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글쓰기 실력은 계단으로 천천히 온다

박영민
2026-09-09
조회수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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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인공지능(AI) 시대의 흔하고도 어려운 주제다. 주어진 텍스트를 머릿속 의미로 재구성하는 ‘읽기’에 비해, 안 보이는 생각을 보이는 텍스트로 생성해내는 ‘쓰기’는 훨씬 혹독한 인지 노동이다. 클릭 한 번에 청산유수처럼 쓰는 AI가 있으니 고단한 글쓰기 교육은 불필요하다지만 같은 이유로 쓰는 힘은 키워야 한다. 가혹한 두뇌 활동에서 인간다움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내 몸을 통과해 종이 위로 빠르게 흐르지 못하고 막히는 순간은 인지심리학이 말하는 ‘바람직한 어려움’의 지점이다. 막히는 곳에서 더듬거려 보아야(정보의 심층 처리) 거기서 얻은 통찰을 다른 곳에 가져다 써 볼 수 있다(전이). 더듬거림은 고장난 메타인지를 수정한다. 매끄럽게 정리된 정보를 읽으며 ‘내가 잘 이해한다’라는 가짜 유창성의 함정을 비켜가게 하기 때문이다.


이 고통스러운 더듬거림이 모두의 경험이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한글 창제 후에야, 정보 수집과 표현의 장벽이 낮아졌다. 글로 성취하려는 욕망과 고통 역시 양반의 전유물에서 벗어났다. 정보도 고통도 민주화된 셈이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그럴듯한 글을 쉽게 흘려보내지만 인지적 더듬거림의 기회는 감춘다. 이 더듬거림을 애써 구하는 이와 외면하는 이 사이의 인지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한 기술 적응의 문제를 넘어 사고의 깊이 자체를 가르는 결정적 분기점이 된다.


더듬거리는 고통의 계단


글쓰기의 고통을 외면하려는 심정은 이해된다. 야속하게도 쓰기 실력은 오르막이 아니라 계단을 기어오르듯 더디게 온다. 첫 계단을 딛고는 실력이 늘어난 듯 신나지만 이내 기나긴 평지(plateau)를 만난다. ‘아무리 해도 제자리네’라며 다음 계단으로 껑충 오르기 직전에 포기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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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김기명>


이 안타까운 좌절의 시기를 통과하는 비법은 아쉽게도 ‘버티기’뿐이다. 인지과학자 로버트 디카이저의 기능습득이론에 따르면 알고 있는 지식(선언적 지식)을 행동(절차적 지식)으로 바뀔 땐 빠르지만, 그 지식이 능숙해지는 자동화 단계로 나아갈 땐 기나긴 정체기가 계속된다. 엄청난 연습량만으로 통과할 수 있다.


데드리프트 무게를 늘려도 거울 속 몸의 실루엣이 단숨에 달라지지 않고 근육통만 남는다. 우리는 이 통증을 ‘헛수고’나 ‘실패’라 부르며 바벨을 내려놓는 대신 ‘자라는 신호’로 여긴다. 글쓰기 근육도 마찬가지다. 다만, 근육통과 달리 쓰기의 고통이나 성장은 만져지지 않는다. 그러니 자꾸 고민에 빠진다. ‘이게 맞나?’ ‘나만 못 하는 건가?’


뛰어난 작가조차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아름다운 문장에 담아 정확한 문법으로 술술 빠르게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초보자들은 오죽하겠나. 빈 종이나 모니터 앞에 앉은 인간이 AI처럼 신속하게 써내려가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머릿속 작업대(작업기억)는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고 복잡한 내용을 유창하게 적으려다가는 작업대의 한계를 초과해 인지 과부하를 맞는다. 끊임없이 평가하는 내 머릿속 심판은 한 문장을 채 쓰기도 전에 백스페이스 키를 누르거나 지우개부터 손에 쥐게 한다.


‘프리라이팅(freewriting, 자유 글쓰기)’은 이 가혹한 검열로부터 초보자의 좁은 작업기억을 지키는 길이다. 미국의 문학가 피터 엘보우(Peter Elbow)가 제안한 이 방법의 규칙은 단순하고 강렬하다. ‘절대 멈추지 않고 10분동안 쓴다.’ 문법이나 철자가 어긋나도 줄 하나 긋고 쉼없이 나아간다. 지우개로 지우지 않는다. 문맥에 맞는지 확인하느라 뒤돌아 서성이지 말고 그저 나아간다. 다음 단어가 떠오를 때까지 지금 쓰는 단어를 반복해 적어도 무방하다. 정확하고 구성진 글을 쓰려는 마음을 버리고, 생각을 종이 위에 거침없이 꺼내는 일에만 집중한다.


좌절의 끝에서 디딜 ‘정확성’


검열 없는 배출을 반복해 쓰기의 흐름이 자동화되어야 비로소 작업기억 공간에 여유가 생겨난다. 문장의 재배치와 글의 논리구조를 시각화하는 일에 우리 두뇌가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첫 계단의 정체기에서 포기하려는 좌절의 마음은 언어의 ‘정확성’과 ‘복잡성’를 배우기 최적의 상태다.


실패가 아니다. 스스로 한계를 느낄 때 문장구조의 정교함이나 어휘의 정확성을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다. 지우지 않고 서투르고 거친 그대로의 유창함 위에 정밀한 정확성을 얹는 질적 도약이 바로 다음 계단으로 오르는 동력이다.


글쓰기는 인지자원을 아낌없이 소모하는 가혹하고 위대한 인간의 일이다. 연필은 쥐되 지우개는 내려놓고 시작해보자.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마침내 마주하게 될 진짜 문해력의 실루엣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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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민 (카이스트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교사)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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