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65.『호킹 주식회사』를 읽기 전에 ① - 나의 피아노, 남의 피아노

블랙소스
2026-09-07
조회수 399

f34bdd8bab2a9.png


금요일이면 DAMTP에는 런치 세미나가 있었다. 각자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점심을 들고 와 먹으면서 연사의 발표를 듣는 자리였고, 내 기억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꽤 성실하게 나타났던 인물.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교수다. 학기마다 첫 시간에는 간단히 자기소개도 하는 다소 편한 자리인데, 호킹 교수는 아마, 아니 당연히(!) 유일한 예외였던 듯하다.

세미나실 정면에는 보드와 스크린이 있었고, 그 반대편 뒤쪽에는 두 짝짜리 자재문이 달려 있었다. 닫혀 있을 때는 벽처럼 평평하다가 밀면 두 짝이 각각 반대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갈라지는, 병원 복도에서 흔히 보는 그런 문이다. 세미나가 시작될 무렵이면 그 문을 밀고 휠체어가 들어왔다. 방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언제나 맨 뒤에서 들어왔다.


혼자 식사를 할 수 없었으니 간호사가 늘 곁에 있었고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식사를 도와야 했다. 내 기억 속에는 가느다란 관과 턱 아래 받쳐둔 천이 남아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리 세련된 장치도 아니어서 음식물이 적지 않게 턱 아래로 흘러내리곤 했다. 뒤에서는 그렇게 식사가 계속되는 동안, 앞에서는 우주의 기원이나 중력이나 블랙홀에 관한 이야기가 열띠게 계속됐다. 석사 1년 차가 따라갈 수 없는 수학적 표기들이 쌓이기도 했다. 나는 그 20%도 못 알아들은 채 샌드위치를 씹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적어놓으니 무언가 상징적인 장면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호킹이 세미나에 참석해 점심을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책이나 텔레비전 속 사람이 아니었다. 걷다 보면 정말로 휠체어를 타고 지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가 그 길에서는 그냥 어느 방향인가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광경을 몇 번 보고 나면 유명인이라는 감각도 조금씩 희미해진다. 처음에는 저 사람이 호킹이구나 하다가, 나중에는 아, 호킹이 지나가는구나 정도가 된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거기 있게 된 장면부터가 얼떨결에 벌어지기도 한 일이었다.


1994년, 기대감 반 포기감 반으로 기다리던 편지 한 통이 드디어 도착했다. DAMTP. Department of Applied Mathematics and Theoretical Physics라는 학과명이 하도 길기에 줄여서 그렇게 쓴다. 1959년에 생긴, 케임브리지 기준으로는 신생 학과다. 그런데도 그 약어에는 학부생이 감당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숨쉰다. 1663년에 세워진 루카스 석좌에 뉴턴이 앉았고, 이 학과가 생긴 뒤로는 디랙과 호킹 등이 차례로 그 자리를 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대학원에 들어가던 해, 그 학과는 겨우 서른다섯 살이었다.


한국 어느 물리학과의 4학년이던 그 시절 그 DAMTP 교수 중에 이름을 아는 인물이라고는 호킹 하나뿐이었다. 당시만 해도 (특히 물리를 한다면) 영국 유학 자체가 드물었는데, 아마 이미 영국은 적어도 이 학계에서는 '사양국'스러운 느낌에 정보도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당연한 악순환이기도 했다. 대다수 한국 학생들이 아예 가능성을 타진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까닭은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넘을 수 없는 산은 애초에 지도에 그리지 않는 법이니까. 그런데 막상 리스크를 따져보니 지원 목록에서 굳이 뺄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미국도 나한테는 공론장에 조목조목 나열하기 어려운 몇몇 이유로 우선순위가 아니었으므로, 설마 하면서 밀어 넣었다.


