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아무튼 조성진은 협연에서도 역대 우승자나 콘체르토상 우승자에 비해 손색이 없거나 더 출중한 연주를 보였음에도, 콘체르토상을 수상하지 못했음은 물론, 아예 당시 대회는 이 부문 수상자가 없는 기록을 남겼다. 그럼, 조성진도 못 받았는데, 다른 연주자가 받을 리가? 이렇게 해석해볼 수도 있겠는데, 가장 무난한 해석으로, 어쨌든 당시 2015년 기준으로 권위 높은 콩쿠르 답게 상을 나눠주기나 그런 거 없이 절대적으로 엄정한 기준으로 평가한다고 봐야지 싶다. 물론 콘체르토상이란 건 심사위원단의 결정과 이 상을 주관하는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닉 사정을 따를 텐데(콘체르토상의 정식 명칭은 'National Philharmonic Prize for the best performance of a piano concerto"라, 혹자는 또는 폴란드 내에서는 국립 필하모닉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왜 이 상 수상자가 당시 없었는지 공식적 발표는 없다. 콘체르토의 특수성으로 인해 특별상 중에서도 단연 주목을 끄는 상인데도 말이다. 설마 바르샤바 국립 필이 그해에만 유독 주머니 사정이 궁핍해져서는 아니겠지!
아무튼 바로 지난 대회 콘체르토상 수상자(종합으로는 3등)의 연주를 들어보면, 정말 쇼팽 신이라도 내린 듯한, 말그대로 신들린 연주다. 이 출전자의 예선을 다 못 봤기 때문에, 협연만 라이브로 봐서는 진짜 우승도 하겠다 싶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협연을 잘해야 받는 상인데, 어차피 상대적 조건에 따른 비교라 역시 상대적 판단이지만 조성진이 그만 못했을까? 어쩌면, 대회 당시, 그 시점, 즉 심사위원이 채점할 당시에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두고두고 다시 들어도 정말 역사적 명연 중 명연임을 새삼 재확인하게 되기에, 콘체르토상을 못 받은 사실은 영영 희대의 미스터리로 남지 않을까 싶다. (다만 조성진은 특별상 중에 폴로네이즈상을 받았다.) 여기서 유력한 가설을 하나 제시하자면, 조성진 연주는 예선 독주 때부터 너무 빛나서 혹시 협주곡 연주가 역차별을 받지는 않았나도 싶다. 그러니까 계속 일관되게 탁월한 연주를 라운드마다 선보였으니, 협주곡 연주에서도 더 두드러질 수 없이 완벽에 가까웠으니 협주곡에서 역대 최고 연주를 했음에도 특별한 장점이 더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아니 진짜 우리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역대급 연주가 맞기는 맞다.) 그러니까 모든 출전자가 파이널로 갈수록 더더욱 신경 쓰고 본인의 장기를 더 부각시킬 전략을 세우고 또 실제로 그렇게 연주하도록 집중도를 높이므로, 아무래도 파이널 연주가 가장 빛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러면 이는 마치 (이 비유는 Claude AI의 반응을 참고한 예인데) 매번 A+만 받는 학생의 A+와, A 이하만 받다가 갑자기 A+도 반짝 받은 학생의 A+를 볼 때, 일시적으로 돋보이는 A+가 뭐겠냐는 선택 상황과 비슷하다. 조성진은 당연히 전자인 셈이라 짐작해 보게 된다.
필자는 당시 현장으로 급히 날아갔음에도, 그리고 어차피 파이널 무대는 당일 현장 표를 구하려면 몇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가능하다는 분위기는 익히 알았음에도, 간발의 차이로 구하지 못했다. 아마 6시엔가부터 결선이 시작하는 첫 날, 2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는데, 남은 잔여표가 앞 대기자들을 다 소화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길이의 줄이었다. 네 시간 동안 그럼 뭐하나 싶지만, 앞뒤로 다 같은 관심사를 품고 국제적으로 모인 캐릭터들이기에 음악 이야기를 하다 보면 킬링 타임은 뭐 일도 아니었다. 필자도 앞에 바로 줄을 선 핀란드 아줌마 한 분과 꽤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피아노를 전공하는 아들하고 같이 보기 위해 본인이 먼저 줄을 서기로 했다거나, 핀란드는 시벨리우스 콩쿠르(참고로 이건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대회다)가 유명한데 잘 아냐거나 하는 이야기 등등. 그런데 거기라고 암표가 없는 청정지대는 아니어서, 이 분은 아들 표와 함께 두 장을 암표상에게 구해서 현장 티킷 오픈하기 한 30분 전쯤에 줄에서 빠져나갔다.
