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과학자와 피아노 #69.『호킹 주식회사』를 읽기 전에 ⑤ - 얼려 둔 관찰값

블랙소스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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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이라고 아주 다를까. 톤은 달라지겠지만 그 DNA가 어디 가겠는가.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호킹답다’고 느끼는 그 압축성과 직진성은 다른 질문을 불러온다. 아이디어를 고르는 사람, 계산하는 사람, 칠판에 식을 쓰는 사람, 문장을 만드는 사람, 그 문장을 보고 아니라고 하는 사람. 그중 어디까지를 저자라고 해야 할까.


아마 『호킹 주식회사』가 하필 이런 캐릭터를 붙잡은 이유도 거기 있을 듯하다. 그 질문의 반대편에는 레너드 믈로디노프가 남긴 장면 하나가 선다. 『위대한 설계』를 함께 쓰면서 두 사람은 한 문장을 두고 다퉜다. 호킹이 “철학은 죽었다”고 쓰자 믈로디노프는 너무 거칠다며 다른 표현을 제안했다. 


호킹의 반응은 간단했다: 당신 문장에는 punch가 없다는 것이다.


믈로디노프가 계속 따지자 호킹은 음성합성기의 볼륨을 높여 자신의 문장을 다시 들려주었다. '네트워크'의 화력을 높였다 해야 할까. 결국 책에 남은 것은 우리가 아는 그 문장, “철학은 죽었다”였다. 여러 손을 거친다는 것과 누구의 문장이냐는 것은 이렇게 다른 문제다. 다만 어느 쪽이 얼마만큼인지는 누군들 알겠는가.


텍스트가 음악으로 바뀌면 호킹과 나는 훨씬 멀어진다. 1992년 성탄절에 방송된 BBC 〈Desert Island Discs〉에서 호킹이 고른 여덟 곡은 이랬다. 풀랑크의 《글로리아》,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 현악사중주 15번 Op.132, 바그너 《발퀴레》 1막, 비틀스, 모차르트 《레퀴엠》, 푸치니 《투란도트》, 그리고 에디트 피아프. 하나만 가져간다면 모차르트 《레퀴엠》이라고 했다.


목록을 다시 보시라. 피아노 독주는 한 곡도 없다. 피아노는 묘하게 자족적인 악기다. 한 사람이 앉아 멜로디와 화음과 리듬을 거의 전부 떠맡을 수 있다. 88개의 건반을 거니는 열 손가락만으로도 상당히 완결된 작은 우주를 만들 수 있다.


반면 호킹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여러 악기와 목소리가 얽혀 하나의 구조를 만드는 음악이 유난히 많다. 협주곡과 현악사중주, 합창과 오페라와 레퀴엠. 한 파트를 떼어내면 전체가 달라지지만, 그렇다고 여럿이 하나로 녹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서로에게 기대면서 각자가 남는다. 물론 호킹이 그래서 그런 음악을 좋아했다고 말하면 지나친 사후 해석이다. 어쩌면 그냥 바그너를 좋아했을 뿐일지도 모르는데. 


덧붙이자면 이 방송 프로그램의 설정 자체도 공교롭다. 무인도에 가져갈 여덟 장을 고르라는 것인데, 처음에는 무인도나 다를 바 없는 영국으로 나는 피아노를 이고 갈 수 없어 두고 갔고, 호킹은 여덟 장을 골랐다. 여덟 가지 모두 혼자서는 낼 수 없는 소리들.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서도 여럿이 있어야 하는 음악만 챙겨 간 셈이다.


묘하기는 하다. DAMTP에서 보았던 호킹도 조금은 그런 작품을 닮아 있었으니까. 그런데 더 재미난 부분은 반대쪽이다. 호킹은 관현악과 합창을 좋아하면서도, (적어도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텍스트에서는 필요 없는 악기를 놀라울 만큼 빨리 무대 밖으로 내보내는 쪽이었다. 나는 피아노 한 대면 넘치는 사람인데 글에서는 자꾸 악기를 늘린다. 


같은 물리적 대상이자 신비를 두고 사유했으면서도, 정작 물리적 공간 몇 미터 앞에서는 평생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던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런데 이제 와서는 아직 제대로 읽지도 않은 그 과학자에 관한 다소 독특한 책을 앞에 두고 글을 네 꼭지나 펼쳐 놓았다. 


물론, 이렇게 선수를 친 이유 하나는 확연하다. 『호킹 주식회사』를 먼저 읽어버리면, 내가 직접 1990년대에 눈으로 보았던 날것의 장면들이 미알레의 정교한 인류학적 언어로 다시 정렬되며 그 프레임에 갇힐 것만 같았다. 휠체어에서는 '행위자 네트워크'를 보고, 티타임에서는 '분산된 인지'를 보며, 학생의 손에서는 '확장된 신체'만을 보게 될 테니까. 


타자의 앵글에 오염되기 전에, 내가 실제로 무엇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를 먼저 얼려두고 싶었다. 금요일 런치 세미나의 뒷문, 턱 아래 받쳐 있던 천, 티타임의 휠체어와 커서, 나의 피아노와 남의 피아노, 그리고 뻔히 끌리는 중력장 속에서 번번이 입을 열지 못했던 20대 초반의 자화상까지. 책을 읽기 전에 얼려 둔 관찰값들이다. 


참, 아니, 호킹이라면 아마 이렇게 길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두 '쪽'이면 끝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서 멈춘다. 네 번이나 『호킹 주식회사』 앞에서 서성였으니, 

이제는 문을 열고 들어갈 차례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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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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