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대회 초창기에는 단연 폴란드, 러시아(당시 소련)를 비롯한 동구권의 강세가 뚜렷했다. 사실 1위만 보면 4회 대회까지 20년 이상을 소련이 보유하고 있다(공백 기간을 포함해서다). 물론 4회의 1위는 폴란드와 공동 1위고(실제로 폴란드가 1위였는데 소련의 입김이 있었다는 후문도 들렸다) 5회 대회에서 완전히 폴란드에 그 지위를 넘기게 된다. 이후 폴란드 연주자의 1위 기록은 20년 뒤에나 다시 나오게 된다(1975). 그러고 그로부터 30년이 더 흘러서야 폴란드는 1위를 배출한다. 2005년의 1위는 사상 초유의 세월을 기다렸기도 해서지만, 전 부문을 싹쓸이해서기도 해서 무척 각별했다. 본 콩쿠르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 대회 창설 후 78년 만에 나온 일이었으니! 하지만 이후 최근의 콩쿠르 현황을 보면 이는 정말 기현상이나 마찬가지다. 다. 이를 기점으로 폴란드 출신들이 기염을 토하는 시대가 다시 열리나 싶었지만 역사는 오히려 이들이 파이널리스트에 한두 명이라도 오르면 다행인 방향으로 지각 변동이 일었다.
그렇다면, 쇼팽 콩쿠르에서 폴란드 출신들의 (홈) 어드밴티지 이야기는 왜 없어지질 않을까?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다고 못하지만 또 모두가 용인하는 어드밴티지라는 필연적 배경 또한 존재한다. 여기서 역차별 이슈가 등장하는데, 아주 비중이 크지는 않았더라도, 또는 정말 폴란드 피아니즘의 쇠퇴인지는 몰라도, 폴란드인이 우승이나 상위권 입상을 독차지하다 보면 아무래도 직/간접적으로 견제를 받기가 쉬워진다. 마치 요즘 K-클래식 열풍이 화제인데, 너무 거세다보니 클래식계에서 한국인들이 역차별 우려까지 하기에 이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최근 콩쿠르에서 한국인들의 부각이 주춤하는 듯하기도 한데, 계속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중국계 등의 더 거센 부상은 이런 간접적 영향으로 나타나는 현상의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폴란드 연주자들의 유리함은 통계적 근거보다는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심지어는 막연한 인식이나 대회 초창기에는 아무래도 폴란드 출심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첫인상'의 비합리적인 잔재로 인한 영향에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Descriptive statistics만 보면 흥미롭기는 한데, 폴란드는 러시아와 함께 역대 최대 다수 우승자 배출국이다(4회). 전 대회의 22% 수준이니 두 나라가 44%, 거의 반에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한다. 뒤집어 보면, 어떻게 초창기에 폴란드(+동구, 소련권) 일색인 대회를 '국제'적이라 할 수 있겠냐 싶지만, 공교롭게도 소련이 그들의 예술적 우위를 만방에 떨치겠다는 야심으로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를 처음으로 개최한 시기에 맞물려 쇼팽 콩쿠르도 진정한 국제화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부터 이탈리아, 그리고 이후 아르헨티나, 미국 등 우승자의 국적이 아시아권까지도 포함해 그야말로 말 그대로 '세계'적으로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폴란드의 상대적 약세를 동반하게 되기도 했다.
어드밴티지 논란의 한 가지 측면은 심사위원단 구성인데, 대체로 30% 내외 수준으로 폴란드 피아니스트들이 비중을 꾸준히 차지하고 있으므로, 아무리 대회 규정에서 사제 간 평가를 제하도록 하고 있더라도 복잡한 수직, 수평적 관계망의 구조상 아무래도 간접적으로도 영향력이 없다고는 보기 어렵다.
