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48. 쇼팽 국제 콩쿠르 현지(바르샤바) 및 온라인(한국) 감·단상 [13] [14] [15]

블랙소스
202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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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늦게 파악한 나머지 이런 대회 소식지는 듬성듬성 여러 날치를 모아서 가져왔는데, 다행히 당시 조성진이 크게 클로즈업된 표지의 뉴스레터를 (딱 남은 그대로) 두 부나 건져서 서울로 돌아올 때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왔다. 한 부는 잘 아는 평론가이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분께 전해드리고, 한 부는 조성진 사인을 받으려고 아직도 못 받은 채 간직하고 있다. 이것을 가지고 있다는 건, (저렇게 건네받은 경우가 아니라면) 그 대회 현장에 있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니까, 리사이틀 후 조성진 사인회 때 꼭 받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10년째 불발이다(연주회를 갈 티킷 자체를 구하는 게 번번 실패고, 이 정도 연주자면, 연주 후 사인회에서조차 티킷 검사를 한다.).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올지? 


당시 바르샤바에서 조성진의 공식 무대는 놓쳤지만, 사실 그보다 더 귀한 연습(리허설) 사운드를, 정말 우연히 듣는 행운을 잠깐이나마 누리기는 했더라, 사인을 받으면서 그 이야기만은 나누고 싶은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왜 귀하냐고? 협주곡 연습 소리라 독주 파트만 아주 생생한 소리로 들었으니까. 그것도 파이널 무대 전날 저녁, 그러니까 연주 완성도도 컨디션도 가장 완벽에 가까웠을 시점에 말이다. 


필자가 못 말릴 정도로 매달리지는 않더라도 가급적 해외에 가면 그 나라에서 악보류가 어떻게 유통되는지 파악해서 소장할 만한 귀한 악보가 있는지 찾아가는 곳들이 있는데, 그런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악기 샵이다. 특히 스타인웨이 샵(이 몇 년 뒤 한국에도 총판으로 생겼지만)에서는 악보를 같이 팔기도 해서 피아노를 구경하려는 게 아니라 악보 구경을 위해서도 여건이 되면 들르는데, 바르샤바에서는 작정하고 찾았다기보다 지나가던 길에 간판이 확연히 보이기에 들렀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면서는 범상치 않게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3악장 파트 연습 소리가 들렸다. 사실 그게 다음 날 대회 파이널 무대에 오를 조성진이 연습하는 소리라고는 전혀 몰랐고 짐작도 못했다. 그냥 주말이니 피아노 고르러 온 누군가가 시연해 보는 거겠거니 싶었는데, 사운드가 장난이 아니어서 뭔가 싶었다가도, '아니, 여기는 쇼팽의 나라의 수도, 바르샤바 아닌가, 그럴 만도 하지'라고 여기고 넘어가려 했는데,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대회 주최 측은 시내 곳곳에 대회 출전자들에게 연습 장소를 지정, 제공했는데, 바르샤바의 스타인웨이 샵은 스튜디오도 같이 갖추고(피아노가 널린 장소니 굳이 갖추었다는 표현도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있어서 그곳도 주최 측이 준비했던 공간이다.) 


악보가 많이 구비되지 않은 까닭에 얼른 훑어보고는 샵을 나와서 걸어가는데 유리창 너머로 조성진이 나와서 바깥 테이블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아차, 그렇구나! 조성진이 연습하고 있던 거였네, 하고 전구 on! 조금 따져보면 피아노 고르는 시연을 굳이 협주곡으로 할 이유는 사실 별로 없기도 했으니. 다시 들어가서 내일 멋진 연주 응원한다는 인사라도 하려다, 무척 예민할 만한 결선 전날이라, 그리고 우산도 없이 비를 좀 맞은 몰골이라, 조금이라도 예상 밖 perturbation을 가했다가는 어떨지 몰라, 그냥 참고 가려던 길을 계속 갔다. 결선 연주 영상을 보면, 그 정도는 정말 기우기는 했다!! 그런 가벼운 인사에 뭔가 안 좋은 영향이라도 받을 일이 없을, 아주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주었으니 말이다. 이 사실은 조성진은 여태도 전혀 모르고 있을 일이다. 언젠가 만나면 꼭 해줘야지~! 그 커다란 대회 소식지의 표지 사진은 만약 조성진 본인도 안 가지고 있다면 사인을 받을 게 아니라 기꺼이 본인에게 기념 선물로 도로(?) 전해줘도 아깝지 않을 법하다!


