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아울러, 유독 폴란드와 일본의 관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대회에서 소위 '돈 자랑' 하기로 유명한 일본. 미국과 더불어 두 명이 올라간 나라다. 일본은 대회마다 파이널리스트에는 최소 한두 명이 꼭 올라가지만 상위권 입상은 또 아직 가야 할 먼 길이기도 하다(아마 아주 드물게 역대 한두 명이 있었는지 몰라도, 적어도, 1, 2위에는 없었던 기억이다.). 여기서 보통 상위권이라 하면 6위까지 순위 시상을 하므로 3등, 곧 올림픽과도 마찬가지로 금, 은, 동 메달권을 이야기한다. 이번 일본 출전자들의 활약이 어디까지 갈지도 관건이다.
그 외에는 폴란드, 캐나다가 또 한 명씩 올라갔는데, 여기서 캐나다는 사실상 중국계라 위에서 언급했다. (물론 가끔 캐나다도 본토 출신도 꽤 좋은 성적을 보이기도 한다. 조성진이 우승하던 해, 2위도 캐나다 네이티브(?)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캐나다 국적으로 출전한 서양인이다.)
다시 폴란드 이야기, 안 할 수가 없다. 개별적으로 선호되던 폴란드 출전자들은 다 낙방하고 1명만 살아남았다. 폴란드는 사실 한 명도 파이널에 못 보내면 전국적으로 난리가 날 법한, 이 대회만큼은 그만큼 그들의 자부심이기도 한데, 반대로 1명은 아주 간신히 체면 유지라도 하는 느낌의 결과다. 게다가 재수생이다. 다른 폴란드 출신 중 파이널 무대를 보고 싶었던 출전자는 모두 집에 갔다. 아무래도 평가 체계가 복잡한 데다, 실력들이 다 쟁쟁하니 어쩔 수 없는 결과기도 했다. 간혹 폴란드 어드밴티지, 밀어주기 이야기가 나오지만 대개는 다 지나간 옛적 이야기나 다름없다. 전체적으로 폴란드 출신들이 저마다 다르게 특정하게 빛나는 부분들이 있어서, 다른 출전자를 압도할 정도로 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부치는 느낌도 확연했는데, 폴란드인이 파이널리스트로서 유일하게 진출한 이번 같은 경우 그 추가되는 부담이나 압박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개최국의 자존심이 본인한테 다 걸려 있으니!
그 외 국적 중 눈에 뜨이는 나라는 Georgia, Malaysia다. 이 국가 중 최초 우승 기록이 나올지가 단연 주목 거리다. 두 연주자 모두 탄탄한 연주력을 예선에서 선보였다. 기대 이상으로. 아무도 예상 못한 피아노계의 변방, 베트남에서 대회 정상을 차지한, 현재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당타이손처럼 스타가 탄생할지 역시 자못 궁금해진다.
당연히 출전자 국적 이야기로, 우리나라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파이널리스트에 네 명 중 아무도 못 갔는데 왜 또 마음 더 아프고 아쉽게 굳이 꺼낼 이유를 물으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기적'이다. 그래서 간단히라도 짚어보고 싶어졌다. 간간 덧붙이지만, 강조를 위해, 작은 인용부호를 달았다는 건 사실은 그것이 아니거나 적어도 의미가 다른 경우인데, 파이널리스트에 당연히 최소 1명 정도는 한국에서 올라감이 지당한 국가적 연주력의 위상에 비추어 볼 때, 결과만 보면 굉장한 이변이기는 해서다. 아쉬운 기적이다!
