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47. 쇼팽 국제 콩쿠르 현지(바르샤바) 및 온라인(한국) 감·단상 [10] [11] [12]
블랙소스
2025-10-31
조회수 238
[10] 아무래도 피아노를 뭘 고르는지도 흥미롭다는, 또 굳이 누구의 선택(을 위해 시연 시간 최대 15분이 허용된다)이냐는 면까지 밤새도록 수다판을 벌일 수 있는 피아노 오타쿠적 시선의 관전 포인트보다는 조금은 더 대중적으로 시선이 쏠릴 만한 부분부터 짚어보자.
아무래도 한국적 문화에서는 한국인이 또 우승할 수 있을지가 제일 관건이지 않을까? 또는 몇 명이나 파이널에 나갈지인데, 이번에는 출전자가 4명이다(그 중 한 명은 일본 이중국적). 한국인 형제가 이 대회에 출전한 경우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형제가 나란히 출전했고 그 중 형은 지난 대회 파이널리스트다. 이번 대회에는 다른 나라 출신의 지지난 대회 파이널리스트도 출전했다. 쇼팽 콩쿠르는 그 권위와 위상이 높으디 높은 만큼 재수도 많이 한다. 나 같으면 한 4등 정도 했으면 굳이 또 나가려나 싶은데, 4등이 그 1, 2, 3등 욕심을 못 버리고 또 나갈 수도 있다니!! 물론 이건 무척 무지몽매하거나 단순한 판단이다. 과거 파이널리스트라고 해서 꼭 이번에 더 나은 성적을 거둔다는 보장은 물론,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한다는 보장도 없는 법이다. 올림픽에서 아깝게 메달을 놓친 선수가 금메달은 물론 동메달에라도 다시 도전하려는 심정일까? 하지만 지난 번보다 못하면, 아니 더 잘하더라도 새로운 신예나 출전자들이 더 월등한 연주를 보여줄지 등 재수생 징크스를 둘러싼, 각본 없는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예고되는 셈이다.
이는 상당히, 올림픽, 월드컵과 다를 바 없는 궁금증이나 기대감이지만 그보다도 더 긴 주기로 열릴는 대회니 만큼, 스포츠계 금메달이나 우승보다 더욱 피말리는 서바이벌 게임과도 같은 느낌이다. 그러하기에 다크호스를 발굴하는 재미 또한 덤이다.
또한, 영원한 질문일 수 있는데, 20년 만에 다시 폴란드가 정상을 탈환할 수 있을까, 유럽계는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스타를 배출할 수 있을까, 기술 패권만이 아니라 피아노 제국을 꿈꾸는 최다 출전자의 나라 중국은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둘까? 최근 과학계 Nature Index Top 10에서도 8곳을 중국계 기관/학교가 휩쓸었듯, 파이널리스트에 과연 몇 명이나 오를까? 상위권이나 우승도 가능할까? 러시아와 폴란드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2회 이상 우승자를 배출한 나라가 중국이니까, 그 관심이 자못 남다를 법도 하다.
콩쿠르에서 기본은 실력이지만, 그 외 얼마나 많은 변수가 현장에서 작용하는지는 상식적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가겠지만, 현장에 있으면 그것이 더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콩쿠르라는 형식이 잔혹한 까닭 하나는 어느 하루의 컨디션이 지난 수 년 동안의 노력을 일거에 물거품으로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잘한 감기에만 걸려도, 시차적응에 실패해도, 심지어 연습실 피아노와 무대 피아노의 차이에 당황해도, 그런 미묘한 차이의 영향만으로도 탈락하기 쉬운 게임이자 도박의 장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못한 2021년 대회만큼 아슬아슬하지는 않겠지만, 10월 바르샤바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기복이 있는 연습실 조건은 여전히 변수다(연주할 사람만이 아니라 연주될 악기마저도 이에 예민하다!).
