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한 (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 ESC 회원)
#1. 논문이 과학의 꽃인 이유는 과학의 본질이 ‘커뮤니케이션(소통)’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발견과 깨달음을 자기 안에 가둬두지 않는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고, 지식의 생산과 공유라는 완전한 과정을 통해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게 된다. 달리 말해, 모든 성공한 과학자들은 모두 성공한 과학(자) 커뮤니케이터들이다.
#2. 그러나 과학자들이 소통해야 할 대상은 동료 연구자로 국한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과학자들이 자기 돈으로 연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자신에게 연구비를 제공한 국민들에게 자신의 연구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분야에 대해 설명할 ‘의무’를 지닌다. 기초과학이 즐겁고, 의미 있고, 궁극적으로 유용할 수 있는 것임을 인식하고 동의하는 국민들이 하나도 없다면 정부가 기초과학에 수조원씩 투자할 수 있겠는가. 비과학적, 혹은 반과학적인 세력이 커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오늘날의 미국이 잘 보여주고 있다.
#3. 나도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고 있지만, 연구자가 본분인지라 제한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다. (정말 많은 섭외 요청들을 거절하고 있다. 나에게 섭외가 몰리는 건 과학자 커뮤니케이터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생계를 걸고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분들께 매우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왜냐면 이들의 활동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과학 문화가 확산하고 성숙하며, 더 이상 과학이 단기적 경제성장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은 기초과학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에서 나온다. 나는 궤도 님을 딱 한번 만난 적 있는데, 그 때 이 분이 본인이 연구자의 길을 걷는 것보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행복하게 연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이타적인 마음으로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고, 존경하게 되었다. 나도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서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사생활 노출은 정말 부담스럽다), 내 제자들과 생물학 분야의 후학들, 특히 기초연구를 할 다음 세대가 더 성숙한 과학 문화의 지지를 받으며 연구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 크다.
#4.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연구한 한국의 엘리트 과학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서구에서 ‘outreach’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서구의 과학자들은 국민에 대해 소통할 ‘의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중간중간 점검 받을 때가 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의무의 수행이 전혀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승진이나 포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가 되고 연구자로서의 평판만 나빠질 뿐이다. 나는 이런 과학계의 분위기가 후진적이라고 생각한다.
#5. 당장 나 자신을 돌아봐도 내가 논문을 보고 과학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과학책, 과학잡지, 과학 강연이 진화생물학자의 길로 나를 이끌었다. 생각해보면 내 현재 전공분야인 ‘Evo-Devo’의 전문 분야로 이끈 데에는 션 캐럴(Sean B. Carroll)의 <이보디보, 생명의 블랙박스를 열다>라는 책의 공이 컸다. 오랫동안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에서 연구를 진행했던 캐럴 교수는 <네이처>에 많은 논문을 발표한 분야 최고의 연구자였지만,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저술과 각종 방송에도 출연했다. 돌이켜보면, 찰스 다윈도 과학 커뮤니케이터였다. 사람들이 진화론을 접하는 것은 월러스와 다윈이 공동 저술한 자연선택 이론에 대한 논문이 아니라 다윈의 <종의 기원>이다. 만약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지 않았다면, 진화생물학의 발전과 영향력은 현재에 비해 훨씬 미미했을 것이다.
#6.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런 모델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대신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한 연구자들에 대한 조롱이 과학계 내에 만연해있다. 연구도 못하면서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는. 하지만 문제 제기는 그 반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왜 연구를 잘하는 분들이 커뮤니케이션을 안 할까? 왜 우리나라에는 션 캐럴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훌륭한 연구자들이 많지만, 아직도 많은 청소년들이 번역서를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꾸는 것은 ‘둘 다’ 잘하는 사람이 잘 없기 때문이다. 연구를 잘하시는 분들이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면, 넓은 식견과 깊은 통찰,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한 정확성, 그리고 명성과 신뢰에 힘입어 훨씬 크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실 텐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30년 연구인생을 통찰해서 <사람이 벌레라니>를 출간하신 나의 스승님의 행보가 존경스럽다.)
