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3월, 결국 소식을 들었다.
호킹 교수는 세상을 떠났다.
언젠가는 당연지사 올 일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이 인물에게만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소식이었다. 영화 《The Theory of Everything》을 통해 그 삶이 다시 크게 조명된 지도 몇 년 안 된 시점이었다. 20대 초반에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은 뒤 반세기를 더 살았으니, 그런 낯선 감은 어쩌면 죽음 쪽에서 너무 오래 약속을 어긴 탓인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조금 엉뚱하게도 비행기였다. 장례식에, 그러니까 ‘영국에 가야 하나.’
1990년에는 서울대에서 강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수업까지 빠져가며 보러 가게 만든 주인공이다. 그런데 몇 년 뒤 케임브리지에서는 길에서 마주치고, 금요일이면 자주 같은 세미나실에 앉고, 티타임이면 몇 미터 앞에 있으면서도 한마디를 못 걸었다.
그러다가 이제 다시는 정녕 말을 걸 수 없게 되자 영국까지 날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지는 못했다.
멀리 있을 때는 찾아갔고, 가까이 있을 때는 거리를 좁히지 못했고, 영원히 멀어지고 나서는 다시 찾아가고 싶었으니, 거리라는 것이 꼭 미터로만 재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호킹은 케임브리지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그달 말 케임브리지의 Great St Mary’s에서 장례식이 열렸고, 몇 달 뒤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뉴턴과 다윈 가까이에 안장되었다. 바닥의 기념석에는 그 유명한 블랙홀 온도 공식이 새겨졌다. 식 하나를 묘석에 새기고 묻힌다는 것은 학자로서는 비할 데 없이 근사한 영예와 자부심이겠다.

© Westminster Abbey/PA
공교롭게도 그 식은 내게도 꽤 익숙하다. 최근에 낸 특허 하나에도 등장시켰으니 말이다(특허에 왜 블랙홀이 나오냐고? ^^ 초현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저 식이야말로 이상적인 암호화에 얽힌 비밀을 품고 있으니까!). 호킹이 유독 그리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전공 연구를 꽤 오래 직접은 하지 않았더라도 정말 마력의 공식이었나 보다, 다시 떠올린 걸 보면.
호킹이 남긴 문헌은 아마 내가 가장 많이 읽고 씨름한 축에 드는 자료일 것이다. 전공이 전공이라 지당한 일인가 싶다가도, 블랙홀을 공부한다고 모두 그러하지는 않을 테고, 하필 내 세부 전공이 블랙홀 정보 손실 패러독스 문제여서였다. (그런데 왜 호킹이 지도교수는 아니냐고 물으실 분들 계신가? 이 문제는 서평에서, 몇 가지 더 확인 후 짚을 생각이다.)
호킹의 글은 군더더기가 좀처럼 없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래서 무엇을 보여주려는지가 빨리 드러난다. 수학은 지난한데 문장까지 어려운 척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특히 블랙홀이 완전히 '블랙'하지 않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호킹 복사(radiation)의 출발점, 1974년 《Nature》 논문은 제목부터 「Black hole explosions?」다.
단 세 단어.
논문 자체도 30쪽에서 시작해 31쪽에서 끝난다. 두 쪽이다.
블랙홀이 열복사를 하고 질량을 잃으며 마침내 증발할 수 있다는, 이후 반세기 블랙홀 물리학의 핵심 문제들로 이어질 결과를 두 쪽에 던져놓았다. 짧다고 쉽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다만 호킹의 텍스트를 직접 깊이 접한 범위는 대체로 1970년대 중반까지의 글이다. 1980년대 것은 간간이, 1990년대 이후의 것은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말하는 ‘호킹의 문체’도 우선은 그 시절 글에 대한 인상이라고 해두는 편이 정직하겠다.
그런 글이 좋다. 아니, 닮은 데를 찾았다기보다 거의 없는 자질을 부러워하는 쪽에 가깝다. 한동안 그 간결함을 호킹의 신체적 조건과 연결해볼까도 했다. 손으로 계산을 밀어붙이기 어려워지면서 머릿속에 전체 구조를 유지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을 테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옮겨 갔을 테니 말이다.
꽤 그럴듯하다. 그래서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1974년 논문에서 그 간명함은 진작에 보인다. 이후의 신체적 제약과 의사소통 방식이 그것을 더 강화했을 가능성이야 있겠지만, 문체의 기원을 거기에서 찾을 근거는 없다.
아무튼, 어쨌거나 나는 도저히 그렇게 못 쓴다. 나였다면 블랙홀이 폭발한다는 말을 꺼내기 전에 뉴턴 이야기를 했다가, 케임브리지 어느 골목으로 갔다가, 피아노 한 대를 끌어들인 다음, 왜 갑자기 피아노가 나왔는지를 설명하느라 다시 두 문단쯤 썼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하고 있는 짓(?)도 많이 다르지 않다.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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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킹 주식회사 - 앎, 불구, 흩어져 존재하기의 인류학 (엘렌 미알레 저/김연화 역 | 동녘사이언스)
스티븐 호킹은 과연 ‘혼자’ 생각한 것일까? 휠체어를 탄 몸으로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고,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이름을 남긴 스티븐 호킹. 우리는 그를 흔히 ‘육체를 초월한 천재적 정신’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연구실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간호사와 비서, 조교와 동료 물리학자, 소프트웨어와 기계 장치 등 수많은 사람과 기술이 호킹의 생각과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인류학자 엘렌 미알레는 호킹의 연구실과 그를 둘러싼 네트워크를 따라가며 묻는다. 과연 한 사람의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누구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애와 돌봄, 인간과 기계, 자율성과 의존, 창의성과 협업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흥미로운 과학기술 인류학. |
2018년 3월, 결국 소식을 들었다.
