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낌을 조금 더 따라가 보니, 피아노 앞에 사람이 꼭 있지 않아도 즐겁다. 피아노가 한 대든, 여러 대든 그냥 거기 그렇게 있는 광경만으로도 좋다. 누군가 연주를, 연습을 하고 있어도 좋고, 덩그라니 그냥 조용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도 좋다.
그러니까 소리를 죽이고 화면만 봤을 때도 즐거웠던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은 꼭 연주가 아니더라도 피아노의 존재 자체가 야기하는 공간감, 아니면 50년 가까운 세월 속에서 내 안에 켜켜이 축적된 재미의 조건 덕분 아닐까.
시계를 1914년으로 돌려 보자.
어니스트 섀클턴의 인듀어런스호는 남극 대륙 횡단을 목표로 떠났다가 웨들해의 유빙에 갇혔다. 아홉 달 넘게 갇혀 떠다니는 동안 배는 얼음에 눌려 부서졌고, 1915년 10월 27일 섀클턴은 배를 버리라고 명령한다.
배를 버린 뒤 얼음 위를 행군해야 하게 되자 섀클턴은 대원 한 사람이 지고 갈 개인 소지품을 2파운드로 제한했다. 약 900그램. 자기 주머니에서 금 담뱃갑과 금화를 꺼내 눈 위에 던지는 것으로 시범을 보였다. 그렇게 모두가 목록을 깎아내는 와중에, 가장 터무니없는 예외 하나가 인정받았다.
기상학자 레너드 허시의 밴조. 12파운드, 5킬로그램이 넘었다. 규정의 여섯 배다. 허시 자신은 두고 갈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섀클턴이 그걸 챙겼다. 저 밴조는 가져가야 한다, 식량을 다 잃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아마 사치품이 아니라 mental tonic, 말하자면 생존의 자양분임을 직감해서였을까.
2파운드 규정은 그 자체로 흠잡을 데 없는 답이다. 생존을 위한 최적해였다. 그런데 밴조는 그 목적함수에 포함되지 않은 변수였다. 섀클턴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뿐 아니라 ‘얼마나 오래 사람이 사람으로 버틸 수 있는가’를 계산에 넣었다.
중요한 사실은 허시가 대단한 밴조이스트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애초에 대원으로 뽑힌 경위부터가 그랬다. 섀클턴이 면접에서 인상을 재미있게 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기상학자로 뽑히긴 했어도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이건, 그야말로 채용의 정석 중 하나가 아닌가?!)
재주보다는 넉살과 유머로 대원들의 사기를 붙들어둔 사람이었다는 기록이 여럿 남아 있다. 그러니까 얼음 위에서 필요했던 것은 훌륭한 연주가 아니라 그냥 연주였다. 잘하고 못하고는 처음부터 계산에 없었다. 엘리펀트섬에서 스물두 명이 뒤집어놓은 보트 두 척 아래 넉 달 반을 버텼다. 그 굴을 그들은 '스너거리'라고 불렀다. 그 안에서 토요일 밤마다 연주회가 열렸다. 물개를 잡은 날에도 밴조가 나왔다.
펭귄과 음악을 둘러싼 더 오래된 장면 하나도 좋다. 인듀어런스가 아직 얼음에 갇혀 있던 어느 오후, 아델리펭귄 세 마리가 유빙을 건너 다가왔다. 허시가 「It's a Long Way to Tipperary」를 연주할 때는 제법 얌전히 듣는 듯하더니, 스코틀랜드 곡조가 나오자 질겁하듯 달아났다. 배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펭귄의 음악 취향을 놓고 웃고 있었다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 사이에 억지로 눈금을 새겨 넣은 셈이다. 토요일이 있으려면 토요일 밤에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재미가 정말 다음을 가능케 하는 감각이라면, 얼음 위에서 그것은 그야말로 은유가 아니었다. 다음 토요일까지 넘어가는 일, 딱 그만큼이 그들에게 허락된 미래였으니까.
결국 인듀어런스에 탔던 스물여덟 명은,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엘리펀트섬에 남아 있던 마지막 스물두 명이 칠레의 옐초호에 구조된 것은 1916년 8월 30일.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이다. 밴조도 살아 돌아왔다. 허시는 1959년 그것을 그리니치 국립해양박물관에 기증했고, 가죽 면에는 원정대원들의 서명이 남아 있다. 2004년에 이르러서는 평가액만 15만 파운드를 넘었다. 12파운드가 15만 파운드가 됐다. 같은 파운드인데 무게는 가치를 먹고 자랐다. 규정을 어긴 값치고는 썩 나쁘지 않다.
대원들에게 밴조는 잘 치고 못 치고의 물건이 아니었다. 그냥 낙이었다. 그것 하나로 토요일이 생겼고, 웃을 거리가 생겼고, 펭귄의 음악 취향을 놓고 떠들 여유가 생겼다.
나에게 피아노도 그렇다. 오십 년 가까이 그래왔고 앞으로, 100세 시대라니, 적어도 또 그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을 듯하다. 거부하려야 거부가 안 되는 낙이라는 게 그런 걸까. 그래서 취미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기도 하다.
그러니 〈포핸즈〉 1화의 장면들도 이제는 별로 이상하지 않다. 화면에 피아노가 있었고, 사람들이 그 앞에 앉았다. 그거면 됐다. 재미가 다음을 가능하게 하는 감각이라면, 때로 필요한 것은 거창한 미래가 아니다. 다음 토요일 하나면 된다. 그런 사소한 낙이야말로 오십 년이고 백 년이고, 어쩌면 평생을 가는 법이려나.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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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을 조금 더 따라가 보니, 피아노 앞에 사람이 꼭 있지 않아도 즐겁다. 피아노가 한 대든, 여러 대든 그냥 거기 그렇게 있는 광경만으로도 좋다. 누군가 연주를, 연습을 하고 있어도 좋고, 덩그라니 그냥 조용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도 좋다.
