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지난 대회라면 10년 전 조성진이 우승한 당시인데, 그 미스터리란, 바로 조성진은 왜 콘체르토상을 못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파이널 연주가 그렇게 호평 일색이었음에도, 콘체르토상 수상 수준의 콘체르토 연주는 안 되었다는 말인가? (참고로 이 조성진 우승 10년을 기념해 메달이 제작된다고 한다.)
사실 그 2015년 대회는 여러 면에서 이례적인데, 일단 한국 사람들에게는 "진짜" 1등이 쇼팽 콩쿠르에서 나왔다는 게 제일 크다. 최고 권위의 국제 콩쿠르에서는 1등 없는 2등 같은 결과가 나오는 일도 있어서, 사실 필자 판단에 예선 연주를 (이때까지는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서였다) 보면서는 정말 잘 컨디션 유지하면 1등 없는 2등 정도(즉, 등수야 몰라도 전체 출전자들 수준은 다 능가한다고 느낄 만큼)는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탁월하다고 느꼈다. 비록 10년 전에도 한국인 1등, 그것도 쇼팽 콩쿠르에서? 그건 여전히 불가능한 현실로 느껴졌으니까. 그러고는 다른 출전자들의 유튜브 '중계'도 계속 이어 보다가 2~3일 내에 빠른 결정을 내렸다. 바르샤바로 직접 날아가기로!! (뭐 이것만 봐도 난 꽤 좋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던 셈인가? 2주(남은 대회 기간)에 가까운 휴가를 거의 즉시 낼 수 있었으니ㅋㅋ) 개인적으론 저 대회 때 이 돌발 결정이야말로 바로 예상에도 없던, 가장 큰 이변이었다. 아니, 네트워크를 타고 듣자니 미디어로만 그러고 있기에는 정말, 아니다 싶은 생각이 강해졌다. 물론 여기에는 1985년, 즉 30년 전 우승자인 스타니슬라브 부닌의 결선 협주 영상을 국내에서 녹화된 미디어(당시에는 당연히 유튜브가 아니라, LD(Laser Disc)라는 매체 타입)로 접하면서, '내, 저 콩쿠르는 언젠가는 꼭 직접 경험해 보리라'고 결심했던 영향도 없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무려 30년 "가까이" 흘러서 그 결심이 실천된 셈이다. (여기서 '가까이'라 함은 이런 의미다. 2015년과 1985년은 정확히 30년 차이지만, 쇼팽 콩쿠르는 10월에 열리고 이 대회가 끝나 녹음이고 녹화가 한국으로 유통되기까지는 적어도 해를 넘겨야 했기 때문에 엄밀히 만 30년은 못 되는 세월이다. LD 역시 디지털 미디어라고는 해도 당시 요즘처럼 고화질은 아니어서, 어째 그런 요소가 동구권 분위기를 물씬 더하는 듯하기도 했다.)
당연히 유튜브로, 정상(? - 밤에 시차 때문에 다른 라이브를 즐기느라 잠을 설치면 그게 정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출퇴근하면서 즐기려던 터라 별 준비는 (파이널 라운드 티킷 예매 등)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서도 파이널 표를 구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으므로, 그리고 그 시점에서도 온라인으로 예선 표들은 남아 있었으므로, 급기야 2차 예선 시작 즈음 프레드릭 쇼팽 국제 공항에 내리는 일정으로 비행기편을 찾아 쇼팽 콩쿠르 대회장으로 향했다. 급히, 그리고 되도록 싸게 가려다 보니 경로가 정상적으로 폴란드로 가는 경유는 아니었다. 조금 돌아 중동을 거쳐 들어갔다. (당시에 바르샤바는 인천에서 직항이 없어서, 유럽의 주요 공항을 거쳐 들어가야 했으므로 경유는 무조건 필요했는데 중동을 거치면 시간이나 동선이 조금 더 필요하다.)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각종 횡재나 불운의 이변이 늘 일어났고, 그게 현장을 몸으로 즐기는 묘미의 일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다시 스케일을 넓혀 글로벌하게 보편적인 이변은 이 대회에서 무엇일까? 그 부분은 물론 최초 기록이니까 조성진의 재탄생도 주목을 끌기는 했지만, 아마도 짐작컨대, 이렇게 둘이 아닐까 싶었다. 공개된 채점표에 따르면 조성진에게 진짜 편파적으로 1점을 준 프랑스 피아노계의 거물급 평가가 하나고, 콘체르토상이 없었다는 사실이 (유일무이한 경우는 아니었음에도 연주자의 수준으로 미루어 볼 때) 또 그런 이변의 하나다. 그 1점짜리 만행을 파이널 라운드에서 저지른 심사위원은 예선에서도 조성진의 다음 라운드 지출에 번번 반대표를 던진 장본이기도 해서 그 배경에 많은 언론과 팬들이 집중했지만, 여전히 그 이유는, 추정만 무성할 뿐, 엄연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조성진은 이런 불리한 점마저 극복하고 우승을 했다는 서사가 있는데 이건 (조성진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오버다. 왜냐하면 점수를 저렇게 주면 본인 점수가 반영이 안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규정을 모를 리가 없었는데도 감행했으니 사실 더 미스터리다. 실제로 이 심사위원의 점수는 제외되고 처리되었다. (하지만 예선 채점 기조에서 보듯, 이 jury의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기도 하니, 다른 면에서 디스어드밴티지를 극복한 맥락은 맞다.)