조금 더 선명하거나 합리적인 어드밴티지 주장의 근거로, 청중의 지지를 꼽을 수 있다. 확실히 자국 출신들의 연주가 끝나면 박수 소리가 꽤 큰 편이다. (물론 타국 출신 연주자도 다들 쟁쟁한 발군의 실력자들이라 대개 큰 박수를 받는다.) 하지만 그 박수의 열기 차이는 홈그라운드적 지지와 국적 불문 연주에 대한 비교적 객관적인 반응 모두를 내포한다. 출전자에게도 든든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은 한편으론 부담을 키우지만 그보다는 긴장감이나 떨림을 떨치고 컨피던스를 공고히 하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장 정서에서 심지어 심사위원들마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현장의 응원 분위기는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유리한 면은 바로 대회장이다. 말 그대로, 폴란드 출전자들 정도 되면 (사실 자국의 행사인 만큼 몇몇 이유에서 상비군 양성적 기제가 살아 있는 나라다.) 그곳은 '홈그라운드'다. 모든 출전자들에게 공평한 리허설 기회가 제공되지만, 이미 폴란드 출신들은 그 이상으로 이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니 홀에서 연주해본 경험이 (적어도 대다수 타국 출신에 비해서는 유리한 수준으로) 축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홀 공간의 음향 특성, 분위기에 훨씬 익숙하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다.
그러함에도, 이들이 공정성을 해친다고 볼 정도로 강력한가? 논리적으로나 현상적으로나 그렇지는 않음도 분명해 보인다.
[8] 그냥 반증적으로, 공정성 시비가 그렇게 심각하다면, 폴란드 출신들의 약세나 100년 가까이 지속되는 대회 권위, 특히 글로벌 위기 이벤트 상황에서 보류되거나 지연되었음에도, 명맥을 유지하며 계속 국제적 최고의 대회로 자리매김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표면적 어드밴티지 여부보다 더 본질적으로는, 쇼팽 음악의 폴란드다움에는, 어느 나라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아리랑의 한을 한국인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냐는 프레임에 많이 견주고는 한다. 아울러, 공교롭게도 폴란드에는 비슷하게 고유한 결로 폴란드어 자체로 'żal'이라고 하는 정서가 존재한다. 우울, 상실감, 그리움이 뒤섞인 복잡한 심정으로, 폴란드의 역사적 비극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혼과도 같다. 쇼팽 작품 대다수에도 'żal'이 담겨 있는 데서 그 정체성 형성에 일조한다.
그렇게 고유하기에 우리말이나 외국어로는 옮기기 거의 불가능하다. 그냥 '잘'이라 하는 수밖에. 그러니까, 가령, 우리의 '한'을 영어나 다른 나라 말로 뭐라 옮기겠는가? 심지어 폴란드인이 아니면서 바르샤바 청중이나 평단 앞에서 쇼팽을 연주하는 도전에는 상당한 두려움이 수반되며 이를 극복하려면 어마어마한 용기와 자신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폴란드인들 생각에 외국인이 과연 쇼팽의 마주르카와 폴로네이즈를 구석구석까지 정말 완벽한 감각으로 연주하는 게 가능햐나는 것이다. 폴리시 스타일의 정통성과 혁신성 사이의 긴장을 안고 현대 피아니즘과 문화의 변화 앞에 직면하면서, 폴리시 피아니즘은 세계적 맥락에서 위상을 재정립하게 되는데, 이것이 어쩌면 쇼팽 국제 콩쿠르의 가장 보편적인 임팩트가 아닐까 싶다.
뭔가 이렇게 폴란드성을 피아노계 관점에서 설명해 보려 해도, 대개는 다 암묵지적이어서, 말로 하기보다는 딱 연주를 들었을 때 '아, 바로 Polish'하다고 직감할 수 있는 성격의 종류다. 이건 자꾸 듣다 보면 구별하는 감각이 생기는 문제기는 하지만, 꼭 폴란드인의 연주가 아니어도 폴란드식(?)으로 배우거나 그 문화 안에서 성장하면, 그런 연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쇼팽 콩쿠르 현장 무대에서 절감한 적도 있다. 앞서 아시아계 최초 입상권인 푸총을 소개했지만, 파이널리스트로도 가진 못했지만 중국 출전자 중에서 어떻게 저렇게 폴란드인처럼 연주할 수 있을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친구가 있었는데, 콩쿠르 책자의 참가자 소개를 보니, 어려서부터 폴란드에 살면서 폴란드 스쿨에서 피아노를 배운 전형적인 폴리시 피아니즘을 추구하는 스타일을 갈고 닦은 경우였다. 참, 어려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게 그래서 중요하구나, 하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 계기기도 했다. 아쉬웠던 점은, 당시 대회는 폴란드 출신들이 죽을 쑤는 연주를 제법 하기도 했지만, 이미 쇼팽 콩쿠르는 현대적 표준과 기준에 맞추어 어느 정도 진화하는 단계를 넘어선 터라, 전형적인 폴리시 스타일만으로 승부를 내기에는 훌륭했음에도 시대착오적인 연주(라기보다는 전략)였다는 사실이다.