#7. 그런 문제 의식 속에서 나 자신이 지속적으로 저명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동시에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대중 과학서적도 쓰는 그런 과학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다른 동지들과 함께 EBS <취미는 과학>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벌써 50회를 넘긴 <취미는 과학>을 통해, 자문 역할을 하는 과학자와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대중들에게 생소하지만 연구도 잘하시면서 말씀도 잘하시는 분들을 국민들에게 많이 소개드려 왔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출연해주신 분들 또한 사실 본인에게 별로 도움이 되기 보다는 오히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하는 상황임에도 ‘소통’의 중요성을 이해하시고 동참하신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취미는 과학>을 통해 소개된 분들이 다른 곳에서도 많이 초청받아 과학 문화 확산과 심화에 기여하시길 기대하는 마음도 있어 죄송스럽기도 하다 ^^;)
#8. 과학을 단기적 경제성장의 도구라는 굴레에서 벗겨내는 일은 결국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야한다. 그리고 과학자와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모두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과학에 대한 사랑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는 사람들끼리 분열의 언어를 멈추고 서로 도와야 한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과학 커뮤니케이터들만의 의무나 역할이 아니다. 과학자들에게도 그 의무가 지어져 있지만 제도적으로 방기가 용인되고 있을 뿐이다. 과학자들은 커뮤니케이터들과 함께 직접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거나, 그럴 능력이나 여력이 안 된다면 최전선에서 대중과 만나고 있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만약 방송이든 영향력 있는 유튜브든 잘못된 정보가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발견한다면, 제작진 측에 연락해서 오류 내용을 알려주고 시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일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본인이 직접 나서서 잘못된 정보나 지식을 수정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9. 내가 <
인간은 왜 인간이고 초파리는 왜 초파리인가(인인초초)>를 쓰게 된 과정이 그러했다. 당시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한 잡지에서 유전학과 관련된 내용이 논란이 되었고, 출판사에서는 방어적으로 대처하는 대신에 전향적으로 나에게 연락하여 유전학에 대한 연재를 부탁했다. (거기에 이번에 논란이 된 내용도 담겨있다.) 그리고 그 연재를 묶어서 현대 유전학에 대한 개론서라고 할 수 있는 <인인초초>가 나오게 된 것이다. 만약 전문가들이 본인의 전문 분야에서 여러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내용에 문제가 많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이 사회가 해당 분야 전문가에 대한 더 적극적인 소통 참여 활동(저술, 강연, 출연) 등을 요청한다고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그게 사회가 지적으로 발전하고 성숙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10. 틀린 말을 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용기를 내어 세상에 말을 하는 것, 그것이 논문과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공유하는 소통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존경하는 과학 커뮤니케이션 선배님이신 김범준 교수님께 배운 것은, 모든 것에 대해 완벽히 알고 말해야 하는 태도가 아니라, 정확성에 최선을 다하되 틀린 것이 있다면 누군가 내가 틀린 것을 시정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고, 그 시정 당함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11. 남을 꾸짖고 깎아내리기는 쉽지만, 그런 모욕과 조롱을 견디며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어 나가기는 어렵다. 나는 그 어려운 길을 가려는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본 글은 이대한 님이 최근 과학커뮤니케이터 논란에 대해서 페이스북에 작성한 글로, 허락을 받고 ESC 숲사이에 소개합니다.
이대한 (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 ESC 회원)
#6.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런 모델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대신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한 연구자들에 대한 조롱이 과학계 내에 만연해있다. 연구도 못하면서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는. 하지만 문제 제기는 그 반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왜 연구를 잘하는 분들이 커뮤니케이션을 안 할까? 왜 우리나라에는 션 캐럴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훌륭한 연구자들이 많지만, 아직도 많은 청소년들이 번역서를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꾸는 것은 ‘둘 다’ 잘하는 사람이 잘 없기 때문이다. 연구를 잘하시는 분들이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면, 넓은 식견과 깊은 통찰,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한 정확성, 그리고 명성과 신뢰에 힘입어 훨씬 크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실 텐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30년 연구인생을 통찰해서 <사람이 벌레라니>를 출간하신 나의 스승님의 행보가 존경스럽다.)
본 글은 이대한 님이 최근 과학커뮤니케이터 논란에 대해서 페이스북에 작성한 글로, 허락을 받고 ESC 숲사이에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