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가운데, 임윤찬의 등장은 완전 결정타였다. 한 스타의 탄생이 대회 자체를 격상시킨 효과 면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지 싶다. 그렇게 대회를, 그리고 그 주최인 재단을 더 알아가는 사이, 아마추어 피아노 콩쿠르 정보도 접하게 되었다. 사실 반 클라이번 재단에 관한 한, 그냥 전설인 동시에 비운의 명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의 이름을 따라 명명한 재단이라는 정도 외에 더는 알지 못했다가, 아마추어 대회도 운영한다는 사실에 이 재단이 하는 일들이 더욱 흥미로워졌다.
반 클라이번이 대체 누군가?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닉을 쏘아 올려 우주에서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눌렀을 때, 과학기술은 물론 문화예술까지 소련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이듬해 그 소련의 심장 모스크바에서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열렸는데, 당연히 자국 피아니스트가 우승하리라 여겼을 그 무대에서, 텍사스 출신의 스물셋 청년이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늘에서는 졌으되 피아노 앞에서는 이긴(?)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미국의 영웅적 존재가 된 계기야 말로 후일 고스란히 족쇄가 되어 연주자로서는 비운의 경로를 거치게 된다. 이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로 미룬다.) 요즘의 미·중 간 AI와 양자 기술 등을 둘러싼 패권 경쟁에 비견할 만한, 그러나 그 시절에는 과학뿐 아니라 예술의 영역까지 뒤엉킨 총체적 자존심 대결이었다. 지금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그런 강대국 간 패권 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으나, 흥미롭게도 새로운 흐름을 하나 꼽자면 이른바 'K-클래식'이라 할까 — 조성진, 임윤찬을 비롯해 세계 주요 콩쿠르를 석권하는 한국 연주자들의 약진을 두고 따라다니는 말이다. 바로 그 임윤찬이 세계를 놀라게 한 결정적 이름이 반 클라이번 대회기도 하니, 아마추어로서 그 주최 가문에 살짝이나마 이름을 묻히는 방법은 나란한 아마추어 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하기가 아닐까 싶은, 부질없을지 모르는 욕심마저 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아마추어 대회들이 없지는 않지만, 여러 면에서, 그냥 존재한다는 자체로 의미가 큰 경우가 많다. 특히 매년 개최된다는 빈도는 다른 메이저 프로급 대회에 비하면 벌써 그 희소성 면에서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파이널 무대에서도 협연을 통한 경연은 없고, 몇몇 대회가 입상자에게 협연 기회를 제공하는 정도 선이다.
그런데, 이 반 클라이번 대회는 아마추어 대상이라 해도 한마디로 '제대로'였다. 4년마다 열리고, 비록 한두 악장이지만(두 악장은 악장 사이 종지, 곧 휴지 없는 경우), 파이널 무대는 협연이기에. 게다가 순위 수상 외에도 진짜 메이저 대회처럼 특별상도 존재한다. 의사, 변호사, 과학자, 엔지니어 — 낮에는 각자의 직업에 매인 사람들이, 텍사스 포트워스의 무대에서 협주곡을 올린다. 더욱 마음에드는 참가 조건은, 연령 제한이 하방으로 걸린다는 점이다. 35세 기준으로 더 어리면 출전하지 못한다. 위로는 제한이 없다.
물론 파이널에 오르려면 비디오 스크리닝부터 통과해야 하고, 1차, 2차 예선을 거쳐야 하니 전혀 보장된 길이 아님에도, 목표를 세우면 더 적극적으로 연습을 하게 되고, 연습을 그만큼 열심히 하면 무대는 한 뼘이라도 가까워지는 법이다. (실은 콩쿠르보다 입시를 놓고도 저울질하기도 했다. ㅎㅎ) 그래서 시작했다. 원래 최대한 비밀리에 출전하려고 하던 터라(왜냐하면 예선부터 유튜브로 라이브는 물론 박제된다는 점도 '제대로'의 한 면이라), 누가 말하기를, 주변에 목표를 공표해야 더 성사될 확률이 높다고 했음에도, 그다지 아주 적극적으로 공유한 편은 아니다. 아마 대회를 준비할 수도 있다는 정도는 간간 언급했을지 몰라도, 그게 언제, 어느 대회라고는 명확히 공유된 1인은, 이 프로젝트의 직접적 당사자인 레슨 선생님뿐이었다.
요컨대, 정말 묵직하기로는 전 세계 어디를 봐도 찾아보기 어려운 아마추어 피아노 콩쿠르다. 게다가 사반세기 가까이 유지되"던". 이렇게 강조해 표현하는 이유는 이제 더는 대회를 열지 않는다는 폭탄 선언 때문이다.
아, 이게 뭐지, 다가오는 2028년 참가를 준비하던 당사자로서는 무척 충격이었다.