물론 이야기한 대로 현장 변수라는 건, 거의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돌발적이기도 해서, 결과는 아무도 점치지 못하는 데다 심사체계 자체의 비선형성 또한 높아서 더욱 예측불허성이 커진다. 그러함에도 심사위원들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각자 기준에 따른 절대평가를 진행하므로, 참가자 자신의 실력(체력을 포함한)과 가능성을 얼마나 현장에서 펼치느냐가 관건이라는 기본적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본 대회도 물론 초창기에 대회 규정 등이 정착되기 전에는 동률이 나온 1등 정하기를 동전 던지기로 했다는 황당한 후문도 들리긴 하지만(공동 1위 개념이 없었나?), 거진 한 세기에 걸쳐 명실상부한, 피아노계만이 아닌 음악계 전체의 랜드마크 대회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이번 파이널리스트가 발표되고 나서도 마찬가지로, 평균적으로 근래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콩쿠르 성적이 상대적으로 주춤하면서, 너무 대회마다 휩쓸다시피 해서 결국 역차별 국면에 이르지 않았냐는 해석도 있는데, 대회마다 정도 차이에 따라 어느 정도 진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그것도 집단의 평균적 수준이 오락가락하기는 어려우니까. 하지만 쇼팽 콩쿠르의 진행 및 심사 방식을 보면 적어도 이번 파이널 결과는 그 정도로 해석하기에는 과하다. 아무리 상대 비교가 불필요한 절대평가라 해도, 결국 상대적 순위가 정해지므로, 쟁쟁한 출전자가 유독 많은 나머지 결국 nano-scale 정도의 차이로 진출이 막힌 연유가 제일 크지 않나 싶다. (심사위는 어느 정도 레인지에 따라 정한 기준이 있는 듯하나 명료히 그것을 알기는 어렵다. 가령 최종적으로, 1위가 안 나올 때는 물론, 2위 등이 안 나올 때도 있으니까! 가령, 한국 최초 입상 기록을 남긴 임동민, 임동혁 형제는 공동 3위를 했지만, 당시 2위가 공석이었다. 그냥 위로 당겨서 이들에게 공동 2위를 주지는 않았는데, 그것이 순수하게 심사 체계 영향만인지는 불투명하다. 한때 국제 무대에서 우리나라는 악기 불문, 아무리 잘해도 1위 없는 2위가 공식화된 인식으로 자리하던 시절도 있었다.) 아무튼 이번 대회에 출전해서 온(?) 국민, 아니 팬들에게 훌륭한 연주와 즐거움, 가능성을 경험하게 한 4인 연주자의 미래를 적극 응원해본다.
[20] 원래 계획은, 콩쿠르 stage마다 그래도 뭐라도 공유를 하려던 차, 연휴도 지나고 한국에서는 각종 정기학회 시즌이고 하다 보니 결국 파이널을 지나 수상자까지 결정되고 난 다음, 본 소연재의 마무리를 위한 키보드 앞에 다시 앉았다. 마무리라지만 대회를 마치고도 결과나 그 후반의 경과만을 놓고도 최소 몇 차례는 더 나눌 이야기가 남은 듯하다. 간혹은 (입상자가 발표되면 열기가 한결 식고 긴장이 제법 해소되지만) 이어지는 갈라 콘서트 무대 또한 제법 화제가 되기도 한다.
다시 파이널리스트가 발표되기 직전으로 돌아가보자. 역시, 각 stage가 끝나고 다음 번 진출자들 명단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은 stage를 거듭할수록 길어지기 마련이지만, 마지막 수상자들 결정 때는 유튜브 댓글 창에서 난리가 날 정도로 한참 걸린다. 참고로 파이널리스트의 순위를 결정하는 대기 방송은 무려 5시간(!!) 가까이의 기록으로 남았다. 대회 정상 일정이 있는 날의 반쯤 해당하는 시간이다. 그 사이 주최 측은 기존 또는 이번 출전자 등 대회 관계자 인터뷰, behind the scenes 등 계속 깨알 재미를 안기는 영상을 송출하며, 기다리는 라이브 시청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일부는 임기응변적) 기획력을 총동원한다(심사위 내 벌어지는 상황은 주최측이라고 해서 더 잘 알 길이 없으니 말이다.). 사실 한국 시간으론 가장 버티기 어려운, 평소 같으면 대다수가 아침에 기상할 즈음이라 버티기가 만만찮다. 특히 새벽까지 뜬눈으로 경연을 모두 지켜보고 기다린다면 더더욱.
