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재미있다. 무조건 재미있다! 사실, 말이 무슨 소용인가.
적어도 내겐 그랬다. 아이맥스 전용관 암표가 정가의 열 배를 넘겼다는 소식이 들릴 만큼 기염을 토하는 영화 <오디세이>도 내가 본 영화 중에서는 최고로 꼽고 싶지만, 정말 순수한 재미 면에서는 비교가 안 되는 그 무엇이 작동했다. 한 시간 남짓한 드라마 첫 한 편과 세 시간 가까운 거대한 스펙터클 사이를 초월하는 그 무엇.
피아노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라 당연히 관심이 컸다. 그런데 하필 이동 중이었고 에어팟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소리를 죽인 채 화면만 열어놓고 봤다. 도무지 궁금해서였다. 그러다 초반부 국제 콩쿠르 결선 장면에서, 건반에 놓인 손 위치만 보고도 지금 들리지 않는 저 사운드가 무슨 협주곡인지 뻔히 알아챘다.^^ (여러분도 아직 전혀 못 보셨다면 한번 소리를 죽이고 맞추실 수 있는지 시험해 보시길~)
어제—이 글을 남기는 현재는 8월 30일이다—첫 방송한 tvN 토일 드라마 <포핸즈> 이야기다. 포스터에 영문 제목이 함께 찍혀 있던데, 정식 표기는 <Four Hands, Two Sonatas>다.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는 열일곱의 아이들이 스물일곱이 되기까지의 10년을 따라가고, 전부 열두 편이라고 한다.
1화는 아직 본편이라기보다는 예고에 가깝다. 인물을 각자의 자리에 앉히고, 점점 부딪칠 사람들을 한 화면에 모으고, 앞으로 무너질 것들을 미리 반짝이게 만들어두는 회차. 서사가 어디로 굴러갈지, 연기가 어떤지, 흔한 클리셰를 어떻게 통과할지는 판단을 미뤄두기로 했다. 요즘 한국 드라마가 그렇듯 뒤에 가면 꼭 탈이 나거나 바람이 빠지는 불길한 감을 지우기는 어려웠지만, 뭐, 그냥, 그런데도 재미있었다.
앞에서 그 무엇이라고만 하던 것의 정체는 뭘까, 굳이 이름을 붙여보고 싶다.
제목은 빌려 왔다. 류승완 감독이 올해 2월 지승호와 함께 낸 인터뷰집 『재미의 조건』(은행나무)에서 가져온 말이다. 데뷔 30주년에 맞춰 나온 책인데, 거기서 감독은 자기에게 좋은 영화의 기준은 기술도 철학도 아니라 몸에 남는 (지속 가능한) 감각이 전부라고 말한다. 서른 해 동안 재미를 직업으로 삼아온 사람의 결론치고는 소박하고, 그래서 믿음이 간다. 사람들이 흔히 머리로 한다고 여기는 수학이나 이론물리학 역시 몸의 감각으로 밀고 나가는 경험이라는 사실을 느꼈으면 하고 간간 그 효과적인 '경험 전이'의 방법을 궁리 중이기도 하다.
중요한 수사는 부제다. 다음을 가능하게 하는, 그것도 단 하나의 감각이라니. 적어도 피아노에서 재미란 늘 그런 것이었다. 한 마디를 치는 동안 다음 마디가 이미 손끝에 와 있는 상태. 풀리지 않은 화음이 풀리는 자리로 몸이 먼저 기울어지는 것. 연습이라는 그 지루한 노동을 수십 년씩 견디게 만드는 게 결국 이 감각 하나다. 지금 이 소절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서 계속 앉아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그것은 나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앞으로 계속 밀고 나가는 감각이자 힘이기도 한 듯하다.