이쯤 이야기하면 폴란드 피아니즘이란 외부의 시선에서는 역사의 굴곡 속에서 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동네 학원에서 누구나 들어봤을 만한 그 예쁘장한 피아노 곡, 그 또한 폴란드 작품이다. <소녀의 기도>(Modlitwa dziewicy, op. 4) 작곡가로 알려진 바다르체프스카가 바로 쇼팽이 타계하기 몇 년 전에 태어나 활동한 폴란드인이다(원명은 Tekla Bądarzewska-Baranowska). 파리의 한 잡지의 부록으로도 악보가 실리는 바람에 살롱 음악의 전형으로 널리 확산되기도 했는데, 근대 이후 유독 아시아에서 인기가 높아, 일본, 대만, 우리나라에서 벨소리나 경보 멜로디용으로도 쓰일 만큼 일상을 파고들기도 했다(그러니까, 또 한 편으로 유명한 멜로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급이라는 이야기다.)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면, 폴란드적 피아노 어법을 쉬운 문법 속 서정으로 풀어낸, 아마추어도 접근이 가능한 재현이라 할 수 있겠다. 구구절절 설명 생략하고, 느낌만 보면, 왜 그렇게 많은 그 어린 친구들이 이 곡을 들으면 다 너도나도 한번쯤은 쳐보고 싶거나 관심을 기울이는 진기한 현상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너 소녀의 기도 칠 줄 알아?'라는 게 학원에서 피아노 좀 칠 줄 안다고 하는 주인공들에게는 FAQ나 다름없던 시절이다. [단, 여기서 언어가 굳어져 관행적으로 필자도 쓰기는 하지만, 사실 피아노를 '친다'는 말은 무척 빗나간 센스의 발로인데, 이는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자.]
[9] 배경이랄까, 앞 이야기가 너무나 길어졌나 싶은데, 이런 주제들은 꺼내려고 마음만 먹으면 한도 끝도 없으니, 이제 본격적인 대회 내부로 들어가보자. 올해 대회가 이제 1차 예선이 아직 반이 채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시간 기록을 남기자면 현재 2일차 모든 세션이 끝난 상황이다) 뭔가 판단한다면 편향이 일 수 있지만, 그래도 감각적으로 눈에 뜨이는 점은 시게루 가와이를 '선택'한 출전자가 유독 많아 보인다는 거.
시게루 가와이는 가와이 사가 제작한 프리미엄 브랜드다. 예쁘장하면서도 깊은 울림까지 연주자의 개성을 마음 먹으면 먹는 대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서인지 선호도가 점점 높아지는 듯하다. 원래 가와이 브랜드에 대해서는 다루기가 다른 브랜드보다 까다로운 면이 있지만 제대로 적응하면 그 소리의 깊이와 폭에 놀라 선호도가 바뀌기도 한다고. 필자도 고작 아마추어지만, 가와이로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보면, 뜻밖에도 이것이 내 실력, 내 소리인가 싶게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적인 음악이 흘러나오고는 한 경험이 있다. (다른 피아노로는 그래본 기억이 없다.) 그런 적이 무척 드물고, 또 그대로 다시 그렇게 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는 게 큰 문제긴 하지만. ^^
즉, 이 대회에서 연주되는 작품들이 쇼팽의 피아노 곡들에 한하는 만큼 피아노 준비와 대회 운영에도 그만큼 더 신경을 쓰는 모양이라, 연주자들이 피아노를 최소 네 개 브랜드에서 고를 수 있다. (올해는 아직 피아노가 다 등장하지는 않아 변화가 있는지 모르지만, 예년의 경우를 보면) 그 유명한 스타인웨이는 물론, 야마하, 가와이, 파찌올리 정도가 그 4인방이다. 지난 대회에서는 특히 스타인웨이는 선호도가 대체로 높은 만큼 그 자체로 두 종 가운데 고르도록 했는데(하나가 함브루크산이고 하나가 뉴욕산인지까지는 모르겠다), 시리얼 넘버 뒷자리로 구분해 유튜브 영상에서는 자막으로 표기해 주기도 했다. 올해 영상을 보면 스타인웨이도 브랜드명만 나오고 있어 그런 세밀한 옵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출전자를 소개하는 현장 진행자의 멘트에도 연주될 선곡 목록은 물론 무슨 피아노가 선택되었는지 반드시 포함된다. 참고로, 피아노 역시 악기다 보니, 같은 브랜드라도 시리얼 넘버에 따라 연주자 선호도가 갈리기 마련이다. 즉 같은 데서 만들었다고 다 같은 피아노가 아니라는 말이다.