사실 온라인으로야 방영되는 영상이라도 보면서 기다리면 되는데, 현장에서는 정말 할 게 더 없다. 그러니 거기서도 정말 무료하면 역시 대기 방송되는 유튜브 영상이라도 봐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물론 붙임성이 좋은 사람들은 국적, 나이 가리지 않고 거기 모인 청중과 열심히 수다를 떨 수도 있다(그래서 사실 그 현장에서까지 대회 유튜브를 보고 있는 건 어처구니없다는 표현이 딱인 듯하지만, 또 모든 이가 그렇게 사교성이 좋은 법도 아니니 좋다, 나쁘다를 따질 일은 물론 아니다.).
특히 유튜브 댓글은 대회 자체는 물론, 출전자의 연주, 작품을 비롯한 관련된 이야기들로, 엄창난 음악의 공론장을 현성하기 마련이니, 현장에서 이를 즐기지 말란 법도 없다. 필자 역시 그런 댓글들이나 반응이 하도 다양하고 재밌어서 대회장에서 대기나 휴식 시간이 아니라 앞에서 연주가 실제로 일어나는 무대를 두고도 청중석에 앉은 채로 유튜브를 (당연히 무음으로) 켜놓기도 했으니까. 중간에 참가자나 소위 '업계 전문가'와의 대담도 꽤 흥미로우면서도 한국에선 어지간해서 접하기 어려운 고밀도 이야기가 오가기도 해서 현장에 직관하러 가도 이를 놓치기는 아까운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번 대회에는 주최 측은 무슨 우려를 했는지 몰라도, 또는 실제로 초반에 장애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서인지 몰라도, 필자도 이번에 처음으로 그런 기능이 있는 줄 알았는데, 운영자는 댓글 창 저속 모드를 적용하고 있었다. 보통 라이브 시청자 수가 높을 때가 3만 명 초반대였던 듯한데, 기술적 문제가 우려되었는지 아닌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따라서 기대했던 공론의 열기는 그다지 활활 타지는 못했다. 한 번 댓글을 달면 최소 1~2분 이후에 또 말을 할 수 있는데, 그 사이에 다른 말이나 Q&A가 또 오고 가면 대화 흐름이 잘 끊어진다. 그래서, 처음부터 흐름을 따라가기도 힘들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중간중간 동문서답, 뜬금없는 말 같은 내용도 자주 보인다. 더불어서, 주최 측에서도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 간간 퀴즈(정답이 있거나 그냥 선호도 조사성)를 내기도 해서 질문과 대답이 마구 엉킨다.
참, 댓글창에서 비교적 많이 보인 말 중 하나는, 다국적 공간이니만큼 영어 사용을 가급적 권장하는 멘트다. 그런데, 밤 세션에 한국인들이 많이 보고 있는 시간대(이건 댓글에서 한국어 비중이 올라가면 당연한 짐작이다)에 운영진 멘트 또한 한국어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소문에는 교대 운영자 중 최소 1인이 한국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아니더라도 요즘은 번역기를 활용해도 별로 티가 안 날 터라, 후자 쪽일 수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댓글 중에는 정말, 대회를 잘, 아니 전혀 모르고 (알고리듬에 끌려서라도) 온 듯한 발언도 제법 등장하는데, 이거 라이브냐(라이브는 라이브 표시를 확인할 수 있다), 어디서 하는 거냐 정도는 양반이고, 마치 ranking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운동 종목류를 떠올렸는지, 심지어 '지금 순위'가 어떻게 되냐는 (콩쿠르 구조에 문외한인 유저의) 물음도 나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FAQ중 하나로, 폴란드가 1위를 하냐 아니냐는 투의 댓글은 부지기수로 많다(또는 폴란드 출전자 중에 누가 제일 낫냐고 하는 질문도 그냥 이 범주로 묶어도 되겠다.).
[21] 이처럼 댓글을 접할 때 상당히 폭넓은 반응 스펙트럼을 경험하는데, 필자에게 인상적인 하나는, 쇼팽 연주를 틀어(?) 놓고 있으니 저녁 분위기가 다르더라, 하는! 사실 이 말에 대한 필자의 느낌에 더 놀라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꽤 신선하게 충격적이었다. 늘상 같이한다 싶은 음악이었고, 쇼팽과 피아노는 물론, 이런 커다란 대회를 아무리 잘 알고 있었다 해도, 음악이 분위기를 전환시키거나 바꾼다는 감각은 거의 없었던 터라서도 더 놀랐는지도 모른다. 사실 어떻게 보면 정말 아무 말도 아니고 당연히 그러려니 할 법한 감흥 아닌가? 그만큼 피아노 곡들이 체질화되어 그렇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협소한 감각 아닌가!