아주 짧은 패시지를 들었을 뿐이지만, 결선을 직접 봤을 경우 이상의 횡재이자, 조성진의 우승 소식이 들렸을 때는 그 기억이 더더욱 뜻깊은 순간으로 되살아났다. 빛이 바랜 당시의 소식지는 단순한 소장품이자 주인공의 사인을 대기하는 자리만이 아닌, 그날 바르샤바의 우중충하게 내리던 비와 사운드, 공기, 우승 직전의 기대와 떨림, 응원 인사를 둘러싼 망설임까지 소환하는 타임캡슐과도 같으니, 사인을 받든, 선물을 하든, 이 몇 장의 인쇄물은 그 귀한 순간을 공유하는 마법적 매개다. 10년이 아니라 더 긴 세월을 기다려도 아깝지 않을 가치다.


[14] 돌아보면, 이런 10년 전 경험은, 자잘한 해프닝이나 출전자들에 대한 연주평을 포함해 원래 당시 서울로 돌아오는 즉시 정리하고 공유해보려 했으나, 어디 월급 받는 회사원의 일상이 그리 만만하겠는가. 일단 공유할 만큼 뭔가 정리하기가 꽤 힘들었다. 뭐라도 자꾸 끼적여야 정리가 되는 법이거늘, 그놈의 넌센스와 다름없는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뭔가 진척이 없었고, 밀리고 밀리다, 결국 이제서야 이 지면에 이렇게 풀어놓게 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다. 임팩트 가득한 인상을 남겨야겠다는 부담에 발목이 잡혔던 셈이다. 그래도 지금에라도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뭔가는 실천했다는 안도감에, 그리고 일단 뚜껑을 열었으니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말 그대로 10년 묵은 체증이 제법 내려가는 느낌이다. 


게다가, 제법 허황된 생각마저도 든 기억이 난다. 현장에 가기로 했을 때부터 뭔가 프리미엄을 제공할 수 있는 새로움을 돌아와서 공유하리라 여겼는데, 어느 모로 봐도, 사전에 철저한 계획 없이는 어불성설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기획적 구상 속에 간 게 아니라 즉흥적으로, 그냥 현지에서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날아갔으니, 조성진 우승이라는 한국인 최초 사건을 비롯해 이 대회에서 무엇인가 조직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움직임에 비하면 자꾸 본전이라도 떠올리려 했음이 우습기마저 하다. 그런 경험이 거의 일천해서도 그럴 것이다. 해외로 연주를 보러 간 건, 그 전에는 루체른 '피아노' 페스티벌 (날씨 좋은 시절 열리는 유명한 '루체른 페스티벌' 과 별개로 11월에 열렸으나, 이제는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잊혀진) 정도였던 듯해 엉성하기 짝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과거는 그때로서는 최선이라 여겼지만, 돌아보면 후회까지는 아니어도 아쉬움을 남기는 경우가, 바로 영국 생활을 하면서도 명연주자들의 연주회 한 번을 못 가본 어리석음이다. 나중에 사회 생활 속에서 해외 공연이고 대회고 찾아 멀리까지 가기를  반복하면서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싶었다. 


