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라이번 재단 President이자 CEO라는 자크 마르키 이름으로 날아든 메일의 골자는 이 대목이다. "we are retiring the Cliburn International Amateur Piano Competition". 흠.... retire라, 사람도 아닌 대회를. 격조 있는 작별 인사기는 하지만, 그리고 30년을 향해 가던 명맥에 바치는 최소한의 예우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준비하던 당사자가 받아들이기에는 그냥 폐지나 포기에 가깝다. 메일(하단 인증!)을 받고는 믿어지지 않은 나머지, 혹시나 이상한 스팸은 아닌가 싶어서도 재단 홈페이지를 찾았다. 역시 메일대로였다.
아마추어 대회로는 묵직할 뿐더러, 꽤 유서 깊은 대회로 자리했는데, 이제 더는 개최하지 않는다니? 그래도 그나마 예정된 개최 시점보다 2년도 더 전에 이렇게 알려준 데 대해 감사해야 할까? 재단 측이 밝힌 이유는, 1999년에 본 대회를 창설할 시기와는 달리, 이제 아마추어를 위한 무대 기회가 훨씬 다양하고 넓어졌다는 거다. 충분히 납득이야 가는데, 심지어 가장 극단적으로는, 뭐 마음만 먹으면 1인 미디어로 본인 연주를 전 세계와 공유할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당연히 바뀐 세태나 분위기라는 현실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대회의 고유한 특징을 고려하면, 너무 아쉬워서, 재고 여지가 없냐고 답변하는 문의를 보내볼까 하다가, 그냥 접었다. 그 이유가, 그냥 접는 게 아니고, 그럴 리소스를 가지고 새로운 지휘자 콩쿠르를 열겠다고 한 결정도 따라왔다고 하므로.
돌아보면, 원래 열렸어야 하는, 그리고 마침 휴직하던 해라 더욱 부담을 덜고 참가를 노려 봤던 2020년부터, 코로나 사태로 인해 본 대회 또한 예외 없이 그 여정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4년 주기를 되찾기는 무척이나 버거운 듯했고, 결국 밀리고 밀려 2028년 개최 예정이라는 공지가 뜨기까지도 한참 걸렸다.
결국 참가를 꾀한 첫 시도 후, 8년을 기다려야 하는 목표를 잡고는 고단하면서도 즐거운 준비 과정을 그려오던 마당이었는데, 2년 남짓 남은 시점에 이런 폭탄이라니. 그나마 그 동안 생각처럼 '과학적' 빌드업을 하지 못한 게 위안이 될 지경이다. 무대가 존재하는 한, 기다림은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라진 마당이란, 그저 밀리는 상황과는 차원이 다르게 다가온다.
이 대회가 모든 면에서 완전해 보이지 않기도 했음에도, 어떤 차선적 시도의 계기로는 충분했기에 더욱 아쉽다. 그 불충분하다는 점은, 바로 파이널 지정 협주곡 범위에 정작 무대에 올리고 싶은 상단의 순서에 자리한 곡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혹시 다음 대회에는 그 범위가 넓어질까도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그냥 불안한 기대감이었다. 실제로 그 직전 두 대회를 비교해 보면 이 지정곡들이 꽤 늘어나기도 했음에도, 역시 내 최애 협주곡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음에 또 지정곡이 늘어나도 들어갈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왜 그 어려운, 가령, 프로코피에프의 작품들까지도 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데, 쇼팽의 협주곡은 두 곡 모두 배제되었는지, 미스터리다. 가장 합리적 추정은, 아마추어에게 이 곡의 연주 선택지를 허용하는 것만큼 잔인한 결정도 없을 듯싶다는 거다. 쇼팽의 작품이란 게, 악보로 보이는 화려함이나 복잡함에 비해서는, 특히 후대 다른 작곡가들의 협주곡에 비해 그렇게 어려울 게 뭐냐 싶지만, 이건 직접 건반을 만져 보면 바로 인식할 수 있는 양상의 하나다. 다른 꼭지에서 쇼팽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쇼팽의 작품은 같은 실수라도 다른 작곡가에 비해 너무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이 세심하고 예민하고 은근해서다.
아무튼 마감이 정해진 큰 무대이자 기회가 사라졌다. 뚜렷한 목표가 없이는 연습도 흐지부지되거나 게으르기 십상이라 단단히 마음 먹고 감행한 선택이었는데 도로 원점이다.
아마추어에게도 문호가 다양하게 열렸다고 하지만,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저 대회는, 그러니까 반 클라이번 대회는 어디까지나 반 클라이번 대회다. 그 유니크한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재단의 처사가 내내 아쉽기만 하다. 물론 대회가 그대로 유지되고 열렸더라도, 보기 좋게 비디오 스크리닝에서 통과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는 두 차례의 예선 중에서. 파이널까지 가는 자체가 어려운 과정이지만, 그 도전할 수 있는 과정 자체가 사라진 데 대한 안타까움은 무척 크다. 머리는 '다양한 기회들이 있지, 맞아'라고 하면서도 마음은 못내 그렇지만도 않다. 제법 쓸쓸하기까지 하다.