그 순번으로는 (그렇게 암표로 몇 사람은 빠져나가 줄이 더러 짧아졌음에도) 바로 서너 명 앞에서 잘린 바람에, 이 날을 돌아보면 두 가지 아쉬움이 밀려오기는 한다. 오전 10시에 대회장 갔을 때는 한두 명만 줄에 대기 중이었는데, 다른 데 가지 말고 그때부터 기다렸으면 확실히 조성진의 우승(앞에서 말한 대로 모든 라운드 합산이므로, 이는 엄밀히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실연을 챙겨볼 수 있었을 텐데, 근처에 삼성에서 특별히 후원해서 건립한 사이언스 전시관이 꽤 큰 규모로 있다고 해서 거길 다녀오다가 서너 시간 더 늦게 줄에 서기 시작했다. 그때도 그렇게 아주 긴 줄은 아니었지만, 잔여표가 얼마 남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선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굳이 과학관을 갔어야 했나 싶은 아쉬움. 게다가 겁이 나서 암표는 못 사겠더라 싶어, 감행하지 못한 아쉬움 하나. 돈을 더 내는 게 아니라, 그 암표가 정말 검증된 티킷인지 그 현장에서 알 길이 없어서였다. 그 핀란드 아줌마는 아들과 함께 결선 연주를 잘 즐겼으려나 모르겠다는 팔자 늘어진 걱정까지 든 날이기도 했다.
[5] 뭐 현장에서 기대에 어긋난 아쉬움에 더해 한편으론 부러움 또한 커지기도 했다. 회사 동료 중 '같이' (인용부호를 달았다 함은, 계획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정말 '같이'가 실제로는 아니라는 의미다) 이 대회를 직관하러 간 동료는, 대회기간인 3주를 다 못 보내더라도, 그냥 그런 대기나 불안 등의 수고로움을 말끔히 제거하기 위해, 오로지 파이널만 본다 해도 가격을 다 치를 만하다고 보고 (이에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3주짜리 풀 패키지를 진작에 예매해서 아주 편안하고 안전하게 모든 파이널을 다 지켜본 모양이다. (당시 가격으로 대회 기간 3주 전체, 오프닝 갈라와 수상자 기념 콘서트까지 모두 포함한 패키지가 100만원 조금 더 넘었던 듯하니, 그 경험 가치를 고려하면 아주 또 비싼 희생은 아닌 듯하다. 뭐 어디 해외 한번 덜 나간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단, 이 경우 단점은 세션마다 자리를 선택하지 못하는, 3주 내내 같은 자리에서 봐야 한다는 것인데, 필자에게는 단점같지만, 또 그걸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이 동료와 필자는 예산 기간 내내 대회를 즐기는 시간이 겹치는 날에는 줄창 늦은(!)---이 꼭지의 처음에 언급한 시간표 참고---점심과 늦은 저녁(밥보다는 바르샤바만 해도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식사 대체급 맥주와 안주)을 대회장 근처를 배회하며 해결하면서 같이 평론충이라 도 된 듯이 그날의 출전자들에 대한 평이나 각자 겪은 해프닝을 나누느라 지루할 틈은 전혀 없었다. 어느 날은 대회장에 먼저 도착한 그 동료는 폴란드 방송과 (계획되지 않은 간단) 인터뷰까지 하고 있더라니~~
당시 진풍경 하나! 당시 소속 회사에서는 그렇게, 3000명 정도 되는 전 직원 중에서는 그 친구와 나, 단 둘만 굳이 휴가를 쓰고 현장에 간 듯하다(피아노를 좋아하는 동료들은 다수였지만 이런 덕질을 실천한 장본인은 딱 둘이었지 싶다.). 마찬가지로 그 외에 예선 무대까지는 대회를 즐기러 온 한국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본선에서, 특히 조성진이 무대에 오르는 그 날에는 (결선은 보통 3일 동안 치른다) 어디서인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일군의 젊은 학생들은 표를 못 구하고는 그냥 대회장 로비 계단 한 켠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유튜브로 볼 채비를 하고 있었다.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싶었다. (마치고 조성진 싸인이라도 받으려고? 