그러니까 세상이 온라인으로 과거에 그렇지 않던 많은 부분이 해결됨은 분명한 진보로 수용하고 적극 활용해야겠음에도, 항간에서는 그것이 다가 아니기도 하다는 인식은 점점 약해지는 듯하다. 현장에 다녀온 경험 속에서는 그 시점, 그 자리의 청취나 감상도 좋지만, 내 과거와 미래가 더욱 강력히 엮이면서 온라인으로는 허용될 수 없는 범위의 시공간이 열리는 법이다. 생성형 AI 열풍도 마찬가지다. ChatGPT 등으로 대변되는 생성형 AI의 진전으로 인해 기계는 분명 (적어도 기능적 면에서는) 과거보다 많은 일들을 수행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능사만은 아닌 법이다. 이런 변화 앞에서 사람들은 굉장히 naive해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풍토가 경제적으로는 물론 기술적으로도 거품 조장의 씨앗을 뿌리지만, 과도기에 불과한 시행착오 정도로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여러 우려나 비판이 제대로 기능하기를 바란다. (필자는 의심이 많은 편이라 이런 이기를 쉽게 다루지는 못하는 편이고, 잘 다뤄보려 해도 피로도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급상승하는데, 정말 그것을 감수할 만큼 득이 되는지 잘 모르기도 하겠으니, 잘 쓴다는 사람들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정말 뭘, 어디까지 믿고 그렇게 주저 없이 쓸 수 있을까?) 


이러한 디지털, 사이버 세계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또한 바로 이러한 대회 현장이다. 적어도 음악 콩쿠르는 그러한 듯하다. 콩쿠르의 기원에서 어느 정도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한 스포츠만 해도, 선수 자체의 기량 발휘는 아날로그적이지만, 이미 디지털 판정과 각종 지표, 통계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악기 연주란, 또 대회에서 심사란, 그에 비하면 훨씬 오롯이 아날로그적인 영역 아닌가(디지털 기술을 과연 콩쿠르 심사에서도 도입하는 날이 올까?). 물론, 오늘날 악기 '선수'들 역시 연습 과정에서 디지털 기기를 얼마나 사용하는지, 과거보다 실제로 제법 활용 비중이 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정말 단순한 예로, 전화기의 앱을 보면, 메트로놈 앱만도 수도 없이 많으니까. 아울러 앱으로 녹음하면 파형도 보여주는 기능 역시 그리 어려운 기술이 아니니 이런 기술의 혜택을 기가 막힌 발상과 맞물려 과거 연주자들보다는 더 누릴 수는 있겠다). 아무튼 본질적으로는 악기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자연적이고 아날로그적이다.


[15] 손가락 끝의 미세한 속력, 각도 및 압력 변화가 현의 진동을 다양하게 만들고, 그 진동이 홀의 공기를 울려 가지각색으로 소리가 되는 과정은 온전히 디지털 신호로 환원될 수 없는 물리적 현실 그 자체다. 온라인에서 FAQ 하나가 현장에서도 정말 이렇게 들릴까, 마이크 위치나 성능 등 장비나 환경 영향이 송출되는 사운드에 어떤 (현장 청중석에서는 못 느끼거나 혼선을 야기하지 않을) 영향을 주는가 하는 점이다.


가령, AI가 아무리 정교한 데이터를 학습한다 해도, 더군다나 아무리 Physical AI 운운하는 시대라 해도, 무대 위 연주자의 긴장감과 몰입, 청중과의 즉각적인 교감, 심사위원석의 분위기나 눈치 등까지 재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4K 고화질 스트리밍의 편리함이나 유용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현장을 찾는 까닭이며, 10년 전 바르샤바의 기억이 단순한 정보가 아닌 생생한 경험으로 남은 까닭이기도 하다. 디지털의 파고가 높을수록, 이러한 아날로그적 몰입의 가치는 더욱 희소해지고 빛을 발한다.