드라마도 같은 조건 아래 있다. 1화가 아직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어도, 다음 회로 몸을 기울이게 만들면 그것으로 조건은 충족된다. 소리를 죽이고 본 것이 오히려 그 사실을 증명해 버렸다. 음악도 대사도 없이, 화면만으로도 다음이 궁금했으니까. 재미가 사운드에도 서사에도 얹혀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앞에 띄운 대조는 공정하지 않다. 감탄과 재미는 애초에 다른 축에 놓인 것이다. 180분에 가까운 스펙터클은 극장을 나서는 사람의 몸에 무언가를 남긴다. 한 시간짜리 드라마 1화는 다음 주까지, 또 그 다음 주까지 사람을 끌고 간다. 앞의 것이 더 크고 뒤의 것이 더 사소해 보이지만, 감각의 종류가 다를 뿐 우열은 없다. 오히려 스케일이 클수록 다음을 여는 일에는 불리하다. 이미 실컷 보여줬기 때문 아닐까?
다만 내 경우 그 감각이 좀 엉뚱한 데서 왔다. 사람이 피아노 앞에 앉는 장면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고, 의자에 앉고, 건반에 손을 얹기 직전에 잠깐 멈추는 그 정지. 페달 위의 발. 연습실 복도,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남의 소리. 무대 뒤 대기실의 공기. 스토리도 연기도 다 제쳐두고 그 장면들이 지나가는 것만으로 좋았다. 50년 가까이 그런 피아노 앞에 앉아온 사람에게는 서사와 무관한 즐거움이 따로 있는 법이다. 류 감독도 영화 30년, 『피아노에 관한 생각』을 쓴 음악가 겸 연출가 김재훈도 피아노와 함께한 30년. 근래 나온 책들에서 본 최댓값이 대개 거기까지다. 피아니스트가 아니고서는 피아노와 같이 한 세월로 그보다 더 긴 값을 말하는 화자는 아직 접하지 못했다. 존재하지 않지는 않겠지만 드러나지 않아서 나도 모르겠지. 곧, 내 경우엔, 내년이면 딱 50년, 반세기가 되므로 꼭 노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념으로라도 뭔가 특별한 기록은 남겨 보려고 한다. 지금 쓰고 있는 텍스트도 그 일부가 될지 모르겠지만.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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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재미있다. 무조건 재미있다! 사실, 말이 무슨 소용인가.
적어도 내겐 그랬다. 아이맥스 전용관 암표가 정가의 열 배를 넘겼다는 소식이 들릴 만큼 기염을 토하는 영화 <오디세이>도 내가 본 영화 중에서는 최고로 꼽고 싶지만, 정말 순수한 재미 면에서는 비교가 안 되는 그 무엇이 작동했다. 한 시간 남짓한 드라마 첫 한 편과 세 시간 가까운 거대한 스펙터클 사이를 초월하는 그 무엇.
피아노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라 당연히 관심이 컸다. 그런데 하필 이동 중이었고 에어팟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소리를 죽인 채 화면만 열어놓고 봤다. 도무지 궁금해서였다. 그러다 초반부 국제 콩쿠르 결선 장면에서, 건반에 놓인 손 위치만 보고도 지금 들리지 않는 저 사운드가 무슨 협주곡인지 뻔히 알아챘다.^^ (여러분도 아직 전혀 못 보셨다면 한번 소리를 죽이고 맞추실 수 있는지 시험해 보시길~)
어제—이 글을 남기는 현재는 8월 30일이다—첫 방송한 tvN 토일 드라마 <포핸즈> 이야기다. 포스터에 영문 제목이 함께 찍혀 있던데, 정식 표기는 <Four Hands, Two Sonatas>다.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는 열일곱의 아이들이 스물일곱이 되기까지의 10년을 따라가고, 전부 열두 편이라고 한다.
1화는 아직 본편이라기보다는 예고에 가깝다. 인물을 각자의 자리에 앉히고, 점점 부딪칠 사람들을 한 화면에 모으고, 앞으로 무너질 것들을 미리 반짝이게 만들어두는 회차. 서사가 어디로 굴러갈지, 연기가 어떤지, 흔한 클리셰를 어떻게 통과할지는 판단을 미뤄두기로 했다. 요즘 한국 드라마가 그렇듯 뒤에 가면 꼭 탈이 나거나 바람이 빠지는 불길한 감을 지우기는 어려웠지만, 뭐, 그냥, 그런데도 재미있었다.