라이브로 원격 시청을 하든 현지에 가서 직관하든, 가상 공간의 댓글말고, 실제로 물리 세계에서도, 이 콩쿠르를 즐기노라면 천차만별의 반응을 접하는데, 그 중에서도 기상천외한 피드백은, 5년마다 돌아오는 바로 그 대회 시즌에 바르샤바에 갔다니까, 거기 나간 거냐는 되물음이었다! 어떻게 보면 상식이 의심스러운 수준의 멘트인데, 워낙 클래식과 거리가 먼, 하지만 내가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꾸었을 만큼 피아노를 즐긴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라는 렌즈로 바라보면, 그런 엉뚱한 천진무구함은 당연할 수도 있다. 설마 놀리려고 그런 건 아니었겠지? 얼마나 큰 대회인지 모르니까 일개 회사원이 피아노를 잘 치면 나갈 수도 있다고, 나이 제한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럴 수 있다는 건 상식 밖인가 아닌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지 아닌지 더는 물어보진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대회의 장은 내가 피아노를 했다면 (피아노를 하는 누구나 적어도 한번은 그랬겠듯이) 꿈에 그렸을 현장이기도 해서, 그런 (당사자야 별 생각 없는 반응이었을지 몰라도) 느낌은 더욱 특별하기도 했다. 내가 저 자리에서 1차 stage에서만이라도, 쇼팽 연주를 쇼팽의 모국에서 폴란드인들 그 많은 데서 해볼 수 있었다면. 물론 콩쿠르란 게 그렇게 낭만적일 수는 전혀 없다. 오죽하면, 당시 우승했던 조성진의 3대 악몽 중 하나가 쇼팽 콩쿠르를 다시 치르는 일이라고 했겠는가.
조성진의 우승은 대회 최대 이변이라고 해도 타당하다. 콩쿠르 역사에서 없던 나라에서 우승자가 나왔으니. 게다가 그것도 한국에서라니. 물론 우리나라 연주자들이 부문을 막론하고 국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열풍이 거세지던 터였지만, 다른 악기, 다른 대회는 몰라도, 쇼팽 콩쿠르만은 정말 1등이 나올까 싶게 이 대회의 벽은 정말 높았다. 당시 조성진의 예선 연주를 (아직 현지 도착 전 라이브로) 보면서도 저런 컨디션과 수준이 잘 유지되면 1등 없는 2등 정도가 가능하겠다 싶었는 게, 정말 탁월함에도 우리나라는 여러 층위의 맥락이 복잡다단하게 얽히면서 1등은 설마 아니겠지, 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워낙 유명한 재목이었지만, 대회 무대에서도 큰 이변이자 기적이었다.
대회마다 그런 이변이나 스타의 탄생 여부는 늘 기대되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큰 축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회 우승자, 에릭 루를 이변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아니라 할 수 있다. 이변을 결정하는 특성의 하나로, 조성진이 한국인 최초 우승자인 사실처럼, 대회사상 없었던 유형의 사건을 기준으로 보면, 에릭 루는 이변이다. 왜냐하면 한 차례를 건너뛴 재수생 출신으로, 즉 기간으로 보면 삼수생과 같은 출신으로 우승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1위 없는 2위는 있었다.). 에릭 루는 조성진이 출전하던 당시 4위를 거머쥔, 이미 10년 전에도 충분히 실력을 인정받은 연주자다. 이후로 굳이 콩쿠르에 나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연주자이자 지도자의 경력을 착실히 이어 가고 있던 터라, 재출전, 그것도 쇼팽 콩쿠르에, 결심 자체가 쉽지 않다. 루는 이번에는 제자와도 같이 출전한 사연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이변은 딱 거기까지, 뒤집어 보면 당연한 결과기도 했다. 적어도 위에서 언급한 기준으로는 이례적인 기록을 더하기는 했지만, 이변까지는 아닌 셈이었다.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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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아울러, 유독 폴란드와 일본의 관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대회에서 소위 '돈 자랑' 하기로 유명한 일본. 미국과 더불어 두 명이 올라간 나라다. 일본은 대회마다 파이널리스트에는 최소 한두 명이 꼭 올라가지만 상위권 입상은 또 아직 가야 할 먼 길이기도 하다(아마 아주 드물게 역대 한두 명이 있었는지 몰라도, 적어도, 1, 2위에는 없었던 기억이다.). 여기서 보통 상위권이라 하면 6위까지 순위 시상을 하므로 3등, 곧 올림픽과도 마찬가지로 금, 은, 동 메달권을 이야기한다. 이번 일본 출전자들의 활약이 어디까지 갈지도 관건이다.