피아노는 사실 가정에도 (비록 대개는 업라이트지만) 널리 보급된 만큼 대량 생산 공산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프리미엄 브랜드일수록 여전히 수공이 (특히 스타인웨이는) 많은 비중 차지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 개별성이 없을 수가 없다. 사실 스타인웨이나 파찌올리는 그냥 수제 피아노라고도 하는데, 그 제작 전 과정은 잘 상상은 안 간다. 여건만 된다면 스타인웨이 마이스터가 되어 그 전 과정에 푹 빠져도 보고 싶지만, 손재주가 워낙 없고 도구나 기구를 다루는 데 소질이 없다는 (학창 시절 실험 전공 과목들에서 이를 절감하고는 대학원에 가면서 이론 쪽으로 전공을 택하게 된) 사실을 되새기면 너무 고된 꿈에 불과할 듯하다.
혹자는 피아노를 그렇게 치면서 손재주가 없는 게 맞냐는 의혹을 품지만, 손재주라고 다 같은 손재주가 아님은 물론, 피아노를 잘 연주하는 게 진짜 그 일명 손재주의 범위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기본적으로는 지성이나 뇌의 기작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또한 흥미로운 논의 거리므로 언젠가 꼭 다뤄보겠다). 그런 의혹의 주인공 중 한 분은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셨다. 이미 난 그 학년에 10년 가까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으므로. 미술 시간에 내가 실기를 해도 해도 너무 못하니까 고의적 농땡이는 아닌가 싶으셨나 보다. 사실 미술에 그 정도 젬병인 건, 기구와 도구에 약한, 훗날 물리학과에서 실험에 젬병인 역량성과 통한다고 가정해 보고는 한다. (필자가 파울리 효과의 그 '파울리'급 (노벨상 수상자다!) 물리학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 이름이 붙은 징크스만큼은 백 배, 천 배 공감한다. 파울리가 근처만 가도 실험 기기들이 망가져서 될 실험도 안 된다는 그 일화적 꼬리표. 물론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이론과 실험은 천지 차이로 다르지만, 그래도 저 정도일까 싶으면서 한편으론 크게 공감이 간다. 지금 돌아보면 필자에게 그 험난한 전공 필수 실험 과목들을 어떻게 통과하고 졸업할 수 있었나 싶을 정도다.)
아무튼, 따라서, 출전자가 무슨 피아노를 골랐는지 자체가 대회 관전의 묘미를 크게 더한다. 본인 해석이나 기교 스타일에 잘 맞는 피아노인지 아닌지 등, 작품 감상하는 만큼이나 악기 감상하는 재미가 크다. 또 그만큼 큰 대회여서 이 기간에 각 브랜드도 자사의 악기를 홍보하고 널리 알리려고 공을 꽤 많이 들인다. 이 면에서 가장 적극적인 야마하는 다소 스타일을 구겼는데, 주최 측에서 기존 출전자들의 브랜드 선호 집계 결과, 다른 3사에 밀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다양한 (디지털 피아노 모델까지 포함해) 라인업을 무기로 여전히 야마하가 가장 대중적인 해외 브랜드 아닐지.)
그러하다 보니 n번 출전자가, 이전 n-1번째 출전자와 다른 피아노를 골랐으면, 대회가 열리는 그 무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피아노를 교체하도록 무대 한쪽 구석에 피아노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 또한 최소 2~3분은 걸리다 보니, 앞에서 소개한 시간표는 말 그대로 계획표고 이 순서가 피아노를 자주 바꿔줘야 하는 순서면 일정은 지연되기 마련이다. 출전자 순서는 어떤 기준에 따라 로마자 하나를 고르면, 거기서부터 last name 알파벳 순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사이클이 한 번이 아니라 두세 번 순환하는 식인 듯도 하다. (그래서 로마자 C로 시작하는 조성진은 대부분 스테이지에서 1번 또는 선순위 타자였던 기억이 난다.)