유구한 전통의 대회임에도, 올해 새로 바뀐 feature 측면에서도 더욱 결과는 흥미로워진다. 근 한 세기만에, 전형적으로 폴란드 출신이 맡았던 심사위원장을 이번에 미국인이자 역대 우승자인 게릭 올슨이 맡게 되었다. 비폴란드인으로 최초라는 의미다. 심사위원들 자체가 큰 변수라, 위원장을 누가 맡는지도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간접적 요인이 될 수 있다. 가령, 어쩌면 획일적 기준의 심사위원들만으로 구성되지 말아야 함은 당연하기에, 그만큼 각자의 취향이 제각각인데, 어떤 심사위원은 쇼팽 음악에 내재된 폴란드의 민족적 정서나 전통적인 해석에 무게를 두는가 하면, 다른 심사위원은 악보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구조적 완결성이나,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해석에 더 높은 점수를 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특정 참가자의 연주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현상이 매 대회 반복된다. 1980년에는 심사위원이던 마르타 아르헤리치(역시 같은 대회 역대 우승자로 아르헨티나 출신, 남미계로서는 유일한 기록)가 파격적인 해석을 선보인 이보 포고렐리치가 결선 진출에 실패하자 항의의 표시로 심사위원직을 사퇴한 전설적인 사건도 있었다. 2015년 조성진의 결선 연주에, 앞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한 심사위원이 극단적으로 낮은 점수(1/10점)를 주어 논란이 되었던 것 또한 예술 평가의 주관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아울러, 전통을 깬 심사위원장의 등장은 그보다 더욱 혁신적인 룰을, 어쩌면 이번 대회에서 잠재적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변화를 몰고 왔다.
[11]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결국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집계되어 평균적으로 나타나게 될 텐데, 그것이 폴란드의 정통성에 쏠릴지, 다른 어떤 경향성을 뚜렷하게 보일지는 매번 전혀 예측 불허인데, 이번에는 거기에 더해 어마어마한 변수가 추가되었다.
바로, 이전에 거의 선택되는 법이 없던, 폴로네이즈 중에서는 물론, 쇼팽 전 독주 작품을 통해서도 가장 어렵다는 소위 '환상' 폴로네이즈(Polonaise-Fantaisie Op. 61)가 결선 지정곡으로 추가된 사건(!)이다. 전통적으로 대다수 유명 콩쿠르와 마찬가지로 쇼팽 콩쿠르에서도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협주곡을 연주한다. 다만, 쇼팽 작품만 연주하므로, 두 곡 중 하나를 선택하며, 10여 명의 진출자 중 그야말로 말 그대로 1번 협주곡(op. 11)을 십중팔구 택한다. 어지간해서는 2번 협주곡(op. 21)을 택하는 법이 없다. 완성도나 성숙도, 화려함 면에서는 1번이 2번보다 나중에 (하지만 두 곡 모두 1830년에) 작곡되었으므로 그만큼 더 나은 편이라고는 하나, 아무튼 콩쿠르에서도 그만큼 (잘만 연주한다면) 유리한 면면들이, 또는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애를 먹을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다만, 번호 순서가 뒤집힌 것은, 작품 번호는 악보가 출간된 순서를 따라가기에 쇼팽 협주곡의 경우 그 순서가 뒤바뀌어서 실제 작품이 완성된 시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감히 2번 협주곡을 택하는 출전자들은 늘 소수 있었고, 아직까지는 그 중에서 유일하게 베트남 출신인 당타이손만 우승한 기록을 남겼다. 따라서, 우승이 1번 협주곡이 아닌 2번 협주곡에 돌아갈 것인가 역시 대회 때마다 혹하는 관심사가 된다.
그런데, 협연이라는 형식은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직접 해본 경험 유무에 따라 기본기나 실력 이상의 연주력이 제법 좌우되기도 하는 터기에, 출전자마다 그런 기회는 거칠 수도 아닐 수도 있으므로 이는 쇼팽 콩쿠르와 같은 대회에서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이번 심사위원장 게릭 올슨의 관점이 설득력을 얻었다. 결국 복잡다단하고 심오한 독주곡 하나가 결선에 필수 지정곡으로 추가된 상황이다.
물론 기존에는 예선(1, 2, 3차 라운드) 가운데 선택으로나 필수로나 대회에 따라 연주가 안 된 곡은 아니나, 콩쿠르에서 올리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작품이다. 그러하기에 이 정도면 결선 지정 경쟁곡으로서도 적합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실제로 2010년 대회에서는 이 곡 연주를 3차 라운드에서 전원이 해야 했고, 그 대회에서는 예외적으로 (원래 폴로네이즈상 외에) 이 환상 폴로네이즈상이 별도로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중이 더 큰 결선에서 지정되었고, 이에 더해 원래 규정에 따른 협주곡도 한 곡을 연주해야 하니 출전자들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 테고, 특히 재수생들이라고 딱히 더 유리할 면이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 출신 가운데서도 지난 2021년 대회 파이널리스트 이혁이 재도전하면서 이 op. 61이라는 관문을 어떻게 요리할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자못 궁금해진다. 한편으론 동생(이효)이 같이 출전하므로 예선에서부터 괜한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도 싶은데, 그 사이 롱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성장을 보였기에, 이번에도 선전을 기대한다. 이효 또한 같은 롱티보 콩쿠르 3위 출신이므로 만만찮은 강력한 경쟁자다. 한편 타국의 재수생, 에릭 루 역시 타 대회 (리즈 콩쿠르) 우승자 출신이라 이번 결선에서 op. 61이라는 도전에 응하는 스타일이 어떨지 궁금하다. 롱티보나 리즈나 피아노 콩쿠르로 권위가 있기는 어디 내놓아도 밀리지 않는 명대회들이다. (그러니까 쇼팽 콩쿠르는 피아노계에서 워낙 성배와도 같은 지위에 있는 셈이다.)