그 외에는 폴란드, 캐나다가 또 한 명씩 올라갔는데, 여기서 캐나다는 사실상 중국계라 위에서 언급했다. (물론 가끔 캐나다도 본토 출신도 꽤 좋은 성적을 보이기도 한다. 조성진이 우승하던 해, 2위도 캐나다 네이티브(?)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캐나다 국적으로 출전한 서양인이다.)
다시 폴란드 이야기, 안 할 수가 없다. 개별적으로 선호되던 폴란드 출전자들은 다 낙방하고 1명만 살아남았다. 폴란드는 사실 한 명도 파이널에 못 보내면 전국적으로 난리가 날 법한, 이 대회만큼은 그만큼 그들의 자부심이기도 한데, 반대로 1명은 아주 간신히 체면 유지라도 하는 느낌의 결과다. 게다가 재수생이다. 다른 폴란드 출신 중 파이널 무대를 보고 싶었던 출전자는 모두 집에 갔다. 아무래도 평가 체계가 복잡한 데다, 실력들이 다 쟁쟁하니 어쩔 수 없는 결과기도 했다. 간혹 폴란드 어드밴티지, 밀어주기 이야기가 나오지만 대개는 다 지나간 옛적 이야기나 다름없다. 전체적으로 폴란드 출신들이 저마다 다르게 특정하게 빛나는 부분들이 있어서, 다른 출전자를 압도할 정도로 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부치는 느낌도 확연했는데, 폴란드인이 파이널리스트로서 유일하게 진출한 이번 같은 경우 그 추가되는 부담이나 압박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개최국의 자존심이 본인한테 다 걸려 있으니!
그 외 국적 중 눈에 뜨이는 나라는 Georgia, Malaysia다. 이 국가 중 최초 우승 기록이 나올지가 단연 주목 거리다. 두 연주자 모두 탄탄한 연주력을 예선에서 선보였다. 기대 이상으로. 아무도 예상 못한 피아노계의 변방, 베트남에서 대회 정상을 차지한, 현재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당타이손처럼 스타가 탄생할지 역시 자못 궁금해진다.
당연히 출전자 국적 이야기로, 우리나라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파이널리스트에 네 명 중 아무도 못 갔는데 왜 또 마음 더 아프고 아쉽게 굳이 꺼낼 이유를 물으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기적'이다. 그래서 간단히라도 짚어보고 싶어졌다. 간간 덧붙이지만, 강조를 위해, 작은 인용부호를 달았다는 건 사실은 그것이 아니거나 적어도 의미가 다른 경우인데, 파이널리스트에 당연히 최소 1명 정도는 한국에서 올라감이 지당한 국가적 연주력의 위상에 비추어 볼 때, 결과만 보면 굉장한 이변이기는 해서다. 아쉬운 기적이다!
