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일상사에 매몰되어 바쁘게 지내다 개막한다는 소식이, 수(리물리)학자(나 수학에 관심 있는 대중이나 비수학자)들에게는 필즈 메달 수상자가 누구라는 소식이 코앞에 들리면 그 사이 4년이 흘렀구나 싶은 주기 스케일이 큰 시계 역할을 해 주듯이, 바르샤바에서 5년 간격으로 열리는 쇼팽 국제 콩쿠르 역시 마찬가지다. 무려, 하지만 쏜살같이 5년이 흘렀나(아니 사실 코로나로 지난 대회가 1년 밀려서 6년 간격을 두고 열렸으므로, 사실 올해는 4년이긴 하다), 아니 이번엔 10년이 참 빠르게 흘렀구나 싶다. 왜 10년씩이나일까? 그건 바로 지지난 대회, 즉 10년 전 대회 임팩트가 워낙 컸기도 하지만, 그 현장에 있었기도 해서다. 올해는 여건에 따라서는 바르샤바로 날아갈 틈틈을 계속 엿보았지만 그건 실패했다. 하지만 대회가 열릴 때마다 유튜브의 생중계력은 기술이나 연출, 아이디어 면에서 번번 좋아지는 느낌이라 아쉬움이 약간은 가시기도 한다.
2015년 대회에서 조성진이 워낙 압도적인 연주로 1등을 하는 바람에, 그 다음 (2020년이었어야 하지만, 2021년에 열린) 대회, 사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아주 조마조마한 가운데 그래도 성공적으로 치른 그 대회에서 우승자를 비롯한 참가자들 면면을 조성진의 대회 당시 연주를 떠올리며 대조해봐도, 조성진은 정말 출중했으니, 이번 대회 역시 그 이상의 스타가 탄생할 수 있을까 또한 단연 초미의 관심사다.
조성진의 독보적인 부상은, 어쩌면 쇼팽 콩쿠르의 탄생 연유와 맥을 같이하기도 한다 해야 할까. 요즘에는 콩쿠르라는 형식이 어느 정도 공통적인 친숙한 포맷이 되었지만, 쇼팽 콩쿠르가 처음 열리던 1920년대에서는 무척 생소한 발상이었다. 콩쿠르가 창설된 배경은 여러 가지지만, 그 중에서도 창설자의 훌륭한 생각이 오늘날의 대성공 역사를 쓰게 되었지 싶다. 당시 쇼팽이 활동하던 낭만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쇼팽 음악 자체도 작곡가 사후 한 세기 가까이 흐르면서 존재감이 약해지기도 하고 제자들이나 후대에 쇼팽의 작품을 둘러싼 연주 해석이 분분해지면서 과연 무엇이 정당한 쇼팽인가, 하는 논란이 심해지던 시기, 전 세계에서 젊은 연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쇼팽 연주를 하고 스포츠처럼 경쟁 방식을 도입하면 어느 정도 교통 정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이 대회의 창설자는 생각했다. 이것이 언뜻 폴란드 중심 사고로 비칠지 모르지만, 돌아보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쇼팽 콩쿠르가 진정한 글로벌화 개념을 (의식하지 않았더라도) 실천하는 대회로 발돋움하게 한 결정적 발상이었다.
그러니까 이 대회는 초기나 그 어느 시기 한동안 바르샤바 출신들의 잔치인가 싶었지만, 이러한 창설 정신은 쇼팽 스타일을 어떤 특정한 틀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호흡하면서 더욱 살아나는 쇼팽의 존재를 이 지구인들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로 이어졌다. 즉, 쇼팽의 진정한 해석 전통을 보존하고 전파하는 문화적 사명감에서도 출발했지만 '보존'이라는 것이 꼭 특정한 프레임워크를 의미한다기보다 쇼팽의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해야겠다. 그런데 그 정체성 자체가 다양성과 가능성의 허용이기도 하다. 모든 음악이 그런 잠재력을 지니기는 마찬가지더라도, 전에 한번 쇼팽이 얼마나 입자물리학적 스타일인지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처럼 쇼팽은 유독 더 그러하다. 동시에, 이는 폴란드인들에게는 민족적 정체성의 보존과 확산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만큼, 쇼팽의 작품은, 소위 5인조로 대표되는 국민악파에 넣어도 될 정도가 아닌가 싶게, 민족적이기도 해서다. 마주르카, 폴로네이즈를 위시한 민족적 요소는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폴란드성이랄까, 그 폴리쉬함은 쇼팽 콩쿠르의 경쟁 구도 속에서 굉장한 프리미엄이기도 하다. 이는 쇼팽 콩쿠르에서 종합 시상 외에 최고의 해당 장르 독주에 수여하는 마주르카상, 폴로네이즈상을 특별히 제정한 맥락과도 통한다.
