참 궁금해지는 인물 중 한 명이기는 하지만.
컴퓨터도 아인슈타인도 우리 관념 속에서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저런 mis-quotation이랄까 mis-attribution도 무심코 넘기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니 아무리 바늘 구멍을 뚫었을 위치에 있더라도 실수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 위치의 무게감이나 여파를 고려하면 굳이 불확실한 출처를 통해 메시지의 권위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했어야 하나도 싶다. 그냥 기존 관념에 부합하는 프레임 속에서 이런 언사가 쉽게 흡수되는 일은 비판적 사고를 중시하는 과학 정신에는 어긋나지 싶다. 이런 경우를 두고 사회에서 과학적 사고가 잘 기능하지 못한다고 표현하고는 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과학적 사고’란 말 자체부터 어렵다는 반응도 많이 목격되기에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아직도 갈 길이 참 먼 듯하다.
과학 커뮤니케이션만 유독 어렵고 그러한 난점에 봉착할까? 이유나 원인, 경위는 상당히 다양한데, 결과로 볼 때 정보의 잘못된 확산이나 유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관찰되는 듯하며, 음악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사람이 스토리(성)을 좋아하는 본성(?)을 두고 뭐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단순하고 자극적인 데 더 끌리기 쉽다는 한계는 서글픔과 아쉬움을 남긴다.
이처럼 꼭 가짜 ‘뉴스‘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가짜라고 꼭 말하기 모호할지 몰라도, 적어도 originality를 왜곡하는 현상은 의외로 많다. 대표적으로 음악계에서는 작품명을 둘러싸고 흔히 나타나는 특징인데, 작품의 인상이나 의도,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사실은 더 단순하게) 전달할 목적으로 부제가 달리기도 한다. 이 중 많은 경우, 출판사의 영리성이나 흥행성으로 인한 영향도 포함되는데, 부제는 (적어도 원 작곡가가 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작품이 전할 상상과 가능성의 범위를 그만큼 제한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함에도 음악사에서 작곡가는 의도하거나 생각하지도 않아서 전혀 붙이지 않은 부제가 달린, 게다가 그렇게 해서 꽤 유명해진 작품이 수두룩하다.
최근에 뱃노래 이야기를 꺼냈으니, 배에 얽힌 부제 이야기부터 해볼까?
부제로 달린 표제만 보면 배와 무슨 관계인가 싶은 작품 하나가 정말 설명이 필요 없이 유명한, 바로 ‘월광’ 소나타다. 영어로도 <Moonlight Sonata>라 흔히 알려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op. 27-2, C# 단조다. 잠깐 여담이지만, 한국어로 드뷔시의 작품은 (소나타는 아니며, 드뷔시를 다룰 적당한 기회에 다시 자세히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달빛‘이라고 하는데, 이 베토벤 소나타는 연유는 몰라도 (그냥 관행의 고착 아닌가 싶은데) 꼭 ‘월광’이라고 하지, 우리말로 부르지는 않는다. 이 부제는 베토벤이 (어쩌면 당연하게도) 붙이지 않았다. 실제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피아노사에서 신약 성경에 비할 만큼 끝도 모를 여정을 연주자에게 요하는데(전공생들 말로는 애증의 관계라고들 한다), 이들 가운데 베토벤이 직접 부제를 (심지어 악장마다) 붙인 작품은 엄밀하게는 단 하나로, 26번, op. 81a, E♭장조, “고별(Les Adieux)”이다(하지만 출판사의 프랑스어 표기에는 반대했다고 전해짐).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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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긴 설명보다는 실제 목격하고는 충격에 빠져 직촬하게 된 이미지부터 하나 보자.
우리나라 대표 기업 중 한 곳의 임원이 제법 큰 행사에서 발표한 내용의 결어부다. 전하려는 의도는 어느 정도 괜찮아 보이지만, 그 방식이 꼭 이래야 했을까? 이런 의문이 들었다. 본 꼭지의 제목을 너무 적나라하게 적어서 이미 눈치를 챈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 내용은 뭔가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은가? (내용 외에도 저 정도 셀럽의 이름 표기마저 이상한데, 한국어의 외국계 고유명사 처리와 관련해서는 필자가 연재하는 다른 꼭지, 번역을 주제로 한 글들을 참고하시기를.)