그 설마가 admission letter로 돌아왔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잘 적히지 않는다. 기쁘고 얼떨떨하고 실감이 나지 않는데, 이상하게 동시에 싱거웠다. 어차피 종이 한 장인데, 그리고 너무 비현실적이어서도 담담했던. 아마 해리포터 시리즈가 영화로 나오기도 전이니 옥스브리지의 풍경은 내 감각 안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가끔 접하는 사진집 같은 인쇄물 속의 인상들 그게 다였다. 결국, 그저, 살아가는 동안 이런저런 대소사에 너무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는 게 마땅한가 싶은 생각만 들 따름이었다.


일단 그렇게 뭔가 저지르긴 했는데, 물리학의 성소 같은 곳에 정말 갈 수 있게 됐다는 현실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일생일대의 난제를 몰고 왔다. 


바로, 피아노!


멀리 여행이라도 가지 않는 한 거진 빠짐없이 건반 앞에 앉던 일상이었다. 그런데 피아노는 이고 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가서 한 대 들여놓을 configuration은 이러나 저러나 더더욱 아니었다. 무겁다는 것, 옮길 수 없다는 것이 이 악기의 조건이고, 그래서 피아노는 언제나 사람이 찾아가야 하는 악기다. 세상의 피아노 연습실은 그 사실 하나 때문만으로도 존재하는 법이다. 나는 스물몇 해 만에 처음으로 같이할 피아노가 없는 곳으로 가려는 참이었다. 아, 피아노를 태어날 때부터 친 게 아니니 스무 해가 좀 안 되겠구나! 


돌이켜보면 나와 피아노는 둘로 세는 것이 이상한 사이였다. 실제로 건반 앞에 앉지 못하더라도 하루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듯한 기억으로 지냈으니, 연주자와 악기라기보다 한 덩어리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까. 나 혼자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그것 혼자로도 나지 않는다. 소리는 언제나 둘 사이에서만 생겼다. 일종의 네트워크가 된 셈이다. 그러니 내가 두고 가야 했던 것은 정확히 말하면 악기가 아니었다. 그 사이였다.


그런데 그 난제는 너무나 어이 없게도, 현지에서는 쉽게 풀렸다(알고 나면, 경험하고 나면, 피아노에게는 본고장권이나 다름없는 나라기에 당연지사였을 일을!). 


가서 보니 그곳은 피아노 치기에 오히려 훨씬 좋은 세상이었다. 대부분의 College마다(이 곳은 학생이 학과만이 아니라 한 College에도 속해야 하는데, 한국의 단과대학과는 아무 관련 없는 구조다) 음악실이 있었고 그 안에는 내 것보다 나은 악기가 있었다. 업라이트가 아니라 그랜드였다. 예약해서 쓰면 그만이었고 조율은 누가 알아서 해두었다.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저녁에 좀 치겠다고 그랜드 앞에 앉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문화였다. (사실 그들이 이상하게 여긴 건 동양의 변방에서 온 친구가 자기들 문화라고 여기는 작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제것인 양 다루는 장면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잃은 것은 내 피아노였고, 얻은 것은 남의 피아노들이었다. 그리고 후자가 훨씬 나았다. 


앞에서 말한 그 네트워크는 둘이 아니었던 셈이다. 나와 한 대의 악기가 아니라, 여러 대의 악기와 그것을 놓아둔 방들과 정기적으로 다녀가는 조율사와 예약표까지가 한 덩어리였다. 그런 것이 잘 갖춰진 곳에서는 내 것이 하나도 없어도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면 금요일마다 나는 같은 이야기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던 셈이다.