Op. 61의 의무 연주 규정은 곡 자체의 난이도 때문에만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같이 연주해야 하는 협주곡이 큰 변수를 야기하는데, 두 가지 면에서다. 두 곡 사이의 상대적 포지셔닝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와 체력적 부담이다. 이 폴로네이즈가 빠르면 11분에서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13분 이상 걸리기도 하는 길이인데, 동 연주 시간이 걸리는 다른 곡들 대비 체력 소모가 훨씬 더할 난도의 곡이기 때문에 물리적 부담도 크다. 이런 깊이와 부담의 곡을 쓴 쇼팽이 새삼 대단하다.
같이 올려야 할 협주곡만도 35~40분이 걸리므로 체력 안배가 어떤 대회 파이널에서보다도 중요해진다. 쇼팽 협주곡, 특히 많이 선택하는 1번은, 기교 면에서 그 후대 작곡가나, 심지어 베토벤 협주곡의 어떤 프레이징들에 비해서는 무난한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입자물리학적(이라고 했던 예전 설명을 떠올려 보시라) 쇼팽의 특성상, 음표 하나만 놓쳐도 곡의 구조나 흐름이 망가진 데 따른 임팩트란 어느 작곡가의 경우보다 크다는 위험에 연주자가 노출된다. 게다가 오케스트라가 간소한 편이므로 피아노 사운드의 비중을 고려하면 연주자에게 그 압박감은 더없이 가중된다. 원체 사악한 난이도로 유명한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작품들은 그나마 미스터치나 음표를 빼먹는 실수를 해도 무난하게 들을 수 있지만, 쇼팽 곡에서는, 특히나 협주곡에서는 그런 관용이랄까 여유란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실제로 위험한 패시지에서는 출전자들이 몸을 얼마나 사리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국 판가름이 날 수도 있다.
어떤 명콩쿠르를 보더라도, 이런 포맷은 없는 듯하다. 협주곡을 두 곡 이상 연주해야 하는 경우, 예선에서 실내악도 연주해야 하고, (현대) 지정곡을 (즉 출전자 모두가) 연주해야 하는 경우야 더러 있지만, 완전한 기교는 물론 도통한 음악성이 (그러고 보니 쇼팽 작품만이 아니라 피아노 독주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심히 최고로 어렵다고 해도 될 만큼) 요구되는 독주곡을 협주곡과 나란히 연주하는 방식 말이다.
과연, 이번 대회가, 여전히 쇼팽에, 피아노 작품에 한하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오히려 역설적으로 광범위한 궁극적 예술의 종합적 시험대로 한 차례 더 도약할 수 있을까?
PS: 말이 나왔으니, 아래 이 난곡 op. 61의 연주 두 가지를 소개한다. 쇼팽 말년의 작품인 만큼, 1960년도 쇼팽 콩쿠르 비동구권 (자유민주주의 서방국) 최초이자 최연소(당시 기준) 우승자 이탈리아 출신인 마우리찌오 폴리니의, 역시 말년의 녹음 하나, 또 하나는 본 콩쿠르 사상 단 한 번 제정되었던 이 op. 61 연주 특별상 수상자의 당시 대회 영상이다(올해는 이 특별상이 있을지 없을지 아직 불투명하다. 제정이 되었다고 무조건 주는 콩쿠르가 아니므로.).
[12] 마음 같아서는 출전자 한 명마다 평을 하고 싶고 다음 스테이지 진출 여부를 점쳐보고도 싶지만, 아무리 연휴라도 일정 시간은 밀린 일에 할애해야 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본 글이 릴리즈되는 시점이 작성 시점과 제법 차이가 날 수도 있어서, 그런 시차의 효과를 글에 적절히 녹이자니 현 필력으로는 무리기도 해서, 중요한 특징이나 단상 위주로 이야기를 이어 갈까 한다.