물론 이야기한 대로 현장 변수라는 건, 거의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돌발적이기도 해서, 결과는 아무도 점치지 못하는 데다 심사체계 자체의 비선형성 또한 높아서 더욱 예측불허성이 커진다. 그러함에도 심사위원들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각자 기준에 따른 절대평가를 진행하므로, 참가자 자신의 실력(체력을 포함한)과 가능성을 얼마나 현장에서 펼치느냐가 관건이라는 기본적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본 대회도 물론 초창기에 대회 규정 등이 정착되기 전에는 동률이 나온 1등 정하기를 동전 던지기로 했다는 황당한 후문도 들리긴 하지만(공동 1위 개념이 없었나?), 거진 한 세기에 걸쳐 명실상부한, 피아노계만이 아닌 음악계 전체의 랜드마크 대회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이번 파이널리스트가 발표되고 나서도 마찬가지로, 평균적으로 근래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콩쿠르 성적이 상대적으로 주춤하면서, 너무 대회마다 휩쓸다시피 해서 결국 역차별 국면에 이르지 않았냐는 해석도 있는데, 대회마다 정도 차이에 따라 어느 정도 진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그것도 집단의 평균적 수준이 오락가락하기는 어려우니까. 하지만 쇼팽 콩쿠르의 진행 및 심사 방식을 보면 적어도 이번 파이널 결과는 그 정도로 해석하기에는 과하다. 아무리 상대 비교가 불필요한 절대평가라 해도, 결국 상대적 순위가 정해지므로, 쟁쟁한 출전자가 유독 많은 나머지 결국 nano-scale 정도의 차이로 진출이 막힌 연유가 제일 크지 않나 싶다. (심사위는 어느 정도 레인지에 따라 정한 기준이 있는 듯하나 명료히 그것을 알기는 어렵다. 가령 최종적으로, 1위가 안 나올 때는 물론, 2위 등이 안 나올 때도 있으니까! 가령, 한국 최초 입상 기록을 남긴 임동민, 임동혁 형제는 공동 3위를 했지만, 당시 2위가 공석이었다. 그냥 위로 당겨서 이들에게 공동 2위를 주지는 않았는데, 그것이 순수하게 심사 체계 영향만인지는 불투명하다. 한때 국제 무대에서 우리나라는 악기 불문, 아무리 잘해도 1위 없는 2위가 공식화된 인식으로 자리하던 시절도 있었다.) 아무튼 이번 대회에 출전해서 온(?) 국민, 아니 팬들에게 훌륭한 연주와 즐거움, 가능성을 경험하게 한 4인 연주자의 미래를 적극 응원해본다.
[20] 원래 계획은, 콩쿠르 stage마다 그래도 뭐라도 공유를 하려던 차, 연휴도 지나고 한국에서는 각종 정기학회 시즌이고 하다 보니 결국 파이널을 지나 수상자까지 결정되고 난 다음, 본 소연재의 마무리를 위한 키보드 앞에 다시 앉았다. 마무리라지만 대회를 마치고도 결과나 그 후반의 경과만을 놓고도 최소 몇 차례는 더 나눌 이야기가 남은 듯하다. 간혹은 (입상자가 발표되면 열기가 한결 식고 긴장이 제법 해소되지만) 이어지는 갈라 콘서트 무대 또한 제법 화제가 되기도 한다.
다시 파이널리스트가 발표되기 직전으로 돌아가보자. 역시, 각 stage가 끝나고 다음 번 진출자들 명단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은 stage를 거듭할수록 길어지기 마련이지만, 마지막 수상자들 결정 때는 유튜브 댓글 창에서 난리가 날 정도로 한참 걸린다. 참고로 파이널리스트의 순위를 결정하는 대기 방송은 무려 5시간(!!) 가까이의 기록으로 남았다. 대회 정상 일정이 있는 날의 반쯤 해당하는 시간이다. 그 사이 주최 측은 기존 또는 이번 출전자 등 대회 관계자 인터뷰, behind the scenes 등 계속 깨알 재미를 안기는 영상을 송출하며, 기다리는 라이브 시청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일부는 임기응변적) 기획력을 총동원한다(심사위 내 벌어지는 상황은 주최측이라고 해서 더 잘 알 길이 없으니 말이다.). 사실 한국 시간으론 가장 버티기 어려운, 평소 같으면 대다수가 아침에 기상할 즈음이라 버티기가 만만찮다. 특히 새벽까지 뜬눈으로 경연을 모두 지켜보고 기다린다면 더더욱.