뒷문으로 들어오던 그 휠체어의 주인에게는 무엇까지를 ‘자기 것’이라고 해야 할지가 훨씬 복잡했다. 목소리부터 그랬다. 원래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서 출발한 합성음이었다. MIT의 음성합성 연구자 데니스 클랫이 자기 목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합성음에서 계보가 시작된 미국식에 가까울까 말까 싶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호킹은 더 자연스러운 음성으로 바꿔주겠다는 제안을 여러 번 마다했다. 30년쯤 쓰고 나니 남의 목소리가 이미 완전히 자기 목소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밥은 옆 사람의 손을 거쳐 들어갔고, 칠판에 식을 옮겨 적는 것도 다른 사람의 손이었다. 그런데도 그 방에서는 매주 우주의 시작에, 우리를 이루는 근원에 관한 이야기가, 수학이 나왔다. 내 피아노가 없어도 남의 피아노들로 내 소리를 낼 수 있었듯, 그에게도 ‘내 것’과 ‘남의 것’을 가르는 선은 생각만큼 분명하지 않았다. 그 방은 그렇게 굴러갔다.


다만 나는 그때 그것을 매주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했다.

- 계속 - 


[덤 — 그 영국 금요일의 생선] 

(이하는 문득 생각 나서, 영국 현지에 계신 한국분들께 요즘 어떠냐고 여쭤도 별 다른 깔끔한 피드백은 못 받아서, AI(Claude Opus 5.0)에게 몇 가지 기준을 주고 정리시킨 내용입니다. * AI의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방 안에서 우리가 각자 싸 온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문밖 영국의 금요일 점심은 십중팔구 피쉬앤칩스였다. 그냥 생선 요리가 아니라 반죽을 입혀 튀긴 바로 그 피쉬앤칩스다. 컬리지 식당이든 학교 급식이든 금요일 메뉴에는 거의 빠짐없이 올라왔고, 영국 사람들은 아예 '피쉬앤칩 프라이데이'라고 부른다. 금요일에 고기를 삼가던 그리스도교의 오랜 관습이 종교와 상관없이 굳어진 것인데, 전후 배급 시절에 요일마다 같은 메뉴를 돌려 먹던 습관이 겹치면서 더 단단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접시가 요즘 양쪽에서 밀리는 중이다.

하나는 생선 쪽이다. 영국 해양보전협회는 올해 자국 해역에서 잡힌 대구 전체를 지속가능성 등급 최하인 '피하라'로 내렸다. 남획에 더해 바다가 더워지면서 대구와 해덕이 북쪽으로 밀려 올라간 탓이다. 대신 오징어와 정어리, 멸치, 문어 같은 따뜻한 물의 종들이 영국 근해로 들어오고 있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는 언젠가 오징어가 대구 자리를 대신할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다른 하나는 튀김옷 쪽이다. 십여 년 만에 손보는 학교급식 기준안이 2027년 9월부터 튀긴 음식을 전면 금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동 비만 때문이다. 그대로 시행되면 학교의 피쉬앤칩 프라이데이는 사라진다. 생선은 남되 굽거나 파이로 바뀌는 식이다.


영국에는 피쉬앤칩스 가게가 만 곳이 넘어 맥도날드 매장 수의 여덟 배가 넘는다. 국민 한 사람이 한 해 여섯 접시씩 먹는 셈이라고 한다. 그 접시 위에서 생선 종이 바뀌고 튀김옷마저 벗겨진다면, 그건 식단이 아니라 리듬이 바뀌는 일이다. 금요일이 금요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니까.



9166e223788b8.jpg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 과학자와 피아노 연재 목록 보기


79623e1c461e1.jpg

호킹 주식회사 - 앎, 불구, 흩어져 존재하기의 인류학 (엘렌 미알레 저/김연화 역 | 동녘사이언스)

스티븐 호킹은 과연 ‘혼자’ 생각한 것일까?

휠체어를 탄 몸으로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고,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이름을 남긴 스티븐 호킹. 우리는 그를 흔히 ‘육체를 초월한 천재적 정신’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연구실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간호사와 비서, 조교와 동료 물리학자, 소프트웨어와 기계 장치 등 수많은 사람과 기술이 호킹의 생각과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인류학자 엘렌 미알레는 호킹의 연구실과 그를 둘러싼 네트워크를 따라가며 묻는다. 과연 한 사람의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누구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애와 돌봄, 인간과 기계, 자율성과 의존, 창의성과 협업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흥미로운 과학기술 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