과거에는 마땅하다 싶을 정도로 거의 장르별 특별상이 있었기도 한데, 어쨌든 요즘은 이와 더불어, 소나타상 정도와 당연히 없으면 안 될 듯한 콘체르토상만 남았다. 콘체르토는 파이널 스테이지(그러니까, 이야기한 대로 결선)에서 연주하게 되는 만큼 파이널 연주가 가장 좋으면 콘체르토상을 받게 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종합 1위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중치야 파이널 라운드의 연주가 제일 높긴 하겠지만, 그 이전 라운드의 평가도 모두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도 콘체르토상이 별도로 제정되었을 수 있는데, 이보다 본질적으로 콘체르토는 아무래도 작곡가가 상상하는, 또는 연주자에게 기대하는 그림과 기교를 최대한 집약한 총아기도 해서다(언제 한번 자세히 다루겠지만, 사실 이는 결과로 볼 때 그런 셈이고, 순서로 보면 bottom-up보다는 top-down에 가깝다.). 쇼팽 콘체르토 역시 이런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다양한 독주 작품에 있던 기술적, 음악적 요소요소가 콘체르토 곳곳에서 비치므로! 물론 종합 1등이 콘체르토상(은 물론 다른 특별상)을 같이 거머쥐는 경우도 흔하다. 어디 1등이 괜한 1등인가!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그러게 드물지는 않다. 실제로 바로 지난 대회에서 그렇게 1등상과 콘체르토상이 분리되었다. 그 지난 대회, 즉 올해 기준으로 지지난 대회의 콘체르토상이 수상자가 없다는 면에서 미스터리기는 한데, 이 문제는 한숨 돌리고 따져보기로 하자.
- 계속-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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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나 월드컵도, 일상사에 매몰되어 바쁘게 지내다 개막한다는 소식이, 수(리물리)학자(나 수학에 관심 있는 대중이나 비수학자)들에게는 필즈 메달 수상자가 누구라는 소식이 코앞에 들리면 그 사이 4년이 흘렀구나 싶은 주기 스케일이 큰 시계 역할을 해 주듯이, 바르샤바에서 5년 간격으로 열리는 쇼팽 국제 콩쿠르 역시 마찬가지다. 무려, 하지만 쏜살같이 5년이 흘렀나(아니 사실 코로나로 지난 대회가 1년 밀려서 6년 간격을 두고 열렸으므로, 사실 올해는 4년이긴 하다), 아니 이번엔 10년이 참 빠르게 흘렀구나 싶다. 왜 10년씩이나일까? 그건 바로 지지난 대회, 즉 10년 전 대회 임팩트가 워낙 컸기도 하지만, 그 현장에 있었기도 해서다. 올해는 여건에 따라서는 바르샤바로 날아갈 틈틈을 계속 엿보았지만 그건 실패했다. 하지만 대회가 열릴 때마다 유튜브의 생중계력은 기술이나 연출, 아이디어 면에서 번번 좋아지는 느낌이라 아쉬움이 약간은 가시기도 한다.
2015년 대회에서 조성진이 워낙 압도적인 연주로 1등을 하는 바람에, 그 다음 (2020년이었어야 하지만, 2021년에 열린) 대회, 사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아주 조마조마한 가운데 그래도 성공적으로 치른 그 대회에서 우승자를 비롯한 참가자들 면면을 조성진의 대회 당시 연주를 떠올리며 대조해봐도, 조성진은 정말 출중했으니, 이번 대회 역시 그 이상의 스타가 탄생할 수 있을까 또한 단연 초미의 관심사다.