쇼팽 국제 콩쿠르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세상에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겠냐마는, 그래도 이런 식의 증발은 참 유독 더 허전하다. 쇼팽 국제 콩쿠르 역시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현재 최고 권위의, 최고 인기의, 최고 위상의 대회라도 말이다. 그래도 중학생 시절 그 대회의 우승 연주 영상을 LD로 한국에서 접하면서, 저런 대회 연주를 직접 현지에 가서 듣고 싶다는 바람은 30년 가까이 지나서 결국 현실이 되었다. 바르샤바 필하모닉 홀도, 대회도 여전히 거기 그대로 있었으니까. 그렇게 비슷하게, 적어도 한 30년쯤이야 거뜬히 갈 거 같은 대회가 홀연히 물거품이 되다니. 정보 수집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위한 계획 수립에 이르기까지 워낙 공을 들인 나머지, 유독 개인적 애착이 심해서 서운함이 더한지도 모르겠다.
2년 뒤라고 해서 보장된 무대는 아니었더라도, 그 시간 안에 과연 협주곡을 선보일 다른 기회가 생길 수 있을까? 언제 한 번 언급하긴 했지만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사내 오케스트라와라도 협연하는 날을 바라도 보긴 하지만, 적어도 2년 내로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욕심이 과해도 문제기는 하다. 조금 더 수월한 곡들로 무대 경험을 쌓는 의미를 더하는 기회를 고려한다면 아마 가능성은 훨씬 증폭될 터인데 말이다.
클라이번 재단의 메일 하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We will always consider you a part of the Cliburn Family,......" 고맙다, 자크 마르키. 가문(?)이라 해놓고 집을 허무는 법이 어디 있나. 어쨌거나, 그 집에서 꿈을 꾸게 해 준 자체도 사실이고 한동안이나마 비할 데 없는 즐거움과 설렘을 안겨 준 자체도 사실이다. 그러니 차라리 이제는 나라도 한 채 지어 볼까 — 그러니까, 결핍이 낳은 새로운 발상에 감사라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건이 성립한다면, 이런 프로급 체계를 갖춘 아마추어 콩쿠르를 한국에 하나 창설해 볼까!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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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번 재단 President이자 CEO라는 자크 마르키 이름으로 날아든 메일의 골자는 이 대목이다. "we are retiring the Cliburn International Amateur Piano Competition". 흠.... retire라, 사람도 아닌 대회를. 격조 있는 작별 인사기는 하지만, 그리고 30년을 향해 가던 명맥에 바치는 최소한의 예우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준비하던 당사자가 받아들이기에는 그냥 폐지나 포기에 가깝다. 메일(하단 인증!)을 받고는 믿어지지 않은 나머지, 혹시나 이상한 스팸은 아닌가 싶어서도 재단 홈페이지를 찾았다. 역시 메일대로였다.
아마추어 대회로는 묵직할 뿐더러, 꽤 유서 깊은 대회로 자리했는데, 이제 더는 개최하지 않는다니? 그래도 그나마 예정된 개최 시점보다 2년도 더 전에 이렇게 알려준 데 대해 감사해야 할까? 재단 측이 밝힌 이유는, 1999년에 본 대회를 창설할 시기와는 달리, 이제 아마추어를 위한 무대 기회가 훨씬 다양하고 넓어졌다는 거다. 충분히 납득이야 가는데, 심지어 가장 극단적으로는, 뭐 마음만 먹으면 1인 미디어로 본인 연주를 전 세계와 공유할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당연히 바뀐 세태나 분위기라는 현실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대회의 고유한 특징을 고려하면, 너무 아쉬워서, 재고 여지가 없냐고 답변하는 문의를 보내볼까 하다가, 그냥 접었다. 그 이유가, 그냥 접는 게 아니고, 그럴 리소스를 가지고 새로운 지휘자 콩쿠르를 열겠다고 한 결정도 따라왔다고 하므로.
돌아보면, 원래 열렸어야 하는, 그리고 마침 휴직하던 해라 더욱 부담을 덜고 참가를 노려 봤던 2020년부터, 코로나 사태로 인해 본 대회 또한 예외 없이 그 여정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4년 주기를 되찾기는 무척이나 버거운 듯했고, 결국 밀리고 밀려 2028년 개최 예정이라는 공지가 뜨기까지도 한참 걸렸다.
결국 참가를 꾀한 첫 시도 후, 8년을 기다려야 하는 목표를 잡고는 고단하면서도 즐거운 준비 과정을 그려오던 마당이었는데, 2년 남짓 남은 시점에 이런 폭탄이라니. 그나마 그 동안 생각처럼 '과학적' 빌드업을 하지 못한 게 위안이 될 지경이다. 무대가 존재하는 한, 기다림은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라진 마당이란, 그저 밀리는 상황과는 차원이 다르게 다가온다.