앞에서 그 무엇이라고만 하던 것의 정체는 뭘까, 굳이 이름을 붙여보고 싶다.
제목은 빌려 왔다. 류승완 감독이 올해 2월 지승호와 함께 낸 인터뷰집 『재미의 조건』(은행나무)에서 가져온 말이다. 데뷔 30주년에 맞춰 나온 책인데, 거기서 감독은 자기에게 좋은 영화의 기준은 기술도 철학도 아니라 몸에 남는 (지속 가능한) 감각이 전부라고 말한다. 서른 해 동안 재미를 직업으로 삼아온 사람의 결론치고는 소박하고, 그래서 믿음이 간다. 사람들이 흔히 머리로 한다고 여기는 수학이나 이론물리학 역시 몸의 감각으로 밀고 나가는 경험이라는 사실을 느꼈으면 하고 간간 그 효과적인 '경험 전이'의 방법을 궁리 중이기도 하다.
중요한 수사는 부제다. 다음을 가능하게 하는, 그것도 단 하나의 감각이라니. 적어도 피아노에서 재미란 늘 그런 것이었다. 한 마디를 치는 동안 다음 마디가 이미 손끝에 와 있는 상태. 풀리지 않은 화음이 풀리는 자리로 몸이 먼저 기울어지는 것. 연습이라는 그 지루한 노동을 수십 년씩 견디게 만드는 게 결국 이 감각 하나다. 지금 이 소절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서 계속 앉아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그것은 나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앞으로 계속 밀고 나가는 감각이자 힘이기도 한 듯하다.
드라마도 같은 조건 아래 있다. 1화가 아직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어도, 다음 회로 몸을 기울이게 만들면 그것으로 조건은 충족된다. 소리를 죽이고 본 것이 오히려 그 사실을 증명해 버렸다. 음악도 대사도 없이, 화면만으로도 다음이 궁금했으니까. 재미가 사운드에도 서사에도 얹혀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앞에 띄운 대조는 공정하지 않다. 감탄과 재미는 애초에 다른 축에 놓인 것이다. 180분에 가까운 스펙터클은 극장을 나서는 사람의 몸에 무언가를 남긴다. 한 시간짜리 드라마 1화는 다음 주까지, 또 그 다음 주까지 사람을 끌고 간다. 앞의 것이 더 크고 뒤의 것이 더 사소해 보이지만, 감각의 종류가 다를 뿐 우열은 없다. 오히려 스케일이 클수록 다음을 여는 일에는 불리하다. 이미 실컷 보여줬기 때문 아닐까?
다만 내 경우 그 감각이 좀 엉뚱한 데서 왔다. 사람이 피아노 앞에 앉는 장면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고, 의자에 앉고, 건반에 손을 얹기 직전에 잠깐 멈추는 그 정지. 페달 위의 발. 연습실 복도,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남의 소리. 무대 뒤 대기실의 공기. 스토리도 연기도 다 제쳐두고 그 장면들이 지나가는 것만으로 좋았다. 50년 가까이 그런 피아노 앞에 앉아온 사람에게는 서사와 무관한 즐거움이 따로 있는 법이다. 류 감독도 영화 30년, 『피아노에 관한 생각』을 쓴 음악가 겸 연출가 김재훈도 피아노와 함께한 30년. 근래 나온 책들에서 본 최댓값이 대개 거기까지다. 피아니스트가 아니고서는 피아노와 같이 한 세월로 그보다 더 긴 값을 말하는 화자는 아직 접하지 못했다. 존재하지 않지는 않겠지만 드러나지 않아서 나도 모르겠지. 곧, 내 경우엔, 내년이면 딱 50년, 반세기가 되므로 꼭 노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념으로라도 뭔가 특별한 기록은 남겨 보려고 한다. 지금 쓰고 있는 텍스트도 그 일부가 될지 모르겠지만.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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