조성진의 독보적인 부상은, 어쩌면 쇼팽 콩쿠르의 탄생 연유와 맥을 같이하기도 한다 해야 할까. 요즘에는 콩쿠르라는 형식이 어느 정도 공통적인 친숙한 포맷이 되었지만, 쇼팽 콩쿠르가 처음 열리던 1920년대에서는 무척 생소한 발상이었다. 콩쿠르가 창설된 배경은 여러 가지지만, 그 중에서도 창설자의 훌륭한 생각이 오늘날의 대성공 역사를 쓰게 되었지 싶다. 당시 쇼팽이 활동하던 낭만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쇼팽 음악 자체도 작곡가 사후 한 세기 가까이 흐르면서 존재감이 약해지기도 하고 제자들이나 후대에 쇼팽의 작품을 둘러싼 연주 해석이 분분해지면서 과연 무엇이 정당한 쇼팽인가, 하는 논란이 심해지던 시기, 전 세계에서 젊은 연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쇼팽 연주를 하고 스포츠처럼 경쟁 방식을 도입하면 어느 정도 교통 정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이 대회의 창설자는 생각했다. 이것이 언뜻 폴란드 중심 사고로 비칠지 모르지만, 돌아보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쇼팽 콩쿠르가 진정한 글로벌화 개념을 (의식하지 않았더라도) 실천하는 대회로 발돋움하게 한 결정적 발상이었다.
그러니까 이 대회는 초기나 그 어느 시기 한동안 바르샤바 출신들의 잔치인가 싶었지만, 이러한 창설 정신은 쇼팽 스타일을 어떤 특정한 틀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호흡하면서 더욱 살아나는 쇼팽의 존재를 이 지구인들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로 이어졌다. 즉, 쇼팽의 진정한 해석 전통을 보존하고 전파하는 문화적 사명감에서도 출발했지만 '보존'이라는 것이 꼭 특정한 프레임워크를 의미한다기보다 쇼팽의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해야겠다. 그런데 그 정체성 자체가 다양성과 가능성의 허용이기도 하다. 모든 음악이 그런 잠재력을 지니기는 마찬가지더라도, 전에 한번 쇼팽이 얼마나 입자물리학적 스타일인지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처럼 쇼팽은 유독 더 그러하다. 동시에, 이는 폴란드인들에게는 민족적 정체성의 보존과 확산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만큼, 쇼팽의 작품은, 소위 5인조로 대표되는 국민악파에 넣어도 될 정도가 아닌가 싶게, 민족적이기도 해서다. 마주르카, 폴로네이즈를 위시한 민족적 요소는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폴란드성이랄까, 그 폴리쉬함은 쇼팽 콩쿠르의 경쟁 구도 속에서 굉장한 프리미엄이기도 하다. 이는 쇼팽 콩쿠르에서 종합 시상 외에 최고의 해당 장르 독주에 수여하는 마주르카상, 폴로네이즈상을 특별히 제정한 맥락과도 통한다.
과거에는 마땅하다 싶을 정도로 거의 장르별 특별상이 있었기도 한데, 어쨌든 요즘은 이와 더불어, 소나타상 정도와 당연히 없으면 안 될 듯한 콘체르토상만 남았다. 콘체르토는 파이널 스테이지(그러니까, 이야기한 대로 결선)에서 연주하게 되는 만큼 파이널 연주가 가장 좋으면 콘체르토상을 받게 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종합 1위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중치야 파이널 라운드의 연주가 제일 높긴 하겠지만, 그 이전 라운드의 평가도 모두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도 콘체르토상이 별도로 제정되었을 수 있는데, 이보다 본질적으로 콘체르토는 아무래도 작곡가가 상상하는, 또는 연주자에게 기대하는 그림과 기교를 최대한 집약한 총아기도 해서다(언제 한번 자세히 다루겠지만, 사실 이는 결과로 볼 때 그런 셈이고, 순서로 보면 bottom-up보다는 top-down에 가깝다.). 쇼팽 콘체르토 역시 이런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다양한 독주 작품에 있던 기술적, 음악적 요소요소가 콘체르토 곳곳에서 비치므로! 물론 종합 1등이 콘체르토상(은 물론 다른 특별상)을 같이 거머쥐는 경우도 흔하다. 어디 1등이 괜한 1등인가!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그러게 드물지는 않다. 실제로 바로 지난 대회에서 그렇게 1등상과 콘체르토상이 분리되었다. 그 지난 대회, 즉 올해 기준으로 지지난 대회의 콘체르토상이 수상자가 없다는 면에서 미스터리기는 한데, 이 문제는 한숨 돌리고 따져보기로 하자.
- 계속-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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