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연휴가 끝나고 찬장을 열면 노란 스팸 선물세트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또 스팸이네” 하며 상자를 밀어두는 사람도 있고, 반갑게 뜯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네모난 캔은 이제 명절 풍경의 일부다.
대학 시절 식품가공 실습에서 통조림을 만든 적이 있다. 재료를 캔에 담아 밀봉하고 대형 살균기에 넣었다. 살균이 끝난 캔 뚜껑에 진공계 바늘을 꽂아 속을 확인했다. 살균기는 늘 같은 숫자에 맞춰져 있었다. 121.1℃. 왜 하필 이 어정쩡한 숫자일까.
이야기는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에서 시작한다. 전쟁을 치르는 나라에서는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 군량이 절실했다. 파리의 제과업자 니콜라 아페르는 샴페인 병과 코르크, 끓는 물 솥으로 십수년을 실험했다. 음식을 병에 담아 밀봉하고 끓이면 오래간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아냈다. 1810년 프랑스정부는 그 방법을 공개하는 조건으로 그에게 1만2000프랑을 주었다.
같은 해 영국에서는 금속용기에 음식을 담는 특허가 나왔다. 상인 듀란의 이름이었지만 착상은 프랑스인 지라르의 것이었다고도 한다. 통조림은 한 천재의 발명이라기보다, 전쟁이 던진 문제 앞에서 여러 손을 거쳐 쌓인 결과였다. 그러나 아페르도, 그 뒤를 이은 누구도 왜 통하는지는 몰랐다. 그 이유는 반세기 뒤 파스퇴르가 밝혔다. 부패의 범인은 미생물이었다.
살균은 전멸 아닌 확률의 공학
1919년 미국에서 올리브 통조림을 먹은 사람들이 잇따라 마비 증세로 쓰러졌다. 보툴리누스균이었다. 산소 없는 밀폐 공간에서 오히려 잘 자라고, 포자는 웬만한 가열에도 죽지 않는다. 통조림 업계는 서둘러 연구비를 댔고, 과학자들은 시험관을 수없이 끓이며 균이 몇 도에서 몇 분 만에 죽는지 재기 시작했다. 질문이 바뀌었다. ‘뜨겁게 하면 안전하다’가 아니라 ‘얼마나 뜨겁게, 얼마나 오래’를 숫자로 답해야 했다.
연구자들은 특정 온도에서 균을 90% 줄이는 데 걸리는 시간을 D값이라 불렀다. 고기나 옥수수처럼 산이 적은 저산성 통조림에서는 보툴리누스균 포자를 10분의 1로 줄이는 과정을 열두 번 거듭하는 수준, 이른바 12D가 안전 기준이 되었다.
121℃에서 이 균의 D값은 약 0.21분이니, 그 열두 배인 2.5분 남짓이다. 캔 하나에 포자가 하나 있었다면 살아남을 확률은 1조 분의 1이 된다. 균이 한 마리도 없다는 선언이 아니다. 살아남을 확률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낮춘다는 뜻이다. 살균은 전멸이 아니라 확률의 공학이다.
그렇다면 121.1℃에는 무슨 비밀이 있을까. 별다른 비밀은 없다. 압력솥처럼 눌린 증기는 100℃를 넘는다. 당시 미국 연구자들은 대기압에 15psi를 더한, 곧 평소의 두 배쯤 되는 압력의 포화증기가 만드는 250°F를 기준 온도로 삼았다. 그 시절 설비로 안정적으로 도달할 수 있었고 처리시간도 현실적이었다. 섭씨로 바꾸면 121.111…℃. 그래서 121.1℃다. 우연한 환산값이 100년 가까운 표준화를 거쳐 식품공학에서 가장 유명한 숫자가 되었다.