사실 온라인으로야 방영되는 영상이라도 보면서 기다리면 되는데, 현장에서는 정말 할 게 더 없다. 그러니 거기서도 정말 무료하면 역시 대기 방송되는 유튜브 영상이라도 봐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물론 붙임성이 좋은 사람들은 국적, 나이 가리지 않고 거기 모인 청중과 열심히 수다를 떨 수도 있다(그래서 사실 그 현장에서까지 대회 유튜브를 보고 있는 건 어처구니없다는 표현이 딱인 듯하지만, 또 모든 이가 그렇게 사교성이 좋은 법도 아니니 좋다, 나쁘다를 따질 일은 물론 아니다.).
특히 유튜브 댓글은 대회 자체는 물론, 출전자의 연주, 작품을 비롯한 관련된 이야기들로, 엄창난 음악의 공론장을 현성하기 마련이니, 현장에서 이를 즐기지 말란 법도 없다. 필자 역시 그런 댓글들이나 반응이 하도 다양하고 재밌어서 대회장에서 대기나 휴식 시간이 아니라 앞에서 연주가 실제로 일어나는 무대를 두고도 청중석에 앉은 채로 유튜브를 (당연히 무음으로) 켜놓기도 했으니까. 중간에 참가자나 소위 '업계 전문가'와의 대담도 꽤 흥미로우면서도 한국에선 어지간해서 접하기 어려운 고밀도 이야기가 오가기도 해서 현장에 직관하러 가도 이를 놓치기는 아까운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번 대회에는 주최 측은 무슨 우려를 했는지 몰라도, 또는 실제로 초반에 장애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서인지 몰라도, 필자도 이번에 처음으로 그런 기능이 있는 줄 알았는데, 운영자는 댓글 창 저속 모드를 적용하고 있었다. 보통 라이브 시청자 수가 높을 때가 3만 명 초반대였던 듯한데, 기술적 문제가 우려되었는지 아닌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따라서 기대했던 공론의 열기는 그다지 활활 타지는 못했다. 한 번 댓글을 달면 최소 1~2분 이후에 또 말을 할 수 있는데, 그 사이에 다른 말이나 Q&A가 또 오고 가면 대화 흐름이 잘 끊어진다. 그래서, 처음부터 흐름을 따라가기도 힘들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중간중간 동문서답, 뜬금없는 말 같은 내용도 자주 보인다. 더불어서, 주최 측에서도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 간간 퀴즈(정답이 있거나 그냥 선호도 조사성)를 내기도 해서 질문과 대답이 마구 엉킨다.
참, 댓글창에서 비교적 많이 보인 말 중 하나는, 다국적 공간이니만큼 영어 사용을 가급적 권장하는 멘트다. 그런데, 밤 세션에 한국인들이 많이 보고 있는 시간대(이건 댓글에서 한국어 비중이 올라가면 당연한 짐작이다)에 운영진 멘트 또한 한국어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소문에는 교대 운영자 중 최소 1인이 한국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아니더라도 요즘은 번역기를 활용해도 별로 티가 안 날 터라, 후자 쪽일 수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댓글 중에는 정말, 대회를 잘, 아니 전혀 모르고 (알고리듬에 끌려서라도) 온 듯한 발언도 제법 등장하는데, 이거 라이브냐(라이브는 라이브 표시를 확인할 수 있다), 어디서 하는 거냐 정도는 양반이고, 마치 ranking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운동 종목류를 떠올렸는지, 심지어 '지금 순위'가 어떻게 되냐는 (콩쿠르 구조에 문외한인 유저의) 물음도 나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FAQ중 하나로, 폴란드가 1위를 하냐 아니냐는 투의 댓글은 부지기수로 많다(또는 폴란드 출전자 중에 누가 제일 낫냐고 하는 질문도 그냥 이 범주로 묶어도 되겠다.).
[21] 이처럼 댓글을 접할 때 상당히 폭넓은 반응 스펙트럼을 경험하는데, 필자에게 인상적인 하나는, 쇼팽 연주를 틀어(?) 놓고 있으니 저녁 분위기가 다르더라, 하는! 사실 이 말에 대한 필자의 느낌에 더 놀라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꽤 신선하게 충격적이었다. 늘상 같이한다 싶은 음악이었고, 쇼팽과 피아노는 물론, 이런 커다란 대회를 아무리 잘 알고 있었다 해도, 음악이 분위기를 전환시키거나 바꾼다는 감각은 거의 없었던 터라서도 더 놀랐는지도 모른다. 사실 어떻게 보면 정말 아무 말도 아니고 당연히 그러려니 할 법한 감흥 아닌가? 그만큼 피아노 곡들이 체질화되어 그렇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협소한 감각 아닌가!