게다가 이제 통상 과거 대회 기준으로는 비디오 스크리닝을 위한 영상 연주까지 완성하려면 2년 남은 터라 본격적인 채비를 갖추고 선생님과도 구체적으로 상의하기 시작하는 모드에 진입했는데, 이렇게 허사가 된 마당이라, 이제는 마음 놓고 그냥 지나간 일이니 여기저기 털어놓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결국 그 내막을 본 연재에서도 회포라도 푸는 느낌으로 밝히게 되었다!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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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임윤찬의 등장은 완전 결정타였다. 한 스타의 탄생이 대회 자체를 격상시킨 효과 면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지 싶다. 그렇게 대회를, 그리고 그 주최인 재단을 더 알아가는 사이, 아마추어 피아노 콩쿠르 정보도 접하게 되었다. 사실 반 클라이번 재단에 관한 한, 그냥 전설인 동시에 비운의 명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의 이름을 따라 명명한 재단이라는 정도 외에 더는 알지 못했다가, 아마추어 대회도 운영한다는 사실에 이 재단이 하는 일들이 더욱 흥미로워졌다.
반 클라이번이 대체 누군가?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닉을 쏘아 올려 우주에서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눌렀을 때, 과학기술은 물론 문화예술까지 소련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이듬해 그 소련의 심장 모스크바에서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열렸는데, 당연히 자국 피아니스트가 우승하리라 여겼을 그 무대에서, 텍사스 출신의 스물셋 청년이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늘에서는 졌으되 피아노 앞에서는 이긴(?)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미국의 영웅적 존재가 된 계기야 말로 후일 고스란히 족쇄가 되어 연주자로서는 비운의 경로를 거치게 된다. 이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로 미룬다.) 요즘의 미·중 간 AI와 양자 기술 등을 둘러싼 패권 경쟁에 비견할 만한, 그러나 그 시절에는 과학뿐 아니라 예술의 영역까지 뒤엉킨 총체적 자존심 대결이었다. 지금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그런 강대국 간 패권 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으나, 흥미롭게도 새로운 흐름을 하나 꼽자면 이른바 'K-클래식'이라 할까 — 조성진, 임윤찬을 비롯해 세계 주요 콩쿠르를 석권하는 한국 연주자들의 약진을 두고 따라다니는 말이다. 바로 그 임윤찬이 세계를 놀라게 한 결정적 이름이 반 클라이번 대회기도 하니, 아마추어로서 그 주최 가문에 살짝이나마 이름을 묻히는 방법은 나란한 아마추어 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하기가 아닐까 싶은, 부질없을지 모르는 욕심마저 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아마추어 대회들이 없지는 않지만, 여러 면에서, 그냥 존재한다는 자체로 의미가 큰 경우가 많다. 특히 매년 개최된다는 빈도는 다른 메이저 프로급 대회에 비하면 벌써 그 희소성 면에서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파이널 무대에서도 협연을 통한 경연은 없고, 몇몇 대회가 입상자에게 협연 기회를 제공하는 정도 선이다.
그런데, 이 반 클라이번 대회는 아마추어 대상이라 해도 한마디로 '제대로'였다. 4년마다 열리고, 비록 한두 악장이지만(두 악장은 악장 사이 종지, 곧 휴지 없는 경우), 파이널 무대는 협연이기에. 게다가 순위 수상 외에도 진짜 메이저 대회처럼 특별상도 존재한다. 의사, 변호사, 과학자, 엔지니어 — 낮에는 각자의 직업에 매인 사람들이, 텍사스 포트워스의 무대에서 협주곡을 올린다. 더욱 마음에드는 참가 조건은, 연령 제한이 하방으로 걸린다는 점이다. 35세 기준으로 더 어리면 출전하지 못한다. 위로는 제한이 없다.
물론 파이널에 오르려면 비디오 스크리닝부터 통과해야 하고, 1차, 2차 예선을 거쳐야 하니 전혀 보장된 길이 아님에도, 목표를 세우면 더 적극적으로 연습을 하게 되고, 연습을 그만큼 열심히 하면 무대는 한 뼘이라도 가까워지는 법이다. (실은 콩쿠르보다 입시를 놓고도 저울질하기도 했다. ㅎㅎ) 그래서 시작했다. 원래 최대한 비밀리에 출전하려고 하던 터라(왜냐하면 예선부터 유튜브로 라이브는 물론 박제된다는 점도 '제대로'의 한 면이라), 누가 말하기를, 주변에 목표를 공표해야 더 성사될 확률이 높다고 했음에도, 그다지 아주 적극적으로 공유한 편은 아니다. 아마 대회를 준비할 수도 있다는 정도는 간간 언급했을지 몰라도, 그게 언제, 어느 대회라고는 명확히 공유된 1인은, 이 프로젝트의 직접적 당사자인 레슨 선생님뿐이었다.
요컨대, 정말 묵직하기로는 전 세계 어디를 봐도 찾아보기 어려운 아마추어 피아노 콩쿠르다. 게다가 사반세기 가까이 유지되"던". 이렇게 강조해 표현하는 이유는 이제 더는 대회를 열지 않는다는 폭탄 선언 때문이다.
아, 이게 뭐지, 다가오는 2028년 참가를 준비하던 당사자로서는 무척 충격이었다.
게다가 이제 통상 과거 대회 기준으로는 비디오 스크리닝을 위한 영상 연주까지 완성하려면 2년 남은 터라 본격적인 채비를 갖추고 선생님과도 구체적으로 상의하기 시작하는 모드에 진입했는데, 이렇게 허사가 된 마당이라, 이제는 마음 놓고 그냥 지나간 일이니 여기저기 털어놓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결국 그 내막을 본 연재에서도 회포라도 푸는 느낌으로 밝히게 되었다!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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