쇼팽 음악의 매력은, 적어도 8시간 이상 그것도 다수의 곡이 겹치는 여러 출전자의 연주를 들어도 그다지 지루하거나 무료하지는 않을 만큼 엄청나다. 물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자발적 노동이므로 몸은 피곤해지기는 한다. 게다가 현장에서 온전히 몰입하면 그나마 낫지만 온라인으로 일상의 다른 일을 챙기면서 시간표를 따라 이를 챙기려면 마치 마라톤과 단거리 달리기를 동시에 하는 느낌이다. 매우 숨가쁜 리듬을 대회가 끝날 때까지 유지해야 하니 말이다.
사실 가장 큰 고민은 그래도 연휴에야 낫지만, 출퇴근을 해야 하는 일정이 시작되면, 유연근무제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다. 한국 시간으로는 매일 오후 5시에 시작하니 매일 이 시간이나 그보다 30분 전으로 퇴근 시간을 넣으려면 많은 날에 7시부터 아침 근무를 하면 되는데, 대회 전체를 라이브로 감상하기는 무리인 것이, 한국 시간으로 보면 오후 5시에 시작한 그날 일정은 12시간 후인 다음 날 새벽 5시 정도에 마치는 일정이므로, 중간에 현지에서는 밥 먹을 시간에는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소화 가능한 시간이다. 즉, 두 시간 정도 첫 세션이 끝나고 30분 인터미션 사이에 간단히 저녁을 먹고 이어서 또 두 시간 내외를 집중하는 식으로 라이브를 소화할 리듬을 잡아야 한다.
쇼팽 콩쿠르의 개막 갈라 콘서트 직후 실제 경연 시작과 함께 본 소연재를 시작했고, 몇몇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이, 이제 벌써 1차 예선 4일째다. 첫날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 가운데 이제서야 꺼내는 말도 있으니 시간 참 빠르다, 이는 연휴도 3일이, 반이 훌쩍 지나갔다는 뜻이기도 한데 ^^
온라인 라이브로 듣는 이야기를 하면, 지금까지 대략 라이브 세션당 평균 1.5~2만 명이 시청하고 있고, 아시아권 출전자가 거의 반이다 보니 아시아 심야 시간대에는 아무래도 그 수가 조금 더 떨어진다. 댓글은 하도 달리는 속도가 빨라서 주최 측에서 저속 모드를 적용하고 있다(말 그대로 실시간이 아닌, 인당 1분 내지 1분 30초 간격으로 달 수 있음). 단연 훌륭한 연주는 현장에서 듣고 싶다는 말도 자주 나오고, 아주 초보적인 질문도 많이 올라온다. 당연히 쇼팽 콩쿠르에 대해 아주 자세히는 모른 채 알고리듬에 이끌려 온 사용자들도 있을 터라 충분히 있을 법한 의문들이다. 피아노는 중간에 왜 바꾸는지, 왜 한국인들은 대거 연이어 등장하는지(공교롭게도 세 명은 형제지간 포함해 다 이 씨여서 그런!), 직관할 수 있는 표는 살 수 있는지 등등. 주최 측에서는 간혹 퀴즈를 내기도 해서 재미를 더하는 반면, 주기적으로 한국말 등 영어를 안 쓰는 사용자들에게 모두가 대화에 참여하는 오픈된 공간이므로 되도록 영어를 써달라고 주문한다. 그럼, 좀 갈등이 생긴다. 한국어를 쓰는 사용자들을 무시하고 넘어갈지, 그래도 한국어로 대답을 해야 할지 말지다. 대답만 영어로 할 수는 있지만, 질문까지 영어로 옮겨주지 않는 한(또는 그 내용을 담은 문장으로 답하지 않는 한) 영어 사용자들은 맥락을 찾기 쉽지 않아서다. 아무튼 화질이 4K까지 지원되고 사운드도 아주 해상도가 좋으므로 '현장에서 굳이?!'라는 생각도 안 들 수가 없다.
하지만, 현장은 어디까지나 또 현장이다. 일단, 대회 공홈에서 출전자들 정보 등을 찾아보면서 화면으로 즐기는 느낌과 사회자가 프로그램 북의 몇 번 출전자라고 안내해 줄 때 프로그램 북을 그 자리에서 실제로 찾아서 참고하는 느낌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게다가 현장에서는 매일매일 대회 소식과 전일 출전자들의 연주를 간단히 평하는 글이 실리는 특별한 뉴스레터가 발간되고 대회장에 비치된다. (이건 .pdf 파일을 온라인으로 공유해 주면 좋을 텐데, 그 정도 정성이나 리소스는 안 들인다. 사실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런 게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니 주최 측에서야 타지에서는 알거나 말거나겠다. ^^) 현장에 갔던 대회에서 이거 컬렉트하느라고도 꽤 신경을 썼다. 가서 처음 한 2~3일이 지날 때까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 계속-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10] 아무래도 피아노를 뭘 고르는지도 흥미롭다는, 또 굳이 누구의 선택(을 위해 시연 시간 최대 15분이 허용된다)이냐는 면까지 밤새도록 수다판을 벌일 수 있는 피아노 오타쿠적 시선의 관전 포인트보다는 조금은 더 대중적으로 시선이 쏠릴 만한 부분부터 짚어보자.