- 계속-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과학자와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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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회 초창기에는 단연 폴란드, 러시아(당시 소련)를 비롯한 동구권의 강세가 뚜렷했다. 사실 1위만 보면 4회 대회까지 20년 이상을 소련이 보유하고 있다(공백 기간을 포함해서다). 물론 4회의 1위는 폴란드와 공동 1위고(실제로 폴란드가 1위였는데 소련의 입김이 있었다는 후문도 들렸다) 5회 대회에서 완전히 폴란드에 그 지위를 넘기게 된다. 이후 폴란드 연주자의 1위 기록은 20년 뒤에나 다시 나오게 된다(1975). 그러고 그로부터 30년이 더 흘러서야 폴란드는 1위를 배출한다. 2005년의 1위는 사상 초유의 세월을 기다렸기도 해서지만, 전 부문을 싹쓸이해서기도 해서 무척 각별했다. 본 콩쿠르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 대회 창설 후 78년 만에 나온 일이었으니! 하지만 이후 최근의 콩쿠르 현황을 보면 이는 정말 기현상이나 마찬가지다. 다. 이를 기점으로 폴란드 출신들이 기염을 토하는 시대가 다시 열리나 싶었지만 역사는 오히려 이들이 파이널리스트에 한두 명이라도 오르면 다행인 방향으로 지각 변동이 일었다.
그렇다면, 쇼팽 콩쿠르에서 폴란드 출신들의 (홈) 어드밴티지 이야기는 왜 없어지질 않을까?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다고 못하지만 또 모두가 용인하는 어드밴티지라는 필연적 배경 또한 존재한다. 여기서 역차별 이슈가 등장하는데, 아주 비중이 크지는 않았더라도, 또는 정말 폴란드 피아니즘의 쇠퇴인지는 몰라도, 폴란드인이 우승이나 상위권 입상을 독차지하다 보면 아무래도 직/간접적으로 견제를 받기가 쉬워진다. 마치 요즘 K-클래식 열풍이 화제인데, 너무 거세다보니 클래식계에서 한국인들이 역차별 우려까지 하기에 이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최근 콩쿠르에서 한국인들의 부각이 주춤하는 듯하기도 한데, 계속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중국계 등의 더 거센 부상은 이런 간접적 영향으로 나타나는 현상의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폴란드 연주자들의 유리함은 통계적 근거보다는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심지어는 막연한 인식이나 대회 초창기에는 아무래도 폴란드 출심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첫인상'의 비합리적인 잔재로 인한 영향에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Descriptive statistics만 보면 흥미롭기는 한데, 폴란드는 러시아와 함께 역대 최대 다수 우승자 배출국이다(4회). 전 대회의 22% 수준이니 두 나라가 44%, 거의 반에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한다. 뒤집어 보면, 어떻게 초창기에 폴란드(+동구, 소련권) 일색인 대회를 '국제'적이라 할 수 있겠냐 싶지만, 공교롭게도 소련이 그들의 예술적 우위를 만방에 떨치겠다는 야심으로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를 처음으로 개최한 시기에 맞물려 쇼팽 콩쿠르도 진정한 국제화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부터 이탈리아, 그리고 이후 아르헨티나, 미국 등 우승자의 국적이 아시아권까지도 포함해 그야말로 말 그대로 '세계'적으로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폴란드의 상대적 약세를 동반하게 되기도 했다.
어드밴티지 논란의 한 가지 측면은 심사위원단 구성인데, 대체로 30% 내외 수준으로 폴란드 피아니스트들이 비중을 꾸준히 차지하고 있으므로, 아무리 대회 규정에서 사제 간 평가를 제하도록 하고 있더라도 복잡한 수직, 수평적 관계망의 구조상 아무래도 간접적으로도 영향력이 없다고는 보기 어렵다.
조금 더 선명하거나 합리적인 어드밴티지 주장의 근거로, 청중의 지지를 꼽을 수 있다. 확실히 자국 출신들의 연주가 끝나면 박수 소리가 꽤 큰 편이다. (물론 타국 출신 연주자도 다들 쟁쟁한 발군의 실력자들이라 대개 큰 박수를 받는다.) 하지만 그 박수의 열기 차이는 홈그라운드적 지지와 국적 불문 연주에 대한 비교적 객관적인 반응 모두를 내포한다. 출전자에게도 든든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은 한편으론 부담을 키우지만 그보다는 긴장감이나 떨림을 떨치고 컨피던스를 공고히 하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장 정서에서 심지어 심사위원들마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현장의 응원 분위기는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유리한 면은 바로 대회장이다. 말 그대로, 폴란드 출전자들 정도 되면 (사실 자국의 행사인 만큼 몇몇 이유에서 상비군 양성적 기제가 살아 있는 나라다.) 그곳은 '홈그라운드'다. 모든 출전자들에게 공평한 리허설 기회가 제공되지만, 이미 폴란드 출신들은 그 이상으로 이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니 홀에서 연주해본 경험이 (적어도 대다수 타국 출신에 비해서는 유리한 수준으로) 축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홀 공간의 음향 특성, 분위기에 훨씬 익숙하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다.