아니면 지인들이라 응원 차? 어차피 그 날은 첫 날이라 결과가 나오는 날은 아니긴 했다.) 필자 역시 어차피 무제한 데이터 로밍으로 전화기를 쓰고 있어서 유튜브 영상으로 보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발열에 따른 배터리 소진 문제로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다(당시는 아이폰이 아마 버전 6 시절이지 싶다.). 와이파이라도 잡혔으면 나았겠지만, 그렇게 그런 환경이 대회장에서 원활하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그래서 유튜브를 보려는 친구들은 전화기 안 뜨거려우나 싶었는데 어떻게 봤나 그 뒷 일은 모르겠다, 왜냐하면 장소를 이동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필자에겐 심리적 차단벽이 세워졌는지도 모른다, '현지까지 와 가지고는 또 유튜브라니?' 하는!
대회장 로비에서 장소를 옮긴 이유는 이렇다. 표를 기다리다 못 구한 사람들에게는 대회 주최 측은 또 다른, 정상가보다는 낮은 추가(?) 표를 판매했다. 아마도 파이널 표가 늘 부족하니까 이런 수요를 진작부터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파악하고 있었던 듯하다. 바로 옆 별관 홀에서 스크린으로 라이브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여기도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빈다. 그래도 유튜브보다야 화면이라도 크니까 나으려나, 그리고 음향도 이어폰보다야 나으려나 싶어서 그렇게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 스크린으로도 조성진 연주는 못 듣고 다음 진출자부터 들을 수 있었는데 조성진 라이브를 놓친 아쉬움에, 그리고 현장 티키팅 줄 대기하던 공간이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서 하도 정신이 없어졌던 터라서도, 그 뒤 연주는 대형 스크린 앞에 앉아는 있었더라도 잘 귀에 안 들어왔다. 그렇게 폴란드 일정을 접고는 파이널이 끝나고 결과 발표가 되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학회 참석 일정으로 다음날 JFK 공항행 비행기에 올랐다.
[6] JFK 공항에 내리니 곳곳 스크린에서 라이브 뉴스로 대회 결과가 발표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파이널 첫 날을 지내고 바르샤바를 떠났으니 이틀이 더 흐른 시점인데, 바르샤바에서 맨해튼까지 그렇게 오래 걸린 건, 두바이로 나와서 뉴욕행을 탔기 때문이다. 진작에 서울에서 출발할 때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했으므로 뉴욕까지는 시간과 동선에서 낭비 같기는 하지만, 같은 항공사 편을 이용하는 노선이 훨씬 경제적이었다. 그래도 무척 긴 거리긴 했구나, 하고 실감한 건, 공항에서 그 뉴스를 접하면서였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인천공항이 아시아 허브 역할을 하네 마네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사실 세계 여러 곳을 다니는 일정을 짜려면 항공 노선을 매칭하기가 꽤나 까다로웠고, 대개는 서울(인천공항) 베이스 노선으로 왕복하는 종류만 늘어났다. 한국적 한계인지 글로벌 항공여행업계 구도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전 세계 관심이 그만큼 쏠려 있기도 해서, 여러 방송이 앞다투어 보도하려는 모양인데 외신과 달리 한국 언론은 어느 정도로 대응했나 몰라도 적어도 라이브로 전파를 내보내지는 못한 듯하고 그날의 소식 정도로 다루지 않았나 싶다. 사실 이 대회이ㅡ 수상 결과란 거가 (일단 조성진 수상 여부를 떠나) 특속보급 소식일 텐데? 적어도 한국 전체보다는 JFK 공항이 그만큼 더 세계적이기는 한 셈인가?