아무래도 한국적 문화에서는 한국인이 또 우승할 수 있을지가 제일 관건이지 않을까? 또는 몇 명이나 파이널에 나갈지인데, 이번에는 출전자가 4명이다(그 중 한 명은 일본 이중국적). 한국인 형제가 이 대회에 출전한 경우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형제가 나란히 출전했고 그 중 형은 지난 대회 파이널리스트다. 이번 대회에는 다른 나라 출신의 지지난 대회 파이널리스트도 출전했다. 쇼팽 콩쿠르는 그 권위와 위상이 높으디 높은 만큼 재수도 많이 한다. 나 같으면 한 4등 정도 했으면 굳이 또 나가려나 싶은데, 4등이 그 1, 2, 3등 욕심을 못 버리고 또 나갈 수도 있다니!! 물론 이건 무척 무지몽매하거나 단순한 판단이다. 과거 파이널리스트라고 해서 꼭 이번에 더 나은 성적을 거둔다는 보장은 물론,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한다는 보장도 없는 법이다. 올림픽에서 아깝게 메달을 놓친 선수가 금메달은 물론 동메달에라도 다시 도전하려는 심정일까? 하지만 지난 번보다 못하면, 아니 더 잘하더라도 새로운 신예나 출전자들이 더 월등한 연주를 보여줄지 등 재수생 징크스를 둘러싼, 각본 없는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예고되는 셈이다.
이는 상당히, 올림픽, 월드컵과 다를 바 없는 궁금증이나 기대감이지만 그보다도 더 긴 주기로 열릴는 대회니 만큼, 스포츠계 금메달이나 우승보다 더욱 피말리는 서바이벌 게임과도 같은 느낌이다. 그러하기에 다크호스를 발굴하는 재미 또한 덤이다.
또한, 영원한 질문일 수 있는데, 20년 만에 다시 폴란드가 정상을 탈환할 수 있을까, 유럽계는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스타를 배출할 수 있을까, 기술 패권만이 아니라 피아노 제국을 꿈꾸는 최다 출전자의 나라 중국은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둘까? 최근 과학계 Nature Index Top 10에서도 8곳을 중국계 기관/학교가 휩쓸었듯, 파이널리스트에 과연 몇 명이나 오를까? 상위권이나 우승도 가능할까? 러시아와 폴란드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2회 이상 우승자를 배출한 나라가 중국이니까, 그 관심이 자못 남다를 법도 하다.
콩쿠르에서 기본은 실력이지만, 그 외 얼마나 많은 변수가 현장에서 작용하는지는 상식적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가겠지만, 현장에 있으면 그것이 더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콩쿠르라는 형식이 잔혹한 까닭 하나는 어느 하루의 컨디션이 지난 수 년 동안의 노력을 일거에 물거품으로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잘한 감기에만 걸려도, 시차적응에 실패해도, 심지어 연습실 피아노와 무대 피아노의 차이에 당황해도, 그런 미묘한 차이의 영향만으로도 탈락하기 쉬운 게임이자 도박의 장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못한 2021년 대회만큼 아슬아슬하지는 않겠지만, 10월 바르샤바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기복이 있는 연습실 조건은 여전히 변수다(연주할 사람만이 아니라 연주될 악기마저도 이에 예민하다!).
유구한 전통의 대회임에도, 올해 새로 바뀐 feature 측면에서도 더욱 결과는 흥미로워진다. 근 한 세기만에, 전형적으로 폴란드 출신이 맡았던 심사위원장을 이번에 미국인이자 역대 우승자인 게릭 올슨이 맡게 되었다. 비폴란드인으로 최초라는 의미다. 심사위원들 자체가 큰 변수라, 위원장을 누가 맡는지도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간접적 요인이 될 수 있다. 가령, 어쩌면 획일적 기준의 심사위원들만으로 구성되지 말아야 함은 당연하기에, 그만큼 각자의 취향이 제각각인데, 어떤 심사위원은 쇼팽 음악에 내재된 폴란드의 민족적 정서나 전통적인 해석에 무게를 두는가 하면, 다른 심사위원은 악보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구조적 완결성이나,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해석에 더 높은 점수를 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특정 참가자의 연주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현상이 매 대회 반복된다. 1980년에는 심사위원이던 마르타 아르헤리치(역시 같은 대회 역대 우승자로 아르헨티나 출신, 남미계로서는 유일한 기록)가 파격적인 해석을 선보인 이보 포고렐리치가 결선 진출에 실패하자 항의의 표시로 심사위원직을 사퇴한 전설적인 사건도 있었다. 2015년 조성진의 결선 연주에, 앞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한 심사위원이 극단적으로 낮은 점수(1/10점)를 주어 논란이 되었던 것 또한 예술 평가의 주관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아울러, 전통을 깬 심사위원장의 등장은 그보다 더욱 혁신적인 룰을, 어쩌면 이번 대회에서 잠재적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변화를 몰고 왔다.