호킹 교수는 세상을 떠났다.
언젠가는 당연지사 올 일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이 인물에게만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소식이었다. 영화 《The Theory of Everything》을 통해 그 삶이 다시 크게 조명된 지도 몇 년 안 된 시점이었다. 20대 초반에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은 뒤 반세기를 더 살았으니, 그런 낯선 감은 어쩌면 죽음 쪽에서 너무 오래 약속을 어긴 탓인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조금 엉뚱하게도 비행기였다. 장례식에, 그러니까 ‘영국에 가야 하나.’
1990년에는 서울대에서 강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수업까지 빠져가며 보러 가게 만든 주인공이다. 그런데 몇 년 뒤 케임브리지에서는 길에서 마주치고, 금요일이면 자주 같은 세미나실에 앉고, 티타임이면 몇 미터 앞에 있으면서도 한마디를 못 걸었다.
그러다가 이제 다시는 정녕 말을 걸 수 없게 되자 영국까지 날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지는 못했다.
멀리 있을 때는 찾아갔고, 가까이 있을 때는 거리를 좁히지 못했고, 영원히 멀어지고 나서는 다시 찾아가고 싶었으니, 거리라는 것이 꼭 미터로만 재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호킹은 케임브리지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그달 말 케임브리지의 Great St Mary’s에서 장례식이 열렸고, 몇 달 뒤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뉴턴과 다윈 가까이에 안장되었다. 바닥의 기념석에는 그 유명한 블랙홀 온도 공식이 새겨졌다. 식 하나를 묘석에 새기고 묻힌다는 것은 학자로서는 비할 데 없이 근사한 영예와 자부심이겠다.
© Westminster Abbey/PA
공교롭게도 그 식은 내게도 꽤 익숙하다. 최근에 낸 특허 하나에도 등장시켰으니 말이다(특허에 왜 블랙홀이 나오냐고? ^^ 초현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저 식이야말로 이상적인 암호화에 얽힌 비밀을 품고 있으니까!). 호킹이 유독 그리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전공 연구를 꽤 오래 직접은 하지 않았더라도 정말 마력의 공식이었나 보다, 다시 떠올린 걸 보면.
호킹이 남긴 문헌은 아마 내가 가장 많이 읽고 씨름한 축에 드는 자료일 것이다. 전공이 전공이라 지당한 일인가 싶다가도, 블랙홀을 공부한다고 모두 그러하지는 않을 테고, 하필 내 세부 전공이 블랙홀 정보 손실 패러독스 문제여서였다. (그런데 왜 호킹이 지도교수는 아니냐고 물으실 분들 계신가? 이 문제는 서평에서, 몇 가지 더 확인 후 짚을 생각이다.)
호킹의 글은 군더더기가 좀처럼 없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래서 무엇을 보여주려는지가 빨리 드러난다. 수학은 지난한데 문장까지 어려운 척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특히 블랙홀이 완전히 '블랙'하지 않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호킹 복사(radiation)의 출발점, 1974년 《Nature》 논문은 제목부터 「Black hole explosions?」다.
단 세 단어.
논문 자체도 30쪽에서 시작해 31쪽에서 끝난다. 두 쪽이다.
블랙홀이 열복사를 하고 질량을 잃으며 마침내 증발할 수 있다는, 이후 반세기 블랙홀 물리학의 핵심 문제들로 이어질 결과를 두 쪽에 던져놓았다. 짧다고 쉽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다만 호킹의 텍스트를 직접 깊이 접한 범위는 대체로 1970년대 중반까지의 글이다. 1980년대 것은 간간이, 1990년대 이후의 것은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말하는 ‘호킹의 문체’도 우선은 그 시절 글에 대한 인상이라고 해두는 편이 정직하겠다.
그런 글이 좋다. 아니, 닮은 데를 찾았다기보다 거의 없는 자질을 부러워하는 쪽에 가깝다. 한동안 그 간결함을 호킹의 신체적 조건과 연결해볼까도 했다. 손으로 계산을 밀어붙이기 어려워지면서 머릿속에 전체 구조를 유지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을 테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옮겨 갔을 테니 말이다.
꽤 그럴듯하다. 그래서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1974년 논문에서 그 간명함은 진작에 보인다. 이후의 신체적 제약과 의사소통 방식이 그것을 더 강화했을 가능성이야 있겠지만, 문체의 기원을 거기에서 찾을 근거는 없다.
아무튼, 어쨌거나 나는 도저히 그렇게 못 쓴다. 나였다면 블랙홀이 폭발한다는 말을 꺼내기 전에 뉴턴 이야기를 했다가, 케임브리지 어느 골목으로 갔다가, 피아노 한 대를 끌어들인 다음, 왜 갑자기 피아노가 나왔는지를 설명하느라 다시 두 문단쯤 썼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하고 있는 짓(?)도 많이 다르지 않다.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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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은 과연 ‘혼자’ 생각한 것일까?
휠체어를 탄 몸으로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고,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이름을 남긴 스티븐 호킹. 우리는 그를 흔히 ‘육체를 초월한 천재적 정신’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연구실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간호사와 비서, 조교와 동료 물리학자, 소프트웨어와 기계 장치 등 수많은 사람과 기술이 호킹의 생각과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인류학자 엘렌 미알레는 호킹의 연구실과 그를 둘러싼 네트워크를 따라가며 묻는다. 과연 한 사람의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누구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애와 돌봄, 인간과 기계, 자율성과 의존, 창의성과 협업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흥미로운 과학기술 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