라이브로 원격 시청을 하든 현지에 가서 직관하든, 가상 공간의 댓글말고, 실제로 물리 세계에서도, 이 콩쿠르를 즐기노라면 천차만별의 반응을 접하는데, 그 중에서도 기상천외한 피드백은, 5년마다 돌아오는 바로 그 대회 시즌에 바르샤바에 갔다니까, 거기 나간 거냐는 되물음이었다! 어떻게 보면 상식이 의심스러운 수준의 멘트인데, 워낙 클래식과 거리가 먼, 하지만 내가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꾸었을 만큼 피아노를 즐긴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라는 렌즈로 바라보면, 그런 엉뚱한 천진무구함은 당연할 수도 있다. 설마 놀리려고 그런 건 아니었겠지? 얼마나 큰 대회인지 모르니까 일개 회사원이 피아노를 잘 치면 나갈 수도 있다고, 나이 제한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럴 수 있다는 건 상식 밖인가 아닌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지 아닌지 더는 물어보진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대회의 장은 내가 피아노를 했다면 (피아노를 하는 누구나 적어도 한번은 그랬겠듯이) 꿈에 그렸을 현장이기도 해서, 그런 (당사자야 별 생각 없는 반응이었을지 몰라도) 느낌은 더욱 특별하기도 했다. 내가 저 자리에서 1차 stage에서만이라도, 쇼팽 연주를 쇼팽의 모국에서 폴란드인들 그 많은 데서 해볼 수 있었다면. 물론 콩쿠르란 게 그렇게 낭만적일 수는 전혀 없다. 오죽하면, 당시 우승했던 조성진의 3대 악몽 중 하나가 쇼팽 콩쿠르를 다시 치르는 일이라고 했겠는가.
조성진의 우승은 대회 최대 이변이라고 해도 타당하다. 콩쿠르 역사에서 없던 나라에서 우승자가 나왔으니. 게다가 그것도 한국에서라니. 물론 우리나라 연주자들이 부문을 막론하고 국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열풍이 거세지던 터였지만, 다른 악기, 다른 대회는 몰라도, 쇼팽 콩쿠르만은 정말 1등이 나올까 싶게 이 대회의 벽은 정말 높았다. 당시 조성진의 예선 연주를 (아직 현지 도착 전 라이브로) 보면서도 저런 컨디션과 수준이 잘 유지되면 1등 없는 2등 정도가 가능하겠다 싶었는 게, 정말 탁월함에도 우리나라는 여러 층위의 맥락이 복잡다단하게 얽히면서 1등은 설마 아니겠지, 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워낙 유명한 재목이었지만, 대회 무대에서도 큰 이변이자 기적이었다.
대회마다 그런 이변이나 스타의 탄생 여부는 늘 기대되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큰 축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회 우승자, 에릭 루를 이변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아니라 할 수 있다. 이변을 결정하는 특성의 하나로, 조성진이 한국인 최초 우승자인 사실처럼, 대회사상 없었던 유형의 사건을 기준으로 보면, 에릭 루는 이변이다. 왜냐하면 한 차례를 건너뛴 재수생 출신으로, 즉 기간으로 보면 삼수생과 같은 출신으로 우승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1위 없는 2위는 있었다.). 에릭 루는 조성진이 출전하던 당시 4위를 거머쥔, 이미 10년 전에도 충분히 실력을 인정받은 연주자다. 이후로 굳이 콩쿠르에 나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연주자이자 지도자의 경력을 착실히 이어 가고 있던 터라, 재출전, 그것도 쇼팽 콩쿠르에, 결심 자체가 쉽지 않다. 루는 이번에는 제자와도 같이 출전한 사연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이변은 딱 거기까지, 뒤집어 보면 당연한 결과기도 했다. 적어도 위에서 언급한 기준으로는 이례적인 기록을 더하기는 했지만, 이변까지는 아닌 셈이었다.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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