혹시 몰라서 간단한 조사를 해봤지만, 역시나였다. 아인슈타인이 저렇게 말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고, 무엇보다도 과학기술의 발전상을 돌아보면, 역사적으로도 저런 언급을 했을 리 만무할 확률이 상당히 높다. 차라리 같이 프린스턴 고등과학원(Institute for Advanced Study, 잠깐 토막 상식인데, 기초 분야 아닌 커뮤니티에서는 상당히 혼동하는 부분으로, 프린스턴 대학교에 속한 조직이 아니다)에서 지낸 폰 노이만과 컴퓨터가 어떻게 발전할지를 논했다고 하면 조금 더 신빙성이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힌트를 (본 연재에서는 팩트 나열은 지양한다고 했으므로) 살짝만 남기면, 아인슈타인은 1955년에 세상을 떠났다. 물론, 이 시대에 살아 있었다면, 어떤 어록을 남겼을지 참 궁금해지는 인물 중 한 명이기는 하지만.
컴퓨터도 아인슈타인도 우리 관념 속에서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저런 mis-quotation이랄까 mis-attribution도 무심코 넘기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니 아무리 바늘 구멍을 뚫었을 위치에 있더라도 실수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 위치의 무게감이나 여파를 고려하면 굳이 불확실한 출처를 통해 메시지의 권위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했어야 하나도 싶다. 그냥 기존 관념에 부합하는 프레임 속에서 이런 언사가 쉽게 흡수되는 일은 비판적 사고를 중시하는 과학 정신에는 어긋나지 싶다. 이런 경우를 두고 사회에서 과학적 사고가 잘 기능하지 못한다고 표현하고는 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과학적 사고’란 말 자체부터 어렵다는 반응도 많이 목격되기에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아직도 갈 길이 참 먼 듯하다.
과학 커뮤니케이션만 유독 어렵고 그러한 난점에 봉착할까? 이유나 원인, 경위는 상당히 다양한데, 결과로 볼 때 정보의 잘못된 확산이나 유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관찰되는 듯하며, 음악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사람이 스토리(성)을 좋아하는 본성(?)을 두고 뭐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단순하고 자극적인 데 더 끌리기 쉽다는 한계는 서글픔과 아쉬움을 남긴다.
이처럼 꼭 가짜 ‘뉴스‘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가짜라고 꼭 말하기 모호할지 몰라도, 적어도 originality를 왜곡하는 현상은 의외로 많다. 대표적으로 음악계에서는 작품명을 둘러싸고 흔히 나타나는 특징인데, 작품의 인상이나 의도,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사실은 더 단순하게) 전달할 목적으로 부제가 달리기도 한다. 이 중 많은 경우, 출판사의 영리성이나 흥행성으로 인한 영향도 포함되는데, 부제는 (적어도 원 작곡가가 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작품이 전할 상상과 가능성의 범위를 그만큼 제한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함에도 음악사에서 작곡가는 의도하거나 생각하지도 않아서 전혀 붙이지 않은 부제가 달린, 게다가 그렇게 해서 꽤 유명해진 작품이 수두룩하다.
최근에 뱃노래 이야기를 꺼냈으니, 배에 얽힌 부제 이야기부터 해볼까?
부제로 달린 표제만 보면 배와 무슨 관계인가 싶은 작품 하나가 정말 설명이 필요 없이 유명한, 바로 ‘월광’ 소나타다. 영어로도 <Moonlight Sonata>라 흔히 알려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op. 27-2, C# 단조다. 잠깐 여담이지만, 한국어로 드뷔시의 작품은 (소나타는 아니며, 드뷔시를 다룰 적당한 기회에 다시 자세히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달빛‘이라고 하는데, 이 베토벤 소나타는 연유는 몰라도 (그냥 관행의 고착 아닌가 싶은데) 꼭 ‘월광’이라고 하지, 우리말로 부르지는 않는다. 이 부제는 베토벤이 (어쩌면 당연하게도) 붙이지 않았다. 실제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피아노사에서 신약 성경에 비할 만큼 끝도 모를 여정을 연주자에게 요하는데(전공생들 말로는 애증의 관계라고들 한다), 이들 가운데 베토벤이 직접 부제를 (심지어 악장마다) 붙인 작품은 엄밀하게는 단 하나로, 26번, op. 81a, E♭장조, “고별(Les Adieux)”이다(하지만 출판사의 프랑스어 표기에는 반대했다고 전해짐).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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