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66.『호킹 주식회사』를 읽기 전에 ② - 티타임의 중력

블랙소스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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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때 보지 못한 것을, 한국어판 기준으로는 서른몇 해 뒤 한 인류학자가 책 한 권을 들고 와서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엘렌 미알레의 『호킹 주식회사』. 이 책이 묻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원제는 이렇다: 

Hawking Incorporated: Stephen Hawking and the Anthropology of the Knowing Subject 


부제를 옮기면 '앎의 주체에 대한 인류학'쯤 된다. 라투르의 제자인 인류학자가 호킹의 연구실에 들어가 비서와 간호사와 조교와 기술자까지 100회 넘는 인터뷰로 쓴 인류학서인데, 라투르가 『실험실 생활』에서 인류학의 부족 자리에 실험실을 앉힌 그 계보에 서 있다. 미알레의 부족은 호킹의 연구실이다. 논지는 이렇다. 우리가 '물질을 뛰어넘은 정신'이라 부르는 그 사람이 실은 기계와 사람들의 네트워크에 분산된 주체였다는 것. 아우라가 무엇으로 조립되어 있는지 뜯어보는 책인 셈이다.


대개는 책을 논하자면 그 한 가지 방식으로 서평을 쓰기 마련이지만, 제목에서 보시다시피 아직은 내가 읽기 전이다. 요 며칠 전 서점 신간 평대에서 제목과 뒤표지, 목차를 훑고 몇 쪽 펼쳐 보고는 그 자리에서 샀다. 그러니 이 글은, 서평에 대응하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굳이 붙이자면 기대평쯤 되겠다. 온라인 서점에서 아직 나오지도 않은 책에 다는 그 기대평 말이다. 혹은 예고편이라 해도 좋겠다.


다만 목차만 봐도 분명한 점 하나! 내가 실제로 본 호킹은 조금도 육체 없는 정신이 아니었다는 것. 휠체어가 있어야 움직였고, 컴퓨터가 있어야 말했으며, 누군가가 식사를 도와야 세미나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비서와 간호사와 학생과 동료가 있었고, 전동 휠체어와 스크린과 음성합성기가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함께 있을 때 우리가 스티븐 호킹이라고 부르는 과학자가 작동했다.


나와 피아노를 두고 일종의 네트워크라고 얼렁뚱땅 지나가긴 했는데, 미알레가 하려는 이야기가 정확히 그것이지 싶다. 다만 그쪽은 얼버무리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책인데, 이 부분은 서평을 나눌 때가 되면 분명해지지 않을까. 


티타임 풍경은 더 그러했다. 적어도 내가 겪은 옥스브리지의 학문생활에서 오전과 오후의 티타임은 거의 작은 제도였다. 오전 열한 시 커피와 오후 네 시(사실 이는 상징적이다, 곳곳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좀처럼 거르지는 않는 일종의 ritual과도 같다) 차를 위해 실제로 사람들이 모였다. 당시 DAMTP에는 사각 공용 공간이 있었고 그 둘레로 연구실 문이 몇 개 나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호킹의 방이었다. 문을 열고 나오면 곧바로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서 있는, 한국식으로야 휴게실 같은 곳이지만 느낌이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호킹의 휠체어 주변은 거기서 단연 '중력'이 제일 큰 자리였다. 언제 보아도 몇 사람이 그 주위에 붙어 있었다. 그들은 입으로 말하고, 호킹의 휠체어에 장착된 화면에서는 커서가 움직였다. 사람들은 화면을 들여다보며 기다렸고, 문장이 나타나면 다시 말을 쏟아냈다. 겉으로만 보면 대화의 속도는 극단적으로 비대칭이다. 여러 사람은 말을 쏟아낼 수 있는데 한 사람은 커서를 움직여 단어를 골라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자체가 참 묘한 지식생산 장치였다. 회의도 아니고 강의도 아니었다. 차를 마시러 나온 사람들이 몇 분씩 서서 떠드는 동안 아이디어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갔다. 호킹에게서는 그 이동 경로가 특별히 눈에 보였을 뿐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전달되면, 화면 위의 커서가 움직이고, 하나의 문장이 나타나고, 그것이 다시 주변으로 퍼졌다.


호킹의 생각은 분명 호킹의 것이었지만, 그 생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은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었다.


여기서 잠깐 한 가지를 짚어야겠다. 이론물리가 머리로만 하는 일이라는 인상 말이다. 그렇지 않다. 적어도 내가 배운 방식은 그랬다. 계산은 손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고, 종이 위에서 식이 어떻게 자라고 어디서 막히는지는 눈보다 손이 먼저 안다. 같은 계산을 몇 시간씩 반복하다 보면 어떤 항이 살아남고 어떤 항이 사라질지가 몸에 붙는다. 체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호킹은 어떨까. 예외였을까. 1970년대 초중반부터 손으로 수식을 쓰는 능력을 잃어갔고, 얼마 뒤에는 책장도 혼자 넘기지 못했다. 마틴 리스는 휠체어를 연구실로 밀어넣고 양자론 책을 펼쳐주면 호킹이 몇 시간씩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남은 기록을 보면 이는 예외라기보다 극단적인 사례에 가깝다. 몸으로 하던 일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일부는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킵 손의 표현을 빌리면 호킹은 연필과 종이 대신 머릿속에서 리본과 곡선과 정육면체와 구를 움직였고, 커피잔이 도넛으로 변형되는 것 같은 위상적 이미지를 굴렸다. 손 대신 기하와 위상을 쓴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갔다. 후기에는 학생들과 동료들이 칠판에 식을 쓰면 호킹은 한동안 바라본 뒤 그것에 동의하는지, 다음에는 무엇이 와야 하는지를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티타임에 내가 본 광경은 어쩌면 잡담만은 아니었다. 계산의 일부였을 수도 있다. 손이 필요한 대목마다 다른 사람의 손이 칠판 위에서 연구에 합류했던 셈이다.


그런데 나는 자주 목격한 그 휠체어 주변에 한 번도 끼지 못했다. 그 인상적인 중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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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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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 주식회사 - 앎, 불구, 흩어져 존재하기의 인류학 (엘렌 미알레 저/김연화 역 | 동녘사이언스)

스티븐 호킹은 과연 ‘혼자’ 생각한 것일까?

휠체어를 탄 몸으로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고,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이름을 남긴 스티븐 호킹. 우리는 그를 흔히 ‘육체를 초월한 천재적 정신’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연구실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간호사와 비서, 조교와 동료 물리학자, 소프트웨어와 기계 장치 등 수많은 사람과 기술이 호킹의 생각과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인류학자 엘렌 미알레는 호킹의 연구실과 그를 둘러싼 네트워크를 따라가며 묻는다. 과연 한 사람의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누구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애와 돌봄, 인간과 기계, 자율성과 의존, 창의성과 협업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흥미로운 과학기술 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