- 계속-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 과학자와 피아노 연재 목록 보기
지지난 대회라면 10년 전 조성진이 우승한 당시인데, 그 미스터리란, 바로 조성진은 왜 콘체르토상을 못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파이널 연주가 그렇게 호평 일색이었음에도, 콘체르토상 수상 수준의 콘체르토 연주는 안 되었다는 말인가? (참고로 이 조성진 우승 10년을 기념해 메달이 제작된다고 한다.)
사실 그 2015년 대회는 여러 면에서 이례적인데, 일단 한국 사람들에게는 "진짜" 1등이 쇼팽 콩쿠르에서 나왔다는 게 제일 크다. 최고 권위의 국제 콩쿠르에서는 1등 없는 2등 같은 결과가 나오는 일도 있어서, 사실 필자 판단에 예선 연주를 (이때까지는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서였다) 보면서는 정말 잘 컨디션 유지하면 1등 없는 2등 정도(즉, 등수야 몰라도 전체 출전자들 수준은 다 능가한다고 느낄 만큼)는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탁월하다고 느꼈다. 비록 10년 전에도 한국인 1등, 그것도 쇼팽 콩쿠르에서? 그건 여전히 불가능한 현실로 느껴졌으니까. 그러고는 다른 출전자들의 유튜브 '중계'도 계속 이어 보다가 2~3일 내에 빠른 결정을 내렸다. 바르샤바로 직접 날아가기로!! (뭐 이것만 봐도 난 꽤 좋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던 셈인가? 2주(남은 대회 기간)에 가까운 휴가를 거의 즉시 낼 수 있었으니ㅋㅋ) 개인적으론 저 대회 때 이 돌발 결정이야말로 바로 예상에도 없던, 가장 큰 이변이었다. 아니, 네트워크를 타고 듣자니 미디어로만 그러고 있기에는 정말, 아니다 싶은 생각이 강해졌다. 물론 여기에는 1985년, 즉 30년 전 우승자인 스타니슬라브 부닌의 결선 협주 영상을 국내에서 녹화된 미디어(당시에는 당연히 유튜브가 아니라, LD(Laser Disc)라는 매체 타입)로 접하면서, '내, 저 콩쿠르는 언젠가는 꼭 직접 경험해 보리라'고 결심했던 영향도 없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무려 30년 "가까이" 흘러서 그 결심이 실천된 셈이다. (여기서 '가까이'라 함은 이런 의미다. 2015년과 1985년은 정확히 30년 차이지만, 쇼팽 콩쿠르는 10월에 열리고 이 대회가 끝나 녹음이고 녹화가 한국으로 유통되기까지는 적어도 해를 넘겨야 했기 때문에 엄밀히 만 30년은 못 되는 세월이다. LD 역시 디지털 미디어라고는 해도 당시 요즘처럼 고화질은 아니어서, 어째 그런 요소가 동구권 분위기를 물씬 더하는 듯하기도 했다.)
당연히 유튜브로, 정상(? - 밤에 시차 때문에 다른 라이브를 즐기느라 잠을 설치면 그게 정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출퇴근하면서 즐기려던 터라 별 준비는 (파이널 라운드 티킷 예매 등)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서도 파이널 표를 구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으므로, 그리고 그 시점에서도 온라인으로 예선 표들은 남아 있었으므로, 급기야 2차 예선 시작 즈음 프레드릭 쇼팽 국제 공항에 내리는 일정으로 비행기편을 찾아 쇼팽 콩쿠르 대회장으로 향했다. 급히, 그리고 되도록 싸게 가려다 보니 경로가 정상적으로 폴란드로 가는 경유는 아니었다. 조금 돌아 중동을 거쳐 들어갔다. (당시에 바르샤바는 인천에서 직항이 없어서, 유럽의 주요 공항을 거쳐 들어가야 했으므로 경유는 무조건 필요했는데 중동을 거치면 시간이나 동선이 조금 더 필요하다.)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각종 횡재나 불운의 이변이 늘 일어났고, 그게 현장을 몸으로 즐기는 묘미의 일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다시 스케일을 넓혀 글로벌하게 보편적인 이변은 이 대회에서 무엇일까? 그 부분은 물론 최초 기록이니까 조성진의 재탄생도 주목을 끌기는 했지만, 아마도 짐작컨대, 이렇게 둘이 아닐까 싶었다. 공개된 채점표에 따르면 조성진에게 진짜 편파적으로 1점을 준 프랑스 피아노계의 거물급 평가가 하나고, 콘체르토상이 없었다는 사실이 (유일무이한 경우는 아니었음에도 연주자의 수준으로 미루어 볼 때) 또 그런 이변의 하나다. 그 1점짜리 만행을 파이널 라운드에서 저지른 심사위원은 예선에서도 조성진의 다음 라운드 지출에 번번 반대표를 던진 장본이기도 해서 그 배경에 많은 언론과 팬들이 집중했지만, 여전히 그 이유는, 추정만 무성할 뿐, 엄연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조성진은 이런 불리한 점마저 극복하고 우승을 했다는 서사가 있는데 이건 (조성진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오버다. 왜냐하면 점수를 저렇게 주면 본인 점수가 반영이 안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규정을 모를 리가 없었는데도 감행했으니 사실 더 미스터리다. 실제로 이 심사위원의 점수는 제외되고 처리되었다. (하지만 예선 채점 기조에서 보듯, 이 jury의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기도 하니, 다른 면에서 디스어드밴티지를 극복한 맥락은 맞다.)
- 계속-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 과학자와 피아노 연재 목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