아무튼 정말 놀라운 소식이었다. 조성진이 1등이라니. 사실 한편으로는 내심 바라기도 한 듯하다. 역사적으로 한국인이 다른 유명 대회에서 1등 없는 2등 같은 결과를 받았을 때는 이를 대하는 시선은 두 가지 정도. 정말 권위가 높은 대회다 + 우리나라 국력(이나 국제적 위상)이 약해서다. 하지만 조성진의 경우는 어떤 이유를 대기도 어렵게 대회 기간 내내 압도적 연주를 들려주어 1위를 차지했다. 필자 역시 라이브로 꼭 보기를 기대하면서 현장으로 날아갔던 사태 아닌가. (그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바르샤바에서 조성진의 피아노 소리를 듣기는 들었던 이야기도 앞에 꺼낸 적이 있다!) 그래도 쇼팽 콩쿠르의 이런저런 변수를 고려할 때 1등을 과연 한국에 주겠는가도 싶었던 반면, 아시아계의 전반적 약진과 (특히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 속에서 신박한 변화를 기대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대회에서는 1980년에 정말 기적적인 아시아계 출신의 최초 우승을 전 세계가 목격했으며(앞선 한 꼭지에서 이 주인공을 다루었으니 참고), 아시아권의 그 제자 또한 40여 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우승을 거머쥔다. 아시아 출신 우승자는 이로써 총 4명인데, 이 중 중국계가 반이다. 어떻게 보면 일본은 이 쇼팽 콩쿠르에서의 선전을 위해 부강한 나라답게도 대내외로 물적인 투자도 꽤 하고 있음에도 상위권 입상자는 역대 단 둘이다. (여기서 상위권이라 함은 6위까지 수상을 하므로 편의상 3위까지로 보자.) 일본이 거둔 최초 입상은 1965년 4위인데 당시에는 이 결과만으로도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아시아계 최초 입상 기록은 그보다 10년 먼저, 1955년 중국의 푸총(3위)이 세웠다. 폴란드적 센스가 핵심인 마주르카상까지 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유독 각별했다. 물론 푸총이 상하이 출신이지만 바르샤바 음악원 유학파라는 점에서 '순수 동양적' 성취라고 하기에는 어정쩡한 구석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서양 고전음악계에서 서방의 무의식적 우월감에 균열을 낸 대표적 사례로 꼽을 만하겠다(정말 애석하게도 푸총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다.).
나누는 글이 사실 지향성은 최소화한다고는 간간 강조를 거듭하지만, 정리하거나 포착하기 어려운 면면은 흐름으로 보아 꼭 언급해야 할 국면을 지나는 듯한데, 위에서 가미한 역사도 그러하지만, 보이지 않는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서 역시 최소한은 필요한 법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1회 대회가 열린 1927년 시절, 이런 류의 콩쿠르라는 게 음악계에는 전무하다시피 했으므로, 쇼팽 국제 콩쿠르의 탄생은 여러 면에서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을 남기고도 남을 만했다.