[11]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결국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집계되어 평균적으로 나타나게 될 텐데, 그것이 폴란드의 정통성에 쏠릴지, 다른 어떤 경향성을 뚜렷하게 보일지는 매번 전혀 예측 불허인데, 이번에는 거기에 더해 어마어마한 변수가 추가되었다.
바로, 이전에 거의 선택되는 법이 없던, 폴로네이즈 중에서는 물론, 쇼팽 전 독주 작품을 통해서도 가장 어렵다는 소위 '환상' 폴로네이즈(Polonaise-Fantaisie Op. 61)가 결선 지정곡으로 추가된 사건(!)이다. 전통적으로 대다수 유명 콩쿠르와 마찬가지로 쇼팽 콩쿠르에서도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협주곡을 연주한다. 다만, 쇼팽 작품만 연주하므로, 두 곡 중 하나를 선택하며, 10여 명의 진출자 중 그야말로 말 그대로 1번 협주곡(op. 11)을 십중팔구 택한다. 어지간해서는 2번 협주곡(op. 21)을 택하는 법이 없다. 완성도나 성숙도, 화려함 면에서는 1번이 2번보다 나중에 (하지만 두 곡 모두 1830년에) 작곡되었으므로 그만큼 더 나은 편이라고는 하나, 아무튼 콩쿠르에서도 그만큼 (잘만 연주한다면) 유리한 면면들이, 또는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애를 먹을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다만, 번호 순서가 뒤집힌 것은, 작품 번호는 악보가 출간된 순서를 따라가기에 쇼팽 협주곡의 경우 그 순서가 뒤바뀌어서 실제 작품이 완성된 시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감히 2번 협주곡을 택하는 출전자들은 늘 소수 있었고, 아직까지는 그 중에서 유일하게 베트남 출신인 당타이손만 우승한 기록을 남겼다. 따라서, 우승이 1번 협주곡이 아닌 2번 협주곡에 돌아갈 것인가 역시 대회 때마다 혹하는 관심사가 된다.
그런데, 협연이라는 형식은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직접 해본 경험 유무에 따라 기본기나 실력 이상의 연주력이 제법 좌우되기도 하는 터기에, 출전자마다 그런 기회는 거칠 수도 아닐 수도 있으므로 이는 쇼팽 콩쿠르와 같은 대회에서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이번 심사위원장 게릭 올슨의 관점이 설득력을 얻었다. 결국 복잡다단하고 심오한 독주곡 하나가 결선에 필수 지정곡으로 추가된 상황이다.
물론 기존에는 예선(1, 2, 3차 라운드) 가운데 선택으로나 필수로나 대회에 따라 연주가 안 된 곡은 아니나, 콩쿠르에서 올리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작품이다. 그러하기에 이 정도면 결선 지정 경쟁곡으로서도 적합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실제로 2010년 대회에서는 이 곡 연주를 3차 라운드에서 전원이 해야 했고, 그 대회에서는 예외적으로 (원래 폴로네이즈상 외에) 이 환상 폴로네이즈상이 별도로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중이 더 큰 결선에서 지정되었고, 이에 더해 원래 규정에 따른 협주곡도 한 곡을 연주해야 하니 출전자들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 테고, 특히 재수생들이라고 딱히 더 유리할 면이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 출신 가운데서도 지난 2021년 대회 파이널리스트 이혁이 재도전하면서 이 op. 61이라는 관문을 어떻게 요리할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자못 궁금해진다. 한편으론 동생(이효)이 같이 출전하므로 예선에서부터 괜한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도 싶은데, 그 사이 롱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성장을 보였기에, 이번에도 선전을 기대한다. 이효 또한 같은 롱티보 콩쿠르 3위 출신이므로 만만찮은 강력한 경쟁자다. 한편 타국의 재수생, 에릭 루 역시 타 대회 (리즈 콩쿠르) 우승자 출신이라 이번 결선에서 op. 61이라는 도전에 응하는 스타일이 어떨지 궁금하다. 롱티보나 리즈나 피아노 콩쿠르로 권위가 있기는 어디 내놓아도 밀리지 않는 명대회들이다. (그러니까 쇼팽 콩쿠르는 피아노계에서 워낙 성배와도 같은 지위에 있는 셈이다.)