실제 캔 속 온도는 가열 내내 오르내린다. 보툴리누스균 포자는 온도가 10℃만 낮아져도 같은 효과를 내는 데 열 배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캔이 받은 열을 모두 더해 121.1℃에서 몇 분 가열한 것과 같은지로 환산한다. 이것이 F₀다. 우리가 손쉽게 따는 캔 하나에는 이 계산이 들어 있다.
한국전쟁 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햄 통조림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귀한 단백질이었다. 담장 너머로 나온 캔은 시장 좌판에서 비싼 값에 팔렸다. 그 짭조름한 햄은 김치와 고추장, 라면을 만나 부대찌개가 되었다. 스팸은 원래 1937년 미국 호멜이 잘 쓰이지 않던 돼지 어깨살을 활용하려고 만든 제품이다. 그 캔을 2차대전의 보급품으로 세계에 퍼뜨리고, 이 땅까지 실어 온 것은 전쟁이었다. 아페르의 병이 그랬듯이.

<삽화 김기명>
전쟁이 만든 통조림의 역사
뚜껑만 따면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작은 기적이었다. 1987년 국내 생산이 시작되자, 귀했던 기억과 오래 두어도 탈이 없다는 통조림의 성질이 만나 햄은 명절 선물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너무 흔해진 나머지 “또 스팸이네”라는 투정을 듣게 되었다.
찬장에 남은 스팸 캔 하나에는 두 겹의 역사가 포개져 있다. 전쟁통에서 태어나 100년 넘게 안전을 숫자로 설계해 온 공학의 역사와, 결핍을 지나 풍요에 이른 우리의 기억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가공식품의 편리함 뒤에는 인류가 오랜 재난과 위기를 극복하며 축적해 온 이성적 탐구의 결과물이 촘촘히 박혀 있는 셈이다. 이번 추석에 받은 캔이 아직 남아 있다면, 뚜껑을 따기 전에 한 번쯤 121.1℃를 떠올려도 좋겠다.

김기명 (푸도슨트식품연구소장, 식품공학)
| 내일신문과 ESC가 함께 과학칼럼 코너 '과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찾아갑니다. ESC 회원 과학자 칼럼니스트들의 맛깔난 '우리를 둘러싼 과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사원문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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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끝나고 찬장을 열면 노란 스팸 선물세트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또 스팸이네” 하며 상자를 밀어두는 사람도 있고, 반갑게 뜯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네모난 캔은 이제 명절 풍경의 일부다.
대학 시절 식품가공 실습에서 통조림을 만든 적이 있다. 재료를 캔에 담아 밀봉하고 대형 살균기에 넣었다. 살균이 끝난 캔 뚜껑에 진공계 바늘을 꽂아 속을 확인했다. 살균기는 늘 같은 숫자에 맞춰져 있었다. 121.1℃. 왜 하필 이 어정쩡한 숫자일까.
이야기는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에서 시작한다. 전쟁을 치르는 나라에서는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 군량이 절실했다. 파리의 제과업자 니콜라 아페르는 샴페인 병과 코르크, 끓는 물 솥으로 십수년을 실험했다. 음식을 병에 담아 밀봉하고 끓이면 오래간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아냈다. 1810년 프랑스정부는 그 방법을 공개하는 조건으로 그에게 1만2000프랑을 주었다.
같은 해 영국에서는 금속용기에 음식을 담는 특허가 나왔다. 상인 듀란의 이름이었지만 착상은 프랑스인 지라르의 것이었다고도 한다. 통조림은 한 천재의 발명이라기보다, 전쟁이 던진 문제 앞에서 여러 손을 거쳐 쌓인 결과였다. 그러나 아페르도, 그 뒤를 이은 누구도 왜 통하는지는 몰랐다. 그 이유는 반세기 뒤 파스퇴르가 밝혔다. 부패의 범인은 미생물이었다.