현장에서는 특히 기대 이하, 기대 이상의 장면이 더욱 생생하기도 하다. 가령, 저 친구는 어떻게 이 무대에 올라왔을까 싶은 반면, 다른 친구는 아슬아슬하게도 다음 라운드로 계속 진출하면서 빛을 발하기도 한다. 직전 스테이지에서 기대를 모았다가도 (목표 이상의 스테이지에 운 좋게 진출한 건지 뭔지) 어쩐 일인가 싶게, 아마 돌발적인 컨디션 난조, 또는 (입상이라는 의무감 없이 여러 이유로) 출전한 배경 등의 이유가 각기 작용하는 듯하다. 아울러, 심리적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프로그램 북에 버젓이 소개되어 있는 출전자가 무대에 등장하지 못할 때는 안타까움이 더 커지기도 한다. 정말 안 된 경우도 있고, 반대로 프로그램 북이 인쇄되고 난 후 자진 출전 취소를 하는 경우까지도 있다. 이런 정보는 현지에서 바로바로 오가는 숨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에서만 포착될 수 있는 성격이 크다.


무엇보다도 경연이라는 형식을 통하고 있지만 특정 무대의 장면이나 사운드, 또는 대회장은 물론 도시 분위기를 접하면 '대회'라기보다는 '공연'에 더 가까울 뿐더러 차라리 축제라 함이 더 어울릴 듯한데, 몇몇 제한된 앵글로만 비치는 화면 속에서는 이를 느끼기 더욱 어렵다.


그러함에도,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 안방 1열까지 배달을 가능하게 한 고화질 영상과 고음질 음향 기술은 현장과의 물리적 거리는 물론 심리적 괴리도 상당 부분 소멸시켰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준)전문가들의 분석과 전 세계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은 이벤트를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만든다. 모두가 심사위원이 되는 시대다. 이는 분명한 접근성의 민주화이며 긍정적인 변화이지만, 동시에 현장이 주는 고유한 아우라의 희석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물리적 공간이 사라진 자리에는 정보의 홍수가 밀려든다. 이 정보 과잉 속에서 음악 자체에 오롯이 몰입하기란 오히려 더 어려워진 역설이 발생한다(현장에서 접하는 정보는 일명 TMI(Too Much Information)성 같아도 방해가 되지는 않는 편이다.). 화면 속 자막과 채팅창은 때때로 음악에 대한 순수한 감상을 방해하는 노이즈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보게' 되었지만, 어쩌면 더 적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AI 등)에 매몰되어 본질적인 가치를 놓치는 디지털 시대의 나이브함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적 구도가 다는 아니다. 운동 경기장 관중석과도 같은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아나운서와 해설자 중계를 듣기 위해 현장에서도 방송을 같이 틀고 볼 수도 있듯이, 대회 홀 청중석에 앉아서도 유튜브를 같이 보는 (물론 운동 경기처럼 해설이 딱히 있지는 않아서, 중간중간 출전자 인터뷰 등 깜짝 기획 특집 정도가 있으며 굳이 '중계'라 한다면 역시 댓글들 정도) 지경에 이른다. 역시 몰입 감상에 좋은 방법은 당연히 아니지만, 음악 경연 또한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하이브리드적으로 즐길 수 있는 시대다.


이번 대회 기간 중에는 어쩔 수 없이 살짝 언급한 대로 한국에 머물러야 해서 물리적인 현장감은 포기해야 하지만, 그 대신에 10년 전의 즉흥적이고 엉성한 경험 속에서도 선명하게 남은 현지의 감각을 바탕으로 온라인 감상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참가자들의 연주력이나 해석을 비교하면서 누가 훌륭한 성적을 거둘지 나름으로 점을 쳐보면서 즐기겠지만, 그리고 4년 전에도 코로나의 그림자 속에서 온라인으로 접했기는 마찬가지지만, 올해는 무엇보다도 달라진 파이널 무대 규정(특히 결선에서의 <환상 폴로네이즈> 필수 연주라는 파격)이 만들어낼 변수들을 떠올리면 혜성과도 같이 새로운 전설이 탄생할지 그 결과나 어떤 이변들이 생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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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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