Op. 61의 의무 연주 규정은 곡 자체의 난이도 때문에만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같이 연주해야 하는 협주곡이 큰 변수를 야기하는데, 두 가지 면에서다. 두 곡 사이의 상대적 포지셔닝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와 체력적 부담이다. 이 폴로네이즈가 빠르면 11분에서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13분 이상 걸리기도 하는 길이인데, 동 연주 시간이 걸리는 다른 곡들 대비 체력 소모가 훨씬 더할 난도의 곡이기 때문에 물리적 부담도 크다. 이런 깊이와 부담의 곡을 쓴 쇼팽이 새삼 대단하다.
같이 올려야 할 협주곡만도 35~40분이 걸리므로 체력 안배가 어떤 대회 파이널에서보다도 중요해진다. 쇼팽 협주곡, 특히 많이 선택하는 1번은, 기교 면에서 그 후대 작곡가나, 심지어 베토벤 협주곡의 어떤 프레이징들에 비해서는 무난한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입자물리학적(이라고 했던 예전 설명을 떠올려 보시라) 쇼팽의 특성상, 음표 하나만 놓쳐도 곡의 구조나 흐름이 망가진 데 따른 임팩트란 어느 작곡가의 경우보다 크다는 위험에 연주자가 노출된다. 게다가 오케스트라가 간소한 편이므로 피아노 사운드의 비중을 고려하면 연주자에게 그 압박감은 더없이 가중된다. 원체 사악한 난이도로 유명한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작품들은 그나마 미스터치나 음표를 빼먹는 실수를 해도 무난하게 들을 수 있지만, 쇼팽 곡에서는, 특히나 협주곡에서는 그런 관용이랄까 여유란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실제로 위험한 패시지에서는 출전자들이 몸을 얼마나 사리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국 판가름이 날 수도 있다.
어떤 명콩쿠르를 보더라도, 이런 포맷은 없는 듯하다. 협주곡을 두 곡 이상 연주해야 하는 경우, 예선에서 실내악도 연주해야 하고, (현대) 지정곡을 (즉 출전자 모두가) 연주해야 하는 경우야 더러 있지만, 완전한 기교는 물론 도통한 음악성이 (그러고 보니 쇼팽 작품만이 아니라 피아노 독주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심히 최고로 어렵다고 해도 될 만큼) 요구되는 독주곡을 협주곡과 나란히 연주하는 방식 말이다.
과연, 이번 대회가, 여전히 쇼팽에, 피아노 작품에 한하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오히려 역설적으로 광범위한 궁극적 예술의 종합적 시험대로 한 차례 더 도약할 수 있을까?
PS: 말이 나왔으니, 아래 이 난곡 op. 61의 연주 두 가지를 소개한다. 쇼팽 말년의 작품인 만큼, 1960년도 쇼팽 콩쿠르 비동구권 (자유민주주의 서방국) 최초이자 최연소(당시 기준) 우승자 이탈리아 출신인 마우리찌오 폴리니의, 역시 말년의 녹음 하나, 또 하나는 본 콩쿠르 사상 단 한 번 제정되었던 이 op. 61 연주 특별상 수상자의 당시 대회 영상이다(올해는 이 특별상이 있을지 없을지 아직 불투명하다. 제정이 되었다고 무조건 주는 콩쿠르가 아니므로.).
[12] 마음 같아서는 출전자 한 명마다 평을 하고 싶고 다음 스테이지 진출 여부를 점쳐보고도 싶지만, 아무리 연휴라도 일정 시간은 밀린 일에 할애해야 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본 글이 릴리즈되는 시점이 작성 시점과 제법 차이가 날 수도 있어서, 그런 시차의 효과를 글에 적절히 녹이자니 현 필력으로는 무리기도 해서, 중요한 특징이나 단상 위주로 이야기를 이어 갈까 한다.