그러함에도, 이들이 공정성을 해친다고 볼 정도로 강력한가? 논리적으로나 현상적으로나 그렇지는 않음도 분명해 보인다.
[8] 그냥 반증적으로, 공정성 시비가 그렇게 심각하다면, 폴란드 출신들의 약세나 100년 가까이 지속되는 대회 권위, 특히 글로벌 위기 이벤트 상황에서 보류되거나 지연되었음에도, 명맥을 유지하며 계속 국제적 최고의 대회로 자리매김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표면적 어드밴티지 여부보다 더 본질적으로는, 쇼팽 음악의 폴란드다움에는, 어느 나라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아리랑의 한을 한국인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냐는 프레임에 많이 견주고는 한다. 아울러, 공교롭게도 폴란드에는 비슷하게 고유한 결로 폴란드어 자체로 'żal'이라고 하는 정서가 존재한다. 우울, 상실감, 그리움이 뒤섞인 복잡한 심정으로, 폴란드의 역사적 비극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혼과도 같다. 쇼팽 작품 대다수에도 'żal'이 담겨 있는 데서 그 정체성 형성에 일조한다.
그렇게 고유하기에 우리말이나 외국어로는 옮기기 거의 불가능하다. 그냥 '잘'이라 하는 수밖에. 그러니까, 가령, 우리의 '한'을 영어나 다른 나라 말로 뭐라 옮기겠는가? 심지어 폴란드인이 아니면서 바르샤바 청중이나 평단 앞에서 쇼팽을 연주하는 도전에는 상당한 두려움이 수반되며 이를 극복하려면 어마어마한 용기와 자신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폴란드인들 생각에 외국인이 과연 쇼팽의 마주르카와 폴로네이즈를 구석구석까지 정말 완벽한 감각으로 연주하는 게 가능햐나는 것이다. 폴리시 스타일의 정통성과 혁신성 사이의 긴장을 안고 현대 피아니즘과 문화의 변화 앞에 직면하면서, 폴리시 피아니즘은 세계적 맥락에서 위상을 재정립하게 되는데, 이것이 어쩌면 쇼팽 국제 콩쿠르의 가장 보편적인 임팩트가 아닐까 싶다.
뭔가 이렇게 폴란드성을 피아노계 관점에서 설명해 보려 해도, 대개는 다 암묵지적이어서, 말로 하기보다는 딱 연주를 들었을 때 '아, 바로 Polish'하다고 직감할 수 있는 성격의 종류다. 이건 자꾸 듣다 보면 구별하는 감각이 생기는 문제기는 하지만, 꼭 폴란드인의 연주가 아니어도 폴란드식(?)으로 배우거나 그 문화 안에서 성장하면, 그런 연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쇼팽 콩쿠르 현장 무대에서 절감한 적도 있다. 앞서 아시아계 최초 입상권인 푸총을 소개했지만, 파이널리스트로도 가진 못했지만 중국 출전자 중에서 어떻게 저렇게 폴란드인처럼 연주할 수 있을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친구가 있었는데, 콩쿠르 책자의 참가자 소개를 보니, 어려서부터 폴란드에 살면서 폴란드 스쿨에서 피아노를 배운 전형적인 폴리시 피아니즘을 추구하는 스타일을 갈고 닦은 경우였다. 참, 어려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게 그래서 중요하구나, 하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 계기기도 했다. 아쉬웠던 점은, 당시 대회는 폴란드 출신들이 죽을 쑤는 연주를 제법 하기도 했지만, 이미 쇼팽 콩쿠르는 현대적 표준과 기준에 맞추어 어느 정도 진화하는 단계를 넘어선 터라, 전형적인 폴리시 스타일만으로 승부를 내기에는 훌륭했음에도 시대착오적인 연주(라기보다는 전략)였다는 사실이다.