잠깐, 여기서 각자 뉴메리컬 리터러시를 발휘해 보시기를 바란다. 지금은 2025년에 대회가 열리는데, 첫 대회는 1927년이라고? 5년마다 열린다면서 왜 이런 배수가 안 맞게 된 걸까? 가장 중요한 여파는 세계대전(당연히 2차다)을 겪으면서 대회 시기가 밀렸는데, 밀린 채로 5년마다 열렸고, 팬데믹으로 인한 대회 연기 후로는 간격을 단축해서라도 그 5년 주기를 유지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진정한 뉴메리컬 리터러시일까? 이런 변수까지도 종합적 사고력을 발휘해 고려하는 범위까지도 포함할까? ^^)
- 계속-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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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무튼 조성진은 협연에서도 역대 우승자나 콘체르토상 우승자에 비해 손색이 없거나 더 출중한 연주를 보였음에도, 콘체르토상을 수상하지 못했음은 물론, 아예 당시 대회는 이 부문 수상자가 없는 기록을 남겼다. 그럼, 조성진도 못 받았는데, 다른 연주자가 받을 리가? 이렇게 해석해볼 수도 있겠는데, 가장 무난한 해석으로, 어쨌든 당시 2015년 기준으로 권위 높은 콩쿠르 답게 상을 나눠주기나 그런 거 없이 절대적으로 엄정한 기준으로 평가한다고 봐야지 싶다. 물론 콘체르토상이란 건 심사위원단의 결정과 이 상을 주관하는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닉 사정을 따를 텐데(콘체르토상의 정식 명칭은 'National Philharmonic Prize for the best performance of a piano concerto"라, 혹자는 또는 폴란드 내에서는 국립 필하모닉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왜 이 상 수상자가 당시 없었는지 공식적 발표는 없다. 콘체르토의 특수성으로 인해 특별상 중에서도 단연 주목을 끄는 상인데도 말이다. 설마 바르샤바 국립 필이 그해에만 유독 주머니 사정이 궁핍해져서는 아니겠지!
아무튼 바로 지난 대회 콘체르토상 수상자(종합으로는 3등)의 연주를 들어보면, 정말 쇼팽 신이라도 내린 듯한, 말그대로 신들린 연주다. 이 출전자의 예선을 다 못 봤기 때문에, 협연만 라이브로 봐서는 진짜 우승도 하겠다 싶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협연을 잘해야 받는 상인데, 어차피 상대적 조건에 따른 비교라 역시 상대적 판단이지만 조성진이 그만 못했을까? 어쩌면, 대회 당시, 그 시점, 즉 심사위원이 채점할 당시에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두고두고 다시 들어도 정말 역사적 명연 중 명연임을 새삼 재확인하게 되기에, 콘체르토상을 못 받은 사실은 영영 희대의 미스터리로 남지 않을까 싶다. (다만 조성진은 특별상 중에 폴로네이즈상을 받았다.) 여기서 유력한 가설을 하나 제시하자면, 조성진 연주는 예선 독주 때부터 너무 빛나서 혹시 협주곡 연주가 역차별을 받지는 않았나도 싶다. 그러니까 계속 일관되게 탁월한 연주를 라운드마다 선보였으니, 협주곡 연주에서도 더 두드러질 수 없이 완벽에 가까웠으니 협주곡에서 역대 최고 연주를 했음에도 특별한 장점이 더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아니 진짜 우리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역대급 연주가 맞기는 맞다.) 그러니까 모든 출전자가 파이널로 갈수록 더더욱 신경 쓰고 본인의 장기를 더 부각시킬 전략을 세우고 또 실제로 그렇게 연주하도록 집중도를 높이므로, 아무래도 파이널 연주가 가장 빛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러면 이는 마치 (이 비유는 Claude AI의 반응을 참고한 예인데) 매번 A+만 받는 학생의 A+와, A 이하만 받다가 갑자기 A+도 반짝 받은 학생의 A+를 볼 때, 일시적으로 돋보이는 A+가 뭐겠냐는 선택 상황과 비슷하다. 조성진은 당연히 전자인 셈이라 짐작해 보게 된다.
필자는 당시 현장으로 급히 날아갔음에도, 그리고 어차피 파이널 무대는 당일 현장 표를 구하려면 몇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가능하다는 분위기는 익히 알았음에도, 간발의 차이로 구하지 못했다. 아마 6시엔가부터 결선이 시작하는 첫 날, 2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는데, 남은 잔여표가 앞 대기자들을 다 소화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길이의 줄이었다. 네 시간 동안 그럼 뭐하나 싶지만, 앞뒤로 다 같은 관심사를 품고 국제적으로 모인 캐릭터들이기에 음악 이야기를 하다 보면 킬링 타임은 뭐 일도 아니었다. 필자도 앞에 바로 줄을 선 핀란드 아줌마 한 분과 꽤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피아노를 전공하는 아들하고 같이 보기 위해 본인이 먼저 줄을 서기로 했다거나, 핀란드는 시벨리우스 콩쿠르(참고로 이건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대회다)가 유명한데 잘 아냐거나 하는 이야기 등등. 그런데 거기라고 암표가 없는 청정지대는 아니어서, 이 분은 아들 표와 함께 두 장을 암표상에게 구해서 현장 티킷 오픈하기 한 30분 전쯤에 줄에서 빠져나갔다.