쇼팽 음악의 매력은, 적어도 8시간 이상 그것도 다수의 곡이 겹치는 여러 출전자의 연주를 들어도 그다지 지루하거나 무료하지는 않을 만큼 엄청나다. 물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자발적 노동이므로 몸은 피곤해지기는 한다. 게다가 현장에서 온전히 몰입하면 그나마 낫지만 온라인으로 일상의 다른 일을 챙기면서 시간표를 따라 이를 챙기려면 마치 마라톤과 단거리 달리기를 동시에 하는 느낌이다. 매우 숨가쁜 리듬을 대회가 끝날 때까지 유지해야 하니 말이다.
사실 가장 큰 고민은 그래도 연휴에야 낫지만, 출퇴근을 해야 하는 일정이 시작되면, 유연근무제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다. 한국 시간으로는 매일 오후 5시에 시작하니 매일 이 시간이나 그보다 30분 전으로 퇴근 시간을 넣으려면 많은 날에 7시부터 아침 근무를 하면 되는데, 대회 전체를 라이브로 감상하기는 무리인 것이, 한국 시간으로 보면 오후 5시에 시작한 그날 일정은 12시간 후인 다음 날 새벽 5시 정도에 마치는 일정이므로, 중간에 현지에서는 밥 먹을 시간에는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소화 가능한 시간이다. 즉, 두 시간 정도 첫 세션이 끝나고 30분 인터미션 사이에 간단히 저녁을 먹고 이어서 또 두 시간 내외를 집중하는 식으로 라이브를 소화할 리듬을 잡아야 한다.
쇼팽 콩쿠르의 개막 갈라 콘서트 직후 실제 경연 시작과 함께 본 소연재를 시작했고, 몇몇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이, 이제 벌써 1차 예선 4일째다. 첫날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 가운데 이제서야 꺼내는 말도 있으니 시간 참 빠르다, 이는 연휴도 3일이, 반이 훌쩍 지나갔다는 뜻이기도 한데 ^^
온라인 라이브로 듣는 이야기를 하면, 지금까지 대략 라이브 세션당 평균 1.5~2만 명이 시청하고 있고, 아시아권 출전자가 거의 반이다 보니 아시아 심야 시간대에는 아무래도 그 수가 조금 더 떨어진다. 댓글은 하도 달리는 속도가 빨라서 주최 측에서 저속 모드를 적용하고 있다(말 그대로 실시간이 아닌, 인당 1분 내지 1분 30초 간격으로 달 수 있음). 단연 훌륭한 연주는 현장에서 듣고 싶다는 말도 자주 나오고, 아주 초보적인 질문도 많이 올라온다. 당연히 쇼팽 콩쿠르에 대해 아주 자세히는 모른 채 알고리듬에 이끌려 온 사용자들도 있을 터라 충분히 있을 법한 의문들이다. 피아노는 중간에 왜 바꾸는지, 왜 한국인들은 대거 연이어 등장하는지(공교롭게도 세 명은 형제지간 포함해 다 이 씨여서 그런!), 직관할 수 있는 표는 살 수 있는지 등등. 주최 측에서는 간혹 퀴즈를 내기도 해서 재미를 더하는 반면, 주기적으로 한국말 등 영어를 안 쓰는 사용자들에게 모두가 대화에 참여하는 오픈된 공간이므로 되도록 영어를 써달라고 주문한다. 그럼, 좀 갈등이 생긴다. 한국어를 쓰는 사용자들을 무시하고 넘어갈지, 그래도 한국어로 대답을 해야 할지 말지다. 대답만 영어로 할 수는 있지만, 질문까지 영어로 옮겨주지 않는 한(또는 그 내용을 담은 문장으로 답하지 않는 한) 영어 사용자들은 맥락을 찾기 쉽지 않아서다. 아무튼 화질이 4K까지 지원되고 사운드도 아주 해상도가 좋으므로 '현장에서 굳이?!'라는 생각도 안 들 수가 없다.
하지만, 현장은 어디까지나 또 현장이다. 일단, 대회 공홈에서 출전자들 정보 등을 찾아보면서 화면으로 즐기는 느낌과 사회자가 프로그램 북의 몇 번 출전자라고 안내해 줄 때 프로그램 북을 그 자리에서 실제로 찾아서 참고하는 느낌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게다가 현장에서는 매일매일 대회 소식과 전일 출전자들의 연주를 간단히 평하는 글이 실리는 특별한 뉴스레터가 발간되고 대회장에 비치된다. (이건 .pdf 파일을 온라인으로 공유해 주면 좋을 텐데, 그 정도 정성이나 리소스는 안 들인다. 사실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런 게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니 주최 측에서야 타지에서는 알거나 말거나겠다. ^^) 현장에 갔던 대회에서 이거 컬렉트하느라고도 꽤 신경을 썼다. 가서 처음 한 2~3일이 지날 때까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 계속-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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