이쯤 이야기하면 폴란드 피아니즘이란 외부의 시선에서는 역사의 굴곡 속에서 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동네 학원에서 누구나 들어봤을 만한 그 예쁘장한 피아노 곡, 그 또한 폴란드 작품이다. <소녀의 기도>(Modlitwa dziewicy, op. 4) 작곡가로 알려진 바다르체프스카가 바로 쇼팽이 타계하기 몇 년 전에 태어나 활동한 폴란드인이다(원명은 Tekla Bądarzewska-Baranowska). 파리의 한 잡지의 부록으로도 악보가 실리는 바람에 살롱 음악의 전형으로 널리 확산되기도 했는데, 근대 이후 유독 아시아에서 인기가 높아, 일본, 대만, 우리나라에서 벨소리나 경보 멜로디용으로도 쓰일 만큼 일상을 파고들기도 했다(그러니까, 또 한 편으로 유명한 멜로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급이라는 이야기다.)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면, 폴란드적 피아노 어법을 쉬운 문법 속 서정으로 풀어낸, 아마추어도 접근이 가능한 재현이라 할 수 있겠다. 구구절절 설명 생략하고, 느낌만 보면, 왜 그렇게 많은 그 어린 친구들이 이 곡을 들으면 다 너도나도 한번쯤은 쳐보고 싶거나 관심을 기울이는 진기한 현상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너 소녀의 기도 칠 줄 알아?'라는 게 학원에서 피아노 좀 칠 줄 안다고 하는 주인공들에게는 FAQ나 다름없던 시절이다. [단, 여기서 언어가 굳어져 관행적으로 필자도 쓰기는 하지만, 사실 피아노를 '친다'는 말은 무척 빗나간 센스의 발로인데, 이는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자.]
[9] 배경이랄까, 앞 이야기가 너무나 길어졌나 싶은데, 이런 주제들은 꺼내려고 마음만 먹으면 한도 끝도 없으니, 이제 본격적인 대회 내부로 들어가보자. 올해 대회가 이제 1차 예선이 아직 반이 채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시간 기록을 남기자면 현재 2일차 모든 세션이 끝난 상황이다) 뭔가 판단한다면 편향이 일 수 있지만, 그래도 감각적으로 눈에 뜨이는 점은 시게루 가와이를 '선택'한 출전자가 유독 많아 보인다는 거.
시게루 가와이는 가와이 사가 제작한 프리미엄 브랜드다. 예쁘장하면서도 깊은 울림까지 연주자의 개성을 마음 먹으면 먹는 대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서인지 선호도가 점점 높아지는 듯하다. 원래 가와이 브랜드에 대해서는 다루기가 다른 브랜드보다 까다로운 면이 있지만 제대로 적응하면 그 소리의 깊이와 폭에 놀라 선호도가 바뀌기도 한다고. 필자도 고작 아마추어지만, 가와이로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보면, 뜻밖에도 이것이 내 실력, 내 소리인가 싶게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적인 음악이 흘러나오고는 한 경험이 있다. (다른 피아노로는 그래본 기억이 없다.) 그런 적이 무척 드물고, 또 그대로 다시 그렇게 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는 게 큰 문제긴 하지만. ^^
즉, 이 대회에서 연주되는 작품들이 쇼팽의 피아노 곡들에 한하는 만큼 피아노 준비와 대회 운영에도 그만큼 더 신경을 쓰는 모양이라, 연주자들이 피아노를 최소 네 개 브랜드에서 고를 수 있다. (올해는 아직 피아노가 다 등장하지는 않아 변화가 있는지 모르지만, 예년의 경우를 보면) 그 유명한 스타인웨이는 물론, 야마하, 가와이, 파찌올리 정도가 그 4인방이다. 지난 대회에서는 특히 스타인웨이는 선호도가 대체로 높은 만큼 그 자체로 두 종 가운데 고르도록 했는데(하나가 함브루크산이고 하나가 뉴욕산인지까지는 모르겠다), 시리얼 넘버 뒷자리로 구분해 유튜브 영상에서는 자막으로 표기해 주기도 했다. 올해 영상을 보면 스타인웨이도 브랜드명만 나오고 있어 그런 세밀한 옵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출전자를 소개하는 현장 진행자의 멘트에도 연주될 선곡 목록은 물론 무슨 피아노가 선택되었는지 반드시 포함된다. 참고로, 피아노 역시 악기다 보니, 같은 브랜드라도 시리얼 넘버에 따라 연주자 선호도가 갈리기 마련이다. 즉 같은 데서 만들었다고 다 같은 피아노가 아니라는 말이다.