그 순번으로는 (그렇게 암표로 몇 사람은 빠져나가 줄이 더러 짧아졌음에도) 바로 서너 명 앞에서 잘린 바람에, 이 날을 돌아보면 두 가지 아쉬움이 밀려오기는 한다. 오전 10시에 대회장 갔을 때는 한두 명만 줄에 대기 중이었는데, 다른 데 가지 말고 그때부터 기다렸으면 확실히 조성진의 우승(앞에서 말한 대로 모든 라운드 합산이므로, 이는 엄밀히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실연을 챙겨볼 수 있었을 텐데, 근처에 삼성에서 특별히 후원해서 건립한 사이언스 전시관이 꽤 큰 규모로 있다고 해서 거길 다녀오다가 서너 시간 더 늦게 줄에 서기 시작했다. 그때도 그렇게 아주 긴 줄은 아니었지만, 잔여표가 얼마 남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선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굳이 과학관을 갔어야 했나 싶은 아쉬움. 게다가 겁이 나서 암표는 못 사겠더라 싶어, 감행하지 못한 아쉬움 하나. 돈을 더 내는 게 아니라, 그 암표가 정말 검증된 티킷인지 그 현장에서 알 길이 없어서였다. 그 핀란드 아줌마는 아들과 함께 결선 연주를 잘 즐겼으려나 모르겠다는 팔자 늘어진 걱정까지 든 날이기도 했다.
[5] 뭐 현장에서 기대에 어긋난 아쉬움에 더해 한편으론 부러움 또한 커지기도 했다. 회사 동료 중 '같이' (인용부호를 달았다 함은, 계획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정말 '같이'가 실제로는 아니라는 의미다) 이 대회를 직관하러 간 동료는, 대회기간인 3주를 다 못 보내더라도, 그냥 그런 대기나 불안 등의 수고로움을 말끔히 제거하기 위해, 오로지 파이널만 본다 해도 가격을 다 치를 만하다고 보고 (이에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3주짜리 풀 패키지를 진작에 예매해서 아주 편안하고 안전하게 모든 파이널을 다 지켜본 모양이다. (당시 가격으로 대회 기간 3주 전체, 오프닝 갈라와 수상자 기념 콘서트까지 모두 포함한 패키지가 100만원 조금 더 넘었던 듯하니, 그 경험 가치를 고려하면 아주 또 비싼 희생은 아닌 듯하다. 뭐 어디 해외 한번 덜 나간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단, 이 경우 단점은 세션마다 자리를 선택하지 못하는, 3주 내내 같은 자리에서 봐야 한다는 것인데, 필자에게는 단점같지만, 또 그걸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이 동료와 필자는 예산 기간 내내 대회를 즐기는 시간이 겹치는 날에는 줄창 늦은(!)---이 꼭지의 처음에 언급한 시간표 참고---점심과 늦은 저녁(밥보다는 바르샤바만 해도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식사 대체급 맥주와 안주)을 대회장 근처를 배회하며 해결하면서 같이 평론충이라 도 된 듯이 그날의 출전자들에 대한 평이나 각자 겪은 해프닝을 나누느라 지루할 틈은 전혀 없었다. 어느 날은 대회장에 먼저 도착한 그 동료는 폴란드 방송과 (계획되지 않은 간단) 인터뷰까지 하고 있더라니~~
당시 진풍경 하나! 당시 소속 회사에서는 그렇게, 3000명 정도 되는 전 직원 중에서는 그 친구와 나, 단 둘만 굳이 휴가를 쓰고 현장에 간 듯하다(피아노를 좋아하는 동료들은 다수였지만 이런 덕질을 실천한 장본인은 딱 둘이었지 싶다.). 마찬가지로 그 외에 예선 무대까지는 대회를 즐기러 온 한국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본선에서, 특히 조성진이 무대에 오르는 그 날에는 (결선은 보통 3일 동안 치른다) 어디서인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일군의 젊은 학생들은 표를 못 구하고는 그냥 대회장 로비 계단 한 켠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유튜브로 볼 채비를 하고 있었다.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싶었다. (마치고 조성진 싸인이라도 받으려고? 