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41. 아인슈타인이 컴퓨터를 얼마나 안다고? (중)

블랙소스
2025-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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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느낌이나 취지가 잘 전달되는 메시지 자체면 그만이지, 뭐 그렇게 까탈스러울 필요가 있냐는 반문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항상 핵심이 중요하니까. 유의미하거나 재미있으면 된 거 아니냐는! 하지만, 그 정도로 그치면 정말 다행일지 몰라도, 꼭 그렇지 못하다. 어느 정도로 왜곡이나 와전이 심해지는지를 조금 더 따져보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이야기를 했으니, 이들의 비원조 부제의 세계로 더 들어가보자.


그러니까, 26번 소나타 하나 외에는 작곡가가 붙인 부제가 아니라고 했으니, 월광 소나타를 포함해 일명 3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라고 하는 '비창'(8번), '열정'(23)도 역시 베토벤의 명명은 아니다. 21번 소나타 '발트슈타인'도 굳이 4대 소나타를 꼽으라 하면 그 나머지 하나로 들어갈 정도로 유명하지만 역시 작곡가의 작명으로 달린 부제는 아니다. (편의상 관행에 따라 표현을 이렇게 하지만 ‘n대’와 같은 뽑기는 개인적으로는 비호감이다.) 그래도 '발트슈타인'과 같은 인명이 부제라면 작품의 분위기나 이미지가 (잘못) 고착화될 경향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중립적이라 해야 할까?


월광 소나타로 돌아가보자. 1악장을 접한 평론가들의 손을 거치면서 달빛이 유려하게 비치는 호수 위의 조각배 같다는 묘사가 등장하면서 그런 부제가 탄생했다고 보면 되겠다. 아무래도 추상적인 작품임에도, 대중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친근한 서사나 구체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는 시도인데 작곡가의 의도와는 별개다. 그러함에도 결국 대중은 이렇게 형성된 상에서 잘 벗어나기 어렵다. 인지도와 접근성을 높이는 데 확연히 효과를 보기에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기도 하다. 예술의 시장성 담론이 대두되는 지점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중 베토벤이 직접 부제를 달지는 않았더라도, 수용한 경우는 더러 있다.)


이 소나타를 대뜸 먼저 예시로 꼽은 이유 하나는, '월광'이 아닌, 베토벤이 별도로 타이틀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다소 밋밋하지만, 중요한 해석의 실마리가 된다. 바로 "Sonata quasi una fantasia"다. 소나타를 소나타라고 한 게 싱거울지 몰라도, 이 작품의 첫대목을 보면, 아니 1악장을 다 보면 적어도 소나타가 맞기는 맞나 싶은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무척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시도임에도 엄연히 소나타임을 명시하면서 환상곡 풍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어떤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은 평화로운 분위기란 작곡가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고, 오히려 당시의 베토벤을 둘러싼 상황 논리에 따르면 굉장히 어둡거나 죽음과 관련된 비통한 분위기를 언급하는 평이 더 타당해 보인다. 실제로 이런 평에는 '거대한 무덤', '유령', '애도'와 같은 키워드가 보인다.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 하나는 바로 이 작품의 자필 악보다. 한편에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1막에서 주인공이 기사장을 죽이는 대목의 스케치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그 반주 음형이 바로 이 월광 소나타의 제1악장 전체를 도배한 셋잇단음표 음형과 동일하다(물론 외적 음형만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최근 연구 문헌에서는 에올리언 하프의 소리에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추정도 하고 있지만, 아무튼 어느 쪽이든 달빛의 호젓하거나 낭만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아예 무관하다. 이런 여파로, 1악장에서는 특히 템포 설정도 논란이다. 달빛 이미지로 인해 대개 느린 연주들을 많이 듣게 되는데, 베토벤이 붙인 타이틀을 상기하면, 꼭 그래야만 하냐는 식의 해석(즉, 비교적 빠른)도 더러는 존재한다. (기회가 되면 이 월광 소나타는 심층 분석을 두세 차례 나누어서 해봐야 할 듯하다. 아주 좋아하는 곡은 아니지만, 구조('환상곡' 풍이라고 했듯)나 표현에서 흥미로운 면들도 많고, 어릴 적 음악시간 '실기' 시험에서 전 악장을 연주했던 경험 덕분에 상대적으로 체화도가 높은 작품이기도 해서다.)


이쯤이면, 비원조 부제의 부작용이 심각하게 다가오는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그래도 한 작품이나마 부제가 원 작곡가에게 귀속되지만, 정말 하나도 예외가 없는 작품의 모음으로는 쇼팽 연습곡을 꼽아야겠다. (물론, 전체 작품 길이로 보면 소나타가 연습곡보다 훨씬 길기에, 연습곡에 굳이 부제가 달려야 하나 싶은 생각도 제법 든다. 또 쇼팽의 성정에도 별로 안 어울리는 느낌이기도 하고. 참고로, 전곡 녹음 시 CD 기준으로 베토벤 소나타는 8~9장, 쇼팽 연습곡은 1장이면 충분한 정도의 전작 규모 차이가 난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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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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