그러니까 소리를 죽이고 화면만 봤을 때도 즐거웠던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은 꼭 연주가 아니더라도 피아노의 존재 자체가 야기하는 공간감, 아니면 50년 가까운 세월 속에서 내 안에 켜켜이 축적된 재미의 조건 덕분 아닐까.
시계를 1914년으로 돌려 보자.
어니스트 섀클턴의 인듀어런스호는 남극 대륙 횡단을 목표로 떠났다가 웨들해의 유빙에 갇혔다. 아홉 달 넘게 갇혀 떠다니는 동안 배는 얼음에 눌려 부서졌고, 1915년 10월 27일 섀클턴은 배를 버리라고 명령한다.
배를 버린 뒤 얼음 위를 행군해야 하게 되자 섀클턴은 대원 한 사람이 지고 갈 개인 소지품을 2파운드로 제한했다. 약 900그램. 자기 주머니에서 금 담뱃갑과 금화를 꺼내 눈 위에 던지는 것으로 시범을 보였다. 그렇게 모두가 목록을 깎아내는 와중에, 가장 터무니없는 예외 하나가 인정받았다.
기상학자 레너드 허시의 밴조. 12파운드, 5킬로그램이 넘었다. 규정의 여섯 배다. 허시 자신은 두고 갈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섀클턴이 그걸 챙겼다. 저 밴조는 가져가야 한다, 식량을 다 잃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아마 사치품이 아니라 mental tonic, 말하자면 생존의 자양분임을 직감해서였을까.
2파운드 규정은 그 자체로 흠잡을 데 없는 답이다. 생존을 위한 최적해였다. 그런데 밴조는 그 목적함수에 포함되지 않은 변수였다. 섀클턴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뿐 아니라 ‘얼마나 오래 사람이 사람으로 버틸 수 있는가’를 계산에 넣었다.
중요한 사실은 허시가 대단한 밴조이스트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애초에 대원으로 뽑힌 경위부터가 그랬다. 섀클턴이 면접에서 인상을 재미있게 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기상학자로 뽑히긴 했어도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이건, 그야말로 채용의 정석 중 하나가 아닌가?!)
재주보다는 넉살과 유머로 대원들의 사기를 붙들어둔 사람이었다는 기록이 여럿 남아 있다. 그러니까 얼음 위에서 필요했던 것은 훌륭한 연주가 아니라 그냥 연주였다. 잘하고 못하고는 처음부터 계산에 없었다. 엘리펀트섬에서 스물두 명이 뒤집어놓은 보트 두 척 아래 넉 달 반을 버텼다. 그 굴을 그들은 '스너거리'라고 불렀다. 그 안에서 토요일 밤마다 연주회가 열렸다. 물개를 잡은 날에도 밴조가 나왔다.
펭귄과 음악을 둘러싼 더 오래된 장면 하나도 좋다. 인듀어런스가 아직 얼음에 갇혀 있던 어느 오후, 아델리펭귄 세 마리가 유빙을 건너 다가왔다. 허시가 「It's a Long Way to Tipperary」를 연주할 때는 제법 얌전히 듣는 듯하더니, 스코틀랜드 곡조가 나오자 질겁하듯 달아났다. 배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펭귄의 음악 취향을 놓고 웃고 있었다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 사이에 억지로 눈금을 새겨 넣은 셈이다. 토요일이 있으려면 토요일 밤에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재미가 정말 다음을 가능케 하는 감각이라면, 얼음 위에서 그것은 그야말로 은유가 아니었다. 다음 토요일까지 넘어가는 일, 딱 그만큼이 그들에게 허락된 미래였으니까.
결국 인듀어런스에 탔던 스물여덟 명은,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엘리펀트섬에 남아 있던 마지막 스물두 명이 칠레의 옐초호에 구조된 것은 1916년 8월 30일.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이다. 밴조도 살아 돌아왔다. 허시는 1959년 그것을 그리니치 국립해양박물관에 기증했고, 가죽 면에는 원정대원들의 서명이 남아 있다. 2004년에 이르러서는 평가액만 15만 파운드를 넘었다. 12파운드가 15만 파운드가 됐다. 같은 파운드인데 무게는 가치를 먹고 자랐다. 규정을 어긴 값치고는 썩 나쁘지 않다.
대원들에게 밴조는 잘 치고 못 치고의 물건이 아니었다. 그냥 낙이었다. 그것 하나로 토요일이 생겼고, 웃을 거리가 생겼고, 펭귄의 음악 취향을 놓고 떠들 여유가 생겼다.
나에게 피아노도 그렇다. 오십 년 가까이 그래왔고 앞으로, 100세 시대라니, 적어도 또 그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을 듯하다. 거부하려야 거부가 안 되는 낙이라는 게 그런 걸까. 그래서 취미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기도 하다.
그러니 〈포핸즈〉 1화의 장면들도 이제는 별로 이상하지 않다. 화면에 피아노가 있었고, 사람들이 그 앞에 앉았다. 그거면 됐다. 재미가 다음을 가능하게 하는 감각이라면, 때로 필요한 것은 거창한 미래가 아니다. 다음 토요일 하나면 된다. 그런 사소한 낙이야말로 오십 년이고 백 년이고, 어쩌면 평생을 가는 법이려나.
- 계속 -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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