아니면 지인들이라 응원 차? 어차피 그 날은 첫 날이라 결과가 나오는 날은 아니긴 했다.) 필자 역시 어차피 무제한 데이터 로밍으로 전화기를 쓰고 있어서 유튜브 영상으로 보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발열에 따른 배터리 소진 문제로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다(당시는 아이폰이 아마 버전 6 시절이지 싶다.). 와이파이라도 잡혔으면 나았겠지만, 그렇게 그런 환경이 대회장에서 원활하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그래서 유튜브를 보려는 친구들은 전화기 안 뜨거려우나 싶었는데 어떻게 봤나 그 뒷 일은 모르겠다, 왜냐하면 장소를 이동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필자에겐 심리적 차단벽이 세워졌는지도 모른다, '현지까지 와 가지고는 또 유튜브라니?' 하는!
대회장 로비에서 장소를 옮긴 이유는 이렇다. 표를 기다리다 못 구한 사람들에게는 대회 주최 측은 또 다른, 정상가보다는 낮은 추가(?) 표를 판매했다. 아마도 파이널 표가 늘 부족하니까 이런 수요를 진작부터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파악하고 있었던 듯하다. 바로 옆 별관 홀에서 스크린으로 라이브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여기도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빈다. 그래도 유튜브보다야 화면이라도 크니까 나으려나, 그리고 음향도 이어폰보다야 나으려나 싶어서 그렇게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 스크린으로도 조성진 연주는 못 듣고 다음 진출자부터 들을 수 있었는데 조성진 라이브를 놓친 아쉬움에, 그리고 현장 티키팅 줄 대기하던 공간이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서 하도 정신이 없어졌던 터라서도, 그 뒤 연주는 대형 스크린 앞에 앉아는 있었더라도 잘 귀에 안 들어왔다. 그렇게 폴란드 일정을 접고는 파이널이 끝나고 결과 발표가 되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학회 참석 일정으로 다음날 JFK 공항행 비행기에 올랐다.
[6] JFK 공항에 내리니 곳곳 스크린에서 라이브 뉴스로 대회 결과가 발표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파이널 첫 날을 지내고 바르샤바를 떠났으니 이틀이 더 흐른 시점인데, 바르샤바에서 맨해튼까지 그렇게 오래 걸린 건, 두바이로 나와서 뉴욕행을 탔기 때문이다. 진작에 서울에서 출발할 때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했으므로 뉴욕까지는 시간과 동선에서 낭비 같기는 하지만, 같은 항공사 편을 이용하는 노선이 훨씬 경제적이었다. 그래도 무척 긴 거리긴 했구나, 하고 실감한 건, 공항에서 그 뉴스를 접하면서였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인천공항이 아시아 허브 역할을 하네 마네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사실 세계 여러 곳을 다니는 일정을 짜려면 항공 노선을 매칭하기가 꽤나 까다로웠고, 대개는 서울(인천공항) 베이스 노선으로 왕복하는 종류만 늘어났다. 한국적 한계인지 글로벌 항공여행업계 구도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전 세계 관심이 그만큼 쏠려 있기도 해서, 여러 방송이 앞다투어 보도하려는 모양인데 외신과 달리 한국 언론은 어느 정도로 대응했나 몰라도 적어도 라이브로 전파를 내보내지는 못한 듯하고 그날의 소식 정도로 다루지 않았나 싶다. 사실 이 대회이ㅡ 수상 결과란 거가 (일단 조성진 수상 여부를 떠나) 특속보급 소식일 텐데? 적어도 한국 전체보다는 JFK 공항이 그만큼 더 세계적이기는 한 셈인가?