피아노는 사실 가정에도 (비록 대개는 업라이트지만) 널리 보급된 만큼 대량 생산 공산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프리미엄 브랜드일수록 여전히 수공이 (특히 스타인웨이는) 많은 비중 차지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 개별성이 없을 수가 없다. 사실 스타인웨이나 파찌올리는 그냥 수제 피아노라고도 하는데, 그 제작 전 과정은 잘 상상은 안 간다. 여건만 된다면 스타인웨이 마이스터가 되어 그 전 과정에 푹 빠져도 보고 싶지만, 손재주가 워낙 없고 도구나 기구를 다루는 데 소질이 없다는 (학창 시절 실험 전공 과목들에서 이를 절감하고는 대학원에 가면서 이론 쪽으로 전공을 택하게 된) 사실을 되새기면 너무 고된 꿈에 불과할 듯하다.
혹자는 피아노를 그렇게 치면서 손재주가 없는 게 맞냐는 의혹을 품지만, 손재주라고 다 같은 손재주가 아님은 물론, 피아노를 잘 연주하는 게 진짜 그 일명 손재주의 범위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기본적으로는 지성이나 뇌의 기작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또한 흥미로운 논의 거리므로 언젠가 꼭 다뤄보겠다). 그런 의혹의 주인공 중 한 분은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셨다. 이미 난 그 학년에 10년 가까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으므로. 미술 시간에 내가 실기를 해도 해도 너무 못하니까 고의적 농땡이는 아닌가 싶으셨나 보다. 사실 미술에 그 정도 젬병인 건, 기구와 도구에 약한, 훗날 물리학과에서 실험에 젬병인 역량성과 통한다고 가정해 보고는 한다. (필자가 파울리 효과의 그 '파울리'급 (노벨상 수상자다!) 물리학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 이름이 붙은 징크스만큼은 백 배, 천 배 공감한다. 파울리가 근처만 가도 실험 기기들이 망가져서 될 실험도 안 된다는 그 일화적 꼬리표. 물론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이론과 실험은 천지 차이로 다르지만, 그래도 저 정도일까 싶으면서 한편으론 크게 공감이 간다. 지금 돌아보면 필자에게 그 험난한 전공 필수 실험 과목들을 어떻게 통과하고 졸업할 수 있었나 싶을 정도다.)
아무튼, 따라서, 출전자가 무슨 피아노를 골랐는지 자체가 대회 관전의 묘미를 크게 더한다. 본인 해석이나 기교 스타일에 잘 맞는 피아노인지 아닌지 등, 작품 감상하는 만큼이나 악기 감상하는 재미가 크다. 또 그만큼 큰 대회여서 이 기간에 각 브랜드도 자사의 악기를 홍보하고 널리 알리려고 공을 꽤 많이 들인다. 이 면에서 가장 적극적인 야마하는 다소 스타일을 구겼는데, 주최 측에서 기존 출전자들의 브랜드 선호 집계 결과, 다른 3사에 밀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다양한 (디지털 피아노 모델까지 포함해) 라인업을 무기로 여전히 야마하가 가장 대중적인 해외 브랜드 아닐지.)
그러하다 보니 n번 출전자가, 이전 n-1번째 출전자와 다른 피아노를 골랐으면, 대회가 열리는 그 무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피아노를 교체하도록 무대 한쪽 구석에 피아노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 또한 최소 2~3분은 걸리다 보니, 앞에서 소개한 시간표는 말 그대로 계획표고 이 순서가 피아노를 자주 바꿔줘야 하는 순서면 일정은 지연되기 마련이다. 출전자 순서는 어떤 기준에 따라 로마자 하나를 고르면, 거기서부터 last name 알파벳 순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사이클이 한 번이 아니라 두세 번 순환하는 식인 듯도 하다. (그래서 로마자 C로 시작하는 조성진은 대부분 스테이지에서 1번 또는 선순위 타자였던 기억이 난다.)
- 계속-
블랙소스 : 블랙홀을 source로 삼으면 반타블랙만큼 진한 맛의 과학문화적 sauce가 나온다고 믿는 물리 커뮤니케이터. 과학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함을 아우를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물리 중에서도 전공한 단편적 영역 외에는 잘 몰라서 최소한의 타협안으로 물리 커뮤니케이터라 자칭. 세상만사의 근간이 얽혀 있다고 믿는 양자중력과 양자정보에 관한 영원한 탐구생활을 위한 밥값은 모 대기업에서 만드는 데이터의, 데이터에 의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로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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