살균은 전멸 아닌 확률의 공학
1919년 미국에서 올리브 통조림을 먹은 사람들이 잇따라 마비 증세로 쓰러졌다. 보툴리누스균이었다. 산소 없는 밀폐 공간에서 오히려 잘 자라고, 포자는 웬만한 가열에도 죽지 않는다. 통조림 업계는 서둘러 연구비를 댔고, 과학자들은 시험관을 수없이 끓이며 균이 몇 도에서 몇 분 만에 죽는지 재기 시작했다. 질문이 바뀌었다. ‘뜨겁게 하면 안전하다’가 아니라 ‘얼마나 뜨겁게, 얼마나 오래’를 숫자로 답해야 했다.
연구자들은 특정 온도에서 균을 90% 줄이는 데 걸리는 시간을 D값이라 불렀다. 고기나 옥수수처럼 산이 적은 저산성 통조림에서는 보툴리누스균 포자를 10분의 1로 줄이는 과정을 열두 번 거듭하는 수준, 이른바 12D가 안전 기준이 되었다.
121℃에서 이 균의 D값은 약 0.21분이니, 그 열두 배인 2.5분 남짓이다. 캔 하나에 포자가 하나 있었다면 살아남을 확률은 1조 분의 1이 된다. 균이 한 마리도 없다는 선언이 아니다. 살아남을 확률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낮춘다는 뜻이다. 살균은 전멸이 아니라 확률의 공학이다.
그렇다면 121.1℃에는 무슨 비밀이 있을까. 별다른 비밀은 없다. 압력솥처럼 눌린 증기는 100℃를 넘는다. 당시 미국 연구자들은 대기압에 15psi를 더한, 곧 평소의 두 배쯤 되는 압력의 포화증기가 만드는 250°F를 기준 온도로 삼았다. 그 시절 설비로 안정적으로 도달할 수 있었고 처리시간도 현실적이었다. 섭씨로 바꾸면 121.111…℃. 그래서 121.1℃다. 우연한 환산값이 100년 가까운 표준화를 거쳐 식품공학에서 가장 유명한 숫자가 되었다.
실제 캔 속 온도는 가열 내내 오르내린다. 보툴리누스균 포자는 온도가 10℃만 낮아져도 같은 효과를 내는 데 열 배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캔이 받은 열을 모두 더해 121.1℃에서 몇 분 가열한 것과 같은지로 환산한다. 이것이 F₀다. 우리가 손쉽게 따는 캔 하나에는 이 계산이 들어 있다.
한국전쟁 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햄 통조림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귀한 단백질이었다. 담장 너머로 나온 캔은 시장 좌판에서 비싼 값에 팔렸다. 그 짭조름한 햄은 김치와 고추장, 라면을 만나 부대찌개가 되었다. 스팸은 원래 1937년 미국 호멜이 잘 쓰이지 않던 돼지 어깨살을 활용하려고 만든 제품이다. 그 캔을 2차대전의 보급품으로 세계에 퍼뜨리고, 이 땅까지 실어 온 것은 전쟁이었다. 아페르의 병이 그랬듯이.
<삽화 김기명>
전쟁이 만든 통조림의 역사
뚜껑만 따면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작은 기적이었다. 1987년 국내 생산이 시작되자, 귀했던 기억과 오래 두어도 탈이 없다는 통조림의 성질이 만나 햄은 명절 선물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너무 흔해진 나머지 “또 스팸이네”라는 투정을 듣게 되었다.
찬장에 남은 스팸 캔 하나에는 두 겹의 역사가 포개져 있다. 전쟁통에서 태어나 100년 넘게 안전을 숫자로 설계해 온 공학의 역사와, 결핍을 지나 풍요에 이른 우리의 기억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가공식품의 편리함 뒤에는 인류가 오랜 재난과 위기를 극복하며 축적해 온 이성적 탐구의 결과물이 촘촘히 박혀 있는 셈이다. 이번 추석에 받은 캔이 아직 남아 있다면, 뚜껑을 따기 전에 한 번쯤 121.1℃를 떠올려도 좋겠다.
김기명 (푸도슨트식품연구소장, 식품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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