아무튼 정말 놀라운 소식이었다. 조성진이 1등이라니. 사실 한편으로는 내심 바라기도 한 듯하다. 역사적으로 한국인이 다른 유명 대회에서 1등 없는 2등 같은 결과를 받았을 때는 이를 대하는 시선은 두 가지 정도. 정말 권위가 높은 대회다 + 우리나라 국력(이나 국제적 위상)이 약해서다. 하지만 조성진의 경우는 어떤 이유를 대기도 어렵게 대회 기간 내내 압도적 연주를 들려주어 1위를 차지했다. 필자 역시 라이브로 꼭 보기를 기대하면서 현장으로 날아갔던 사태 아닌가. (그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바르샤바에서 조성진의 피아노 소리를 듣기는 들었던 이야기도 앞에 꺼낸 적이 있다!) 그래도 쇼팽 콩쿠르의 이런저런 변수를 고려할 때 1등을 과연 한국에 주겠는가도 싶었던 반면, 아시아계의 전반적 약진과 (특히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 속에서 신박한 변화를 기대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대회에서는 1980년에 정말 기적적인 아시아계 출신의 최초 우승을 전 세계가 목격했으며(앞선 한 꼭지에서 이 주인공을 다루었으니 참고), 아시아권의 그 제자 또한 40여 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우승을 거머쥔다. 아시아 출신 우승자는 이로써 총 4명인데, 이 중 중국계가 반이다. 어떻게 보면 일본은 이 쇼팽 콩쿠르에서의 선전을 위해 부강한 나라답게도 대내외로 물적인 투자도 꽤 하고 있음에도 상위권 입상자는 역대 단 둘이다. (여기서 상위권이라 함은 6위까지 수상을 하므로 편의상 3위까지로 보자.) 일본이 거둔 최초 입상은 1965년 4위인데 당시에는 이 결과만으로도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아시아계 최초 입상 기록은 그보다 10년 먼저, 1955년 중국의 푸총(3위)이 세웠다. 폴란드적 센스가 핵심인 마주르카상까지 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유독 각별했다. 물론 푸총이 상하이 출신이지만 바르샤바 음악원 유학파라는 점에서 '순수 동양적' 성취라고 하기에는 어정쩡한 구석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서양 고전음악계에서 서방의 무의식적 우월감에 균열을 낸 대표적 사례로 꼽을 만하겠다(정말 애석하게도 푸총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다.).
나누는 글이 사실 지향성은 최소화한다고는 간간 강조를 거듭하지만, 정리하거나 포착하기 어려운 면면은 흐름으로 보아 꼭 언급해야 할 국면을 지나는 듯한데, 위에서 가미한 역사도 그러하지만, 보이지 않는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서 역시 최소한은 필요한 법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1회 대회가 열린 1927년 시절, 이런 류의 콩쿠르라는 게 음악계에는 전무하다시피 했으므로, 쇼팽 국제 콩쿠르의 탄생은 여러 면에서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을 남기고도 남을 만했다.
잠깐, 여기서 각자 뉴메리컬 리터러시를 발휘해 보시기를 바란다. 지금은 2025년에 대회가 열리는데, 첫 대회는 1927년이라고? 5년마다 열린다면서 왜 이런 배수가 안 맞게 된 걸까? 가장 중요한 여파는 세계대전(당연히 2차다)을 겪으면서 대회 시기가 밀렸는데, 밀린 채로 5년마다 열렸고, 팬데믹으로 인한 대회 연기 후로는 간격을 단축해서라도 그 5년 주기를 유지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진정한 뉴메리컬 리터러시일까? 이런 변수까지도 종합적 사고력을 발휘해 고려하는 범위까지도 포함할까? ^^)
- 계속-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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