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42. 쇼팽 국제 콩쿠르 현지(바르샤바) 및 온라인(한국) 감·단상 [1]

블랙소스
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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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반이 조금 넘었다. 바르샤바의 시간이다. 점심을 먹기에는 무척 출출해진 시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간에 대회가 열리는 공연장 안에서 30분만 쉬는데 그 안에 뭘 먹기도 안 먹기도 참 어정쩡하기 때문이다. 이 정말 유명하고도 유명한 콩쿠르 주최 측에서 그렇게 시간표를 정한 걸 알고 갔음에도 경험해 보면 그 리듬이 무척 낯선 시간표였다. 


2015년 당시에는 산업안전 분야 연구를 하던 시기는 아니었더라 떠올릴 수 없는 생각이었는데, 요즘 보면, 이 폴란드란 나라도 산업안전 관계 법령에 두 시간 노동(심사위원 입장) 후 무조건 15분 휴식이 준수되어야 해서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간표지만 엄밀히는 약간 그보다는 유연하다. 참고로, 한국에서 보통은 직장에서 8시간 근무 중 1시간이 중간 점심 시간인데 이것이 다 이유가 있었는 줄 새삼 꽤 늦게서야 알았다. 그냥 통념이라 생각했는데, 두 시간 작업에는 15분이 의무적으로 휴식으로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히 자리에 앉아서 일하는 다수 근무자들 사이에서는 이 기준이 대개 4시간에 30분을 매칭해서 묶고(즉, 2시간 + 15분 + 15분 + 2시간), 8시간이 되는 경우에는 이를 2배한 구조(4시간 + 30분 + 30분 + 4시간)가 되는 셈이다. 


대회는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30분 휴식 후 또 두 시간, 이후 두 시간 반 휴식 후 또 두 시간(이나 +30분), 30분 쉬고 또 두 시간. 쇼팽 작품만 하루에 8시간이나 그 이상을 들어야 하는 강행군이다. 다시 정리하면, 1차 예선인 경우 각 출전자가 30분짜리 프로그램을 무대에 올리므로, 두 시간이면 네 명의 출전자를 청중이나 심사위원은 맞이하게 된다. 즉, 가령, 이런 시간표다: 


10:00 ~ 12:00 경연 

12:00 ~ 12:30 휴식

12:30 ~ 14:30 경연 (이상까지 편의상 morning session)

14:30 ~ 17:00 휴식 (보통 이 때를 이용해 점심) 

17:00 ~ 19:30 경연

19:30 ~ 20:00 휴식

20:00 ~ 22:00 경연 (이거 저녁을 밤 10시 넘어 먹으라는 건가) 


중간중간 어딘가 그날 출전자들 상황 따라 +/-30분 정도 시간이나 순서는 바뀔 수 있는데, 아무튼 이에 준하는 시간표를 그대로 따라 실천해 보면 참으로 고달픈 행복감이 밀려온다. 사실 필자야 아무 의무 없이 즐기러 간 처지지만, 심사위원들은 뭔 고생이란 말인가. 참가자들의 커리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결정이 각자의 평가나 판단에 달려 있으니. 게다가 이 한 대회에서만도 저런 비슷한 일정을 몇 번을 반복해야 하는지. 1차 예선에선 84명이 경합하기 때문에, 저러한 살인적(?)인 일정에도 하루 16~17명씩 무려 5일이 걸린다. 게다가 1차 예선은 곡 선택의 폭이 크지 않고 어지간해서는 참가자들이 비슷한 곡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아서 더 지루하고도 고단하겠지 싶다. 이는 참가자들간 우열을 가리기가 쉬우면서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글쎄 심사위원급으로 피아노를 알거나 다루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실제로 (몇몇 세션에서는 일부러 심사위원석 뒤에 가까이 앉아 이들을 관찰해보기도 했다) 필자에겐 즐거운 '고역'이었다.


사실 대회 공홈에서는 이 1차 예선 시기가 그냥 'stage 1'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한국 '업계'(?)에선 10월의 본 무대를 예선(제1차, 제2차, 제3차)과 본선(파이널)으로 나누는데, 세월이 흐르는 사이 정보가 많이 유통, 확산되면서 희석되기도 하여, 현재는 과거 제1차 예선이라고 하는 이 stage 1부터를 아예 "본선"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 까닭은 4월에 열리는, (평균적으로) 160명 중 80명을 고르는 preliminary stage를 '예선'으로 간주하는 관점의 영향이다. 뭐가 맞다, 틀리다, 정하기는 중요하지도 않고 판단하기도 어정쩡할 따름이다. 다만, 전통적으로 10월 3주간의 무대가 본격적인 대회 기간으로 간주되는 만큼 그 안에서 위와 같이 구분하는 게 관행적이다(이 시기에 부대행사도 물론 두세 가지 맞물린다.). 이어서 다음 stage로 갈 때마다 50%를 줄인다, 즉 2:1의 경쟁이다. 액면 수치대로라면 결선에는 10명이 남는데, 수상을 하는 6위 안에 못 들더라도 이미 이 파이널리스트가 되었다는 자체가 글로벌 최고군임을 방증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파이널 스테이지로 당연히 1~2명이 더 뽑히기도 한다. 원래 참가자들 실력이 안 되어도 꼭 10명을 다 올리라는 법도 없지만, 이제는 그런 경우보다는 10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참가자들이 쟁쟁한 연주력을 자랑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현재로 돌아와서 보자. 2025년, 드디어 쇼팽 국제 콩쿠르(다시 강조하지만 본 연재는 사실 나열은 각자에게 맡기고 최소화하려는 철학으로 전개되니, 궁금하시면 나무 위키 정도나 무척이나 쉽게 검색되는 대회 공식 사이트를 참고하시면~~)가 개최되었다. 올해, 방금 이야기한 대로 이미 stage 1부터 80명도 초과다. 오늘이 10월 3일인데 공식적 대회 기간은 2일부터지만 경연 시기만으로 보면 엄밀히 오늘부터다(위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부대행사들이 더러 있어서). 정확히 이 글자를 한국에서 타이핑하고 있는 시간보다 바르샤바는 7시간이 느리므로 지금은 바르샤바에서 대회를 즐기고 있다면 점심 식사를 마치고 차 한 잔 곁들인 자리를 정리하고 (여기까지 짬짬 글을 끼적이는 사이 두 시간이 흘렀다!) 슬슬 오후 5시부터 시작하는 저녁 세션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대회장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올해는 현지에 갈 상황이 어찌어찌해도 만들어질 수가 없었던 까닭에 그냥 한국의 어딘가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 단상이라도, 10년 전과 다름없는 상황은 살짝 더 보태어 나눠 보기로 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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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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