이 대회가 모든 면에서 완전해 보이지 않기도 했음에도, 어떤 차선적 시도의 계기로는 충분했기에 더욱 아쉽다. 그 불충분하다는 점은, 바로 파이널 지정 협주곡 범위에 정작 무대에 올리고 싶은 상단의 순서에 자리한 곡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혹시 다음 대회에는 그 범위가 넓어질까도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그냥 불안한 기대감이었다. 실제로 그 직전 두 대회를 비교해 보면 이 지정곡들이 꽤 늘어나기도 했음에도, 역시 내 최애 협주곡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음에 또 지정곡이 늘어나도 들어갈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왜 그 어려운, 가령, 프로코피에프의 작품들까지도 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데, 쇼팽의 협주곡은 두 곡 모두 배제되었는지, 미스터리다. 가장 합리적 추정은, 아마추어에게 이 곡의 연주 선택지를 허용하는 것만큼 잔인한 결정도 없을 듯싶다는 거다. 쇼팽의 작품이란 게, 악보로 보이는 화려함이나 복잡함에 비해서는, 특히 후대 다른 작곡가들의 협주곡에 비해 그렇게 어려울 게 뭐냐 싶지만, 이건 직접 건반을 만져 보면 바로 인식할 수 있는 양상의 하나다. 다른 꼭지에서 쇼팽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쇼팽의 작품은 같은 실수라도 다른 작곡가에 비해 너무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이 세심하고 예민하고 은근해서다.
아무튼 마감이 정해진 큰 무대이자 기회가 사라졌다. 뚜렷한 목표가 없이는 연습도 흐지부지되거나 게으르기 십상이라 단단히 마음 먹고 감행한 선택이었는데 도로 원점이다.
아마추어에게도 문호가 다양하게 열렸다고 하지만,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저 대회는, 그러니까 반 클라이번 대회는 어디까지나 반 클라이번 대회다. 그 유니크한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재단의 처사가 내내 아쉽기만 하다. 물론 대회가 그대로 유지되고 열렸더라도, 보기 좋게 비디오 스크리닝에서 통과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는 두 차례의 예선 중에서. 파이널까지 가는 자체가 어려운 과정이지만, 그 도전할 수 있는 과정 자체가 사라진 데 대한 안타까움은 무척 크다. 머리는 '다양한 기회들이 있지, 맞아'라고 하면서도 마음은 못내 그렇지만도 않다. 제법 쓸쓸하기까지 하다.
쇼팽 국제 콩쿠르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세상에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겠냐마는, 그래도 이런 식의 증발은 참 유독 더 허전하다. 쇼팽 국제 콩쿠르 역시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현재 최고 권위의, 최고 인기의, 최고 위상의 대회라도 말이다. 그래도 중학생 시절 그 대회의 우승 연주 영상을 LD로 한국에서 접하면서, 저런 대회 연주를 직접 현지에 가서 듣고 싶다는 바람은 30년 가까이 지나서 결국 현실이 되었다. 바르샤바 필하모닉 홀도, 대회도 여전히 거기 그대로 있었으니까. 그렇게 비슷하게, 적어도 한 30년쯤이야 거뜬히 갈 거 같은 대회가 홀연히 물거품이 되다니. 정보 수집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위한 계획 수립에 이르기까지 워낙 공을 들인 나머지, 유독 개인적 애착이 심해서 서운함이 더한지도 모르겠다.
2년 뒤라고 해서 보장된 무대는 아니었더라도, 그 시간 안에 과연 협주곡을 선보일 다른 기회가 생길 수 있을까? 언제 한 번 언급하긴 했지만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사내 오케스트라와라도 협연하는 날을 바라도 보긴 하지만, 적어도 2년 내로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욕심이 과해도 문제기는 하다. 조금 더 수월한 곡들로 무대 경험을 쌓는 의미를 더하는 기회를 고려한다면 아마 가능성은 훨씬 증폭될 터인데 말이다.
클라이번 재단의 메일 하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We will always consider you a part of the Cliburn Family,......" 고맙다, 자크 마르키. 가문(?)이라 해놓고 집을 허무는 법이 어디 있나. 어쨌거나, 그 집에서 꿈을 꾸게 해 준 자체도 사실이고 한동안이나마 비할 데 없는 즐거움과 설렘을 안겨 준 자체도 사실이다. 그러니 차라리 이제는 나라도 한 채 지어 볼까 — 그러니까, 결핍이 낳은 새로운 발상에 감사라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건이 성립한다면, 이런 프로급 체계를 갖춘 아마추어 콩쿠르를 한국에 하나 창설해 볼까!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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